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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

궤변 : 조조는 여자였다.

by 중은우시 2006. 3. 17.

최근 중국의 웹사이트에는 각종 궤변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글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저, 재미로 보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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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 우리는 세부적인 문제에서 조조가 실제는 남장여인이었다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

 

1. 제1회를 보면 삼국연의에서 조조가 낙양북부위를 맡은 기간동안에 "5색의 몽둥이 십여개를 준비했다"고 하고 있다. 남자라면 형벌도구의 색깔까지 고려했겠는가?

 

2. 제20회를 보면, 조조가 한헌제로부터 상을 받은 동승을 만나서는, 별로 묻지도 않고는 바로 비단옷을 입어보고, 옥대를 매고, 좌우에 자랑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분명히 여성의 심리이고, 옷에 대한 애착을 알 수 있다. 나중에 동작대에서도 금은재보를 현상으로 걸지 않고, 비단옷(금포)를 건 것도 동일한 현상이다.

 

3. 조조에게는 간헐적인 편두통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 정상적인 생리현상이다. 조조가 화타를 왜 죽였는지 아는가? 사실은 이 명의는 조조를 진단한 후에 조조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조조에게 자식들이 많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장기간 전투를 직접 한 것을 예로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삼군의 사령관이 되었는데, 누가 감히 조조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이것은 조조가 자기의 성별을 감추는데 가장 좋은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몇명 그냥 양자로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이다. 조조가 여자라는 것을 보다 더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하여 두명의 인물을 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는 장제의 처이다. 그녀는 또한 장수의 형수이기도 하다. 조조는 완성에서 장수의 항복을 받은 후에, 만일 남자였다면 아무리 호색가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진영안에서 다른 사람의 윗사람을 유혹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장수를 다른 데로 보낸 후에 일을 처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깊이 생각하는 조조가 이 때는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바로 장수의 형수를 찾아갔는데, 이것은 아마도 여성들 사이의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결국 그것은 장수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장수가 보복하는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 것은 장자인 조앙이 아니라 전위이다. 조조를 깊이 사랑했던 이 남자는 조조의 신변호위무사가 되었고, 전위는 조조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나중에 허저도 이 사실을 아는 자중의 하나이다), 조조가 전위를 선택한 것은, 그가 자기를 사랑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신의 안위를 안심하고 그에게 맡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조조는 전위에게 고마워하기는 했지만, 사랑하지는 않았다). 전위는 완성의 전투에서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바쳤으니, 정이 많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양수이다. 이 사람을 논하기 전에 먼저 두 가지 문제를 얘기해야겠따. 여자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내는 답은 놀랍게도 일치한다. 의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조가 의심이 많았던 것은 여자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사람의 앞에서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속여야 한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더더구나 방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조조는 다른 사람이 자기가 잠잘 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자객으로부터 암살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는 꿈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버릇이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양수가 이 일에 대하여 평론을 하면서, 어느 정도 조조로 하여금 이 자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처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외에 양수는 이전에 조조가 잘먹은 음식을 훔쳐먹은 적도 있었다. 남자에게라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큰 죄이다.(못믿겠으면 여자친구나 처가 잘먹는 음식을 몰래 먹어보아라. 결과가 보여줄 것이다). 양수의 죽음은 사실 살인멸구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총명했던 양수가 진상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진상도 모르면서 그저 한 여인의 손에 죽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남자는 세계를 정복하는 것으로 여자를 정복하고, 여자는 남자를 정복하는 것으로 세계를 정복한다"고 했다. 조조의 비극은 그녀는 거의 세계를 정복하였지만,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정복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그녀는 스스로 황제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그녀에게는 다른 목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연의에서 조조와 감정적으로 얽히는 사람은 적지 않은데, 언급할 가치가 있는 사람은 세 사람 정도이다.

 

조조의 첫번째 남자는 진궁이다. 이 현령은 이미 붙잡혀온 죄수인 조조를 풀어주게 되는데, 주요한 이유는 바로 그가 진상을 알았기 때문이고, 이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도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조조와 함께 있던 3일간에 조조가 매우 마음이 독랄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번은 그녀를 죽이고자 하지만, 결국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것을 생각해서 결국 손을 쓰지 못하고 만다. 그저 조용히 사라질 뿐이었다. 그러나, 조조에게 있어서는 진궁이 그녀를 떠난 행위는 배반이고 버림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진궁을 놓아줄 수가 없었다. 조조는 백문루에서 장료는 풀어주지만, 여포에 대한 처치도 망설이며 결정하지 못하지만, 오직 진궁 이 배신자에 대하여는 죽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조조가 진궁을 죽인 원인은 자기가 여자라는 사실이 진궁에 의해서 누설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옛 정을 생각해서, 조조는 진궁의 모친(그에게는 시어머니)와 처(정적)는 잘 돌보아 주게 된다.

