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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과학

중국고대의 "내단술(內丹術)"과 "방중술(房中術)"

by 중은우시 2023. 5. 4.

글: 강효원(江曉原)

 

최근 들어 일부 중국고대의 방술(方術)이 점점 다시 나타나서 부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문인학자들 중에서도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이미 사회의 풍조를 형성한 듯하다. 여러 방술중에서 내단술(內丹術)이 특히 주목을 끝다. 내단술은 방중술(房中術)의 일부 내용을 흡수한 것인데, 이 성(性)과 관련한 금구(禁區)에 최근 들어 날로 다가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정명(正名, 명칭을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고 사회에서 그 진실성과 과학성을 인정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장생불로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방술(方術)은 오랫동안 허망하고 썩었으며 심지어 회음회도(誨淫誨盜)하다고 본 사설(邪說)인데,  어느날 다시 '발굴'하여 과학의 전당으로 들어가게 하려고 하니, 많은 인사들은 곤혹을 느끼고 비판하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상황에 비추어, 문제를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해, 고대방중술과 내단술의 관련주장 그리고 양자간의 역사연원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본문은 이에 대한 초보적인 탐색이어서, 이렇게 지적하고 싶다: 반드시 먼저 평가기준과 이론분야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그후에 비로소 정명이나 승인여부등의 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1. 방중가(房中家)의 관련주장

 

방중술이론을 전면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이 글의 임무가 아니다. 여기에서는 단지 고대문헌에 근거하여 방중술의 일부 관련주장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먼저, 교접(交接)과 장수(長壽)의 관계이다. 방중가는 교접은 장수에 도달하는 심지어 영생(永生)에 도달하는 수단, 혹은 수단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중국전통의 철학관념과 아주 깊은 내재적인 관계가 있다. 비교적 전형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남녀상성(男女相成), 유천지상생야(猶天地相生也). 소이신기도양(所以神氣導養), 사인불실기화(使人不失其和). 천지득교접지도(天地得交接之道), 고무종경지한(故無終竟之限); 인실교접지도(人失交接之道), 고유상잔지기(故有傷殘之期). 능피중상지사(能避衆傷之事), 득음양지술(得陰陽之術), 즉불사지도야(則不死之道也). 천지주분이야합(天地晝分而夜合), 일세삼백육십교이정기화합(一歲三百六十交而精氣和合), 고능생산만물이무궁(故能生産萬物而不窮); 인능즉지(人能則之), 가이장존(可以長存).

 

남자와 여자가 상호보완하고 합치는 것은 마치 천지가 상생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신(神)은 기(氣)로 길러야 하고, 지나쳐서 조화를 잃게 해서는 안된다. 천지는 음양이 교접하는 규칙으로 끝이 없이 영원할 수 있다. 사람이 교접의 도리를 잃으면 해를 입게 된다. 사람이 그렇게 상해를 입는 일을 피하고 음양지술을 얻으면 장생불사할 수 있다. 하늘과 땅은 낮에는 나뉘어지고, 밤에는 합친다. 일년 삼백육십오차례나 그렇게 교접한다. 그리하여 하늘의 양기와 땅의 음기가 하나로 융합하여 만물이 영원히 자라나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이러한 자연규율대로 따라할 수 있다면, 장생불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견해는확실히 중국고대의 "천인감응(天人感應, 자연세상의 규율과 인간세상의 규율은 같다)"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갈홍(葛洪)은 가장 중요한 방중술 이론가중 한명이다. 그는 교접의 이폐(利弊)를 얘기했다:

 

현소유지수화(玄素諭之水火), 수화살인(水火煞人), 이우생인(而又生人), 재어능용여불능이(在於能用與不能耳). 대도지기요법(大都知其要法), 어녀다다익선(御女多多益善); 여부지기도이용지(如不知其道而用之), 일양인족이속사이(一兩人足以速死耳)

 

현녀(玄女)와 소녀(素女)를 물과 불에 비유해보자, 물과 불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그것은 잘 쓰느냐 잘 쓰지 못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대체적으로 말해서, 만일 그 도리를 안다면 여자는 많이 거느리면 거느릴수록 좋고, 만일 그 도리를 모른다면, 1,2명만으로도 죽음을 재촉할 수 있다.

 

"현소(玄素)"는 바로 <현녀경(玄女經)> <소녀경(素女經)>을 가리키는 것으로 방중술을 의미한다. 이 두 권의 책은 고대방중술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지금까지도 잔편(殘篇)이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현소"로 방중술을 가리키는 것은 당시에는 자주 볼 수 있었던 용법이다. 조금 후 또 다른 방중가 손사막(孫思邈)도 유사한 논조로 얘기한다. 그리고 고대전설까지 빌려서 얘기한다: 

 

황제어녀일천이백이등선(黃帝御女一千二百而登仙), 이속인이일녀벌명(而俗人以一女伐命), 지여부지(知與不知), 기불원의(豈不遠也). 지기도자(知其道者), 어녀고불다이(御女苦不多耳)

 

황제는 여자를 천이백이나 거느렸지만 신선이 되었다. 그러나 속인은 여자 한명으로도 목숨을 잃는다. 아는 것과 알지못하는 것의 차이가 어찌 크지 않으리오. 그 도리를 알면, 오히려 여자를 많이 거느리지 못하는 것이 힘들다.

