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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한 이유는? 화공? 흡혈충?

by 중은우시 2006. 2. 19.

적벽대전은 중국역사상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에 승리를 거둔 유명한 전투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하였는가? 일반적으로 조조의 군대가 패전한 치명적인 원인은 화공(火攻)때문이라는 것이다.

 

<<삼국지. 촉서, 선주전>>에는 "손권이 주유, 정보등 수군 수만명을 보내고, 선주(先主, 유비를 말함)와 힘을 합하여 조공(曹公, 조조를 말함)과 적벽에서 싸워, 크게 부수고, 그 배를 불살랐다"고 기재하고 있다. 사마광도 <<자치통감>>에서 "황개는...배 십척에 마른 풀, 마른 나무를 싣고 기름을 그 속에 부었다....북군의 2리여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발진시켰다. 불이 맹렬하게 솟아올랐으며 배는 화살처럼 앞으로 나갔고, 북군의 배를 불살랐다. 불은 강안의 병영에까지 이르렀다" 조조의 군은 화공에 패하였다는 것은 증거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들어 화공론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조조가 실패한 것은 조조의 군대가 전염병을 만나서 전투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지, 화공으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흡혈충에 의하여 조조의 군대는 적벽에서 패하였다는 것이다.

 

흡혈충론자들도 역사서적에서 근거를 찾았다. 예를 들어, 진수의 <<삼국지. 위지. 무제기>>에는 적벽대전에 대하여 기술 할 때, "화공"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는 "조조가 적벽에 도착하여 유비의 군대와 크게 싸웠으나 우세를 점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사병의 대부분이 죽었다. 이에 부대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조조가 전쟁후에 손권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이것은 알 수 있는데, 그는 실패의 원인이 화공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적벽지전은 질병의 침습으로 내가 배를 불태우고 물러난 것이다. 이로써 주유는 공연히 좋은 명성을 건지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조조의 이 말만이 유일한 증거는 아니다. <<오서, 오주전>>에도 조조가 스스로 자기의 전선을 불태웠다고 하고 있다. "조조는 남은 배를 불태우고 패퇴하였다" 이로써 흡혈충론자들은 화공설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조조군이 실패한 주요원인은 전염병 즉 흡혈충병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중국의 고대에 일찌기 흡혈충병이 존재하였다. 예전의 의서에는 주역괘상중에 "산풍고(山風蠱)"라는 병세를 기재하고 있다. 7세기초의 <<제병원후론>>에도 흡혈충병에 관한 기재가 있다. 최근 연구자들은 1973년에 장사의 마왕퇴 1호묘에서 나온 여자미이라의 장벽 및 간장조직에서 대량의 흡혈중알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일찌기 한나라 때, 흡혈충병은 장사일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량의 조사자료는 보여주기를 적벽대전과 관련된 지역은 흡혈충병이 발병하는 지역이었고, 특히 호남,호북일대는 그러하였다.

 

둘째, 흡혈충론자들은 적벽대전의 시간과 흡혈충병의 창궐게절에서 추단하여, 흡혈충병의 유행계절이 바로 조조군대가 이동, 훈련한 가을이었다는 것이다. 조조의 군대가 육지에서 수전으로 바꿀 때 쉽게 이 병에 걸릴 수 있다. 흡혈충병은 인체내에서의 잠복기가 1개월이다. 그들은 1개월이후에 급성증상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조조의 군대가 훈련받을 때 이미 이 병에 걸렸고, 1개월 후에 겨울이 되어 결전의 시기가 되었을 때, 이 병은 이미 급성기에 들어선 것이고, 조조의 군대는 이 병으로 크게 고통받고 있었다.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은 오랫동안 남방의 지역에 있었으므로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가지고 있어, 이 병에 걸리더라도 그렇게 위중하지는 않았다. 조조의 군대는 모두 북방인이었으므로 저항력이 낮았고, 이 병에 걸리면 증세가 위중하였떤 것이고, 이로 인하여 궤멸된 것이다.

 

그러나, 흡혈충병설또한 다 믿기는 어렵다. 이 설은 화공설보다도 논쟁의 여지가 더 많다. <<신의학>>1981년 11기와 1982년 5월 25일자의 <<문회보>>는 이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첫째, 조조는 업에 있었고, 질병지역인 강릉에서 수군을 훈련시키지 않았다. 거기는 흡혈충병의 질병지역이 아니었고, 감염의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둘째, 사서는 확실히 조조가 배를 불태우고 군사를 후퇴시킨 일을 기재하고 있다. 그러나 배를 불태운 지점은 적벽이 아니라 파구(巴丘)였다. 시간적으로 적벽대전때가 아니라 조조의 군대가 패하여 파구로 후퇴한 때었다.

 

셋째, 흡혈충병의 잠복기는 일반적으로 1개월가량이나, 소수의 경우에는 2개월이상이다. 잠복기가 길수록 발병증상도 더 가볍다. 그러므로 조조의 군이 가을에 흡혈충병에 걸리고, 겨울의 적벽대전 때 이 병이 발병했다면, 조조군대의 신체상황은 그리 엉망이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조조의 수군은 대부분 흡혈충이 유행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호북인이었다. 이런 점에서 손권, 유비군대의 면역력과 차이가 없었다. 이것 말고도, 조조에게 보충된 유장의 군대는 흡혈충지역인 사천의 병사들이었다. 그러므로 손권, 유비의 군대와 면역능력에 있어서 높고낮거나 강하고 약한 차별은 없었다.

 

화공론은 다 믿을 수 없다. 그러나 흡혈충설도 결함이 있다. 그렇다면 조조가 적벽에서 패전한 원인은 할 수 없이 후세에 수수께끼로 남겨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