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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사상

고대 중국인이 직면한 논리문제: 모순(矛盾), 백마비마(白馬非馬)와 혁명(革命)

by 중은우시 2024. 10. 17.

글: 삼사오대(饞師五代)

1

왕파매과(王婆賣瓜) 자매자과(自賣自誇). 왕파가 오이를 팔면서 자기 것이 제일 맛있다고 자화자찬한다. 기실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국어선생님은 국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국어를 모르면 문제조차 볼 수 없으니, 답은 적을 수 없다고 한다; 수학선생님은 수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학을 모르면 현대문맹이라고 한다; 물리선생은 물리를 배우면 천하를 돌아다녀도 겁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학생들에게 과목을 설명할 때 이렇게 말한다: 모든 문제는 언어문제이다. 언어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매 학기바다 사실상 어느 분야의 언어는 그 분야의 언어를 써서, 그 분야의 이야기를 한다. 수학은 수의 언어이고, 물리는 힘의 언어이며,화학은 분자의 언어이다. 등등.

그러나, 컴퓨터가 나온 이후, 하나의 추세가 형성된다. 즉 그 어느 학과도 모두 수량화, 모형화 및 프로그램화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컴퓨터언어는 이미 '천하통일'을 이루어 모든 학과의 공동언어가 되어버렸다.

이건 학생들의 학습적극성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왜냐하면 누가 천하통일하고싶지 않겠는가

논리에 대하여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류사회의 모든 문제는 결국 논리문제로 귀결된다.

여러분들은 아마 그렇지 않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럼 나는 호가호위로 명인의 명언으로 대답해 보겠다.

헤겔을 이렇게 말했다: 모든 과학은 응용논리이다. 논리법칙은 특정한 구체적 분야의 변장이다. 뒤의 문구는 내가 추구한 것이다.

2

역사상 중국에는 논리학이 없었다. 그렇다고 논리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자상모순(自相矛盾)의 이야기가 그 증거이다

이야기는 <한비자.난일>에 나온다; 초나라사람이 방패와 창을 팔고 있었다. 방패를 자랑하며 말하기를, '나의 방패는 튼튼하여 그 어느 무기도 뚫을 수 없다'고 말하고, 다시 창을 자랑하며 말하기를 '나의 창은 날카로워서 뚫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 그러자 누군가 말했다: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뚫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뚫는 것과 그 어느 것에도 뚫리지 않는 것은 동시에 세상에 있을 수 없다."

한비자는 이렇게 초나라사람을 조롱했다. 초나라사람이 들고 일어나 그에 대하여 '초나라를 모욕했다'고 소리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백마비나는 고대인들이 부닥친 또 하나의 저명한 논리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은 무명씨도 아니고, 중국사상사상 궤변으로 유명한 공손룡(孔孫龍)이다.

그러나 공손룡의 궤변은 수준이 높지 않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이건 명사의 내함(內涵)과 외연(外延)의 문제이다. 말, 백말은 두 가지 명사이다. 말은 내함이 작고, 외연은 크다. 백말은 내함이 크지만, 외연은 작다. 집합논리에서 백마비마는 하나의 집합관계문제이고, 백발의 집합은 말의 집합에 포함된다. 그 뿐이다.

공손룡과 고대인들은 이런 간단한 문제를 신비하게 취급하며 작은 문제를 큰 문제처럼 취급한 것이다. 그 뿐이다.

3

 

중국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왕조교체(改朝換代)이다.

그러나, 왕조교체는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왕조교체에는 하나의 가설이 필요하다. 즉,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 우리는 좋고, 너희는 나쁘다. 혁명의 목표는 좋은 것으로 나쁜 것을 대체하는 것이다. 혁명하는 우리는 반혁명의 너희를 대체한다. 혁명이 성공하면, 우리가 권력을 장악하고,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역사상 역성혁명(易姓革命)이 계속하여 발생한다. 진황한무, 당종송조. "강산에는 대대로 강자가 나타나고, 각각 수백년를 풍미했다." 다만, 빈번하게 발생한 '혁명'이 중국사회를 진보시켰는가? 아니다. 이에 대하여 청나라말기 저명한 유신인사 담사동은 침통하게 지적한 바 있다: "이천년의 정치는 진나라의 정치이다. 청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손중산조차도 부득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동지들이여 계속하여 노력하자.

왜 그런가?

왜냐하면, "혁명"의 가설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같다. 모든 사람이 같이 고상하고, 선행을 하고자하는 뜻이 있다. 또한 마찬가지로 비열하고 나쁜 짓을 할 충동도 있다. 모든 사람은 신성의 광휘도 있고, 마귀의 음암도 있다. 세계에서, 그저 좋은 일만 하는 "군자"도 없고, 그저 나쁜 일만 하는 "소인"도 없다.

가설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그후의 추리는 모조리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혁명에 대한 의심은 일찌감치 한나라초기 한경제때 누군가 발견한 바 있다.

<한서.유림전.원고생전>에 이런 기록이 있다:

원고생(轅固生)은 제(齊)나라사람이다. 즉 현재의 산동사람이다. 산동은 공자,맹자의 고향이고, 유학의 발원지이다. 그래서 원고는 유학자였다.

원고는 <시경>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 한경제때 조정에서 박사로 있었다.

하루는 원고생과 황생(黃生)이 한경제의 면전에서 논쟁을 벌이게 된다.

황생이 말한다: "상탕과 주무왕은 무슨 천명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걸과 상주를 살해한 흉수이다."

