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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장비는 조조의 조카사위

by 중은우시 2006. 7. 20.

사천성 사회과학원의 연구원이면서 중국삼국연의학회 상무부회장인 심백준(沈伯俊)은 삼국연의에 대하여 20년여년간을 연구한 끝에 장비와 조조의 관계를 풀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삼국연의>>가 인기리에 방영될 때, "여포의 병기는 방천화극인가?" "형주는 도대체 어디인가", "제갈량이 농사지었다는 남양은 어디인가?" "장간은 무능한 자인가? "손부인의 이름은 손상향인가?"등등의 글을 썼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장비는 조조의 조카사위"라는 것이었다.

 

조조와 장비의 관계는 하후연의 일가와 연결시켜보아야 한다. 그들의 관계는 조조의 부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조의 부친은 조숭인데, 동한말년의 환관인 조등의 양자이다. 그래서 조씨성을 얻었는데, 조숭은 실은 하후씨의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혈연관계로 따지자면 조조의 원래 성은 하후씨였다. 그래서 그의 부하인 장수 하후돈, 하후연은 모두 동족이다. 그 중 하후돈은 그의 당제이고, 하후연은 그의 족제이다. 조조와 하후돈, 하후연의 친척관계는 삼국지와 삼국연의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조조집단내에서 하후돈, 하후연의 가족은 매우 존경받았다. 진수가 삼국지를 쓸 때, 하후돈, 하후연을 조인, 조홍등 조씨 종친과 합쳐서 하나의 전(傳)으로 만들었고, 이름을 <<제하후조전(諸夏候曹傳)>>으로 붙였다. 심백준은 이들이 자신의 재능외에도 조조와의 혈연관계가 이들이 이름을 날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장비와 하후씨는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는가?

 

장비는 유비의 심복장수로서 그의 집안출신이나 정치적인 입장을 봐서는 하후씨 가족과 인연을 맺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는 천하가 어지로울 때였고, 사람들의 운명이 천변만화하던 때였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장비는 하후씨집안의 사위가 되었다.

 

이 인척관계에 대하여 나관중의 삼국연의에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진수의 삼국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그 때 하후패의 종매(從妹)가 나이 13,4세였다. 본군에서 초채로 나갔다가 장비에게 붙잡혔다. 장비는 그녀가 양가집 규수인 것을 알고는 자기의 처로 삼았고, 딸을 낳았다. 그 딸은 유선의 황후가 되었다" 대략의 뜻은 하후패(하후연의 둘째아들)의 '종매" 즉, 하후연의 당질녀는 우연한 기회에 장비에게 붙잡혀서 처가 되었다는 것이므로 장비는 하후연의 조카사위가 되는 것이다.

 

조조가 하후연의 족형이므로, 이로서 보면, 조조는 조조에게도 당질녀의 남편 즉 조카사위가 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유비의 아들인 후주 유선도 조조와의 사이에 조카손녀사위가 된다. 왜냐하면 장비와 하후연의 당질녀사이에 낳은 딸이 나중에 유선의 황후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나는 219년 유비가 한중을 공격할 때, 한중을 방어하던 하후연과 싸우게 되는데, 하후연이 정군산에서 황충에게 죽임을 당한다. 장비의 처가 이 소식을 듣고는 장비에게 청하여 하후연을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장비의 처로서는 당숙에 대한 어느 정도의 효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248년, 사마씨가 조씨에게 나라를 빼앗은 후에 하후패는 연좌될 것이 두려워 촉으로 도망치게 된다. 하후패가 군대를 이끌고 성도에 왔고, 유선이 친히 접견한다. 이 때 유선은 자기의 아들을 가리키며 "이 아이가 하후씨의 조카입니다"라고 하였다. 유선은 하후패을 차기장군으로 봉하였으며, 하후패는 촉한 후기의 중요한 장수의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