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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후기)

강의영(姜毅英): 군통(軍統)의 유일한 여장군, 암호해독전문가

by 중은우시 2025. 3. 24.

글: 난주가장(蘭州家長)

2006년, 전설적인 여성 강의영이 98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서, 타이완의 정계요인들이 운집했고, 그녀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유산'인 손녀 예아륜(倪雅倫)은 이때 이미 타이완의 최정상급 모델이었다. 플래시를 받으면서 조모에 대해 질문을 받자,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할머니는 저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굴복하지 않는 골기(骨氣)에 있다고."

1908년 5월, 강의영은 절강성 강산(江山) 신당변(新塘邊)의 한 목공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산수가 아름답고, 많은 아름다운 강남여자를 배출한 곳이다. 그러나 강의영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총명했고, 글을 익히는 것은 그녀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으며, 학업성적이 특별히 뛰어났다. 전통적인 강남규수와는 달리, 그녀는 여자들이 하는 일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모험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 그녀는 항상 남자아이들과 함께 전쟁놀이를 하면서 골목을 뛰어다니며 '전장'을 배치하고 '전투'를 지휘했다. 그녀는 기민하고 용감하여 다른 또래들도 그녀에게 탄복했다. 그녀는 몸도 빨라서, 담장과 나무를 기어오르고 뛰어넘는 것도 잘했다. 그리하여, "비첨주벽지왕(飛檐走壁之王)"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학당에서도 강의영은 특별한 존재였다. 다른 여자아이들이 수업외의 시간에 자수를 하고, 바느질, 길쌈을 할 때, 그녀는 군사, 모략에 관한 책을 들고 재미있게 읽곤 했다. 선생들은 모두 그녀의 총명함에 감탄했고, 그녀의 독특한 취향도 신기해 했다. 고등학교때, 강의영은 모든 사람들이 경악해할 만한 결정을 내린다. 그녀는 우수한 성적으로 절강경관학교(浙江警官學校)에 입학하여, 당시에는 경찰학교를 선택한 극소수 여학생중 한명이 된다.

경찰학교에서의 엄격한 훈련도 강의영을 포기하게 만들지 못했다. 체력훈련때, 남학생들은 처음에 이 연약해 보이는 여학생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강의영은 전혀 포기하지 않은 의지를 가지고 계속 스스로에 도전했다. 다른 사람들이 5킬로미터를 뛰면, 그녀는 10킬로미터를 뛰었다. 다른 사람들이 금나(擒拿)를 1번 훈련하면, 그녀는 10번 훈련했다. 점점, 그녀의 체력도 좋아지고, 여러 훈련성적이 상위를 차지한다. 다른 남학생들도 그녀에게 엄지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 정보등 전문지식을 공부할 때, 강의영은 더욱 뛰어난 천부적 재능을 드러낸다. 각종 지식에 대한 이해와 운용이 또래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바로 여기에서 그녀의 운명에 전환점이 온다. 군통의 '장문인' 대립(戴笠)'이 등장한다.