 

이처럼 여자를 도구로 보는 것은 남성중심의 학설이다. 이는 방중술의 한 면일 뿐이다. 다른 한면으로, 반대되는 학설도 있다. 그것은 바로 여자들이 청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駐顔) 방중술이다:

 

충화자왈(冲和子曰): 비도양가양야(非徒陽可養也), 음역의연(陰亦宜然). 서왕모시양음득도지자야(西王母是養陰得道之者也), 일여남교이남립손병(一與男交而男立損病), 여안색광택(女顔色光澤), 불착지분(不著脂粉)

 

충화자가 말하기를, 비단 양기만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음기도 기를 수 있다. 서왕묘는 음기를 기르는 도를 얻은 사람이다. 그녀가 일단 남자와 교접하면 남자는 즉시 몸이 상하고 병이 들지만, 여자는 안색이 광택이 나서, 지분을 바를 필요가 없다.

 

이 방면의 신선전설은 아주 많다. 비교적 초기의 전형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여환(女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진시(陳市)에서 술을 파는 여자였다. 그녀는 술을 아주 맛있게 빚었다. 한번은 신선이 그녀의 집을 지나다가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신선은 돈이 없어서 소서(素書) 5권을 술값 대신 맡겼다. 여환은 그 책을 펼쳐보니 교접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환은 몰래 그 책의 주요내용을 사본으로 남긴다. 그리고 방을 만들어 나이어린 남자를 불러들여, 맛있는 술을 먹이고, 같이 자면서 책에 나오는 내용대로 하였다. 그렇게 삽십년이 지났는데, 얼굴색은 스무살때 같았다.

 

그리고 방중가들 주에는 소위 "남녀구선지도(男女俱仙之道)"도 있다. 도홍경(陶弘景)은 이렇게 말한다:

 

선경왈(仙經曰): 남녀구선지도(男女俱仙之道), 심내물동정(深內勿動精), 사제중적색대여계자(思臍中赤色大如鷄子), 내서서출입(乃徐徐出入), 정동변퇴(精動便退), 일단일석가수십위지(一旦一夕可數十爲之), 영인익수(令人益壽). 남녀각식의공존지(男女各息意共存之), 유수맹념(唯須猛念)

 

선경에 이르기를, 남녀가 함께 신선이 되는 도는, 안으로 깊이 넣어서 움직이지 않으며, 배꼽에 달걀크기의 붉은 색이 있다고 생각하며, 서서히 출입한다. 정이 움직이면 나온다. 하루아침 저녁으로 수십번 이렇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다. 남녀가 각각 호흡하면서 뜻을 함께 가지며 반드시 그것만을 맹렬하게 생각해야 한다.

 

 <선경>은 지금 전해지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역대 방중가, 신선가들이 여러번 인용했다. 얼마 지난 후 손사막도 이런 주장을 다시 내놓는다. 여기에서는 교접때 기공을 겸행할 것을 요구한다. 역시 방중술이론의 기본특색중 하나이다.

 

방중가들이 제창한 교접은 오늘날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성교가 아니다. 여기에서 방중가들의 두번째 기본주장이 나온다. 석정(惜精). 남자의 정액은 아주 고귀하고 신기한 물질로 인식되었으며, 사람의 생명 및 건강과 큰 관계가 있다고 여겼다. 이는 분명 생식과정에서 정액의 작용에 대하여 인식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선경왈(仙經曰): 무로이형(無勞爾形), 무요이정(無搖爾精), 귀심적정(歸心寂靜), 가이장생(可以長生). 우왈(又曰): 도이정위보(道以精爲寶), 보지의폐밀(寶持宜閉密), 시인즉생인(施人則生人), 유기즉생기(留己則生己), 결영상미가(結嬰尙未可), 하황공폐기(何況空廢棄)? 기손불경다(棄損不竟多), 쇠로명이의(衰老命已矣).

