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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자동차

상해자동차가 쌍용을 경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by 중은우시 2006. 8. 25.

참고소식 2006년 8월 24일자. 서울주재기자 장금방(張錦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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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한국에 대한 최대의 투자프로젝트는 중국상해자동차집단총공사("상해자동차")의 한국쌍용자동차주식회사의 인수건인데, 최근에 여러가지 골치아픈 일들을 맞이하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경영손실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추진하는데, 노동조합과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올해 8월이후 노사분규가 확대되어 전면파업으로 이르렀고, 공장생산중단에까지 이르렀다. 기자가 원고를 송고할 때까지 연속 43일간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쌍용자동사의 문제는 중국기업이 "해외진출"전략에서 맞부딪치는 곤혹과 도전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수성공

 

2004년 10월 28일, 상해자동차는 서울에서 최종계약을 체결하고, 약 5억달러의 가격으로 쌍용자동차의 48.92%의 지분을 인수했다. 이후, 상해자동차는 전후 10여차례에 걸쳐 주식시장에서 쌍용자동차의 주식을 매입하였고, 지분비율은 51.33%까지 상승하였다. 이로써 쌍용자동차의 절대지배주주가 되었다.

 

한국쌍룡자동차는 한국의 5대자동차기업의 하나이다. SUV, RV와 고급승용차 위주이다. 동시에 대형버스와 특종차, 자동차엔진과 부속품을 생산한다. 1997년, 쌍용자동차는 부채과다로 대우집단에 인수되었다. 1999년 대우집단이 해체될 때, 쌍용자동차는 분리되어 나왔고, 독립한 상장회사가 되었다. 한국채권단은 급히 투자금을 회수하고자 하여, 쌍용자동차는 다시 팔리게 되었다.

 

이치에 따르면, 상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매수한 것은 양쪽에 다 좋은 일이었다. 상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것은 중국자동차업계에서 해외인수한 첫번째 사안이었고, 인수성공으로 중국자동차업계의 실력과 전진에 대한 자신감을 증가시켰다. 한국으로 말하면, 불량자산을 처분한 것이고, 채무부담을 덜었던 것이고, 쌍용이 회생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인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쌍용"브랜드가 상해자동차의 손을 빌어 중국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경영결손

 

누가 생각했으랴. 쌍용은 2005년 1월에 상해자동차의 품에 안긴 후, 즉시 황금인형으로 바뀌지 않았다. 일년여동안, 상해자동차는 쌍용자동차에 노력을 경주하였고, 극력 해외사업을 잘 기르고자 하였고, 쌍용자동차를 성장하게 하고자 하였찌만, 그러나 쌍용의 경영실적은 사람마음같지가 않았다.

 

쌍용자동차의 자동차판매량은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16만대와 15만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상해자동차가 인수한 후의 2005년의 판매량은 겨우 14만대였다. 금년의 7개월동안 쌍용의 차량판매는 겨우 6.8만대이다. 금년에는 아마도 13만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당초 확정했던 년간 완성차 17.2만대판매목표는 실현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쌍용매각이전에는 구조조정을 통하여 결손에서 영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전환했었다. 2004년에는 410억원(1달러는 약 960원)의 이윤을 실현했다. 상해자동차가 인수한 후의 2005년에 쌍용자동차의 경영장부에는 1,033억원의 손실이 기록되었다. 금년의 1/4분기에 쌍용은 233억원의 손실을 나타냈다. 경영손실은 수입이 지출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데, 쌍용의 주요주주변경후의 가장 주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상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후, 중국측 경영진은 쌍용에 진주했고, "백일진흥"계획을 시행했다. 그리하여 각종 방법을 동원해서 경영상황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작년 11월, 쌍용의 고위경영진이 교체되었고, 경영부진의 한국측 사장인 소진관은 사직하였다. 연구개발을 책임지던 한국인 최형택이 사장직을 이어받았다. 쌍방은 신차종개발에 박차를 가하였고, 한국국내와 외국의 양대시장을 개척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노력이 적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쌍영의 경영성과는 여전히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이것은 상해자동차가 처음에 한국시장의 환경을 잘 몰랐던 것과 불가항력적인 시장요소도 없지는 않다. 상해자동차가 인수한 때는 바로 국제시장에서 에너지가격이 폭등할 때였고, 디젤유를 쓰는 쌍용자동차는 제일 먼저 타격을 입었다. 한국의 연료유는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그 완제품석유의 가격은 국제시장의 변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서, 계속 올라갔다. 원래 경제적이고 쌌던 디젤유의 가격이 마구 올라갔으며, 쌍용자동차를 운전하는 원가를 매우 높여버렸다. 한국정부는 하필 이 때 디젤유에 대하여 오염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로써 쌍용자동차의 고객은 더욱 부담이 늘었으며, 쌍용자동차의 시장경쟁력은 이로써 절반가량은 잃어버렸다.

 

파업직면

 

쌍용자동차가 여러 곤란에 빠져 있을 때, 곤경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구조조정을 진행하여, 자신의 조혈능력을 강화시키고, 시장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쌍용은 업무조정을 진행하였다. 감원을 통하여 몸집을 줄이고 신체를 강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한국에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주제 즉, 인력감축에 관련되게 된 것이다.

