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역사대미감(歷史大微鑒)
옛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었다: "불효에 세 가지가 있는데, 후사를 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不孝有三, 無後爲大)" 이를 보면, 옛사람들은 가족혈맥의 전승을 매우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백성도 마찬가지이니, 왕실은 더욱 신경썼다. 황제가 만일 생육능력이 없다면, 이는 단순히 효 불효의 문제가 아니라, 황위를 노리는 자들이 기회를 노릴 수 있어, 통치지위에 위기가 미치고, 국가가 동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전종접대(傳宗接代)'는 황제의 가장 중요한 직책중 하나가 된다.
역사상 후사를 두지 못한 군주는 많다. 한소제 유불릉, 한애제 유흔, 명무종 주후조, 광서제 재첨, 선통제 부의가 모두 일국지군으로 후사를 두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춘추전국시기에 한 초나라의 국군은 계속 후사를 두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가장 신임하는 신하가 그의 고민을 풀어주기 위해 사방에서 약을 구하고 천하의 미인을 찾았다. 그래도 효과가 없자, 결국 자신의 임신한 소첩을 군주에게 바친다. 이야기의 결말은 예상을 벗어난다. 그리고 고사성어가 하나 만들어져 천고에 전해지게 된다.
1
그 신하는 바로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중 한명인 춘신군 황헐이다. 그는 나머제 3명의 공자들이 모두 왕족출신인 것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재능으로 초왕의 인정을 받고, 자신의 충성과 능력으로 한걸음 한걸음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기원전298년, 진나라는 대거 병력을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한다. 여러번의 큰 전투를 거쳐, 초나라는 여러개의 성(城)을 잃는다. 초나라의 도성마저도 진나라군대에 함락당한다. 초경양왕(楚頃襄王)은 할 수 없이 도성을 동쪽으로 옮기고, 동시에 견식이 넓고, 말재주가 뛰어난 황헐을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전쟁을 끝내줄 것을 간청하게 한다.
황헐은 진나라에 도착한 후 진왕을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말재주로 진왕에게 "연초(聯楚)"와 "공초(攻楚)"의 장단점을 분석해주면서 성공적으로 진왕을 설득하여 초나라를 공격하는 군대를 되돌리게 한다. 그리고 초나라와 맹약을 맺는다. 황헐의 이런 노력으로 초나라는 망국의 위기를 넘겼을 뿐아니라, 초나라는 진나라와 20년의 평화시기를 지내게 된다.
다만, 진왕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황헐은 초나라의 태자 웅완(熊完)과 함께 진나라에 남아 인질이 된다. 거기에서 두 사람은 꼬박 10년을 지냈고, 두 사람간의 감정은 아주 깊어진다.
2
두 사람이 온갖 고생을 겪은 후에 초나라로 돌아왔을 때는 초경양왕이 이미 사망한 후였고, 웅완은 태자의 신분으로 왕위를 승계하여 초고열왕(楚考烈王)이 된다. 그는 황헐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춘신군에 봉한다. 그리고 그에게 회북십이현(淮北十二縣)을 봉지로 내린다. 두 사람은 진나라에서 10년간 함께 생활했던 경력이 있고, 웅완이 진나라를 떠날 때, 황헐은 죽음을 무릅쓰고 도와주었고, 이로 인하여 하마터면 황헐은 진왕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초나라로 돌아온 후 웅완은 황헐을 자신의 심복으로 여겼다. 황헐도 전심전력을 다해서 초고열왕을 보좌했다. 그리하여 초나라는 다시 진흥된다.
초왕이 즉위한지 여러 해가 지났고, 후궁에 미인들이 수두룩했지만, 시종 자식을 낳지 못했다. 조정대신들은 의론이 분분했고, 모두 초왕에게 하루빨리 후사를 두어 초나라의 국운에 영향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압박했다.
황헐은 초왕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사방에 명의를 찾아 초왕의 병을 치료하고자 했고, 동시에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골라서 입궁시켰다. 그러나 이들 여자들이 초왕의 총행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식을 낳아주지는 못했다.
3
당시 조(趙)나라에 이원(李園)이라는 야심가가 있었다. 그는 황헐이 초왕에게 바칠 미인을 골라서 입궁시킨다는 말을 듣고 여동생 이언(李嫣)을 데리고 초나라로 간다. 다만 그는 여동생을 바로 궁중으로 보내지 않았다. 여쨌든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미인들이 입궁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무일실을 위해, 그는 먼저 기회를 잡아 이언을 황헐에게 소첩으로 바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언은 황헐의 아이를 임신한다. 오누이는 아주 기뻐하면서 황헐에게 제안한다. 이미 임신한 이언을 초왕에게 바치자는 것이다. 황헐은 그 제안이 너무 황당무계하다고 여겼다. 그것은 기군지죄(欺君之罪)가 아닌가.
그러자, 이원 오누이는 황헐의 각도에서 분석을 해준다: 초왕에게 만일 후사가 없게 되면, 왕위는 나중에 다른 사람이 이어가게 될 것이다. 당신은 20년간 초나라재상으로 있었는데, 적지 않은 정적이 있을 것이다. 초왕이 없으면, 너에게는 큰 화가 닥칠 것이다. 다만 만일 이언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왕위를 계승한다면, 당신은 장래 근심걱정없이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황헐은 그 말을 듣고 그들 오누이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어쨌든 초왕에게는 후사가 없고, 만일 임신한 이언을 초왕에게 바친다면, 초왕의 걱정을 풀어줄 수 있을 뿐아니라, 아이가 나중에 왕위를 계승하면 자신도 위치를 지키지 못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황헐은 이언을 초왕에게 바친다. 그녀는 금방 초왕의 총행을 받고, 얼마 후 성공적으로 태자를 낳는다. 이언은 왕후에 봉해진다. 이원도 중용되어 조정에 참여한다.
4
나중에 초왕의 병이 위중해지자, 황헐의 문객인 주영(朱英)은 그에게 일깨워준다. 만일 초왕이 죽으면, 이원 오누이가 권세를 위해 황헐을 제거하려 할 것이라고. 그러나, 황헐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원은 그저 여동생을 팔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소인으로 보았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초왕이 죽은 후, 이언이 낳은 아이가 즉위하니 그가 초유왕(楚幽王)이다. 이원 오누이는 비밀을 영원히 감추기 위해, 매복을 두어 황헐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여러가지 죄명을 뒤집어 씌워 황헐의 집안을 멸문시킨다.
전국사공자중 한명인 황헐은 일생동안 여러 힘든 일을 겪었지만, 그는 뛰어난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하나 해결해왔다. 그는 여러 풍운을 질타하는 큰 인물들을 만났다. 그러다보니 이원같은 소인은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눈에 보이는 창은 피하기 휩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은 막기 어렵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별 것없는 소인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던가. 황헐의 휘황한 일생도 소인의 손에 철저히 끝장난다.
황헐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런 고사성어가 후세에 전해지게 된다: "무망지재(無妄之灾)". 다만 이것이 '무망지재"이든 아니면 "작견자박(作繭自縛)"이든 황헐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소인의 말을 들었고, 권세를 지키기 위해 임신한 소첩을 초왕에게 바쳤다. 그 결과 편안하게 잠을 자지 못하게 되었을 뿐아니라 일가족이 목숨을 잃게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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