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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경제

경제학자 린이푸(林毅夫)의 경제건의를 왜 독약이라고 말하는가?

by 중은우시 2025. 4. 24.

글: 나Sir재화(羅Sir財話)

오늘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손쉽게 하나의 질박한 이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경제학자 린이푸의 경제건의가 기본적으로 모두 독약이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여러분들이 린이푸에 대해 가장 깊이 알고 있는 것은 분명 그의 신급(神級) "예측"일 것이다. 단 한번도 맞은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일찌기 2015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 5년후 즉 2020년 중국은 고수입국가가 될 것이라고.

2022년이 되자, 린이푸는 다시 늦어도 2025년에는 고수입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금년 양회에서 그는 다시 시간을 늦췄다. 즉 2026년으로.

영원히 오지 않을 "고수입국가"의 예측외에도 린이푸는 또 다른 신급의 예측을 한 바 있다.

예를 들어, 2021년 중국기업미래발전포럼에서 린이푸는 ASML의 CEO는 중국에 노광기를 팔 수 없을까봐 우려하고 있으며, 개략 3년후에는 중국이 이 기술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일찌기 이 "예측형" 경제학자는 2005년때 2030년에 중국은 세계제1경제체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경제학자라면 시장이야말로 가장 예견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린이푸라는 경제학자는 굳이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예측을 좋아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점쟁이같고 경제학자같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린이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향후 15년간 중국의 GDP는 연평균 8%성장할 잠재력이 있다고. 나는 이 경제학자가 경제주기에 대하여 기본적인 상식판단을 해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혹은 린이푸가 쉬샤오녠(許小年)이 말한 것처럼 경제학자의 가장 악랄한 품성은 바로 자신의 양심을 어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이상의 여러가지는 모두 그저 경제예측일 뿐이다. 만일 정말 어떤 좋지 않은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양심일 뿐이다. 그러나, 린이푸의 소위 구조경제학 및 산업정책에 대한 건의는 필자가 보기에 진정한 경제독약이다.

실사구시적으로 말해서, 이건 린이푸 한 사람의 경제건의는 아니다. 그러나 유사한 추세하에서 우리의 시장에 대한 예측은 최근 몇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오늘날과 같은 외부환경하에서, 아마도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도전을 격화시키게 될 것이다.

2016년 11월 9일, 북경대학 만중루(萬衆樓)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변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변론은 국내경제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왔는데, 변론의 이슈는 아주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이 산업정책을 실시해야되느냐 아니냐의 것이다.

변론의 쌍방은 린이푸와 장웨이잉(張維迎)이었다.

오늘날 그 변론을 되돌아보는 것은 기실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2024년 즉 8년후인 오늘 날, 시간은 이미 우리에게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왜 산업정책에는 리스크가 있는가?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왜 산업정책은 이처럼 밀집되었는가?

장웨이잉의 주장에 따르면, 산업정책이 실패하는 것은 첫째, 인류의 인식능력의 한계때문이고, 둘째, 장려매커니즘의 왜곡때문이다.

통속적으로 말해서, 이 변론이 가져온 시간효과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는 신고전경제학과 하이예크경제학의 다툼이다.

먼저, 무엇이 산업정책인가?

경제학 교과서의 정의에 따르면, 산업정책은 국가의 개인상품생산분야에 대한 선택적인 간섭 및 차별적인 대우이다.

이런 경제학의 논쟁은 가장 먼저 1930년대 케인즈와 하이에크사이에 일어났다. 이 두 경제학의 시조급인물들은 "정부가 시장에 간여해야하느냐"를 놓고 여러 차례 논전을 벌였다.

1933년, 케인즈는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당시 미국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보낸다. 그 후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미국을 불황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었다. 다만 오늘날 이미 갈수록 많은 연구와 논증은 미국이 불황에서 벗어난 것과 루스벨트의 뉴딜간에 얼마나 큰 관계가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하이크는 더욱 유명한 책을 쓴다. 그것은 거의 모든 사람이 들어본 적이 있는 <노예로 가는 길>이다. 1970년대 영미경제의 성장지체와 더불어 하이예크의 자유주의는 다시 인기를 끌게 된다.

