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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부호

원보경(袁寶璟) : 사형집행을 연기받은 중국의 억만장자

by 중은우시 2005. 10. 26.

 

원보경

 

 

탁마 : 원보경의 처

 

원보경(袁寶璟)

 

요녕성 요양시 사람. 북경건호집단(北京建昊集團) 동사장.

1992년 북경 회유(懷柔)에 북경건호실업발전공사를 등록하였고, 당시 자금은 20만위안이었는데, 반년후에 원보경은 흑보리특허를 사서 보리종자를 팔아서 200여만위안을 벌었다. 이 200여만위안은 공식적으로 나타난 최후의 진짜 데이타이고, 이후에 건호실업의 자금은 신비로운 색채를 지닌다. 1995년 건호실업은 510만위안의 자금으로 하이얼성생물제품유한공사의 51%지분을 매입하였다. 이 중간의 300여만위안의 차액에 대하여 원보경은 상해에서 주식거래로 벌었다고 설명하였다. 기업은 매년 적자를 보고 있었고, 매입조건이 괜찮았으므로 남은 49%지분에 대하여도 원보경은 다른 주주들과 지분환매계약을 체결하였고, 일정한 기간내에 동일한 가격으로 매입할 권리를 보유하였다. 이렇게 원보경은 자산이 1000만위안에 달하는 기업의 모든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후 이를 은행에 저당잡히고 1000만위안을 빌린다. 다시 1000만위안으로 자산평가액이 1900만위안인 회유온양제약공장의 51%지분을 매입한다. 이후, 온양제약공장을 저당잡히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얻은 자금으로 원래 하이얼성을 저당잡히고 빌린 은행대출을 갚는 외에, 남은 돈을 다시 다른 기업의 51%지분을 매입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건호실업은 단번에 회유의 13개 기업을 매수하였다. 1996년 가을에 건호집단은 본부를 북경으로 옮겼는데, 그 때의 액면상의 자산총액은 30억위안에 달하였고, 부채율은 11%였다. 보유한 자회사와 소속기업은 이미 60여개에 달하였다. 이것이 원보경의 자산이 30억위안이라고 얘기하는 이유이다.

 

31세에 전국에서 가장 젊은 상장회사의 동사장이 되었음

32세에 월드미디어그룹이 선정한 세계창업자대상을 받아, 중국에서 이 상을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됨.

별명으로는 "북경의 이가성(李嘉誠, 리카싱)" "중국주식제일인"이 있다.

 

원보경이 30세때, 1,000만위안을 출연하여 전국학연에 "중국대학생과세기발전기금 건호장학금"을 설립하였고, 이것은 현재 전국에서 가장 좋은 장학금이다.

 

2003년 11월 24일, 요양경찰은 "고용살인"을 이유로, 원보경을 체포하였다. 경찰에 따르면, 1997년, 원보경은 16만위안을 들여 왕흥(汪興, 왕싱, 당시 요녕시 형사경찰대대의 전문사건중대장)을 시켜 살인하게 하였으나 미수에 그쳤다. 이후, 왕흥은 여러 차례에 걸쳐 원보경을 위협하였고, 돈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원보경은 30만위안의 자금을 들여 사람을 고용해서 왕흥을 죽였다.

 

2005년 1월 13일, 요녕성 요양시중급인민법원은 원보규 및 살인에 참여한 원보기, 원보삼을 사형에 처하고, 원보복은 사형(집행2년연기)의 형에 처하였다.

 

요양시중급인민법원에서 인정한 바에 따르면, 1996년 가을 원보경은 사천 성도에서 선물거래시 9천여만위안을 손해본 것이 유한(劉漢)과 증권거래소가 규칙을 개정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왕흥은 사람을 보내서 유한을 폭행하겠다고 제안하였고, 원보경이 동의하였다. 이후 원보경은 16만위안을 원보기에게 주어 다시 왕흥에게 주도록 하였다. 1997년 2월 1일 저녁 9시경에 원보경등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이해양(이미 사형판결을 받음)은 사천성 광한시에서 유한에게 가까운 거리에서 두 발의 총을 쏘았다. 그러나 유한을 맞지 않았고, 현장에서 도망쳤다.

 

1997년이후 왕흥은 여러차례 원보경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였으나 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전화를 걸고, 편지를 써서 원보경의 위법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였다. 2001년초, 원보경은 원보기에게 왕흥이 협박한다는 것을 얘기하였고, 원보기는 "안되면 사람을 찾아서 처치하지, 돈은 2개만 달라"고 하였고, 원보경은 "좋다"고 하고, 30만위안의 자금을 주었다. 원보기는 원보복을 찾았고, 그로 하여금 왕흥을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원보복은 원보삼에게 이 일을 얘기했고, 원보삼이 적극적으로 처리했다. 2001년 11월 15일, 원보삼은 칼을 들고 집에서 나오는 왕흥의 배후를 찔렀고, 그 후 두 사람이 엉켜 싸우면서 몇번 더 찌르고는 도망쳤다. 법의학자의 감정에 의하면 왕흥의 상처는 매우 깊었다. 원보기는 사후에 원보복에게 인민폐 9만위안을 주었다.