원고가 말한다: "그렇지 않다. 하걸과 상주는 유명한 폭군이고, 황음무도했으며, 천하에 화를 불러왔으며 온갖 나쁜 짓을 다 했다. 그리하여 인심을 잃었다. 민심은 모두 상탕과 주무왕에 있었다. 상탕과 주무왕은 하늘을 대신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민심에 순응하여 하걸과 상주를 죽인 것이다. 인민들은 그들의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상탕과 주무왕에 귀순했다. 상탕과 주무왕은 부득이 제왕이 된 것이다. 이것이 천명을 받은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황생이 말한다: "낡은 모자라도 머리에 써야 하고, 새 신발이라도 발에 신어야 한다. 왜 그런가? 그건 법도이기 때문이다. 하걸과 상주는 비록 인의가 없어도 어쨌든 제왕이다. 상탕과 주무왕은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역시 신하였다. 현재 군주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여 신하가 군주를 도와 잘못을 시정하게 하지 않고, 그가 발못했다고 죽여버리고, 그를 대신하여 자신이 제왕에 오른다면 그것이 살륙이 아니고 무엇인가?"

원고가 말했다: "너의 말대로라면 우리 한나라의 고조가 포악한 진나라를 대체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냐?"

원래 한경제는 한편에서 듣기만 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조종 한고조 유방까지 끌고 나오게 되니. 할 수 없이 끼어들어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한경제는 이렇게 말한다: "말의 간을 먹어보지 않았다고, 고기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학문을 연구하는데 탕무혁명을 토론하지 않는다고 하여 바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끝내버린다.

"원황지변(轅黃之辯, 원고생과 황생의 논쟁)"은 유학의 중대한 버그를 보여준다. 한편으로 '군권신수', '군군신신'과 황권지고무상을 선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탕무혁명', '황제도 돌아가며 할 수 있고, 내일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를 찬양하면, 황권에 대한 극도의 멸시, 위협과 도전이 된다. 만일 황권이 지고무상하여 여하한 역량으로도 그에 도전할 수 없다고 한다면, 더 이상 대체하는 것은 얘기할 필요가 없다. 만일 누군가 '체천행도'하려면, 유방, 주원장 같은 류의 무뢰한들도 황위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황권이 신성하다는 말은 웃기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중국인은 혁명과 왕조교체에 대한 논리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 만일 논리를 세우려고 하면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혁명은 치명적인 논리에 대한 배반이라는 것을, 혁명자의 최후는 반드시 혁명의 반대편으로 가게 되어 다음번 혁명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이 점을 알게 되면, 혁명열정은 그렇게 높아지지 않을 수 있고, 끝도없이 혁명만 계속하게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일본의 천황은 "만세일계"이다. 아마 일본인의 논리학은 분명히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일본에서 천황은 지고무상이다. 신권을 세상에서 대리하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천황의 명을 들을 수밖에 없다. 천황에게서 합법성과 수권을 받아야 한다. 네가 능력이 있고, 일을 잘 하면, 네가 계속 하는 것이고, 네가 제대로 못하면 권력을 천황에게 돌려준다. 예를 들어, 막부말기시대에 도쿠가와가족은 대정봉환을 한다. 즉 국가통치권을 천황에게 돌려준 것이다.

여기서 한 마디 언급하자면 "혁명"이라는 단어는 <역경>에 나온다. 그러나 근대에 부활하였고, 일본에서 기원한다.

청나라말기 혁명당인들은 이전에 자신의 반청행위를 "조반(造反)", "기사(起事)", "광복(光復)"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손중산이 일본으로 망명했을 때 현지신문에서 "지나혁명당수 손일선이 일본에 오다(支那革命黨首孫逸仙抵日)"라고 제목을 붙인 것을 보았다. 그는 이를 보고 그후부터 "혁명"이라는 단어를 썼고, 혁명당인 내에서 널리 쓰이게 된다. 국민혁명시대에 이 단어를 썼고, 전국에 널리 보급된다. 기실 "혁명"이라는 단어가 <역경>에 나온다: "탕무혁명(湯武革命), 순호천이응호인(順乎天而應乎人)" 다만 이 단어는 중국인의 생활에서 이미 사라진 것이었다. 일본인이 이 단어를 사용하여 영어의 'revolution'에 대응시켰고, 현대적인 의미를 갖게 되면서, 이 단어는 부활하게 된 것이다.

4

고대중국에서논리학이 없었지만, 고대인들고 논리문제에 부닥쳤다.

어떤 논리문제에서, 고대인들의 표현은 완벽했다. 예를 들어 자상모순의 이야기에서는 아주 멋지게 처리한다.

그러나 칭찬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백마비마이다. 기껏해야 수준이 높지 않은 궤변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현대의 척도로 고대인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손룡보다 더욱 앞서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와 학과분류에 관한 저서에서 이미 완벽하게 분석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인정할 점은 공손룡이 '백마비마'의 궤변으로 진나라의 위사를 속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어 공손룡과 그의 백마가 순조롭게 함곡관을 통과할 수 있게 되었따는 것이다. 계명구도(鷄鳴狗盜)의 효과를 거두었다.

논리에는 '계명구도"의 효과도 있고, '왕조교체'같은 중대문제에도 관련된다.

이에 대하여, "원황지변"에서 뛰어난 논쟁을 벌였다. 만일 계속되었더라면, 고대인들도 '혁명'의 내재적인 논리적배반성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한경제는 이 논쟁을 중단시켰고, 이를 사상의 금구(禁區)로 만들어 버린다. 누구도 이 문제를 더 이상 논의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만일 필자가 말한 "인류사회의 모든 문제는 결국 논리문제로 귀결된다"는 말이 성립된다면, 중국사회의 정체와 낙후는 실로 논리결핍으로 조성된 것이다.

혹은 중국사회의 모든 문제는 "집불여인(輯不如人)" 집이 남만 못해서이다. 여기서 '집'은 논리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