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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무술

소림사권법(少林寺拳法)의 비조(鼻祖)는?

by 중은우시 2005. 8. 15.

소림사는 중국역사상 무술로 이름이 있다. 소림무술은 예로부터 남북으로 나뉘는데, 북에는 하남(河南) 숭산(嵩山)이, 남에는 복건(福建) 천주(泉州)에 있는 소림사의 소림권이 유명하다. 아쉽게도 천주 소림사는 병란중에 소멸되었다.

 

중국 소림권의 비조는 누구일까? 이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는데, 대체로 두 사람을 들고 있다. 하나는 남북조후기에 바다를 건너 중국에 불교를 전하러온 천축승 달마(達摩)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축승 달마보다 7년 먼저 중국에 불교를 전하러온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삼왕자 보리달마(菩提達摩)라는 설이다. 어떤 사람들은 달마는 소림권법을 창안했고, 보리달마는 소림권법을 전했다는 얘기도 있다.

 

소림권법의 비조가 남북조후기에 바다를 건너온 천축승 달마라는 것은 완전한 날조는 아니다. 숭산의 비림에는 소림초조달마송이 있는데 거기에 "숭산 소림도량은 달마초조가 거주한 곳이다."라는 글이 있다. 민간의 전설에 의하면 개략 1,300년전인 서기 685년 "남북조후기에 달마라는 천축승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했다. 먼저 남방에 있다가 후에 북방으로 왔다." 그러나 중국불교사에는 이런 기록은 없다. 한 논문에서는 "소림권은 원래 중국 하남성 등봉현 소실산 북쪽의 소림사에서 기원한다...소림사는 북위 효문제 태화20년(468년)에 창건되었는데, 효문제가 불타선사를 공경하여 건립한 것으로 중국 선종의 발원지이다. 달마는 양무제 대통원년(527년, 민간에 전해내려오는 시기보다는 198년이 빠르다)에 바다를 건너 광주에 도착하였고, 양무제가 사람을 보내 건업(남경)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뜻이 맞지 않았고, 달마는 강을 건너 북위로 갔고, 소림사에서 면벽구년의 수행을 하고, 소림사를 소림권의 발상지가 되도록 하였고, 달마는 선종의 초조로 추앙받는다. 달마가 소림사에 법을 전하면서 수행승인들의 체력이 부족한 것을 알고, "세수경(洗髓經)"과 "역근경(易筋經)"을 전했으며, 이것이 소림권법의 유래라고 한다.

 

다른 견해로는 중국소림권법의 비조가 남인도 향지국(타밀)의 삼왕자 보리달마라는 것이다. 보리달마는 양무제 보통원년(520년, 천축국 달마보다 7년이 빠르다)에 바다를 건너 중국광주에 도착하고 다시 숭산으로 갔고, 권법을 창안하였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남인도 향지국의 보리달마가 중국 소림권법의 비조이다.

 

또 어떤 사람은 달마와 보리달마가 실제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같은 사람이라면 중국에 도착한 시간에 대하여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힘들다. 한편, 두 사람간에는 닮은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바다를 건너 중국에 왔고, 남방에 도착한 후 나중에 소림사에 정착한 것까지 동일하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좀더 고증이 필요한 것으로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