 

선경에 이르기를 너의 몸을 힘들게 움직이지 말고, 너의 정자를 뿌리지 말며, 마음을 고요하게 가지면 장생불로할 수 있다. 또한 말하기를 방중의 도는 정자를 보배로 하니, 보배는 마땅히 막아두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다른 사람이 살 것이고, 자신에게 남겨두면 자신이 살 것이다. 아이를 만들지도 않으면서 왜 공연히 버릴 것인가. 버려서 잃게 되면 많지 않더라도 늙고 명을 재촉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명나라때 사람이 인용한 것인데, 그때도 아직 <선경>은 유실되지 않았던 것같다. 다만 아마도 다른 책에서 다시 인용했을 것이다. 특히 "우왈(又曰)"이후의 오언구절은 진나라이전의 작품같지 않다. 그러나 '석정'의 관념은 방중가들 사이에서 연원이 길다. 최소한 진,한(秦漢)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문어조오왈(黃帝問於曹熬曰): 민하실이사(民何失而死), 하득이생(何得而생)? 조오답왈(曹熬答曰): ....옥폐견정(玉閉堅精), 필사옥천무경(必使玉泉毋傾), 즉백질불영(則百疾弗嬰), 고능장생(故能長生)

 

황제가 조오에게 묻기를, 사람은 무엇을 잃으면 죽고, 무엇을 얻으면 사는가? 조오가 답하기를....정자를 굳게 닫아놓아야 하며, 반드시 정액을 함부로 뿌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백가지 병을 없애고, 장수할 수 있다.

 

즉, 성교시에 사정하지 말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이 있다고 하였다:

 

필락의이물사(必樂矣而勿瀉), 재장적(才將積), 기장저(氣將褚), 행년백세(行年百歲), 현어왕자(賢於往者)

 

반드시 성교로 아주 즐거울 때에도 정액을 싸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정액과 진기를 축적할 수 있어서, 백세가 넘더라도 몸은 이전보다 좋을 것이다.

 

나중의 방중가들은 이에 대하여 더욱 상세히 기술한다:

 

소녀(素女)가 말하기를 한번 싸지 않으면 기력이 강해지고, 두번 싸지 않으면 귀와 눈이 밝아지고, 세번 싸지 않으면 여러 병이 사라지며, 네번 싸지 않으면 오신이 편안해지며, 다섯번 싸지 않으면 혈맥이 충만해지고, 여섯번 싸지 않으면 허리와 등이 강해지며, 일곱번 싸지 않으면 다리에 더욱 힘이 생기고, 여덟번 싸지 않으면 온몸에 빛이 나며, 아홉번 싸지 않으면 수명이 길어지고, 열번 싸지 않으면 신명(神明)과 통한다.

 

이런 내용은 진한시기의 문헌에서도 이미 비슷한 내용이 나타나지만, 손사막은 더욱 간결하고 유혹적으로 설명한다:

 

여러번 교접하면서도 싸지않는 자는 여러 병을 모두 치유하고, 목숨이 늘어나며 신선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백번 교접하면서도 싸지 않는 자는 장생불로할 수 있다.

 

사정을 하면 몸이 상하고 목숨이 줄어든다고 하면서, 교접때 사정하지 않는 장점을 이렇게까지 설명한다. 만일 그렇다면 성교는 불가피하게 극히 위험한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를 다룰 때는 마치 썩은 고삐로 달리는 말을 제어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마치 깊은 구덩이에 다다랐는데, 아래에 날카로운 칼날이 꽂혀 있어서, 그 안에 빠질까봐 겁내는 것처럼 해야 한다. 만일 정액을 아낄 수 있다면, 목숨도 무궁해진다.

 

이처럼 사정하지 않는 성교로는 남자들이 오르가즘때의 쾌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하여 방중가는 '장기적 이익'으로 수련자를 설득하고자 한다:

 

채녀(采女)가 묻기를, 교접은 사정하는 것이 즐거운데, 사정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즐거움을 느끼겠습니까? 팽조(彭祖)가 답하여 말한다: 무릇 사정을 하게 되면 몸이 피곤하고, 귀는 멍멍하며, 눈은 졸리고, 목은 마르며, 뼈는 힘이 빠진다. 비록 잠깐의 쾌감은 있겠지만, 결국은 정력이 손상되어 기분이 좋지 않게 된다. 만일 사정을 하지 않으면 기력이 남아돌고, 몸은 튼튼하며, 귀도 밝다. 비록 쾌락을 스스로 억제했지만, 부부간의 사랑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항상 성욕이 완전히 만족되지 않은 것과 같을텐데, 그것이 왜 즐겁지 않겠는가?

 

이같은 교접하나 사정하지 않는다는 이론에서 아주 중요한 점이 있다. 즉 소위 "환정보뇌(還精補腦, 정액을 아끼면 뇌로 가서 머리가 좋아진다)"설이다. 이는 원래 본문의 주제와는 관련이 없으니, 필자가 별도로 글을 쓰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방중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남자는 사정하지 않는 성교로 건강과 장수를 도모하고(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방중가들은 절대로 사정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들은 일정기간을 두고 한번씩 사정하는 교접을 하라고 한다), 이는 방중술 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손사막은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무릇 방중술이라는 것은 그 이치가 아주 쉽다. 다만 사람들이 능히 행하지 못할 뿐이다. 그 법은 하룻밤에 열명의 여자와 자면서도 사정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방중술은 마스터한 것이다.