대립은 강의영과 마찬가지로 절강성 강산 사람이다. 이런 동향이라는 인연으로 대립은 이 총명한 여자에게 특별히 주목한다. 당시 대립은 군통의 정보네트워크를 만들고 있었고, 우수한 인재가 필요했다. 제1기 갑과특훈반의 학생은 모두 그가 직접 시험보고, 면접보았다. 그가 강의영의 인사자료를 보고, 같은 고향사람임을 알았다. 그리고 즉시 그녀를 자신의 사무실로 부른다. 대립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눈앞의 강의영이 어떤 사람인지 살폈다. 그리고, 경찰학교에서 학습과 정보업무에 대한 견해등을 물었다. 강의영은 조리있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정보업무에 대한 이해에 대립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여자는 남자의 담량과 여자의 세심함을 가지고 있다. 하늘이 내린 특공의 인재이다! 이 면담후에, 대립은 강의영이라는 이름을 기억했고, 그녀가 나중에 군통에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1933년, 강의영은 우수한 성적으로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군통에 들어간다. 처음 군통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역전(譯電, 전보번역)업무부서에 배치된다. 산더미처럼 쌓인 암호책과 복잡한 암호코드를 보고서도 강의영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녀는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을 따라 밤낮으로 연구했고, 가장 기초적인 암호규칙부터 배우기 시작하고, 계속하여 각종 비밀전보를 해독하는 연습을 한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십여시간동안 연속으로 일하면서, 식사와 휴식도 잊곤 했다. 뛰어난 천부적인 재능과 근면함으로 그녀의 전보번역업무능력은 신속히 제고되었고, 금방 해당부서의 핵심인원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감찰부대의 암호해독업무도 겸하게 된다. 항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정보업무는 더욱 중요하고 더욱 힘들어진다. 강의영이 소재한 군통 역전과는 "군위특종기술연구실(軍委特種技術硏究室)"로 개편되며, 그녀는 연구실의 핵심인원으로 일본의 비밀전보를 해독하는 중임을 맡는다. 그 시기에 그녀는 매일 엄청난 비밀전보를 상대해야 했고, 눈에는 핏줄기가 가득했으며, 시종 고도로 집중해야 했다. 모든 숫자, 모든 부호는 그녀의 눈에 엄청난 정보를 숨기고 있는 것들이었다.

1941년 12월초, 그날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날이었다. 강의영은 평상시처럼 책상에 엎드려 일본군의 비밀전보를 해독하고 있었다. 사무실은 조용했고, 그녀가 펜으로 종이위에 글씨를 쓰면서 마찰되는 소리만 들렸다. 돌연, 겉으로 보기에 보통처럼 보이는 암호코드가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그녀의 눈은 순간 예리하게 빛났고, 여러 해동안 암호를 해독한 경험에 비추어, 그녀는 이 코드의 배후에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반복하여 비교하고, 분석했다. 시간은 일분 일초 흘러갔다. 마침내, 이 코드가 그녀의 눈앞에 점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군이 12월 7일, 진주만을 기습할 것이다! 강의영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다. 그녀는 이 정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즉시 상부에 정보를 보고했고, 층층이 전달되어 최종적으로 대립의 손에 들어간다. 대립은 이 정보를 보고, 깜짝 놀란다. 이는 전쟁국면을 좌우할 중대한 정보였다. 그는 즉시 장개석에게 보고했다. 장개석은 마치 보물을 얻은 것처럼 좋아했고, 이 일이 중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밤을 새워 주미대사관에게 미국에 경고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오만한 미국측은 이 정보를 무시했다. 그들의 보기에, 중국인이 어떻게 일본해군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여겼다. 미국정보부서의 관리들은 중국측이 제공한 정보를 무시했고, 한켠에 던져놓았다. 강의영은 미국측의 태도에 대해 들은 후, 마음 속으로 조급함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그저 눈을 멀거니 뜨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12월 7일 새벽, 강의영이 해독한 정보에서 말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354대의 일본기가 항공모함에서 출발하여 진주만을 기습한다. 삽시간에 진주만은 폭격에 휩싸이고, 폭발소리가 하늘을 진동한다. 미군의 함정, 비행기는 일본군의 기습으로 격침되고 파괴되었다. 전체 진주만은 불바다로 바뀐다. 미국측은 중국에서 제공한 일본군의 작전계획이 실제상황과 완전히 일치하자 펜타곤이 깜짝 놀란다. 그들은 그제서야 느낀다. 자신들이 얼마나 큰 실수를 범했는지. 그리고 중국정보인원의 능력을 얼마나 무시했었는지.

이번 참극은 예상외로 강의영의 명성을 동맹국의 정보권내에 떨치게 만든다. 미국의 해군사령부는 대립에게 먼저 연락해서 "미중정보합작소"를 성립시키고, 쌍방은 정보분야에서 심도있는 협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의영은 이번 암호해독으로 대립에 의해 중교(中校, 중령)에서 소장(少將)으로 승진한다. 그리하여 군통역사상 유일한 여장군이 된다. 이번 승진은 그녀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녀 인생의 전성기가 된다.

