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일대효웅의 잠복술: 안록산은 어떻게 20년간 당현종을 속일 수 있었을까?

by 중은우시 2024. 11. 26.

글: 유연독서(悠然讀書)

한 호인(胡人) 상인이 어떻게 20년간 천만관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을까?

일개 무부가 어떻게 조정에서 권모술수로 문무백관들을 자신의 장기말로 만들 수 있었을까?

한 이민족 상인이 무엇을 가지고 대당의 3분이 1의 군권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그가 바로 안록산이다.

호인거상: 안록산 거액재산의 비밀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는가? 사료기재에 따르면, 그가 양귀비에게 바친 호금(胡錦)만 하더라도 1년에 수백만관이다. 이런 부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730년의 삭주(朔州) 변시(邊市)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몸이 건장한 호인상단의 우두머리가 관부와 관세를 협의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젊은 안록산이다. 그의 휘하의 상단은 매번 새외(塞外)를 출입할 때마다, 대량의 진기한 보물들을 가져왔다.

안록산은 변방무역의 비결을 잘 알고 있었다. 돌궐부락에서 자란 그는 6개국가의 언어에 능통했고, 각 민족의 풍습도 잘 알았다. 다른 상인들이 유목민족과 장사를 하려면, 3,4번 통역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는 몇 마디 호어(胡語)만 하면 상대방이 웃으면서 그와 얘기를 나누었다.

"너희 한족은 항상 우리 호인들이 거칠고 비루하다고 여기지만, 장사를 할 때는 누가 우리의 유연성을 따라올 수 있단 말인가?" 안록산은 항상 심복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장사의 비결을 말해준다.

삭주에 있는 동안 그는 창조적으로 "도마(倒馬)"무역모델을 채택한다. 돌궐부락에서 저가로 전마를 구매한 후, 살을 찌워서 고가로 당군에 판매하는 것이다. 말 1필의 가격차이는 수천전에 달했다. 짧은 3년만에 그는 천만관의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의 상단이 그의 정보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상인으로 분장한 밀탐이 새내외에 깔려 있어서, 각측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정보는 그가 장사를 할 때 항상 다른 사람을 한걸음 앞서가게 만들었따. 또한 나중에 그의 군사행동에서 핵심정보를 제공받게 된다.

상업노선을 경영하는 동시에, 안록산은 방대한 관계망도 형성한다. 그는 한 가지 이치를 잘 알았다: 상업노선을 독점해야, 군수물자의 명맥을 장악할 수 있다.

738년의 어느 날, 범양절도사(范陽節度使) 장수규(張守珪)는 선물을 크게 받는다: 호금 천필, 초구(貂裘) 백건, 상등전마 오십필. 선물을 보낸 사람은 바로 안록산이다. 이런 큰 선물을 주자 그는 바로 장수규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리하여 범양군대의 대문을 열 수 있었다.

장사에서의 수완을 그는 정치에도 적용했다. 조정중신들에 대하여, 그는 정면으로 환심을 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임보(李林甫)에게 선물할 때는 상대방이 전혀 생각지 못하 물건으로 골랐다: 돌궐문자가 쓰여진 기복금화(祈福錦畵), 1필의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서역보마. 이런 특별한 선물을 받으면 왕왕 선물을 보낸 사람에게 호기심이 발동하게 된다.

"이 호자(胡子)는 비록 거칠지만, 사람의 환심을 사는 재주가 있구나" 이임보의 안록산에 대한 평가이다. 이건 조정신하들이 가진 보편적인 인상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이것은 바로 안록산이 정교하게 설계한 결과라는 것을.

천보연간에 이르러, 안록산의 상업제국은 이미 하삭지구(河朔地區)에 모두 분포되어 있었다. 그의 상단은 새외의 마필무역을 독점했을 뿐아니라, 군수물자의 운송경로도 통제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상업적 기초는 나중에 그가 군사력을 확장하는 데 물적인 뒷받침이 된다.

