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뇌가(雷歌) 2024년 10월 19일
3중전회이래, 중공고위층에 일련의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나, 시진핑의 지존지위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1주일간 더욱 두드러진다. 여론권에서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고 의론분분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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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군사이론공작회의(全軍軍事理論工作會議)가 10월 14-15일 베이징에서 소집개최되었다. 이는 중공이 처음 이런 종류의 회의를 개최한 것이고, 그 중요성은 금년 6월 옌안(延安)에서 소집개최된 "중앙군사위정치공작회의"에 전혀 못지 않다. 중앙군사위정치공작회의때 시진핑과 군대지도자들이 모두 참석했었다. 시진핑은 타이완을 무력통일하는데 골볼하고 있고, 소위 "시진핑군사사상"의 주인공이다. 이치대로라면 군권을 확실히 잡고 싶어하는 시진핑은 어떻게 하더라도 이런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 시진핑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중요지시"만 보냈을 뿐이다. 회의를 주재하고 발언한 사람은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 장여우샤(張又俠)이었다. 장여우샤와 함께 주석단에 앉은 사람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해군중장이었다. 시진핑의 심복으로 타이완무력통일을 책임지고 있는 군사위제2부주석 허웨이둥(何衛東)도 출석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신체상황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회의개막당일 오전, 시진핑은 베이징에 있었꼬, 우방궈(吳邦國)의 유체고별의식에 참석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에는 푸젠(福建) 장저우(漳州)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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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군사이론공작회의"에 관한 보도에서, 신화사의 원고에는 "신시대강군사상을 관철한다"는 말을 썼다. 이전에는 일관되게 "시진핑강군사상을 관철한다"꼬 말해왔었다. 그리고 장여우샤의 발언에서도 단지 시진핑의 '중요지시'를 학습관철해야 한다는 말을 했을 뿐, 더 이상 "시진핑강군사상"의 학습을 얘기하지는 않았다. 또한 이전에는 말끝마다 나오던 "군사위주석책임제"라는 말도 나오지 않아싿. "시진핑"이 보이지 않고, "신시대"로 바뀐 것이다. 그건 어떤 신시대인가? 포스트시진핑의 신시대를 말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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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15일 푸젠 장저우 동산도(東山島)와 샤먼(廈門)을 고찰한다. 거기서 언급한 것은 향촌진응, 문화유산보호 및 자유무역구건설등이었다.
샤먼은 대타이완전선이고, 타이완이 점령하고 있는 금문도(金門島)외 지척거리에 있다. 또한 동산도는 국공교전의 마지막 전장이다.
1949년 10월, 해방군 섭비(葉飛)의 삼야(三野)는 해협을 억지로 건너 금문도를 공격한다. 그러나 섬에 상륙한 만명이상의 병사들이 전멸하며 참패를 맞는다. 국군상장 호련(胡鏈)은 대승을 거둔 기세를 이어, 3년내에 전후로 남일도(南日島)와 미주도(湄州島)에서 연승을 거둔다. 1953년 7월, 호련은 만명이 넘는 육해공군연합작전을 벌여 동산도에 대한 대규모 상륙작전을 벌인다. 한때 동산도의 대부분을 장악했지만, 주봉(主峰)과 핵심항구는 장악하지 못했다. 그후 해방군의 원군이 대량으로 섬에 진입하면서, 국군은 천명이상의 손실을 입고 부득이 철수한다. 금문도전투는 당시 해방군이 대만을 공격하여 점령할 힘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동산도전투는 국군이 대륙으로 반격할 능력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때부터 해협양안은 각각 자신의 점령지를 지키면서 더 이상 대규모전투가 벌어지지 않게 된다.
