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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역사를 읽으면 왜 우매해지는가?

by 중은우시 2025. 6. 4.

글: 장굉걸(張宏傑)

독자들이 나에게 책에 서명을 해달라고 할 때, 이런 문구를 적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를 읽으면 똑똑해진다." 나는 그러면 왕왕 뒤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또한 더욱 깊은 우매로 빠져들게 할 수도 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나는 역사를 많이 읽을수록 머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예를 들어 나의 외삼촌같은 분이다. 외삼촌은 은퇴후에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고, 몇년동안 계속하여 역사책을 읽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한 가지 유형만을 읽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방위사론(西方僞史論)"이다. 방증까지 널리 인용된 책이 그에게 얘기해주는 것은 서방의 역사가 그리스, 로마와 이집트를 포함하여 모두 위조된 것이라는 것이다. 소위 그리스의 신전,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모두 18세기 이후 서방인들이 인조콘크리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삼촌은 너무 깊이 빠져들어서 자주 식사까지 거를 정도이고, 내가 방문할 때마다 나를 붙잡고 그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외삼촌도 이런 결론을 100% 믿지 않았다. 금년 연초에 나는 이집트에 가게 되었는데, 외삼촌은 정중하게 나에게 그를 대신하여 잘 관찰해달라고 요구했다. 피라미드가 돌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콘크리트로 만든 것인지를.

역사를 읽는 것이 사람을 우매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읽는 역사서의 품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번은 표숙(表叔)에게 말하기를, 내가 최근 들어 글을 하나 썼는데, 제목이 "라틴아메리카는 왜 발달하지 못했는가?"라고. 그러자 표숙이 말하기를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냐고 말했다: "미국과 너무 가까우면, 천국과 너무 멀어지는 것"이라고. 미국과 그렇게 가까운데, 미국이 발달하도록 놔두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표숙에게 물었다. 그럼 캐나다는왜 발달하게 되었냐고. 그러자 표숙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간단하다. 캐나다는 미국에 무릎을 꿇었지 않느냐. 그렇지만 라틴아메리카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표숙은 고금중외의 모든 문제를 거의 모두 신속하고 간단명료하게 답을 내놓곤 했다. 다만 이런 답안은 보통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 속에 있는 역사지식은 대부분 이미 시대가 지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의 라틴아메리카함정에 대한 해석은 기실 1970년대에 나온 "의부론(依附論)"이다.

소위 "의부론"은 라틴아메리카의 빈곤은 미국등 제국주의국가가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 제국주의국가는 세계시장을 "조종"하고, 라틴아메리카등 국가에서 생산하는 농업과 목축업제품의 가격을 극력 끌어내리고, 선진국가의 공업제품의 가격은 극력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라틴아메리카국가는 부득이 염가의 기초제품을 수출할 수밖에 없었고, 갈수록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의부론"은 1970, 80년대에 매우 유행했고, 미국의 대학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농담하기도 했다. "의부론"은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성공한 수출상품이라고. 그러나, 현재 그것은 이미 절대다수의 학자들, 라틴아메리카의 학자들까지도 포기했다.

역사학은 계속 발전하는 학과이고, 많은 분야의 지식은 계속 갱신된다.

만일 머리 혹에 낡은 역사지식만 가득 넣어두고 있다면, 당금의 세계문제를 관찰하고 사고하는데 확실히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행하는 열악한 역사서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시기가 지난 역사서를 읽는 것도 사람을 절대로 똑똑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를 읽어야 똑똑해질 수 있을까?

첫째, 청소년시기에는 경전적인 책을 읽어서 양호한 지식기초를 닦아야 한다.

어떤 정보원을 선택하느냐는 어떤 관념을 선택하느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는 어떤 인생을 선택하느냐이다. 역사를 읽는 것이 그럴 뿐아니라, 다른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이 청소년기에 경전적인 책을 많이 읽어두면 그에게 감별력이 생기게 되고, 견실한 지식의 기초를 닦게 해준다. 그리하여 합리적인 지식구조를 갖추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당연히 경전은 왕왕 읽기 어렵다. 왜냐함녀 경전은 비교적 '어렵고' 비교적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멍(王蒙)이 얘기한 것처럼 재미있는 책 말고 우리는 반드시 엄숙한 책도 읽어야 한다. "폭로하는 책, 기적에 관한 책, 분풀이하는 책말고도 더욱 과학적인 책, 논리적인 책, 분석적인 책, 혁신적이고 예술적인 용기가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쉽게 읽히는 책만이 아니라, 까다로운 책, 생각을 많이 해야하는 책도 읽어야 한다."

둘째, 성년이후에 책을 읽을 때는 영양균형을 주의해야 한다.

청소년시절에 품질이 열악한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마치 독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두뇌세포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후의 인생에서 마땅히 스스로 독을 해독해야 한다. 그래야 최대한도로 열악한 서적에서 받은 영향을 피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책을 읽을 때, 균형있는 정보를 섭취하는 것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의 지식의 자물쇠를 열어제끼고, 이질적인 정보를 받아들여서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 있던 정보의 편향성을 시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의 외삼촌처럼 "위사론환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먼저 많이 읽어야 한다. 어떤 분야이든 비교적 깊이있고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최소한의 독서량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문명사가 위조된 것인지 여부를 알려면, 최소한 위사론의 책 외에 최소 십여권의 진지한 이집트학저작도 읽어보아야 한다.