 

왕흥은 상처를 입은 후에도 계속하여 원보경을 위협하고 협박하였다. 원보경은 다시 원보기에게 이 일을 얘기하고 "안되면 처리해라"고 하였다. 그 후 원보기는 원보복에게 "처리하라"고 하면서 18만위안을 주었다. 원보복은 원보삼과 계획을 짜서 왕흥이 자주 다니는 곳을 추적하고 파악하였다. 2003년 10월 4일 23시경 원보복과 원보삼은 엽총을 가지고 왕흥의 집부근에서 기다리다가, 왕흥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갈 때, 원보삼이 가까운 거리에서 왕흥에게 연속 2발을 쏘고, 왕은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그 후 두 사람은 현장에서 도망쳤다.

 

그런데, 2005년 10월 14일 오전에 사형당할 예정이던 원보경에 대하여 돌연 "긴급집행연기명령"이 내렸다.

 

<<중화인민공화국형사소송법>>의 집행에 관한 약간의 문제의 해석중의 342조에 의하면 "하급인민법원이 사형집행명령을 받은 후, 아래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으면 집행을 정지하여야 하고, 즉시사형을 허가한 인민법원에 보고하여야 하고, 사헝을 허가한 인민법원이 결정한다.

 

1. 집행전에 재판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발견한 경우

2. 집행전에 범인이 중대범죄사실을 털어놓거나 중대한 공을 세워서, 판결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3. 법인이 임신중인 경우

 

원보경의 변호사인 북경신리율사사무소의 유가중은 원보경에 대하여 사형집행이 연기된 원인은 "집행전에 범인이 중대범죄사실을 털어놓거나 중대한 공을 세워서, 판결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라는 것이다.

 

원보경이 무슨 중대한 범죄사실을 털어놓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유변호사는 사실을 확실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말하기 곤란하며, 집행기관의 업무에 영향을 줄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원보경의 여동생인 원보괴(요양성 중급인민법원 법관)는 다음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요양시 중급인민법원의 고위층이 자기를 찾아와서 말한 적이 있는데, 자기가 오빠에게 사형에 처해진다는사실을 정확하게 인식시키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법원에서는 원보괴가 원보경을 마지막으로 면접하도록 해달라고 신청한 것을 허가하고, 동시에 약물주사방식으로 사형해달라는 요청도 승인하였다.

 

기자는 10월 16일 오전에 요녕성 형사1부의 법관이고, 원보경사건의 주심법관인 동옥군에게 연락하였으나, 동법관은 급한 일이 있음을 이유로 기자의 방문을 거절하였다. 기자는 메세지를 남겼으나 동법관은 회신하지 않았다.

 

원보경의 두번째 부인인 탁마(卓瑪)는 유명한 무용가로 중앙민족대학의 교수이다.

 

10월 16일 원보경의 변호사인 유가중은 원보경은 그의 스위스은행 거액계좌의 예금비밀번호를 처인 탁마에게 알려주었으며, 동시에 탁마는 당해 거액재산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소유자이자 사용자라고 하였다. "원보경은 또한 미국, 홍콩등지에 보유하고 있는 회사지분도 동시에 탁마 교수에게 양도하였다"

 

유가중 변호사가 보여준 문건에는 원보경이 홍콩화지국제공사의 최대주주인데, 화지국제공사를 통하여 인도네시아의 석유채굴회사의 40%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기자가 전날의 국제원유가격과 40%지분을 가진 회사의 석유매장량을 계산한 결과로는 가치가 495억인민폐(약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이 부분은 유가와 매장량을 단순히 곱해서 지분비율로 계산한 것이므로 지분가치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탁마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남편이 이 재산을 나에게 양도한 것은 내가 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외에 내 남편은 이미 나와 변호사에게 인도네시아회사의 40%지분을 국가에 무상으로 기증하도록 위탁하였다"

"원보경은 두번 세번 얘기했는데, 자기가 죽든 말든 이 뜻은 이루어달라고 하였다"

유가중 변호사는 이 내용을 인정하고, 또한 원보경이 보유한 이 인도네시아회사는 부부공동재산이므로, 탁마교수가 무상기증에 동의하면 바로 법적인 효력이 생긴다고 하였다.

 

원보경의 재산은 도대체 얼마인지에 대하여는 이론이 분분하다. 원보경이 스위스은행에 가지고 있는 예금은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하여 유가중 변호사는 기자들의 거듭되는 질문에 "나는 단지 액수가 매우 많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만일 호륜의 금년도 부자랭킹의 표준으로 말한다면, 이 숫자는 1위를 훨씬 넘어설 것이라는 것이다"라고만 하고,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았다.

 

탁마는 원보경의 거액의 재산의 유일하고도 합법적인 보유자이자 사용자이다. 즉, 이전의 유명한 무용가였던 탁마는 아마도 이로 인하여 아시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여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들이 원보경의 스위스은행구좌의 돈에 대한 거듭되는 질문에 대하여 탁마는 "나는 지금 그런 걸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언젠가 이 재산을 내 손으로 원보경에게 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