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 63

중화민국의 12개 직할시(直轄市)

글: 민초사운(民初思韻) "직할(直轄)"은 고대에 "직예(直隸)"라고 불렀다. '직예제'는 송(宋)나라때부터 시작되었다. 북송은 "로(路)"를 성급(省級)행정단위로 삼았다. 23로(路)를 설치하는 외에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부(府)가 있었다. 예를 들면 북경의 수도인 개봉부(開封府)이다. 1946년, 국민정부는 '헌법'에서 여러번 '직할시'를 언급한다. 그러나, 제11장의 '지방제도'에는 단지 '성(省)', '현(縣)'만 있고, 직할시와 지방(서장)에 관한 규정은 없었다. 그리고 그후 공문서에서는 "원할시(院轄市)"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하여, 직할시는 직접 사용되지 않는다. 1921년 7월 북경정부가 반포한 에서 경도시(京都市)는 내무부가 직접 감독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중앙정부가 직접 감독하는..

대일항전시기 3차례의 위기순간

글: 양천석(楊天石) 첫번째 위기순간은 송호(淞滬)전투에서 패배하고 남경(南京)이 함락된 때였다. 국민당 고위층의 대다수가 주화파(主和派)였다. 송호항전은 1937년 8월 13일부터 시작한다. 국민정부는 75만의 군대를 모아서 3개월간 전투를 벌인다. 국민정부로서는 당시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한 것이다. 전국각지에서 군대를 상해로 보내 일본군과 혈전을 벌인다. 그러나 결정이 성급하게 이루어졌고, 지휘가 체계적이지 못하여 결국 패전하고 만다. 일본군은 군사상식을 뛰어넘어 혈전을 벌인 후, 전혀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남경으로 진격한다. 12월 13일 남경을 점령하여, 국민정부는 수도가 함락된다. 12월 15일, 국민정부는 고급간부회의를 소집한다. 회의에서는 주화파와 주전파가 격렬하게 논쟁을 ..

남경현장사 일본전범위패사건의 경위

글: 당정원(唐靖遠) 주말이 지나면서, 남경 현장사(玄奘寺) 일본전범위패사건의 내막이 드러나고 있다. 이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밖이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보인다. 예상밖이라는 것은 당사자인 "우아핑(吳哦萍)"의 신분이 금방 확인되었고, 그 배후에는 무슨 일부 샤오펀홍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일본군국주의분자의 침투나 중국애국주의교육진지를 점령하려는" 음모같은 것은 없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사건이 폭로된 후, 불교에 대한 지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당사자가 이 위패를 모신 동기를 지적한 바 있었다는 것이다. 간략히 이 사건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미 사건의 촛점은 옮겨갔다. 어제, 남경정부는 "남경시위시정부조사조"의 명의로 현장사일본전범위패사건의 조사결과를 통보했다. 통보에 따르..

조휘(趙輝): 중국역사상 가장 장수한 부마, 명나라 9조(朝)의 황제를 겪다

글: 도도설문사(濤濤說文史) 최근 몇 년간 전통적인 한문화를 젊은이들이 갈수록 더 좋아하고 있다. 원래 TV를 수십년동안 차지하고 있던 청나라궁중드라마가 많이 줄어들었고,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드라마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최근 비교적 인기리에 방영된 그리고 이전의 그리고 오랫동안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던 . 봉건왕조중 가장 마지막 한족통치의 왕조로서, 명나라는 독보적인 매력이 있다. 명나라는 끝까지 화친하지도 않고, 투항하지도 않으면서 천자가 국문을 지켰던 왕조이다. 대명은 후세에 많은 보물을 남겼다. 예를 들어 4대명저, 본초강복, 그리고 수많은 문인, 장수. 예를 들어 왕양명, 탕현조, 서하객, 이시진등등. 그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전설적인 인물도 있다. 예를 들어 9명의 황제를 ..