 

비록 손사막은 이렇게 간단하게 얘기했지만, 그건 그저 과장된 말이다. 실제로 방중가들은 건강장수를 추구하려면, 반드시 교접과 동시에 기공으로 보(輔)해야 비로소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도홍경은 이렇게 말한다:

 

다만, 사정을 하더라도 도인법(導引法)으로 그 허(虛)를 보(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혈맥과 뇌수가 날로 손상되어 풍습이 들어, 질병을 앓게 된다. 속인들은 사정후에 보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사정후에는 도인법으로 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은 최소한 진한시기에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났다. 

 

교접때 기공을 함께 행해야 한다. 앞에서 인용한 도홍경의 "남녀구선지도"가 바로 그 예이다. 그리고 아주 신비로운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교접과 동시에) 생각을 단전(丹田)에 담고, 가운데 기가 있어야 한다. 안은 노란색, 밖은 흰색으로 변하여 해와 달이 된다. 단전에서 배회하다가 모두 니원(泥垣)으로 들어간다. 두 반쪽이 합쳐서 하나가 된다. 기를 막고 깊이 들어가며 들락날락하지 않는다. 다만 아래위로 서서히 숨을 쉰다. 정욕이 일어나면 급하게 빼내야 한다. 이건 상사(上士)로 지자(智者)가 아니면 행할 수 없다.

 

이런 주장은 앞의 두 가지 주장과 비교할 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마치 내심의 감각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같은데, 표현에서는 아주 신비막측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방사(房事)를 할 때, 사정하고 싶으나 사정하지 않을 때, 역시 이렇게 호흡하며 숨을 원해(元海)로 돌려보내고, 파뢰춘신(把牢春汛), 불방용비(不放龍飛)하면 아주 도움이 된다. 소위 조화오수(造化吾手), 우주오심(宇宙吾心)이니 묘하기가 말로 할 수 없다.

 

파뢰춘신, 불방용비는 아마도 사정을 억제하라는 말일 것이다.

 

방중가의 이런 몇 가지 주장은 모두 많은 정도로 내단술에 영향을 끼쳤다. 이들 주장의 진위나 옳고 그름에 대하여 한 마디로 잘라서 결론을 내려, 반대자와 찬성자들이 모두 논쟁을 멈추게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같다. 본문의 셋째부분에서 그 점을 다뤄보기로 하자.

 

2. 내단술과 방중술의 역사연원

 

내단의 의미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본문의 임무가 아니다. 여기에서는 단지 내단술과 방중술의 관계에 대하여 초보적으로 검토해보기로 한다. 이는 방중술과 도교(道敎)와의 연원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방중술은 도교와 특수한 관계가 있다. 도교가 창시된 초기에 방중술은 천사도(天師道)의 중요한 수행방법중 하나였다. 그후 구겸지(寇謙之)가 천사도를 개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가 "삼장위법(三張僞法), 조미전세(租米錢稅), 및 남녀합기지술(男女合氣之術)을 없앴다. 대도청허(大道淸虛)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특히 예도(禮度)를 으뜸으로 하여 복식폐련(服食閉煉)을 추가했다."(<위서>)는 글때문에 그가 방중술을 없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의 <운중음송신과지계(雲中音誦新科之誡)>에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방중술은 삶을 추구하는 근본이다. 경계(經契)에 예로부터 백여가지 법이 있는데, 금지하는 대상이 아니다. 만일 부부가 그 법을 좋아하면, 청정지사(淸正之師)에게 물어서 그가 말하는대로 행하면 좋을 것이다. 하나의 법만 전해도 충분하다.

 

이를 보면 여전히 방중술을 배제하지 않았다. 구겸지의 소위 방중술에 "경계에 예로부터 백여가지 법이 있다"는 말도 전혀 황당무계한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조금 전세대 인물인 갈홍도 "방중지술에 그이 백여가지가 있다"고 말했었다. 그후 방중술은 계속 도교에서 아주 중시하는 방술중 하나였다. 앞에서 언급한 세 명이 대방중가 갈홍, 도홍경과 손사막은 모두 도교에서 저명한 인물들이다.