옛사람의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장사하는 사람은 국적이 없다(商者, 無域之民也)." 안록산은 그의 상업적재능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 호인상인의 최종목표는 재산이 아니었다. 그의 안목은 일찌감치 상인이 한계를 넘어서, 더욱 큰 목표를 노리고 있었다.

권력잠복자: 한 호인의 심계

안록산이 거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크게 잘못 본 것이다. 돌궐부락에서 자란 이 혼혈아는 20년이나 조정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놀았다.

739년 겨울, 장안의 대명궁. 안록산이 처음 당현종을 알현하는 날이다. 대전에는 문무백관이 의관을 갖춰 입고 있었는데, 유독 그 혼자만 호복(胡服)을 입고 일부러 거칠고 무식한 모습을 드러낸다.

당현종을 만났을 때, 그는 일부러 멍청한 모습을 보이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한 가지 동작은 조정의 문무백관들을 웃게 만든다: 그가 당현종에게 머리를 박고 인사할 때, 일부러 뚱뚱한 몸을 넘어진 것처럼 땅바닥에 굴린 것이다.

온 조정이 웃음바다가 되었는데, 당현종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뚱뚱한 호인은 아주 귀엽다. 조그만치도 심기를 쓰지 않는다. 바로 이런 수법으로 안록산은 성공적으로 당현종의 마음 속에 '진실되고 성실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역시 호인은 호인이다. 한인들 처럼 허리를 잘 숙이지 못하는구나!" 당현종은 이렇게 안록산을 평가한다. 누가 알았으랴. 이런 것들이 바로 안록산의 고명한 위장이라는 것을.

궁정에서, 그는 고명한 평형술을 펼친다. 양귀비에 대하여는 고의로 시골의 성실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매번 입궁할 때마다, 반드시 기이하고 재미있는 외국의 물건을 양귀비에게 바친다.

한번은 그가 말하는 앵무새를 바쳤는데, 이 앵무새는 한어로 인사를 할 줄 알았을 뿐아니라, 돌궐어로 노래도 불렀다. 양귀비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그 자리에서 황금백냥을 그에게 내린다.

태자 이형(李亨)에 대하여는 안록산이 다른 책략을 쓴다. 그는 태자의 앞에서는 지나치게 아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적으로는 자주 긴급히 필요한 군수물자를 태자부로 보내곤 했다. 이 수완은 아주 교묘했다. 태자에게 밉보이지 않았을 뿐아니라, 당현종의 시기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의 가장 대단한 수완은 이임보와 양국충(楊國忠)의 양대세력 사이에서 좌우봉원(左右逢源)한 것이다.

743년, 미묘한 힘겨루기가 펼쳐진다. 양국충은 사람을 암중으로 범양에 보내어, 안록산의 약점을 찾고자 한다. 안록산은 그것을 알고, 황급히 기만극을 준비한다.

그는 사람을 시켜 범양성밖에 대형 양식창고를 짓게 한다. 그리고 고의로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게 한다. 양국충의 밀탐이 그 공사를 보고, 즉시 조정에 돌아와 안록산이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때 안록산이 상소를 올린다. 변경에 돌궐이 계속하여 침입하여, 부득이 군량미를 비축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겠다고. 이런 주절 하나로, 위기는 해소되고, 오히려 당현종의 칭찬을 받는다.

조정에서도 안록산은 한 가지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일부러 바보인 듯, 미친 듯 행동하는 것이다. 대신들이 일을 논의할 때, 그는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고, 수시로 잘 모르는 사람같이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 이렇게 오래 지나다보니, 사람들은 모두 호인들은 전투나 할 줄 알지, 조정의 정무는 전혀 모른다고 여기게 된다.

실제로 그는 매일 저녁 자세히 조정의 문서를 읽고, 각측의 동향을 파악했다. 그의 저택에서는 아주 상세한 조정신하들의 관계도가 숨겨져 있었다. 여기에는 모든 대신의 기호, 가족, 파벌이 기록되어 있었다.