오늘날에 이르러, 정부와 시장의 관계는 우리를 고민하게 만들 뿐아니라, 마찬가지로 미래 거시경제의 방향도 결정한다.

이 점에 기하여, 린이푸는 산업정책은 대거 숭상한다. 비록 그의 출발점은 좋을지 모르지만, 정말 우리에게 적합한 것일까?

만일 구미경제체가 이 방식을 결국 포기했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시행착오에 대한 댓가는 더욱 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댓가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 한다. 산업정책은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과 보조금을 가리킨다는 것을. 그 배후에는 이런 생각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행정역량으로 시장에 간섭하고, 심지어 시장의 성장을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알면, 우리는 아주 쉽게 과거 수십년간 중국의 경제성장방식을 이해할 수 있고, 거기에 숨은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첫째, 산업정책은 바로 특정산업에 대한 지원과 보조금이다. 그렇게 시장과 기업의 행위를 이끌고, 결국은 생산과잉을 초래한다.

과거 20년간 중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공업증가치의 비중과 주민소비가 전세계에서 점하는 비중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중 소비는 2022년부터 비중이 하락하고 있는데, 반대로 제조업의 비중은 계속 증가상태이다. 하나의 경제체에 있어서 소비증가는 정체되는데, 생산캐파는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생산과잉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아주금융의 데이타에 따르면, 2022년 중국의 실리콘재료생산캐파는 전세계의 87%를 점하고, 실리콘페이퍼생산캐파는 97.9%를 점하며, 배터리생산캐파는 86.7%, 배터리부품의 생산캐파도 80.8%를 점한다.

태양광발전은 제조만이 아니라, 원재료와 설비를 포함하여 중국기업이 거의 모두 독식하고 잇다. 이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은 세계를 이끈다고 할 수 있으며, 현재 중국기업의 상품은 성능과 효과가 가장 높고 원가는 가장 낮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기술이 세계를 선도하면 중국의 태양광산업은 비교적 높은 이윤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장려정책의 보조금이 지나치게 많은 기업들을 진입하게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매우 심각한 내부경쟁이 일어나서, 심지어 손해를 보며 생산판매한다. 2024년 5월 태양광배터리수출은 5.9억개로 전년동기대비 24.1%가 증가했는데, 수출금액은 28.27억달러로 전년동기대비 38.7%가 하락했다. 이렇게 보면 단가가 50%이상 하락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 이윤을 어떻게 얻겠는가

전세계경제에 있어서, 지나치게 많은 수출은 현지의 취업기회를 해친다. 그래서 우리는 최근 들어 구미에서 중국에 대한 수출제한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쌍방간의 관계를 역사상 최악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생산캐파를 확대하고 있다. 어쨌든 새로 공장을 짓고, 새로 생산라인을 깐다. 이건 모두 비용이다. 일단 전환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그 댓가는 아주 크게 될 것이다.

생산캐파확대외에 중국은 계속하여 일부 효과없는 사회간접시설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이를 통해 거시경제의 성장을 추진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시장간여수법이다. 산업보조금하에서 대량의 기업이 원래 수요가 높지 않은 업종에 진입하고, 최종적으로 내부경쟁과 소모를 불러와서, 비록 극히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지만, 대량의 기업은 서로경쟁의 늪에 빠진다. 클린에너지부터 커피까지, 음식업부터 밀크티까지, 이비지니스부터 자동차까지 모두 그러하다.

이런 극도로 내부경쟁, 내부소모의 상업사회가 정말 우리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유리할 것인가?

이는 산업정책의 최대문제점이다.

국내 각 업종의 내부소모는 한달두달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추세이다. 태양광발전을 예로 들면 2024년 5월까지, 누적수출량은 전년동기대비 22.8%가 증가하였다. 두 자리수 증가는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수출금액은 전년동기대비 33.3%가 하락했다. 단가가 50% 하락한 것이다. 기업의 상호내부소모하에서 이건 이미 악성경쟁이다. 기업은 보조금으로 지탱하고 있어, 당분간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을 것이므로, 경쟁내부소모는 아마도 일상적인 상태로 될 것이다.