 

송나라에 이르러 약간의 변화가 발생한다. 한가지 유행하는 주장은 방중술이 송나라이후에 쇠락하여 실전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아마도 주로 오늘날 이미 송나라이후의 방중술에 관한 저작이나 관련서적목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방중술은 여전히 유행했다. 한편으로 방중술은 명성이 나빠져셔 회음사술(誨淫邪術, 음탕한 것을 가르치는 사술)로 인식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내단가(內丹家)의 쌍수파(雙修派)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도교에서 내단(內丹)을 연구하는 것은 잔당오대(殘唐五代, 잔당은 당나라말기 황소의 난 이후 천하가 혼란에 빠진 시기를 가리킴)에 이미 흥성했다. 송나라에 들어서면서 남북이종(南北二宗)이 흥기한다. 내단은 도교의 가장 주요한 수련방술이 된다. 다만 내단이 도대체 어떤 방면에서 어느 정도로 방중술이론을 흡수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불명확하다. 이런 상황은 많은 정도로 내단가들이 쓰는 말이 신비로우며 허현(虛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내단(內丹)"인가? 송나라때 오오(吳悞)의 견해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내단이라는 것은 그저 심신교회(心腎交會), 정기반운(精氣搬運)하여 존신폐식(存神閉息), 토고납신(吐故納新)하는 것으로 혹은 방중지술에 치중하고, 혹은 일월정화를 취하고, 혹은 초목을 먹고, 혹은 벽곡휴처(辟穀休妻, 음식도 먹지 않고 처도 버린다)한다. 

 

여기에서는 그저 내단과 방중술이 관계가 있다는 정도를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상황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다만 "방중지술"과 "벽곡휴처"는 쌍수파(雙修派)와 청수파(淸修派)의 서로 다른 특징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항상 도교의 북종(北宗)은 금욕적이고, 남종(南宗)은 금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실 이건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다. 단순히 '금욕'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금욕과 '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전진교(全眞敎)는 처를 취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체의 성행위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더더구나 내단중에 반드시 쌍수를 배척하는 것도 아니다. 

 

내단가들이 가장 중시하는 경전은 동한(東漢) 위백양(魏伯陽)의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와 북송(北宋) 장백단(張伯端)의 <오진편(悟眞篇)>이다. 진치허(陳致虛)의 말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무지한 자들이 함부로 단서(丹書)를 만드는데, 성현의 이름을 빌리지만, 절대로 믿을 수 없다. 마땅히 <참동계>, <오진편>을 위주로 해야 한다.

 

<참동계>는 내단, 외단을 모두 다루고 있다. 후세의 내단가들의 많은 기본적인 사항은 이미 이 책이 나타난다. <오진편>은 전문적으로 내단을 기술하고, 세상에 나온 후에 영향력이 아주 커서 주석을 단 사람도 아주 많다.

 

<참동계>도 비록 다른 많은 단경(丹經)들처럼, 문자가 은회섬삭(隱晦閃爍)하다. 다만 주가(注家, 주석을 단 사람)의 말과 결합해서 보면(주가의 언사도 거의 하나의 예외없이 모두 '유포비파반차면(猶抱琵琶半遮面, 마치 비파를 안고 얼굴을 반쯤 가린 것같음)'이다), 그래도 그중의 쌍수개념과 방중술을 채용했음을 알아볼 수 있다. 각가의 주석중에서 이 문제에 가장 많이 관련되는 것은 <자양진인오진편삼주(紫陽眞人悟眞篇三注)>이다. 소위 "삼주(三注)"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진치허(陳致虛, 上陽子), 설도광(薛道光, 어떤 사람은 실제로 翁葆光이라고 한다), 육서(陸墅, 子野) 세 사람의 주석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ㅓㄳ이다. 다만 어떤 학자는 진치허 혼자 쓴 것이라고 한다. 다만 설도광, 육서의 이름을 빌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진치허는 원나라때 태어났고, 그의 스승은 남종,북종의 학문을 모두 계승한 전진도사(全眞道士) 조우흠(趙友欽)이다. 진치허 본인의 내단저작에도 남북이종의 특색이 융합되어 있다. 아래에는 <오진편> 원문과 진주(陳注, 진치허주석)를 결합하여 개략 고찰해보기로 한다. 사이사이에 다른 관련자료로 논의하기도 한다.

 

<오진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물회시정성합(二物會時情性合), 오행전처호룡반(五行全處虎龍蟠), 본인무기위매빙(本因戊己爲媒聘), 수사부처진합환(遂使夫妻鎭合歡)"

 

진주를 보자:

 

금단(金丹)에 부처(夫妻)를 얘기하다니 묘하구나. 또한 내외도 있고, 또 여러 설도 있다.....모두 남녀의 모습이다. 그리고 고통으로 즐거움을 삼고, 사랑이나 미련을 남기지 않으며, 할채(割採)를 우선으로 한다. 교구(交媾, 성교라는 의미임)는 오직 반시진만 하면 서미지주(黍米之珠)를 얻는다. 이는 불위만물불위인(不爲萬物不爲人)으로 역수(逆修)하여 신선 부처가 되는 자이니, 이것이 금단의 부처(夫妻)이다. 

