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등소평)

등소평 자손의 돈자랑

by 중은우시 2022. 8. 17.

글: 원빈(袁斌)

 

최근에 등소평가족과 관련된 두 가지 소식이 있다.

1990년대 등소평일가. 앞줄(왼쪽부터) 卓琳 , 鄧小平, 鄧朴方, 뒷줄(왼쪽부터) 鄧質方, 鄧林, 鄧榕, 鄧楠

하나는 덩푸팡(鄧朴方)의 후손에 관한 것이다.

 

해외의 여러 매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베이징의 14살짜리 소년 장스자(張師嘉)가 인터넷에 돈자랑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등푸팡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장스자의 틱톡배경사진은 등푸팡과 한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이로 보면, 여자는 장스자의 모친으로 보인다. 장스자는 2021년 옥천산(玉泉山)의 집을 공개했는데, 등푸팡의 쓴 글 "불구자다호(不求字多好), 단원심서창(但願心舒暢)"이었다. 거기에 붙여 쓴 글에는 "이것은 내가 받은 가장 의미있는 선물이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당신은 내가 계속 노력하는 목표이자 방향입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네티즌이 공개한 캡쳐사진에 따르면, 장스자는 스포츠카를 좋아한다. 8월 10일에 틱톡계정에 이렇게 올린다: "14살에 인생에서 최초의 차량 람보르기니가 어떤 느낌인지 말한다..." 그가 산 것은 금년의 새 모델 람보르기니 HURACáN이었다. 베이징에서 판매가격은 400만위안이다.

 

장스자가 찍은 틱톡을 보면, 그의 집에는 다른 수퍼카도 있다. 그리고 그가 수집한 실물크기의 트랜스포머등 피규어도 진열되어 있다. 장스자가 자주 가는 곳중 하나는 베이징에서 입회비가 100만위안인 최고급예술구락부이다.

 

수퍼카를 제외하고, 네티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장스자의 명언이다. 특히 유명한 것은 이 말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지?" 

 

또 다른 뉴스는 등소펑의 장남 등푸팡(鄧朴方)에 관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8월초, 소문이 있다. 등푸팡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병사했다는 것이다. 상세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소식은 아직 매체에서 확인보도를 내놓지는 않고 있다. 위키백과의 덩푸팡의 생졸년도 변경되지 않았고, 그가 사망한 연도가 추가되지 않았다. 이는 이 소식은 아직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장스자가 돈자랑을 했다는 소식이든 덩푸팡이 사망했다는 소문이건 모두 등소평집안의 재산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전해지는 바로는 등푸팡이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중국에 1조위안이상의 자산을 가진 것은 우리 집안만이 아니다. 최소한 17개는 된다. 천만위안이상의 자산을 가진 집안은 최소 50곳이다. 많은 경우는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이니, 여러분들이 질투하지는 말아달라. 능력이 있으면 스스로 벌면 되지 않는가."

 

덩푸팡이 이런 말을 정말 했는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가 1조위안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도 마찬가지로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바로 등푸팡의 재산은 중국백성들의 상상력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등소평의 외손녀사위였던 우샤오후이(吳小暉)의 안방집단(安邦集團)은 산하 총자산이 2조위안에 가까웠다. 덩푸팡이 1조위안이상의 재산을 가졌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 네티즌이 장스자에게 겸손한게 좋겠다는 의견을 실었다. 그러나 장스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같다. "나는 아주 겸손한데요!" 그 말의 뜻은 그는 자신의 집안 재산을 모두 인터넷에 올린 것이 아니란 말이다. 14살에 400만위안의 람보르기니를 몰면서 자신은 아주 겸손하다고 말한다. 장스자의 집안에 돈이 얼마나 많을지는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등푸팡의 말대로라면, 그를 포함한 홍얼다이의 재산은 대부분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이라는 것이다. 조금만 상식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모두 배꼽잡고 웃을 것이다. 이것만한 개소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등푸팡과 비교하면, 그의 후손인 장스자는 훨씬 솔직하다. 그가 말한 것이 맞다.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단 말인가? 장스자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개혁개방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문혁후의 중국에서 권력은 돈을 가장 빠르게 벌 수 있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홍얼다이 가족의 놀라운 재산은 모두 자신들이 장악한 권력으로 얻어낸 것이다. 등소평가족은 바로 가장 전형적인 사례중 하나이다.

 

1980년대초, 덩푸팡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중국최대의 "관도(官倒)"회사인 캉화실업(康華實業)을 만든다. 특권을 이용하여 수출입허가증을 판매하고, 강판, 가전용품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국가에서 통제하는 물자 예를 들어, 석유, 석탄, 면직품등을 판매하여 거액의 폭리를 취한다. 나중에 민원이 너무 많이 발생하여, 캉화는 정돈당한다. 그래소 덩푸팡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그후 그의 재산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장애인기금회는 그의 개인금고가 된다.

 

덩푸팡이 일선에서 물러난 뒤, 둘째아들 덩즈팡(鄧質方)이 등씨집안 사위 우젠창(吳建常)과 허핑(賀平)을 데리고 등장한다. 덩즈팡은 원래 물리학을 배웠다. 1980년대말 미국에서 귀국한 후 사업에 뛰어든다. 그는 금방 중국4대회사중 하나인 중신(中信) 산하의 중신흥업의 부총공정사가 되고, 이어서 부총경리 겸 총공정사로 승진하고, 나중에는 당연히 동사장이 된다.

 

덩샤오핑의 1992년 남순강화후, 덩즈팡은 기회를 틈타 굴기한다. 그는 선전롄탕(蓮塘)부동산회사의 명의로 선전 염전 황금해안의 샤터우자오(沙頭角) 하이타오로(海濤路)의 땅을 제로가격으로 30무 받는다; 그리고 저가로 상하이 홍차오개발구의 땅을 받아 쓰팡(四方)부동산을 설립한다; 다롄리강(立港)부동산을 인수한다; 그리고 세력범위를 당시 아직 영국이 관할하고 있던 홍콩으로 넓힌다. 그는 베이징 셔우강(首鋼)의 동사장 저우관우(周冠五)의 아들 저우베이팡(周北方), 홍콩재벌 리카싱(李嘉誠)과 합작으로 5.8억홍콩달러를 들여 홍콩완구대왕 딩씨(丁氏)형제의 카이다집단(開達集團)을 인수하여, 셔우두쓰팡(首都四方)회사를 설립하여 홍콩에 상장시킨다. 홍콩의 일부 부호들은 등소평에 잘보이기 위해 속속 지분을 인수하여, 쓰팡집단의 최대주주 겸 동사장인 등즈팡은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지?" 장스자의 이 말은 확실히 홍얼다이들이 재산을 모은 내막을 모르는 네티즌들의 무지를 조롱하는 것이다. 이런 적나라한 오만은 권력귀족자제들의 후안무치를 보여줄 뿐아니라, 어떤 각도에서는 중공이야말로 당금세계에서 말그대로 부패당이라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