이건 이미 단순한 내부소모가 아니라, 거의 내부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린이푸는 이렇게 생각한다. 정부는 기업보다 총명하다. 행정은 기업보다 시장을 더 잘 안다. 그래서 반드시 산업정책을 제정해야 한다. 그후 산업을 일으키고 지지하고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이런 상황은 단순히 권력에 기대어 생존하게 만들 뿐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보조금만 노리게 되어, 전체 사회의 자원이 거대하게 소모되어 사라지게 된다.

대량의 보조금은 상품의 가격을 낮추게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적은 돈으로 같은 상품을 살 수 있게 만들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기업이 얻는 보조금은 결국 사실상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기업이윤이 하락하고 단가가 하락하면 직원으로서 수입과 취업기회는 매우 불확실해진다. 결국 이 엄청난 산업조조금은 시장에서 더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직원의 수입을 끌어내리고 취업의 불확정성을 가속화하는 외에 거의 아무런 실질적인 이익도 남지 않게 된다.

특정산업에 대한 보조금은 모든 다른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기업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화의 배경에서 국내에서의 내부소모는 다국적기업으로 하여금 더욱 심각한 경쟁상황에 놓이게 만든다. 이런 추세하에서, 우리는 왜 무역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막는 것은 상품을 막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경우는 이런 내부경쟁,내부소모형태하의 경쟁을 막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보조금을 통하여 태양광발전에서 중대한 돌파구를 열었고, 기술과 시장점유율에서 모두 세계를 앞서갔지만, 업계내부의 경쟁과 가격전이 지속되면서 오히려 전체 산업의 이윤이 줄어들고 심지어 손실을 보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능력을 약화시킬 뿐아니라, 자원의 낭비와 시장질서의 혼란을 가져올 뿐이다.

전기자동차도 유사한 추세이다. 선두인 BYD, 테슬라를 제외하고, 더 많은 신에너지자동차기업은 손해보며 팔고 있다. 비록 저가로 시장점유율을 확보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다만 태양광발전업계의 사례를 보면 우리는 바로 알 수 있다. 전세계 80%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가졌지만, 업계내부에 대량의 기업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가격전은 여전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디디(滴滴)도 유사한 추세이다. 원래 국내 온라인차량예약플랫폼의 선두이지만, 가격전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후, 계속하여 새로 진입하는 경쟁자들로 인하여 디디는 계속 가격전을 지속해야 했고, 계속 보조금을 투입하면서 고객과 기사를 확보해야만 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목적은 시장으로 하여금 자원배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지, 시장에 간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장웨이잉의 말대로 시장에 간여하는 것은 과거 계획경제시대의 산물이다.

현재 직면한 곤경을 벗어나려면, 우리는 산업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불필요한 간섭과 보조금을 감소시키고, 기업의 자주혁신과 공정경쟁을 장려해야 한다. 보조금으로 대량의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여 과도한 경쟁을 하도록 유도하지 말고.

동시에, 우리는 구미와의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어쨌든 소비대국들이고, 중국의 방대한 생산캐파는 여전히 그들이 소화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경제학자라면 볼 수 있는 것만 볼 것이 아니라, 볼 수 없는 것도 보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보조금은 업종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소비자에게 혜택을 준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조금의 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과도한 보조금은 결국 다른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업종을 차별하는 것이고, 시장자원배분의 효율저하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내부소모는 다시 국민수입증가의 지체를 가져오고, 기업이윤이 하락하고 손해를 보는 상황하에서, 직원의 취업안정, 수입안정 내지 8시간노동제는 모두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 외에, 우리는 외부로부터 갈수록 큰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런 요소는 결국 우리가 지금 심각한 국면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앞 사람이 걸어간 길은 이미 시행착오를 거친 길이다. 우리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앞 사람이 심은 나무 그늘에서 시원하게 지내야 한다. 산업정책은 역사적 한계성이 있다. 물론 장점도 있다. 그러나 경제체의 장기적인 발전이라는 각도에서 보자면, 산업정책은 위기의 순간에 사용되어야지, 항상 사용해서는 안된다.

살마들은 일부 중요한 이슈에 대한 논쟁에서, 자주 사실에 인정에 대해 의견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이해에서 서로 다르거나 완전히 상반되곤 한다.

만일 우리가 과거 40년의 고속성장이 산업보조금과 사회간접자본투자로 인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어떠할지는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에 달려 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