나는 일찌기 외삼촌에게 7,8권의 이집트사, 이집트학 저작을 사드린 적이 있다. 그러나 몇달이 지나 다시 외삼촌의 집에 갔더니, 그는 아예 읽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근 들어 나는 외삼촌에게 많은 좋은 책을 추천해주었지만, 그는 첫부분만 보고서는 핑계를 대고 내려놓곤 했다. 그래서 나는 외삼촌을 이미 포기했고 더 이상 그와 논쟁하지 않는다. 그저 만나면 날씨얘기만 한다.

셋째, 중국사를 읽으려면 고전경전만 읽지 말고, <자치통감>, 이십사사만 읽지 말아야 한다. 당대학자의 연구성과를 많이 읽고, 당대의 눈길로 시대를 통과하여 과거의 역사를 읽어야 한다.

주변 대부분의 민족과 비교하면 중화문명은 역사상의 경험과 교훈을 종합하는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독특하고 발달된 문명의 성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전통사학의 성취는 일정한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방대한 사료를 가지고 있지만, 위대한 역사학은 나타나지 못했다.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중국역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순환성"이다. 하나의 왕조가 건립된지 1,2백년이 지나면 '관핍민반(官逼民反)'이 발생하고, 농민반란이 일어나며, 얼마 후에 신흥왕조로 대체된다. 이렇게 순환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모든 왕조가 동일한 궤도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 왕조의 건립초기에는 정치가 청명하고 심지어 태평성세가 나타난다. 새로운 핸드폰을 가지게 되면 처음 반년간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그러나 몇대가 지나고 나면 부패하고 혼란에 빠지며 각종 문제가 나타난다. 그러면 부득이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새로운 왕조가 건립된다. 그리고 새로운 왕조도 다시 똑같은 길을 걷는다. 이 규율이 2천년간 지속되었고, 남겨진 역사서는 "이십사사"가 된다. 그리고 조대가(朝代歌)를 하나 남겼다: "삼황오제하상주(三皇五帝夏商周), 진한삼국양진우(秦漢三國兩晋憂), 남북수당오대진(南北隋唐五代盡), 송원명청제통휴(宋元明淸帝統休)" 그래서 당대의 눈으로 역사를 읽으면, 우리가 역사에 대해 더욱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

넷째, 중국사에 국한되지 말고, 세계사를 많이 읽어야 비로소 더욱 잘 중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많은 독자들이 손쉽게 역사책을 읽을 때 편향성을 갖게 되는 이유는 본국사만 읽고, 세계사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역사책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지 중국사만을 읽는다. 그리고 중국사 중에서도 그가 잘 아는 강한성당(强漢盛唐)의 역사만 읽는다. 외국사를 읽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렇게 많은 인명, 지명을 알기 어렵고, 기억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우리가 오늘날 이미 글로벌화시대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손쉽게 전인류의 문화성과를 흡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협소한 정보권내에 봉쇄시킬 필요는 없다.

민국시대에 한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세계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의 낙후를 알지 못한다." 당연히 이 말은 오늘날에는 이미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국은 이미 굴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고쳐보고자 한다: "중국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세계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의 특질을 알지 못한다." 세계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문명의 세계문명사에서의 정확한 위치를 깨달을 수 없고, 자신의 독특한 점도 깨달을 수 없다.

다섯째, 중국사를 읽을 때 중원왕조의 역사만 읽을 것이 아니라, 변방사, 소수민족사도 많이 읽어야 한다.

하왕조이후, 중국역사상 거의 모든 신흥정권은 변방지구에서 왔다. 하왕조사람에 있어서, 상왕조사람은 변방민족, 동이(東夷)이다. 상왕조사람들에 있어서 주왕조사람도 변방민족이다. 서이(西夷)이다. 일부 역사학연구에 따르면, 주나라사람의 선조는 아마도 북방의 적인(狄人)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원의 제후국이 볼 때, 진(秦)나라사람도 서쪽의 오랑캐나라이다. 초원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나라이다.

이런 변방과 중앙의 관계는 한나라이후 고정된 틀이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거의 모든 동북에서 일어난 소수민족이 강산의 절반을 차지하거나 천하를 통일한다는 것이다. 절반의 강산을 차지한 경우는 선비의 북위, 거란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가 있고, 천하를 통일한 경우는 몽골이 건립한 원나라와 만주족이 건립한 청나라가 있다. 그들은 모두 장기간 동북지방에서 생활했다. 많은 유사성도 있다. 예를 들어, 선비, 거란, 여진과 만주족은 모두 이마와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깍는다. 선비에는 "팔주국(八柱國)"이 있고, 거란에는 "팔부(八部)"가 있고, 만주족에게는 "팔기(八旗)"가 있다.

그러므로, 변방민족이 중원의 주인이 된 것은 한 세대 한 시기의 특별한 경우만은 아니다. 중국역사의 규칙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규칙적 현상의 배후에는 깊은 원인이 있다.

역사는 아주 중요하다. 역사를 읽는 방식은 더욱 중요하다.

이런 재미있는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다: "인류가 유일하게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인류가 한번도 역사에서 교훈을 흡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읽는데는 문턱이 있다. 일정한 방법을 알아야하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로 읽고 살펴보다가 더욱 깊고 어두운 심연에 빠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