 

 이 글에서 '부처' 교구'등의 단어를 썼지만, 이것만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반드시 남녀쌍수(男女雙修)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부족하다. 위와 비슷한 표현이 내단가의 저작에서는 자주 보인다. 어떤 내단가는 이건 그저 차용한 표현방식이라고 말한다. 굴원이 '향초미인(香草美人)'으로 군신의 이합을 비유했듯이. 진짜로 남녀교구의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각(馬珏)은 이렇게 말한다:

 

비록 가사(歌詞)에 매번 용호(龍虎), 영차(嬰姹)를 읊지만, 모두 비유하는 말이다. 도의 오묘함을 말하는 것이고 기를 기르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청수파에 더욱 부합하는 견해일 것이다.

 

<오진편>에는 이런 말도 있다:

 

"양리음정질불강(陽裏陰精質不剛), 독수차물전리왕(獨修此物轉羸尫), 노형안인개비도(勞形按引皆非道), 복기찬하총시광(服氣餐霞總是狂)"

 

삼주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양리음정은 이미 진정(眞精)이다. 정(精)은 기(氣) 를 낳고, 기는 신(神)을 낳으며, 영위일신(榮衛一身)하니 이보다 클 수 없다. 기름이 마르면 등이 꺼지고, 골수가 고갈되면 사람이 죽는다. 이 말은 정기(精氣)가 실로 일신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정액을 중시하는 관념은 분명히 방중가에게서 계승된 것이다. 왜 정액을 '양리음정'이라고 불렀는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가에는 이런 관념이 있다. 여성의 온몸은 음에 속한다. 오직 생식기만이 순양(純陽)이다. 남성은 반대이다. 온몸이 양에 속하나 생식기만이 음(陰)에 속한다. 그래서 정액을 "양리음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초기 방중술저작에서는 모두 "음도(陰道)"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한서.예문지>에 수록된 방중팔가(房中八家) 그리고 마왕퇴(馬王堆) 한묘에서 출토된 간서(簡書)에 자주 보이는 "접음지도(接陰之道)"등이 있는데, 이들 저작은 대부분이 남성을 중심으로 썼기 때문에 "음"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양리음정"이라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삼주>의 아래 글을 더욱 이해하기 쉬워진다.

 

만일 이를 홀로 수련하면, 왕리(尫羸, 절름발이나 여윈사람)로 될 것이다. 도인법으로 피로한 몸을 다스리는 것은 모두 정도가 아니다. 찬하연기(햇살을 받고 기를 단련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방법이다. 만일 일월의 정화를 삼킨다면 빛이 오내(五內)에 생기고, 쌍관(雙關)을 통하며, 협척(夾脊)을 흔들고, 뇌를 보하며 정(精)이 돌아온다. 그리하여 시신이 다시 태아로 되고 출신입정(出神入定)하는데 천가지 만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유독 양리음정만 홀로 수련하게 되면, 음만 남고 양이 없으니(孤陰無陽), 수탉이 알을 낳아서 병아리를 안고 싶어하는 것처러 어렵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명확히 표시한다. 단순히 '고음(孤陰)'만 수련해서는 즉 정액을 아끼고 단련시키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정보뇌'의 류의 법술도 부정한다. 이것이 바로 쌍수개념으로 한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오진편>에는 다음과 같은 글도 있다:

 

"불식양정급주빈(不識陽精及主賓), 지타나개시소친(知他哪個是疏親)? 방중공폐미려혈(房中空閉尾閭穴), 오살염부다소인(誤殺閻浮多少人)"

 

이에 대하여 <삼주>는 이렇게 말한다:

 

사대일신(四大一身)이 다 음(陰)에 속하는데, 무엇이 양정(陽精)이라는 것인지 모륵ㅆ다. 아마도 진일지정(眞一之精) 즉 지양지기(至陽之氣)를 양단(陽丹)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외부에서 와서 자신의 음홍(陰汞)을 만드니 주(主)라고 한다. 두 물질이 서로 그리워하여 모여서 금사(金沙)가 되면 자연히 떠나지 않고 환단(還丹)을 이루게 된다. 잘 모르는 자들은 이 이치를 모르고, 방중술을 행한다. 강제로 미려를 막고, 말로는 음을 단련한다고 하며 이를 통해 목숨을 연장하려 하지만 그것은 실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셈이다.

 

이제 쌍수의 개념이 명확해졌다. 소위 지양지기는 외부에서 온다고 운운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남녀의 양중지음, 음중지양의 관념과 연결해보면 쉽게 이성간의 성행위를 이미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치허는 극력 '방중술'과는 선을 그으려 하고 있다.