중국역사상의 사대천부(四大天府)

작자: 미상 중국역사상 모두 4개의 천부(天府)가 나타났다: 응천부(應天府), 순천부(順天府), 승천부(承天府), 봉천부(奉天府). "천"은 "천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부"는 제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곳이거나, 혹은 칭제이전에 출생하거나, 칭제이전의 봉지이거나 칭제이전에 발상지이다. 간단히 말해서, 어느 군왕의 용흥지지(龍興之地)라는 뜻이다. 이 사대천부는 왕조에 따라 각각 설립했다. 어떤 경우에는 대응하는 곳이 한 곳이 아니다. 응천부(상구/남경), 순천부(북경), 승천부(종상/대만/월남), 봉천부(무강/심양)이다. 왜 이렇게 같은 이름의 천부가 여러 곳에 나타났을까? 이는 그 도시와 관련있는 군왕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1. 응천부 송나라와 명나라때 응천부를 두었다. 송나라의 응천부는 하남..

민국시대의 12개 직할시

글: 역사망(歷史網) "직할(直轄)"을 고대에는 "직예(直隸)"라고 불렀다. 직예제도는 송나라때부터 시작된다. 북송은 "로(路)"를 설치하여 현재의 성급행정구역으로 삼는다. 23로외에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부(府)가 있었다. 예를 들어 북송의 경사소재지인 개봉부(開封府)이다. 1946년 민국정부에서 통과된 '헌법'에는 여러번 '직할시'가 언급되어 있다. 다만 제11장 '지방제도'에는 단지 '성(省)', '현(縣)'만 규정되어 있고, 직할시나 지방(서장)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그리고 이후의 공문에서도 여전히 "원할시(院轄市)"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직할시"라는 명칭이 직접 시행되지는 못했다. 국민정부에는 일찌기 12개의 직할시가 있었다. 1921년 북경정부가 반포한 에는 경도시(京都市)를 내무부가 직..

천하총림사절(天下叢林四絶): 중국의 사대명사(四大名寺)

글: 서미견문(西米見聞) 중국은 지역이 광활하다. 세계에서 면적이 세번째로 넓다. 동시에 중국은 상하 오천년의 역사가 있고, 많은 명승고적을 남겼다. 전국 내지 전세계에서 유명한 만리장성, 병마용 등등. 동싱 봉건사회때의 많은 사묘(寺廟)도 있다. 모두 장관이다. 고대에 지위가 높은 건물은 많은 것이 사묘이다. 비록 많은 사묘들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것은 중국의 사대명사이다. 사서에서는 천하총림사절이라고 부르며, 모두 천년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네개의 사묘는 바로 영암사(靈巖寺), 국청사(國淸寺), 옥천사(玉泉寺)와 서하사(棲霞寺)이다. 이 네 개의 사묘는 사료에 모두 기록이 있다. 천하총림사절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유명..

남명(南明)에 기회는 없었을까?

글: 구어정(九魚亭) 주체(朱棣, 영락제)는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예비방안을 마련해 두었다. 북방은 어쨌든 리스크가 큰 곳이다. 그래서 남경에 온전한 행정조직을 보류해둔 것이다. 육부육과(六部六科)를 모두 갖추었다. 남명에 괜찮은 지도자만 있었더라면, 그 효율은 북경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남명이 판세를 뒤집을 기회도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회는 항상 스쳐지나가 버렸다. 송고종이 건염남도(建炎南渡)할 때, 그는 1인황제라 할 수 있었다. 병사도 없고 장수도 없다. 그리고 금나라군대에 이리저리 쫓겨다녔다. 그에게서 제왕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조구(趙構)는 결국 안정적인 정권을 수립한다. 그리고 점차 역량을 모아서 금나라와 대치한다. 조구는 비교적 능력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가 ..

나대강(羅大綱): 중용받지 못한 태평천국 최고의 전략가

글: 림림(琳琳) 중국의 지세는 서고동저(西高東低), 북고남저(北高南低)이다. 지형등 원인으로 군사투쟁에서 남방인이 북방인을 이긴 경우가 드물고, 동부정권이 서부정권을 이긴 경우도 드물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남방에서 북벌하여 전국을 통일한 승리는 단지 2번이다. 1번은 주원장..

명성조 주체(朱棣)의 정난지역(靖難之役)때 주원장(朱元璋)의 다른 아들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글: 묘불쾌락(猫不快樂) 주원장은 중국황제사상 할 얘기거리가 아주 많은 황제이다. 그의 출신이든, 아니면 경력이든 아니면 건국후의 각종제도책략이건간에. 당연히, 이런 위인은 일반적으로 생육능력이 비교적 강한 편이다. 그가 20여명의 아들을 두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