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명5 민국(民國)시대 가장 권위있는 10명의 국학대사(國學大師) 글: 방유(方維) 민국시기는 중국문화사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대사(大師)들이 많이 배출되었을 뿐아니라, 개성도 충만했다. 그리하여 춘추전국과 위진남북조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1. 장태염(章太炎) 1929년, 상해 는 을 발행했다. 에서 108명의 영웅호한을 정한 형식을 모방하여당시 문화계의 대사들의 서열을 매긴 바 있는데, 1위로 선정된 사람이 바로 장태염이었다. 청화대학 국학원이 성립될 때, 가장 먼저 확정된 교수 명단에는 단지 3명이 있었다: 장태염, 양계초(梁啓超), 왕국유(王國維). 그러나, 장태염은 고사하고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뒤의 두 사람은 그와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찌기 양계초에 대하여는 "만일 양계초 같은 무리라면, 역사에 한 글자라도 들어갈 수 .. 2023. 5. 30. 고홍명(辜鴻銘): 청나라의 마지막 유민 글: 홍촉(洪燭) 대청제국은 1912년에 와해되고 붕괴되었다. 그저 우충(愚忠)한 유민(遺民)들의 변밞머리만 남아있게 되었다. 그들은 마지막 깃발을 지키는 것처럼 자신의 변발을 지켰다. 이를 통하여 몰락한 왕조의 시신을 지킨 것이다. 왕국유와 마찬가지로 변발을 유지한 사람으로 고홍명이 있다. 고.. 2009. 11. 6. 고홍명(辜鴻銘)과 양계초(梁啓超)의 비교 글: 정만군(程萬軍) 청나라말기, 부패하고 썩은 청나라조정은 이미 백족지사(百足之蛇)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각종 신구 "애국지사"가 연이어 등장하여, 각자의 파벌의 정견으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구하고자 하였다. 신구파로 나뉜 "변사(辯士)"의 무리중에서, 두 명의 대표적인 인물이 나타난다... 2008. 4. 24. 중국현대화의 일본환상 글: 유앙(劉仰) 만청(滿淸, 만주족의 청나라)정부말기부터, 많은 중국인들은 한 가지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어떻게 해야 낙후되고 얻어맞는 국면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중체서용(中體西用)"이건, "전반서화(全盤西化)"이든 하나의 기본출발점은 서방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7. 6. 7. 광유(狂儒) 고홍명(辜鴻銘) 고홍명(1857-1928) 청나라말 민국초기의 유명한 문화괴걸이다. 당시의 서양인들은 중국에 가면 삼대전은 보지 않더라도 고홍명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외국에 많이 알려진 중국의 인물이었다. 고홍명의 선조는 원래 성이 진(陳)씨였다. 대대로 복건성의 하문 동안에서 물고기를 잡으.. 2006. 10. 1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