 

양정(陽精)은 비록 방중에서 얻지만, 어녀지술(御女之術)은 아니다. 만일 그 술법을 행한다면 그것은 사도(邪道)이다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세상에 눈먼 스승이 채음삼봉어녀(採陰三峰御女)의 괴술을 전수하고 있는데, 맹인이 맹인을 안내하는 꼴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삼봉어녀(三峰御女)지술이라는 것은 입(口), 젖(乳), 음(陰)(상봉, 중봉, 하봉이라고 한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반은 전설이고 반은 진실인 도교인물 장삼풍(張三豊, 張三峰이라고도 함)과 연결시켰다. <삼봉단결(三峰丹訣)>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이 술법을 아주 상세하게 적어놓았다. "삼풍(三豊)"과 "삼봉(三峰)"의 발음이 같다는 것을 가지고 문자유희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신비감을 증강시켰다. 이 술법은 외설적이어서, 전통적인 방중술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그리고 윤리도덕문제도 있어서, 정통을 자처하는 내단가 예를 들어 진치허같은 사람들이 크게 비난한 것이다. 그러나실제로 내단술과 완전히 관계가 없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오진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차녀유행자유방(姹女遊行自有方), 전행수단후수장(前行須短後須長), 귀래각입황파사(歸來却入黃婆舍), 가개금옹작노랑(嫁個金翁作老郞)."

 

진주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차녀는 자신의 정(精)이다. 길을 가는데 방법이 있다는 말은 정이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그 일양초동(一陽初動)의 때, 선천진연(先天眞鉛)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 나의 일신의 정기는 움직이지 않고, 그저 내신(內腎)의 아래에 가까운 에 약간의 진연(眞鉛)을 움직여 맞이하면, 이를 가리켜 전행단(前行短)이라 한다. 

 

 여기의 '일양초동', '선천진연장지' 및 위에서 언급한 '진일지정 곧 지양지기'운운은 모두 전형적인 '삼봉지술'의 개념이다. 그리고 마치 더 이상 '비유하는말'이라는 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인 듯하다.

 

<오진편>에는 또한 아래와 같은 글도 있다:

 

백호수경지보(白虎首經至寶), 화지신수진금(華池神水眞金), 고지상선리원심(故知上善利源深), 불비심상약품(不比尋常藥品)등등의 말

 

삼주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수(首)라는 것은 처음(初)이다. 수경(首經)이라는 것은 백호초현지기(白虎初弦之氣)이지 채전규단지술(採戰閨丹之術)이 아니다. 만일 삼봉 이십사품 채음지법(採陰之法)이라고 한다면, 대도(大道)를 비방훼손하는 것이니, 구대조상이 영원히 지하의 귀신에 되고 그 자신은 현세에 악보를 받을 것이다. 

 

소위 '백호초현지기'라는 것은 소녀의 첫 월경을 가리킨다. 소위 '규단'이라는 것은 이런 물질로 만든 것이다. 즉 소위 '선천홍연(先天紅鉛)'이다. 무릇 이런 것들은 모두 '삼봉지술'의 전형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진치허등은 극력 <오진편>은 그것과 무관하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삼주>에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이팔이면 진정(眞精)이 통하고, 여자는 이칠이면 천계(天癸)가 내려온다. 그것이 처음 내려올 때가 수경(首經)인가? 수경이 아닌가? 아하! 노봉협사수정검(路逢俠士須呈劍), 금우지음시가탄(琴遇知音始可彈). 길에서 협객을 만나면 검을 바쳐야 하고, 금이 지음을 만나면 비로소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삼봉지술'과의 관계를 가릴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진치허등의 말은 최소한 그들 마음 속의 내단쌍수지술과 '삼봉지술'간의 약간의 차이를 무한히 확대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마도 사회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견해가 있다. <오진편>계통의 내단은 확실히 쌍수지술이라는 것이다. 다만 쌍수의 파트너는 이성이 아니라 동성이라는 것이다. 즉, 이는 두 남성간의 성행위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오늘날 일부 내단이론자의 글에는 이미 강렬하게 이 점을 암시한다. 한 수행자는 필자에게 그런 견해를 확인해 주었다.

 

문헌만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내단가들은 소위 "건정(乾鼎)"이라는 설이 있다. 정(鼎)은 인체를 가리키고, '건'은 양(陽)으로 '곤'과 대응되는 말이다. 즉, '건정'은 남자파트너이다. 그리고 진치허등이 반복하여 그들이 말하는 것은 '삼봉어녀'지술과 무관하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것에 대하여 그들이 말하는 것은 '파트너'가 여성이 아니라는 뜻으로 본다. 그외에 도사간의 동성애는 명나라때 널리 화제가 되었었다. 이것도 아마 측면으로 당시 도사들이 내단을 수련하면서 동성애를 했던 일을 방증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은 단지 <오진편> 및 진주를 예로 삼은 것이다. 이를 통해 내단쌍수의 일부를 들여다본 것이다. 내단술은 아직 정미은오(精微隱奧)한 곳이 많다. 수련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전적(典籍)만으로는 다 알 수가 없다. 다만 내단쌍수지술과 방중술의 역사연원은 이미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라 단서가 보였다. 내단은 원래 기공이다. 쌍수는 또한 성행위와 관련된다. 이런 성행위는 당연히 사정해서 욕정을 마음껏 배설하는 통상적인 방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방중가는 교접을 통하여 건강장수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고, 석정해야 한다고 하고, 교접시 기공을 운행해야 한다는 세가지를 주장했다. 이들은 내단쌍수파가 모두 특유한 방식으로 흡수한다.