 

만일 조조와 진궁간의 사랑은 어느 정도 도망치다가 곤궁한데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조조의 유비에 대한 사랑은 완전히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유비가 조조에게 의탁할 때, 많은 책략가들은 이 장래의 숙적을 제거할 것을 건의한다. 조조는 당연히 유비가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비의 섹시한 큰 귀는 조조에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랑이 아름다운 점은 책의 제21회에서 나온다. 조조가 유비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은 분명히 조조가 유비에게 구애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용"에 관한 내용은 실제는 매우 성인물적인 것이다. 이어지는 조조의 그 말 "오로지 그대와 조조뿐이다"라는 말은 사실상 그녀가 유비와 백년해로하고 싶다는 말을 표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총명했던 유비는 자연히 조조의 진심을 알아차렸고, 이로 인하여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조조의 이어지는 말은 더욱 노골적이다 "사내대장부가 번개를 두려워하는가?" 이것은 바로 정식구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조조가 유비와 부부로 맺어졌다면, 아마도 역사상 가장 눈에 띄는 한 쌍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합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역시 제21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 조조는 유비와 계속 사랑놀이를 할 수 없었는가? 왜냐하면 관우와 장비가 유비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제2회에서 "관우, 장비와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는 묘사에서 우리는 유비, 관우, 장비의 관계가 범상한 동지관계는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두는 유비가 양자로 받아들인 아들이고, 유영과 유리는 분명히 유모의 이복 쌍둥이라는 걸 알 수 있다.(그렇지 않다면, 왜 유비가 장년에는 세 명의 처와의 사이에 겨우 아들 하나만을 두고, 노년에 들어서 연속으로 두 아들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사천에 어떤 명약이 있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이로 인하여 유비는 조자룡이 죽음을 무릅쓰고 아두를 구해오자 화를 내는데, 역시 자기의 친생아들보다는 자기가 아끼는 장수의 죽음을 더 아쉬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손상향이 결혼후 얼마되지 않아 친가로 돌아가 버리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유비의 이러한 성향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유비가 임종전에 자기가 가장 아끼던 제갈량에게 만일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아두의 지위를 차지해도 좋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원인으로 유비는 결국 조조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이 계속 싸우는 것은 결국 사랑이 원한으로 변한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유비가 원술을 정벌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성을 떠날 때, 조조가 보낸 허저는 감히 유비와 싸우지 못한 것이다. 전위의 뒤를 이어 조조의 호위무사가 된 허저로서는 조조의 유비에 대한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므로, 감히 유비를 다치게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조조가 유비를 사랑한 것은 하나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더욱 불행한 것은 조조의 다음 목표가 관우였다는 점이다. 이전부터 조조는 관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어느 여자가 키 크고 잘생긴 남자를 싫어하겠는가?  조조는 유비에 대한 사랑이 실패로 끝나자 바로 눈을 돌려 관우를 쫓는다. 그래서 조조는 자기의 수하에 수많은 장수가 있지만, 반드시 살아있는 관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먼저 수하의 안량 문추의 두 장수로 하여금 지도록 만들고 다시 관우에게 적토마도 주어 말의 속도로 적수들을 물리치게 만들었다. 만일 장료나 서황에게 주었다면 그들은 더 멋지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조는 관우를 고의로 받들어줌으로써 그의 환심을 사고자 한다. 이미 두번이나 사랑에 실패했던 조조로서는 이번 기회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한 일은, 관우와 유비의 "사랑"은 조조가 와해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조는 처음에는 고의로 관우와 유비의 처를 같은 곳에 머물게 한다. 이로써 관우에게도 유비와 같은 성벽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관우가 보여준 것은 이미 조조가 또 한번 실패할 운명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조조의 마음 속에는 관우에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이 남아 있었다. 최소한 관우는 조조의 마음을 상하지 않기 위하여 적어도 처를 들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조는 관우가 떠날 때 그를 막지 않았으며, 관우도 화용도에서 조조를 보내주었던 것이다. 사실은 조조로서는 자기가 같이 있어봤던 세 남자중에서, 조조는 관우에게 가장 몰입했다. 그래서 관우가 오나라에 의하여 살해된 후에 조조는 특별히 그의 수급을 가져오게 하여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보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조조는 관우가 죽은 후 상심이 너무 커서 얼마지나지 않아 그만 그도 죽고 만다. 죽기 전에 조조는 여러개의 가짜 무덤을 세우는데 목적은 나중의 사람들이 묘를 통하여 자기가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랑에 실패한 여인은 자주 자기의 운명을 탄식하는 경우가 많다. 조조도 삭을 들고 시를 읊었는데, 가장 전형적인 예이다. 조조의 시중에서 이를 알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월명성희, 오작남비, 요수삼잡, 무지가의(月明星稀, 烏鵲南飛, 繞樹三잡, 無枝可依)" 달은 음(陰)이고 여자를 말한다. 달이 밝으니 뭇 별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한 여자가 천하를 휘어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적할만한 남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까치는 원래 상서로운 새이다. 그러나, 조조는 까치가 아닌 까마귀를 썼더. 이것이 가리키는 바는 자신이 비록 아름다운 여성이나, 남자들 틈에 끼어 있음을 의미하고, 부득이하게 추악한 모습을 하고 남쪽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나무를 세번 돌아본다는 것은 그가 진궁, 유비 및 관우간의 세번의 사랑을 의미하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은 여자로서 사랑을 찾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 네개의 구절에 대하여 당시 조조의 심정을 알지 못하던 유복이 문제를 제기하자, 안그래도 심정이 좋지 않던 조조는 그 자리에서 유비를 창으로 찔러 죽여버리는 것이다. 남자위주의 사회에서, 조조의 이러한 여성적 심리를 누가 이해하였을 것인다.

 

결론적으로, 조조는 감히 중국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전설적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