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청71 오덕(吳德) : 모택동 말년의 4 총신(寵臣) 오덕은 노동운동으로 일어선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백구(白區)에서 생활했다. 동시에 그는 진찰기(晋察冀)의 사람이어서 이중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요한 것은 그는 사람됨이 멍청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급자들은 그에 대하여 방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덕은 충성심이 강한 .. 2006. 12. 18. 왕동흥(汪東興) : 모택동 말년의 4 총신(寵臣) 왕동흥은 모택동의 곁에서 30년간 경위(警衛)로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기등규(紀登奎)는 모택동의 옛친구의 신분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다. 오덕(吳德)은 동필무가 죽은 후에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실질적인 주재자가 되었고, 주덕이 죽은 후에는 중공전국인민대표대회당조 서기가 되어 인대를 3년간 장.. 2006. 12. 18. 모택동의 자녀들 양개혜(楊開慧)와의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 모안영(毛岸英) 1922. 10. 24. - 1950. 11. 25. - 호남성 장사에서 출생 - 1930년 10월 양개혜와 함께 감옥에 갇힘 - 1936년 당에서 찾아서 소련으로 보냄. 소련에서 중위계급을 달고 소련군의 대반격에 참가. - 1946년 연안으로 돌아옴. -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 미군비행기.. 2006. 5. 3. 모택동(毛澤東)의 딸은 왜 성이 이(李)씨인가? 모택동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하나는 이민(李敏)이고 하나는 이눌(李訥)이다. 이름은 "민어행이눌어언(敏於行而訥於言, 행동은 재빠르게, 말은 어눌하게)"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모택동이 딸의 성을 이로 한데 대하여는 두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모택동이 일찌기 호남에서 도망쳐 연안으로 갈 .. 2005. 12. 21. 모택동(毛澤東) : 모주석의 일상비용지출 모택동의 비서인 오연등이 쓴 "모주석의 일상비용지출"이라는 글을 옮긴 것입니다. =================================================================================== 나는 1964년부터 1976년 모주석의 서거때까지, 계속해서 모주석집안의 관리를 맡았다. 모주석의집안은 관리하기 좋았던 것을 말하자면 관리.. 2005. 11. 18. 이전 1 ···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