천보10년, 이미 삼진절도사가 된 안록산은 어느 주연에서 술에 취해 이런 말을 한다: "이 장안성내의 어르신들은 모두 스스로 총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있다. 그들의 눈에는 멍청해 보이는 호인이이야말로 최대의 승자라는 것을."

이 말은 진상을 얘기한 것이다. 20년동안, 그는 정교한 연기로 모든 문무대신을 속여넘겼다. 조정에서 이 '돈후하고 착실한' 호인이 심무원려를 가진 효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삼진지주(三鎭之主): 정교하게 설계된 권력탈취계획

많은 사람들은 안록산이 그저 유용무모(有勇無謀)한 무부(武夫)로만 알았다. 그건 잘못 본 것이다. 그가 범양, 평로, 하동 삼진에 해놓은 배치는 권력탈취의 완벽한 교과서였다.

먼저 시간을 천보원년으로 돌아가보자. 이 해에 안록산은 범양성내에서 한 가지 일을 벌인다. 그는 심복을 보내 성안에 소문을 퍼트린다: 돌궐이 남하하여 침입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그는 몰래 성안의 30% 정예병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성안의 백성들이 공황상태에 빠져 불안해 할 때, 한 돌궐의 소규모 기병부대가 성밖에 출현한다. 백성들은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안록산의 군대는 일찌감치 방어위치를 잡고 있었고, 일거에 적군을 격퇴시킨다.

이번 '위기'는 기실 안록산이 혼자서 연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그는 조정의 신임과 더욱 큰 군권을 받게 된다.누가 생각했으랴. 이 '돌궐기병'이 기실 그가 큰 돈을 들여서 매수한 배우들이었다는 것은.'

군대를 경영할 때, 안록산은 독특한 방법을 쓴다. 그는 "잡종영(雜種營)"을 두었고, 각 민족의 정예를 하나로 혼성편제했다. 돌궐인의 기마술, 거란인의 기습, 한족의 공성등 각각의 장점을 모았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의 용인술이다. 그는 장령의 신분은 신경쓰지 않고, 단지 그의 능력만 보았다. 사사명(史思明)이라는 노예가 있었는데, 용병에 뛰어났다. 그는 바로 그를 대장으로 발탁한다. 이처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용인술은 각 민족의 장병들로 하여금 그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싸우게 만들었다.

천보3년, 안록산은 평로진에서 특수한 정책을 실시한다: 50명이상의 장정을 거느리고 군에 들어오면 바로 군관으로 발탁한다. 짧은 반년만에 그의 부하는 3만명이 늘어난다.

하동진에서 그는 더욱 고명한 수단을 쓴다. 그는 고의로 소식을 전파하여 자신은 이미 나이가 많으므로 은퇴하고자 한다. 조정대신들이 그에 대하여 논의를 분분하게 하고 있을 때, 돌연 그는 상소를 올려 변방의 형세가 위급하니, 자기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이는 성동격서의 계책이다. 조정에서 그의 병권이 너무 크다는 의심을 해소시켰을 뿐아니라, 그는 더욱 많은 군비를 받게 된다.

천보8년에 이르러, 안록산의 군대는 이미 15만이 넘었다. 다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은 그가 삼진의 각처에 대량의 비밀부대를 매복시켜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부대는 평소에는 상인이나 사냥꾼으로 위장하고 잇지만 실은 잘 훈련된 정예군사들인 것이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그가 삼진의 군대가 서로 밀접하게 왕래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반대로, 그는 일부러 각진의 장령들간의 갈등을 부추긴다. 이렇게 되니, 조정은 오히려 '조정자'인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그의 가장 고명한 수단은 특수한 정보계통을 설립한 것이다. 그는 가장 충성심이 있는 결사대를 각 역참에 배치시켜, 이들을 통해 방대한 정보망을 형성한다. 조정의 여하한 움직임도 그는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천보10년의 어느날 밤, 안록산은 범양성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심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삼진이 왜 철밥통같은지 아느냐? 왜냐하면 한걸음 한걸음 내가 직접 쌓아왔기 때문이다. 바둑을 둘 때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놓는 것같지만, 실제로는 한수 한수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을 진상을 토로한 것이다. 외부인이 보기에 삼진의 군권은 당현종이 그를 신임한 결과이다. 그러나 실제상, 이는 그가 십여년간 정교하게 계획한 성과인 것이다.

