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시절에 4대미남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첫째는 왕정위(汪精衛, 왕징웨이), 둘째는 주은래(周恩來, 저우언라이), 셋째는 매란방(梅蘭芳, 메이란팡), 넷째는 장학량(張學良, 장쉐량)이다.
1. 왕정위(1883-1944)
왕정위라는 인물은 근대에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첫째, 그는 19세에 향시에 장원을 하고, 일본국비유학생으로 뽑힌 후, 일본에서 손문의 중국동맹회에 가입하여 활동한다. 동맹회 3부중 평의부의 책임자가 되는데 이 때 나이가 22세이다. 그는 몇몇 글을 발표했는데, 혁명의 결심이라는 글이 제일 유명하다. 그 글에서 혁명을 성공시키려면 혁명의 장작과 혁명의 솥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통쾌하게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피력한다.
둘째, 그는 청나라의 섭정왕 재풍을 암살하려다가 붙잡혀, 청나라때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옥중에서 지었다는 "引刀成一快, 不負少年頭"는 당대에 회자되는 명구이다.
셋째, 말레이시아 화교 갑부의 딸인 진벽군(陳璧君)은 왕정위를 연설을 듣고 반하여 바로 일본으로 가 동맹회에 참여하고 섭정왕 암살사건에도 참여한다. 옥에 갇힌 왕정위에게 애정을 표시하여 결혼에 이른다.
넷째, 그는 신해혁명성공후, 혁명전의 생각대로, 관직에도 오르지 않고, 의원으로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다섯째, 그는 손문의 중국동맹회의 핵심인물로, 손문을 따라 북벌에 참여하고, 손문의 유언을 받아적은 인물이다.
여섯째, 그는 손문의 사망후 만장일치로 국민당의 주석직에 오른다.
일곱째, 국민당 내부에서 지위는 높았지만, 군사력을 장악한 장개석에게 점차 밀려난다.
여덟째, 그는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유신정부를 세워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중국의 일본군 점령지역을 통치한다.
2. 주은래(1898-1976)
중국의 영원한 총리이다.
3. 매란방(1894-1961)
근대에 가장 유명한 경극배우로 단(旦, 여자역할)이었다.
매란방은 경극세가에서 태어났다. 조부 매교령(梅巧玲, 1842-1882)는 경극의 유명한 단배우로서 동광13절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부친 매죽분(梅竹芬, 1865-1912) 역시 경극배우였다. 모친 양장옥(楊長玉, 1876-1908) 또한 유명한 무생 양융수의 딸이다. 백부 매우전(1865-1912)은 담신배와 오래동안 같이 일한 유명한 금사(琴師)이다. 부모가 어릴 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백부의 집에서 자란다.
4. 장학량(1901-2001)
봉천군벌 장작림의 큰아들이며,
서안사변을 일으켜 장개석을 체포하여 국공합작을 이루게 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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