시진핑은 취임후 타이완무력통일이 그가 매번 되뇌이는 첫번째 정치목표가 된다. 다만 이번에 시진핑은 동산도와 샤먼에 왔으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타이완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전쟁준비라는 말도 꺼내지 않고, 통일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얘기한 것이라고는 경제민생과 문화발전이었다. 이런 변화는 사람들에게 이상하다고 여기게 만든다. 전체 풍향이 바뀌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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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시진핑이 푸젠, 안후이(安徽)를 고찰하면서, 이전에는 시진핑을 항상 따라다녔던 대태감 차이치(蔡奇)가 수행하지 않았다. 차이치는 시진핑이 가장 아끼는 심복이고, 지위도 높고 권한도 크다. 또한 중앙판공청주임도 겸임하면서 안팍으로 시진핑의 모든 일을 챙기고 보살핀다. 이번에 차이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주 이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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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국방부장이 14-15일 베이징을 방문한다. 시진핑은 만나지 않았다. 이것도 이상하다. 현재 중러가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항하는 대국면, 그리고 러우전쟁의 국면을 보면, 최근 3년간 중국의 국방부장이 방러하든, 아니면 러시아국방부장이 방중하건 쌍방의 최고지도자와 항상 접견했었따. 다만 이번에 러시아국방장관을 접견한 것은 군사위부주석 장여우샤이다. 그리고 대화과정에서 장여우샤는 확실히 거고임하(居高臨下)의 자태를 보인다. 이는 중공군대고위층에 무언가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전에, 미국의 백악관안보보좌고나 설리번의 방중때에도 여러 고위관료와 시진핑을 만난 외에 특별히 군사위부주석 장여우샤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중국측도 동의했다. 이는 아주 비정상적인 일정이다. 왜냐하면 통상적인 사례로 보자면 설리번은 미국의 군대측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시진핑을 만나면 충분하다. 군사위부주석을 만나는 건 어떤 의도인가? 그리하여 여론은 시진핑이 군대권력을 잃고, 장여우샤가 군대대권을 장악한 조짐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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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인 9월 30일, 시진핑은 국경절 75주년 리셉션에 당내개혁파에 속하고 시진핑의 사상과 거리가 먼 은퇴한 원로동지 리루이환(李瑞環), 원자바오(溫家寶)를 시진핑의 좌우에 배치했다. 그리고 중간에 원자바오와 술잔을 부닥치며 환담을 나눈다. 그리고 원자바오의 자태는 시진핑에게 영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심에서 나오는 유쾌함을 보였다. 이건 많은 사람들의 눈에 조화가 맞지 않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중앙고위층에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궁금해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전에 시진핑은 원로들의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엄격히 막아왔고, 그들이 기존 영향력과 세력을 이용하여 정치에 간섭하는 것을 방지했었기 때문이다.
1주일 전에 중공이 돌연 180도 대전환하여 이전 여러 해동안 중앙권위를 강화하는데만 신경쓰고, 경제적 악영향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 조치를 취하다가 돌연 전력으로 경제를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은 시진핑이 경제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 아니냐고 여긴다. 거기에는 2008년 정책을 내놓아 4조위안의 시장구제방안을 집행했던 원자바오를 모시는 것을 포함하고, 원로들이 다시 남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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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진핑의 군대내의 일부 심복 예를 들어 천궈창(陳國强), 친셩샹(秦生祥), 친수퉁(秦樹桐)등이 돌연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기율검사위에 잡혀갔다. 이것도 여론의 주목을 널리 받았고, 이상하다고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9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전 중기위상위, 군기위전직부서기 천궈창 중장이 국방과기대학 정위로 옮겨갔다고 한다. 천궈창은 겨우 61세로, 시진핑이 군대고위층을 숙청하는데 앞장섰는데, 현재 돌연 대학의 한직으로 밀려난 것이다. 실로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친셩샹은 38군 출신이고, 해군상장이다. 시진핑이 취임한 2012년말 군사위판공청주임으로 임명되고, 시진핑의 군대내의 대관가(大管家)가 된다. 2016년 시진핑은 효과적으로 군대고위층을 장악하기 위하여 군사개혁(7대군구를 5대군전구로 조정함, 4총부를 나누어 15개부문으로 분할함)을 대거 인력을 교체한다. 친셩샹은 군대개혁판공실주임으로 시진핑이 군대개혁을 진행하는 실무집행자였다. 일시에 지위도 높고 권한도 커서, 아주 잘나갔었다. 나중에 해군정위로 옮겨갔는데, 얼마전에 10월 6일 체포되어 조사받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친슈퉁은 31집단군 출신으로 육군상장이다. 시진핑이 푸젠에 재직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다. 시자쥔에서 전형적인 푸젠방에 속한다. 인터넷에는 9월초 그가 끌려가서 조사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당시 육군 정위를 맡고 있었다.
