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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생지6

송겅이(宋庚一)사건에 대한 몇 가지 생각 글: 복전자경(福田自耕) 요즘 상해진단학원(上海震旦學院)의 송겅이 선생이 남경대학살때의 사망숫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 학생에 의해 고발되고, 결국 그는 교직에서 면직당했다. 이 사건은 광범위한 주목과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이에 대해 높은 수준의 의견을 제시했다. 필자는 그것을 분위기를 따라서 인기를 얻고자하는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말을 해야 시원하겠다는 느낌이 있어 몇 마디 할까 한다. 1. 송겅이 선생이 한 말은 옳은가? 틀렸는가? 송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일본군은 확실히 남경에서 반인류적인 행위를 했다. 왜 그들이 이렇게 반인류적인 행위를 했는가? 내 생각에 특별히 연구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별히 한 가지를 연구해야 한다. 당시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남경에서.. 2021. 12. 21.
민국시대의 각지방 군벌(軍閥)은? 글: 대웅역사관(大熊歷史觀) 원세개(袁世凱)가 소참(小站)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킨 후, 그의 손으로 당세 세력이 가장 큰 북양군벌(北洋軍閥)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는 다시 민국의 대총통에 오른다. 원세개는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다. 특별히 당시 각 지역의 장수들이 모두 원세개에게 기.. 2019. 9. 30.
항일전쟁때 장개석은 어떻게 남경을 잃었는가? 글: 천하무신(天下無臣) 1.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1937년 북평(북경) 노구교사변이후, 일본군은 중국을 대거 침략하여, 계속 남하한다. 남경은 당시 중국의 수도로 국민정부는 지킬 것이냐 말것이냐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전의 송호회전에서 국민혁명군은 손실이 참혹했.. 2016. 1. 10.
황포군관학교의 4개 분교 글: 마려(馬麗) 제1차국공합작이 실현된 후, 국민혁명사업에 충성하기로 뜻을 세운 군사인재를 배양하기 위하여, 1924년 5월, 손중산(孫中山)은 소련과 중국공산당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주 황포에 중국국민당육군군관학교(1926년 3월에 중앙군사정치학교로 개칭함), 간칭 "황포군관학교"를 .. 2013. 11. 24.
국민당은 왜 남경을 수도로 정했는가? 작자: 미상 1840년대부터, 중국의 국가안전은 서방열강의 위협을 받아왔다. 신해혁명후, 어느 곳을 중국의 새로운 정치중심으로 할 것인가는 혁명당인들이 직면한 중대한 정치이슈였다. 각파는 우선 새로운 정치중심을 놓고 무창(武昌)과 상해(上海)를 놓고 다투게 된다. 무창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곳.. 2010. 10. 12.
곽말약은 왜 장개석을 욕하였는가? 글: 이종금(李鍾琴) 사람들은 곽말약이 문혁시기에 쓴 비굴하게 아부하는 시문을 읽으면서 왕왕 잘 납득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오늘의 장개석을 보라>>라는 격문을 썼던 그 곽말약이란 말인가? 곽말약이 장개석을 시원스레 욕해댄 것을 보면 약간은 선비기질이 있었나 싶.. 2008.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