남자들이 주도하는 정보계에서, 강의영의 미모와 지혜는 남다른 주목을 받는다. 그녀는 용모가 수려하고, 기질이 고아했다. 그리하여 "군통일지화(軍統一枝花)"로 불렸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은 무기이면서 족쇄이다. 생활에서 군통의 '금혼령(禁婚令)'으로 그녀는 첫사랑인 섭문소(葉文昭)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1933년, 강의영은 섭문소를 만나고 두 사람은 파트너가 되었다. 둘은 뜻이 잘 맞았고, 일하는 와중에 감정이 싹튼다. 다만 당시 군통의 규정에 따르면 특무인원은 결혼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이 감정을 가슴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강의영의 업무능력이 날로 제고되면서, 대립에 의해 중용되고, 업무로 바빠졌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섭문소는 강의영이 매일 일로 바쁘고, 대립과 함께 다니는 것을 보고는 마음 속으로 실망하고 포기한다. 결국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이별로 끝이 난다.

40세가 되어, 강의영은 타이완에서 예(倪)씨성의 상인과 결혼한다. 결혼후, 그녀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살면서, 아들을 낳고,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운명은 항상 그녀를 희롱하는 것같다. 몇년 후, 그녀의 남편이 오랫동안 정보업무를 하면서 생긴 그녀의 강경한 성깔을 더 이상 참지못하고, 결국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된다. 더욱 극적인 것은 1948년의 "장군구애사건"이다. 회해전역(淮海戰役) 전날, 44세의 강의영은 젊고 준수한 국군중장 이수정(李樹正)을 쫓아다니며 구애한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전혀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수정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뜻을 전한다. 그러나, 이수정은 "이미 처가 있다"는 이유로 그녀의 구애를 완곡히 거절한다. 이 에피소드는 군통내부에 금방 널리 알려지게 되고, 사람들이 식사할 때 얘깃거리로 오른다. 이는 강의영의 솔직한 개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49년,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패퇴하면서, 강의영의 인생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그녀는 급류용퇴하여 오랫동안 입고 있던 군복을 벗는다. 일찌기 정보세계에서 풍운을 질타하던 그녀는 대만우농대학(臺灣雨農大學, 대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대학. 우농은 대립의 호임)의 교장이 된다. 학교에서 강의영은 평생 배운 것을 가르치는데 정열을 쏟는다. 그녀는 정보업무때의 엄격한 일처리방식을 수업에도 적용하여, 학생들에게 엄격하게 요구했고, 그들의 관찰력, 분석력과 임기응변능력을 중점적으로 배양시켰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역사이야기, 군사지식을 강의하면서, 그들에게 애국심과 견인불발의 정신을 가질 것을 가르쳤다. 그녀의 가르침으로 많은 학생들은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은퇴후의 강의영은 자주 마당에 앉아, 손녀 예아륜에게 옛날 일본군의 암호코드를 해독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녀는 따스하게 예아륜에게 말했다: "그 숫자들은 말하는 정령과도 같았다. 관건은 그들의 비밀언어를 알아듣는 것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예아륜은 마치 할머니가 옛날 정보전장에서의 모습을 보는 듯했고, 마음 속으로 감탄했다.

강의영의 일생은 스파이블록버스트와 같다. 그녀는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할 것이라는 암호를 해독한 '숨은 영웅'이면서, 또한 군통내부의 권력다툼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기도 하다;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 직업적 전설이면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유감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여성스파이에 대한 통상적인 이미지를 깨버린다. 미모를 이용하여 정보를 얻는 '사갈미인'이 아니고, 재능과 실력으로 남성의 영역에서 길을 찾아낸 강자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 시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강의영의 의미는 이미 개인의 성패를 초월한다. 그녀는 강남여자의 부드러움으로. 항전의 봉화에서 정보전선을 떠받쳤다. 98년의 인생은 증명한다: 진정한 전설의 여인은 전쟁터에서 적을 죽인 숫자로 표현되지 않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굳게 지킨 지혜와 용기로 드러난다고. 그녀가 해독한 암호와 같이 역사에 숨겨져 있는 여성의 역량은 마침내 광망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