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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남북조)

소소소(蘇小小) : 전당시기(錢塘詩妓)

by 중은우시 2005. 12. 14.

 

소소소의 묘.

 

소소소의 집안은 원래 동진(東晋)에서 관리를 지낸 집안이었는데, 후대에 이르러 전당(현재의 항주)로 와서 조상이 물려준 재산으로 살아갔으며, 그 곳에서는 제법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딸 하나만을 두었으므로 매우 예뻐하였다. 그녀는 몸집이 작아서 소소(小小)라고 불렀다고 한다. 소소소가 15세때 부모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가산을 판 후에 유모인 가이(賈姨)를 데리고 성의 서쪽에 있는 서냉교(西冷橋) 근처로 옮겨 살았다.

 

그녀는 송백나무숲에 작은 집을 짓고, 물려받은 재산에 의지하여 살아갔으며, 자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았다. 그녀는 예쁘고 총명하였으므로 그녀가 가는 뒤에는 많은 풍류소년들이 따라다녔다. 부모가 돌아가셨으므로, 소소소는 젊은 청년들과 교류를 즐겼교, 그녀의 작은 집에는 시를 짓는 선비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녀의 집앞에는 항상 가마가 몰려들었고, 소소소는 전당일대에서 시기(詩妓)로 이름을 날렸다.

 

어느날 소소소가 놀러갔다가 아주 잘생긴 젊은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이름이 완적(阮籍)이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했으며, 완적은 소소소의 집까지 따라와서 함께 밤을 지낸다. 소소소는 이 때부터 완적의 그림자처럼 서로 떨어지지 않았고, 함께 산과 들로 놀러다녔다. 그러나, 완적의 부친은 그가 전당에서 기녀와 매일 함께지낸다는 말을 듣고 화가나서, 그를 건업(남경)으로 다시 불러드린다. 소소소는 매일 기다렸지만, 완적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은 병을 얻어 쓰러진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다른 남자들이 그녀의 집에 들러 위로해주고 같이 놀아주자, 점점 회복되어 예전과 같은 생활패턴을 회복한다. 어느 맑은 가을날, 호숫가에는 그녀는 완적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남자를 하나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의복은 남루했고, 기운도 없어보였다. 소소소가 누구인지 물어서 비로소 그 남자가 포인(鮑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포인은 과거를 보러갈 노자돈이 없어서 우울해있던 참이었다. 소소소는 그가 비범한 것을 알아보고, 반드시 과거에 붙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포인에게 돈을 주어 과거를 보게 한다. 포인은 감격해서 그 돈을 받고 과거를 보러 떠난다.

 

당시 관찰사인 맹랑(孟浪)이 공무로 전당에 왔을 때, 관리의 신분으로 소소소의 집을 찾아가기는 적절하지 아니하여 사람을 보내서 관부로 오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소소소는 오만하게 몇번을 거절하다가 겨우 오게 된다. 맹랑은 그녀를 시험할 생각으로 정원에 피어있는 한 그루의 매화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시를 짓게 한다. 그러자 소소소는 스스럼없이 시를 하나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매화수오골(梅花雖傲骨)

전감적춘한(怎敢敵春寒)

약경분홍백(若更分紅白)

환수청안간(還須靑眼看)

 

맹랑은 이 시를 보고는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러나 소소소는 명이 짧아 다음해 봄에 병으로 죽게 된다.

 

이 때 포인은 이미 과거에 급제하여 자사(刺史)로 임명을 받았고, 부임하는 길에 소소소의 집에 들렀다가, 마침 소소소가 죽은 것을 알고, 그녀를 위해 장례를 치러준다. 포인은 관을 붙잡고 크게 울면서 그녀의 묘 앞에 비석을 세워주었다. 전당소소소지묘(錢塘蘇小小之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