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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익부인10

한무제(漢武帝)는 왜 막내아들 유불릉(劉弗陵)을 황위후계자로 삼았을까? 글: 팔점종사기(八點鐘史記)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 기원전156년 7월 14일 - 기원전87년 3월 29일)은 서한(西漢)의 제7대 황제이다. 한무제는 16세때 등극하여, 중앙에는 중조(中朝)를 설치하여 황권을 공고히 했으며, 지방에는 13주의 자사(刺史)를 두어 제후왕과 지방고위관료에 대한 감찰을 강화했다; 찰거제(察擧制)를 채택하여 인재를 설발하고; 문화적으로 동중서(董重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을 확립하여, 유가사상을 국가의 통치사상으로 삼는다. 군사적으로는 외적을 물리쳐 영토를 확장하고 국위를 선양했다. 동으로 조선을 병합하고, 남으로 백월을 점령했으며, 서로는 대완을 정벌하고, 북으로 흉노를 격파했다. 이렇게 한나라의 기본적인 영토를 확립하고, 한무.. 2023. 6. 28.
한무제때 "무고지화(巫蠱之禍)"의 막후인물은 누구일까? 작자: 미상 무고(巫蠱)의 통상적인 해석은 한 무리의 독충(毒蟲)을 하나의 그릇에 넣고[고(蠱)라는 글자 자체가 벌레를 놓아두는 그릇(皿)이라는 뜻이다], 독충이 서로를 잡아먹게 한 후에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한 마리의 독충을 '고'라고 부르는데, 그 독성이 아주 강하다고 한다. 무고술의 구체적인 방법은 오동나무로 만든 작은 인형의 위에 저주할 사람의 이름, 생진팔자등을 쓰고 마법과 저주를 한 다음 고를 저주받을 사람이 거처한 곳 혹은 근처에 풀어주고, 이를 통해 저주받는 사람의 영혼을 통제하고 조종한다는 것이다. 그럼 2천여년전에 발생했던 무고지화가 어떻게 서막을 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기원전92년, 한무제 유철(劉徹)은 건장궁(建章宮)에서 한 남자가 검을 차고 용화문(龍華門)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2021. 1. 14.
한무제는 왜 유불릉(劉弗陵)을 후계자로 삼았을까? 글: 구어정(九魚亭) 유불릉의 생모는 조첩여(趙婕妤)이다. 구익부인(鉤弋夫人)이라고도 불리고, 권부인(拳夫人)이라고도 불린다. 한번은 한무제가 사냥을 갔는데, 하간국(河澗國)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한무제의 곁에 있던 방사가 현지에 기녀자(奇女子)가 있다고 말한다. 한무제는 미신을 믿어, 사람을 보내어 찾게 했더니, 금방 한 여자를 찾아낸다. 그 여자가 바로 구익부인이다. 여자는 아주 기괴했다. 두 손을 꽉 쥐고 있는데,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펴고자 해도 펴지지 않았다. 한무제는 호기심이 발작하여, 직접 말에서 내려, 그 여자의 주먹을 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의 자하선자가 자청보검을 뽑는 사람은 하늘이 골라준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마침 지존보가 자청보검을 뽑아서, 그 후에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 2020. 10. 8.
곽광 vs 상홍양: 한무제의 두 탁고대신은 왜 서로 반목하게 되었는가?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그때는 염철회의 대변론 후의 다음 해였다. 즉 한소제 원봉원년(기원전80년) 구월, 잘나가던 상홍양(桑弘羊)은 시종 자신의 경력과 공로가 모두 곽광(霍光)보다 위라고 여긴다. 그런데, 정치적인 지위는 곽광보다 낮은 점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 2019. 10. 10.
구익부인(鉤弋夫人): 한무제의 수수께끼같은 후궁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기원전87년 이월 십이일, 한무제는 병이 위중해졌다. 나이 겨우 8살의 유불릉(劉弗陵)을 황태자에 앉힌다. 태자를 세운 다음 날, 한무제는 사망하고, 유불릉이 황위를 승계하며 생모인 구익부인 조씨를 황태후로 추존한다. 사서에는 이 황태후 구익부인의 기록이 .. 2019. 1. 5.
한무제는 왜 구익부인을 죽여야 했을까?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무릇 업적을 세운 제왕들은 큰 재주도 지녔지만 큰 재앙도 만들어낸다. 이런 인물이 역사상 드물지 않다. 그 걸출한 대표인물은 바로 진시황과 한무제이다. 이 두 사람은 정치적 풍격이 아주 비슷할 뿐아니라, 개인적인 취향도 거의 비슷했다. 일생동안 장생불로.. 2018. 1. 9.
균형의 타파와 재건 글: 왕립군(王立群) 세력간의 균형은 제국정권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방식의 하나이다. 다만, 이런 균형은 가장 취약한 형태이기도 하며, 아주 쉽게 타파되기도 한다. 일단 균형이 타파되면, 제국정권의 안정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균형이 타파되는 것은 어느 일파가 특정한 역사조건.. 2011. 4. 27.
한무제는 왜 황태자의 모친을 죽였는가? 글: 왕립군(王立群) 파벌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제국정권의 안정을 도모하는 중요한 일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균형은 가장 취약한 형태이기도 하다. 아주 쉽게 깨어질 수 있다. 일단 균형이 깨지면, 제국정권의 안정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균형파괴는 균형을 이루던 한 파벌.. 2010. 8. 24.
북위(北魏)의 법률: 아들이 태자가 되면 모친은 죽는다 글: 해하혼(海河魂) 고대중국은 봉건사상에 깊이 물들어있었고, 여자들의 지위는 아주 낮았다. 중국고대의 유상상속제도는 일반적으로 적장자를 기준으로 했다. 특히 암투가 심한 황궁에서는 누구라도 먼저 아들을 낳아서 태자가 되는 것이 중요했다. 모친은 자식이 귀하게 될수록 귀해지는 것이고, .. 2007. 11. 23.
한무제의 후계자 기원전94년, 한무제가 총애하는 구익부인(钩弋夫人)이 아들을 낳았다. 무제는 매우 예뻐했다. 비록 그는 이전에 이미 다섯 명의 자식이 있고, 황위계승자 즉 태자도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지만, 이 황제는 늙어서 자식을 얻었을 뿐아니라, 이 아이가 아끼는 후궁의 소생이며, 게다가 구익부.. 2007.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