시진핑의 군대내 핵심심복장군들이 하나하나 밀려나거나 낙마하고 있다. 이건 또 어찌된 일인가? 시진핑이 스스로 오른팔 왼팔을 잘라낸 것인가? 아니면 군대내의 다른 강대한 세력이 시진핑의 세력을 잘라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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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전회 개최후 매체에서는 시진핑을 고도로 선전하던 것이 돌연 대폭 감소했고, 당내에서 지도자개인숭배색채도 많이 옅어졌다. 이건 시진핑이 스스로 원한 것일까. 아니면 압박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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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서 보도한 3중전회 폐막식은 개막식의 장면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속였다. 이를 통해 시진핑에게 3중전회때 어떤 일이 발생했음이 드러났다. 아마도 중풍으로 쓰러져서 폐막식에 참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8월 19일, 시진핑은 내방한 신임베트남총서기 또람(蘇林)를 맞이했는데, 베트남에서 내보낸 현장사진을 보면, 시진핑과 또람이 악수하는 측면사진이 있다. 확대해보면, 시진핑의 오른쪽머리 뒤쪽아래에 새로운 상처가 있다. 그것은 머리카락이 아직 자라지 못했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시진핑이 최근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내는 수술을 받은 것같고, 아마도 중풍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진핑이 신체에 최근 확실히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많은 조짐들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이다. 다만 3중전회이래 3개월간 중국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일들을 보면, 중공고위층의 권력구조에 분명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시진핑의 지존지위는 약화되었고, 특히 시진핑의 군대에 대한 장악력이 예전만 못하다.
이것이 시진핑의 신체가 좋지 않거나 아니면 경제를 망쳐서인지등 기타원인때문에 스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운신의 여지를 두려는 것인지 아니면 당내의 반시진핑세력이 손을 잡아 그를 물러나게 한 것인지, 심지어 소문처럼 군내에 정변이 발생하여 시진핑은 이미 권력을 상실하고, 지금은 그저 실권이 없는 황상인지는 현재로서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그저 앞으로의 변화를 계속하여 살펴보면 될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17일, 시진핑이 안후이 동성(桐城)을 고찰할 때 저명한 "육척항(六尺巷)"을 보러 갔다. 이 "육척항"에 얽힌 이야기는 청나라 강희제때 당시 문화전대학사 겸 예부상서인 장영(張英)과 관련된다. 그의 가족은 고향 동성에 있는데, 오(吳)씨성의 부호이웃과 집의 부지를 놓고 분쟁이 발생했다. 장씨집안은 고위관료집안이라는 것은 내세워 장영에게 편지를 써서, 그로 하여금 권력을 이용하여 기고만장한 이웃을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장영은 서신을 보고나서 이렇게 시를 써서 회신했다:
천리수서지위장(千里修書只爲墻) 천리나 편지를 보낸 것이 겨우 담장 때문인가
양타삼적우하방(讓他三尺又何妨) 3척을 양보한들 뭔 대수겠는가
장성만리금유재(長城萬里今猶在) 만리 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불견당년진시황(不見當年秦始皇) 당시 장성을 지은 진시황은 지금 보이지도 않는다.
장씨집안사람들은 서신을 받고 깨닫는 바가 있어, 먼저 3척을 양보한다. 오씨집안에서도 감동을 받아 역시 3척을 양보한다. 이렇게 하여 동성의 "육척항"이 나타난 것이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는 널리 알려지게 된다.
시진핑은 요 몇년간 계속하여 "투쟁정신"을 강조해왔다. 국내외에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전랑문화"를 형성했다. 현재 갑자기 "육척항"으로 가서 "화위귀(和爲貴, 화합하는것이 귀하다)"를 거론하고, "화문화(和文化)"를 찬양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동태청령방역정책이 돌연 바뀐 것이나, 경제구조로 급선회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하늘과 땅을 욕하던 전랑투쟁정신도 급선회가 이루어질 것인가. 현재는 "화위귀"를 높이 선양하는가. "투(鬪)"에서 "화(和)"로 바뀌는 것은 경제가 부진하여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병이 걸려 양심이 발현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지존지위가 동요된 후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인가?
어찌되었건 이건 아주 범상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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