 

당연히 내단가들의 말에 따르면, 쌍수중에도 상승지법(上乘之法)이 있다고 한다. "신교이체불교(神交而體不交, 정신적으로 성교하고 육체적으로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성쾌감은 있다고 한다. 심지어 청수로도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 몸의 구멍과 털 사이에서 돌연 쾌감이 일어난다고 스스로 느낀다. 마치 음욕교감할 때의 쾌감과 같다(自覺身孔毛間, 躍然如快, 又如淫慾交感之美)" 이런 류들은 현허(玄虛)한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3. 현재 이론상의 문제

 

앞의 두 부분에서 논의한 것은 순수하게 과학사의 각도에서 말한 것이다. 다만 오늘날 이 문제는 이미 강한 현실적인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 여러 조짐을 보면, '기공붐'을 타고, 기공이 성과 관련한 금구에 날로 다가가고 있다. 이는 최근에 출판된 기공서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중 하나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강신고정(强腎固精)은 각문각파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공법과 중의(中醫)가 추구하는 일종의 이상적인 효과이다. 그 뜻은 바로 정자생산능력을 강화하는 것이고, 다시 정자를 가득차게 하면서 넘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남은 정자를 몸이 흡수하도록 함으로써, 환정보뇌(還精補腦)와 장체강신(壯體强身)의 작용을 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미 '환정보뇌'를 언급하고 있다. 이 일은 남녀성교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아직 직접 쌍수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래의 사례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이 공법의 핵심은 "합(合)"에 있다. 그 뜻은 쌍수(雙修)이다. 바로 "밀중지비(密中之秘)"이다.

 

어떤 사람은 '인부공법(人部功法)'이 '방중술'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 만일 이것이 선량한 사람의 무지가 아니라면, 악한 사람의 모함이라고 본다.

 

내단지술은 만일 청수(淸修)를 행한다면 개인에 관련된다. 대체로 윤리도덕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쌍수(雙修)를 행한다면, 상황은 비교적 복잡하다. 다만 어떤 사람이 우려하는 것처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토론할 것은 과학성문제이다. 이 문제는 광범위한 의미가 있다. 단지 내단지술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내단을 연구한다. 일부 학자는 아직가지 내단에 대하여 확실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첫째는 정말 심도있게 실천하고 경험한 사람이 너무 적고, 둘째는 기기로 측정하는데 기술적인 곤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는 확실히 사실이다. 다만 내단을 평가하는데 가장 큰 곤란은 거기에 있지 않다.

 

현대과학은 물질세계의 객관성가정위에 건립되었다. 이 가정은 이러하다: 물질세계는 인류의 의지와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사람의 주관의지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물질세계는 객관규칙을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질세계의 객관성가정의 중요한 추론은 바로, "진실한 과학실험은 반복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론의 정확성여부를 검증하는 유력한 판단근거가 된다.

 

다만 객관성가정을 기공이론에 적용하려면 문제가 생긴다. 인류자신의 육체를 대상으로 할 때,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의지와 독립된 객체로 인식할 수 있을까? 정통적인 유물주의관점으로 보면, 사람의 의지는 그저 육체내의 일부 물리, 화학활동일 뿐이다. 그러나 기공은 체조와 다르다. 여기에서는 의지가 극히 중요하다. 

 

이처럼 의지로 육체상태를 변경시키려는 노력은 한가지 아주 중요한 원칙이 있다. "성즉령(誠則靈)" 즉, 자신의 의지가 작용할 것이라고 굳게 믿어야만, 의지가 비로소 정말 작용하는 것이다. 기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굳게 믿는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의지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저 의지의 육체에 대한 작용을 인정하는 것만이라면, 완전히 "성즉령"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실험의 반복성을 보증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한명이 반신반의하면서 혹은 마음 속으로 기공을 부정하면서, 그가 기공을 수련한다고 하면, 아마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때 그가 기공을 강호사기술이라고 비난하더라도 기공수련으로 효과를 본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힘들 것이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 상대방도 그를 설득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성즉령"과 현대과학의 원칙은 전혀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곤경이 여기에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