조정이 그의 병권을 회수하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이 충성심이 가득했던 호인은 이미 북방에 금성탕지같은 군사제국을 건설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디 일개 거친 사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인가? 분명 운주유악의 전략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쉽게도 그는 최종적으로 이 재능을 잘못된 곳에 썼다.

미국종현(迷局終現): 권력욕의 훼멸의 길

천보14년 겨울, 장안성의 눈이 아직 녹지 않았는데, 놀라운 소식이 성안에 전해진다: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어전에서 땅바닥을 구르면서 웃음을 선사하던 호인이 어찌 거병하여 반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자칭 당현종의 '아들'이라던 안록산이 어찌 그의 '부친'을 배신한단 말인가?

사실상, 일찌기 2년전에 안록산은 반란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보낸 상단은 더 이상 비단이나 주보를 운송하지 않았다. 몰래 무기와 양초를 운송하여 쌓아두고 있었다. 그의 '잡종영'은 더 이상 방어를 훈련하지 않고, 비밀리에 공격전술을 훈련했다.

더욱 아이러니한 점이라면, 그가 병력운송에 사용한 전마는 대부분 조정에서 하사한 돈으로 구매했다는 것이다. 그가 모아둔 양초는 상당부분이 조정에서 내려온 군비로 산 것이다.

십일월의 어느 날 밤, 범양성은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안록산은 심복장수들을 모아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이십년전, 나는 전마를 매매하며 살던 상인이었다. 지금 나는 이 말들을 가지고 더욱 큰 가업을 얻고자 한다."

거병할 때 그는 '청군측(淸君側)'의 구호를 내건다. 그리고 '성무황제(聖武皇帝)'를 칭한다. 일찌기 조정에서 바보짓하고 미치광이짓하던 사람이 마침내 위장을 벗어던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둔한 호인이었던 그가 실은 야심만만한 효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권력욕은 그의 두 눈을 가린다. 그는 당나라의 잠재력을 저평가했고, 자신의 실력은 고평가했다. 더욱 치명적인 점은 그가 한 가지 진리를 망각했다는 것이다: 기만을 통해 건립된 권력은 결국 시간의 시험을 견딜 수 없다.

거병후의 안록산은 성격이 크게 바뀐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걸핏하면 수하장령을 죽인다. 일찌기 그를 따랐던 결사대는 점점 이 폭군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그의 심복들도 서로 시기하기 시작하면서 군심이 점점 이반된다.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권력탈취때 썼던 수단이 결국은 자신을 잡아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권모술수를 쓰도록 가르쳤고, 그 결과 그들은 같은 수단을 그에게 썼다. 그는 혼란을 제조하는데 능했는데, 그 결과 이런 혼란이 그 자신을 집어삼키게 된 것이다.

천보15년 칠월, 범양성내에서 참혹한 비명이 들려온다. 이전에 풍운을 질타했더 '성무황제'가 자신의 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죽기 전에 그는 아마도 한가지 이치를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권력이라는 게임은 영원한 승자가 없다.

안록산의 패망은 한 개인의 비극일 뿐아니라, 한 시대의 축소판이다. 그의 일생은 완벽하게 권력욕이 어떻게 한 사람을 훼멸로 이끄는지를 보여준다.

상인으로 시작한 호인은 뛰어난 지혜와 수단으로 원래 정당한 공적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위험한 길을 선택했고, 결국 만겁불복의 심연에 빠져버린다.

그의 이야기는 후인들에게 이런 경고를 남긴다: 권모술수가 아무리 정교하고 뛰어나더라도, 일단 정도를 벗어나게 되면 결국 자식기과(自食其果)하게 된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왜 풍운을 질타하던 효운이 최종적으로 자신의 아들 손에 죽게 되었을까? 그것이 주는 역사의 교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