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의 문화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그 중에서 송나라의 도자기는 전세계를 풍미했던 명품이었다. 송나라 도자기는 민요(民窯)와 관요(官窯)로 나눌 수 있고, 남북으로 나눌 수도 있다. 관요는 황실에 납품하는 도자기였으며, 민요는 민간에서 만들고 민간에서 사용하던 도자기였다. 송나라의 유명한 5대 도자기를 오대명요라고 불리는데, 여(汝), 관(官), 균(鈞), 가(哥), 정(定)이 그것이다.
여요(汝窯)
송나라 오대 명도자기의 하나이다. 소재지는 현재의 하남성 보풍현 청량사이며, 송나라때 여주(汝州)에 속했으므로 여요라는 명칭을 얻었다. 여요는 청유(靑釉)자기를 구운 것으로 유명하다. 여요가 궁정에서 사용된 기간은 약 20년가량이다. 즉 북송의 철종원우원년(1086년)에서 휘종 숭녕오년(1106년)까지이므로, 전해지는 작품이 매우 적어서 사람들에게 희세의 진보로 여겨진다.
관요(官窯)
송나라 오대 명도자기의 하나이고, 남,북으로 나뉘어진다. 기록에 따르면 북송말 휘종 정화에서 선화연간(1111년-1125년)에는 변경(현재의 하남성 개봉시)에 관부에서 청자를 굽기 위한 도요지를 설치하여 북송관요라고 불렀다. 송이 남쪽의 항주로 도망친 후에는 절강 항주의 봉황산아래 도요지를 만들고 내사요(內司窯)를 두었다. 후에는 항주시 남쪽 근교의 오귀산에 따로 신요를 설치하였는데, 이를 통틀어 남송관요라고 부른다.
균요(鈞窯)
북송의 유명한 도자기의 하나이다. 소재지는 지금의 하남성 우주시 성내의 팔괘동이다. 균요는 철, 동을 이용하여 색을 내었고, 구운 후에 푸른색에 붉은 빛을 띄고 있다. 송나라 때부터 "황금에는 가격이 있지만, 균요도자기에는 가격이 없다" "집안재산이 만관이 있더라도 균요 한 점만 못하다"는 말이 돌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가요(哥窯)
송나라 때 오대 명도자기의 하나이며, 가요도자기라고 하는 것은 전부 후세에 전해내려온 도자기를 말하는 것이다. 가요는 도요지가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았고, 연구자들은 전해지는 가요는 송나라때의 정부에서 운영한 도요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요는 송나라때의 내사요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정요(定窯)
송나라 북방의 유명한 도자기이다. 소재지는 하북성 곡양간자촌이다. 당나라말기부터 오대를 거쳐 북송에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금, 원의 시기에는 쇠락했다. 북송 정요는 백색을 위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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