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납7

강청의 전남편 당납(唐納): 신비한 신분의 수수께끼 (2) 글: 하월명(賀越明) 홍콩 창간에 막후연락 및 총편집을 맡다. 당납의 중공당원신분은 그와 두번이나 동료로 함께 일했던 원로신문인 서주성이 가장 먼저 밝혔다. 처음에는 간접적으로 밝힌다. 그는 1980년대초에 (상해인민출판사1981년판)에 "오소주(吳紹澍)와 "라는 절에서 1947년 5월 가 국민당정부에 의해 폐쇄당한 후, 다음 해에 오소주와 함께 대만으로 간 일을 언급한다. "우연하게도 상해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당원동지가 홍콩에서 비밀리에 상해로 돌아와서 나에게 말했다. 민혁(民革)이 이미 홍콩에 성립되었고, 기관보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임조(李任潮) 선생은 나에게 가서 주재해달라고 했다..." 홍콩에 성립된 민혁의 전칭은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로 주석은 이제심(李濟深)으로 자가 '임조'였다.. 2023. 3. 4.
강청의 전남편 당납(唐納): 신비한 신분의 수수께끼 (1) 글: 하월명(賀越明) 2012년 8월 23일은 당납 선생의 기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꼬박 2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납"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인방"이 타도되면서, 나라를 떠난지 오래되고 이름없이 살아가던 그가 다시 중국인들의 시야에 들어왔고, 보통민중들이 화제로 올리는 인물이 되었다. 일찌기 "사랑때문에 목숨을 버리려 했다" 1970년대말부터 현재까지, 신문잡지에는 당납을 소개하는 글이 적지 않았다. 수가 많아서 일일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총괄해서 말하자면, 이들 글 중에서 이전에 당납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몇몇 언론종사자들의 회고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대부분 포풍착영(捕風捉影)하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베낀 수준이었고, 적지 않은 글들은 .. 2023. 3. 4.
당납(唐納): 강청(江靑)의 전남편, 모택동을 만나다. 글: 문사춘추(文史春秋) ㅇ 1930년대 '남평(藍萍)'이라는 예명으로 상해탄 영화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강청은 일찌기 다재다능하며 다수선감(多愁善感)한 저명한 영화평론가 당납(그의 본명은 馬驥良이다)과 곡절많은 혼인생활을 겪었다. 이들의 이혼사건은 한때 세상을 뒤흔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알았다. 그러나 당납이 강청과 이혼한 후에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37년 7월 노구교사건이 발생한 후, 절망에 빠진 남평은 상해를 떠나 섬북(陝北)으로 간다. 연안에 들어갈 때, 남평은 이름을 강청으로 바꾼다. 그녀는 불안정했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심계가 뛰어났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이런 명언을 남긴 바 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고,.. 2020. 9. 5.
당납(唐納): 강청(江靑) 전남편 신분의 수수께끼. 2012년 8월 23일, 이 날은 당납 선생의 기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이미 24주년이 되었다. "당납"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사인방'의 몰락과 더불어 나라를 떠난지 여러해 되고, 거의 이름없이 지내던 당납이 다시 중국인들의 시야에 들어왔고, 보통민중이 마음대로 .. 2014. 4. 4.
강청(江靑)의 자살원인 글: 섭영렬(葉英烈) 강청은 마지막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것은 약간 의외이다. 강청이 자살한 소식은 신화사에서 발표했는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신화사(1991년) 6월 4일전 본보 기자가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임표,강청반혁명집단의 주범 강청이 보외취의(保外就醫, 우리나라의 "병보.. 2013. 11. 10.
예쉔닝과 위정성: 태자당 대표인물의 관계 글: 김정(金睛)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임위원중 가장 연장자이면서 68세의 데드라인에 근접한 위정성(兪正聲)이 상임위원에 들어간 이유에 대하여는 외부에서 주목하는 부분이다. 태자당인 위정성은 외부에서 알려진 것처럼 덩(鄧)가의 가신인 것 이외에, 그들 가족은 중국공산당 정계의 .. 2012. 11. 25.
강청(江靑)은 삼류배우였나? 글: 진전요(秦全耀)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강청이라는 여인을 얘기할 때면, 1930년대에 상해에서 영화를 찍을 때 "바로 삼류배우"였다고 말하곤 한다. 심지어 정령(丁玲)과 같이 강청을 잘 아는 사람도 이렇게 말했다. 만일, 감정적인 요소를 버리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아마도 또 다른 결론이 나올 .. 2008.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