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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미중무역전

미중무역전과 남북전쟁의 원인은 같다

by 중은우시 2025. 5. 11.

글: 진가량자(陳家梁子)

미국과 중국은 소련에 대항한다는 공동이익을 위하여 상호대립에서 상호협력으로 바뀌었고, 1979년에 수교를 한다. 그후, 미중양국은 외교적으로 협력할 뿐아니라, 경제무역교류와 협력도 전개했다. 소련이 해체된 후, 미중협력의 중점은 외교에서 경제무역으로 전환된다. 주로 미국의 지지하에,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했다. 쌍방은 경제적으로 상호보완성과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무네, 미중양국은 상호협력을 통해 거대한 이익을 얻었다. 다만, 비교해보자면, 중국의 이익이 훨씬 컸다. 경제가 낙후된 국가에서 일약 세계2위의 경제체가 되어 미국 바로 다음가는 경제체로 성장했다. 그리고 중국의 기술수준이 제고되고, 경제총량이 증대된 후, 미중간의 경제교류는 미국이익에 대한 손해가 이익보다 커지게 되었다.

미국이 이전에 중국과의 경제무역협력을 강화하려던 것은 한편으로 경제무역이익을 획득하고, 다른 한편으로 경제무역협력을 통하여 중국을 '화평연변(和平演變, peaceful evolution)'하려는 것이었다. 중국의 제도전환을 촉진하여 자유민주국가로 만들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준수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십년동안 중국은 정치제도전환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오히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도전함으로써, 미국이 바라던 것처럼 세계질서의 옹호자가 되어 상응한 대국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질서를 파괴하려고 했다. 이런 모습은 두 가지 방면에서 나타난다. 하나는 중국이 세계질서를 파괴하고, WTO에 가입할 때의 약속을 지켜 국내시장을 개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WTO가입시에 약속한 업종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 엔터테인먼트등의 분야이다. 수출제품에 대한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노동인권의 저하로 미중간 기업경쟁이 심각하게 불공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군사상의 확장이다. 주변국가와의 군사충돌리스크가 증가했고, 지역과 국제안전을 위협하게 되었다. 특히 시진핑이 취임한 후, 이런 추세는 날로 증강하고 있다.

기실, 현재 미중간의 충돌은 미국의 남북전쟁시기의 남북충돌과 매우 유사하다. 근본은 모두 제도의 충돌이다. 미국남북전쟁기간동안 북방은 자유로운 자본주의생산방식을 실행하고, 남방은 노예제생산방식을 실행했다. 다만 그들은 같은 자유시장경제체제에 있었다. 남방과 북방간의 상품유통은 여하한 행정간섭도 받지 않았다. 만일 남방과 북방을 두 개의 국가로 본다면 그들 간에는 관세가 없는 것과 같았다.

남방의 노예제생산방식에 하이테크기술을 더하여, 면화재배효율과 생산량이 매우 높았다. 1793년, 일라이 휘트니가 조면기를 발명하여 면화에서 씨를 분리하는 효율을 50배 증가시켰다. 과거 한명의 노예가 하루에 1파운드의 면화씨를 분리시킬 수 있었는데, 조면기를 채택하면 50파운드의 면화에서 씨를 분리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노예의 저인건비로 면화재배이윤은 아주 높았다. 남방의 노예제가 기사회생하면서, 노예주들은 신속히 재배면적을 늘였고, 노예번식을 장려한다. 그리하여 남방은 신속히 면화생산대국이 된다. 면화는 남방의 최대수출상품이 된다. 30여년의 발전을 거쳐 1830년에 이르러, 남방의 면화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의 절반에 이른다; 1850년에는 70%에 이른다.

남방의 면화는 북방에 판매되어 추가로 면제품으로 가공되어 다른 국가로 수출될 뿐아니라, 동시에 남방의 소비수준은 전체적으로 아주 낮았고, 소수의 농장주들만이 매우 부유했다. 다만, 절대다수의 노예는 소비수준이 매우 낮았다. 노예주는 음식, 주택등 기본생활품을 제공하였고, 그외에는 다른 소비지출이 없었다. 남방의 전체적인 소비수준은 매우 낮았다. 이렇게 하여 남방에서는 많은 흑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북방과 일부 기타 국가는 모두 적자를 나타낸다. 남방과 북방은 심각한 경제무역불균형을 이루고, 북방의 공업소비품은 남방에 시장이 없었다. 예를 들어, 북방의 면포는 남방시장에서 수요가 크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렇게 지내다보니, 북방의 경제는 지속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방과 북방은 정치이념상으로 엄중한 대립을 보였을 뿐아니라, 경제이익에서도 엄중하게 충돌했다. 무역정책은 그리하여 남북경제충돌의 촛점이 된다. 북방은 무역보호를 주장하고, 관세를 인상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남방은 자유무역을 주장한다. 결국 쌍방의 갈등은 조화될 수 없었고, 남북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결과는 남방의 노예제가 폐지되는 것이었다. 남방과 북방은 생산방식에서 통일되고 동등한 노동권리를 지닌 고용제로 된다. 노동권리의 불균등으로 인한 불공정경쟁이 폐지된 것이다.

지금의 미중충돌을 당시의 남북충돌에 대입해보면 조금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의 중국은 당시의 미국남방이다. 현재의 미국은 당시의 미국북방이다. 중국의 저인권노동은 해외의 하이테크기술과 결합하여, 중국을 제조대국과 대흑자국으로 만들었다. 노동이 원래 획득해야할 노동수입은 착취당해 권력독점집단이 가져간다. 권력독점집단은 노예주에 상당한다. 자본가와 기업주는 당시의 마름에 해당한다. 당연히 중국현재의 저인권노동은 당시 미국남방의 노예들의 처지나 권리보다는 훨씬 높다. 다만 미국은 중국에 전쟁을 일으켜, 저인권도동제도를 폐지시킬 수가 없다. 첫째는 명분이 없고, 둘째는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평연변"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서는 관세를 인상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고, 디커플링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미국의 이익이 계속하여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다.

2025년 4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