 

기업이 경영곤란에 처했을 때, 인력감축을 통하여 원가를 낮추고 효율을 제고시키는 것은 국제적으로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고자 하면 시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기업이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파산지경에 처하게 되어, 직원들은 쓰러진 나무에서 원숭이들이 흩어지듯 흩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국가상황에 비추어, 상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할 때 전체 인원을 그대로 고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로써 인수에 반대하는 큰 장애를 덜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쌍용자동차가 지금에 와서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하고, 부득이하게 554명의 직원을 정리해고명단에 올렸다. 해고될 것을 두려워한 직원들은 반대하기 시작했고, 쌍용의 노사갈등은 이로부터 격화되었으며, 쌍용의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대규모의 파업을 시작했다.

 

한국노동조합의 강성은 세계에 유명하다. 기업경영상황이 좋건 나쁘건, 노동자들이 이익을 더 챙길 수 있다고만 생각하면 파업을 해버리는 것이고, 급여인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을 이끌고 파업하면 종종 승리를 거두어, 사용자로 하여금 급여를 만족스럽게 인상하게 만들곤 했다. 한국의 적지 않은 대기업들은 매년 두 차례의 계절성 파업을 맞이하는데, 춘투와 하투이다. 오랫동안의 파업으로 인하여 한국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사람들이 믿기 어려울만큼 고수준이 되었다. 이로써 한국기업은 노동력이 저렴한 국가로 생산기지를 하나둘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투자자들도 그저 바라만보고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상해자동차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기 전에 한국의 강성 노동조합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쌍용의 모든 직원을 계속 고용하겠다는 특별합의조항은 쌍용이 직원을 해고하는데 아주 큰 걸림돌이 되었다. 한국기업은 노동조합이 조직하는 파업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대항할 힘이 없다. 쌍용을 인수한 중국기업이 부닥친 노동조합조직의 파업은 확실히 하나의 엄중한 도전이다.

 

쌍용자동차의 이 노사분규는 7월부터 시작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급여 10%인상등의 요구가 거절되었고,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파업을 시작했으며, 이로써 쌍용자동차의 주요한 두 개의 공장이 전면적으로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다. 8월 11일부터, 쌍용자동차의 완성차와 엔진생산라인도 가동이 중단되었다. 사태는 악화되었다. 8월 16일, 노동조합은 소위 "옥쇄파업"을 시행하였고, 쌍용자동차회사의 모든 소속공장의 5300여명의 노동자들이 쌍용의 가장 중요한 평택공장을 점령하였고, 공장내에서 숙식을 해결했으며 인원의 출입을 금지했고, 수만병의 음료수와 수만개의 라면을 파업노동자들에게 제공했으며,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세력을 보여주고, 사회의 동정을 얻기 위하여, 수천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8월 17일 서울거리에서 대규모 시위행진을 벌였고, 중국대사관앞에 모여서, 교통체증을 유발시켰으며, 한국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23일까지, 쌍용자동차 파업은 43일째로 접어든다. 노사협상은 계속 진행되고 있으나, 의견차이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고, 파업은 장기화추세를 띄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생산과 운영은 파업으로 인하여 정지상태에 이르렀다.

 

보호주의

 

최근, 쌍용은 또 하나의 골치아픈 사정이 있다. 바로 소위 "기술유출" 문제이다. 당초에, 한국여론과 쌍용직원은 바로 "기술유출"을 이유로 상해자동차의 쌍용자동차인수를 반대하였었다. 금년 6월, 상해자동차와 쌍용자동차는 여행차반제품기술양도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240억원의 기술양도비를 지급하였다. 이 사건은 쌍용직원이 "기술유출"을 반대하면서 파업을 시작한 주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되었다. 소위 "기술유출"이라 함은 쉽게 말하면 한국의 수준높은 기술이 중국에 유출된다는 것이다.

 

상해자동차는 기술양도비를 지급하고 쌍용의 그다지 최첨단은 아닌 기술을 매입하였는데, 이것은 국제기술거래의 원칙에 부합된다고 볼 수 있고, 유상으로 지적재산권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쌍용자동차와 상해자동차 모두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원래 별 것도 아닌 사안이 쌍용자동차의 노조나 직원이 보기에는 "기술유출"로 변모된 것이다. 결국은,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쌍용자동차가 중국기업에 팔린 것이 불만인 것이다. 그들은 중국기업이 계속 커가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기업이 자신들의 기업을 사는데 대하여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GM이 원래 대우자동차를 인수했고, 프랑스의 르노자동차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했을 때는 "기술유출"문제는 말도 꺼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 중국의 상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곳에서만 "기술유출"문제를 꺼내는가?

 

상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것은 중국기업의 "해외진출"전략의 하나의 유익한 시험이었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따른다. 경영을 잘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더구나 중국기업이 해외진출로 인수한 기업임에야. 해외에서는 국가상황, 인문환경과 기업문화등이 모두 중국과 다르다. 경영중에 나타나는 문제도 충분히 예측하기 힘들다. 손해를 한번 보고서야 지혜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다. 상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후에 일정기간동안 갈등의 잠복기를 거쳤다. 분명히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좋은 약을 찾아야 한다. 이런 좋은 약은 바로 신용을 지키고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각나라의 상황과 문화를 존중하며, 기업의 혁신을 계속하는 것이다. 해외진출을 생각하는 중국기업이라면 해외에서 마주치는 상황과 도전에 대하여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