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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세계의 대혼전,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베트남편)

by 중은우시 2023. 2. 24.

글: 주한경(周漢卿)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와 유럽이 동귀어진(同歸於盡)하고, 국제형세에 변화가 발생할 것이 이미 분명해졌다.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는 기실 집지키는 개와 집주인의 관계이다. 집주인은 항상 개를 멸시한다. 유럽인은 항상 러시아인을 멸시했다. 그러나 만일 러시아라는 집지키는 개가 없다면, 유럽인들이 세계의 주인행세를 계속할 수 있을까?

 

아시아인은 러시아를 무서워한다. 그러나 룩셈부르크, 벨기에, 리투아니아, 라트비아같은 나라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없다면, 유럽은 세계패주의 지위를 철저히 잃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유럽인들을 잘 모르고 있다. 유럽인들은 단지 러시아의 위협만 보고, 전체 세계형세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과 러시아가 동귀어진하면 누가 승자로 떠오를 것인가? 이건 여러 편으로 나누어서 얘기하고 싶은데, 여기에서는 베트남을 살펴보기로 한다.

 

베트남은 1950년대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체제를 본떠 3개의 민족자치구를 두었다: 서북(西北)자치구, 태묘(泰苗)자치구, 월북(越北)자치구. 그리고 약간의 민족자치현(民族自治縣)도 두었다. 그리고 베트남인들은 경족(京族)이 되고, 통일된 베트남의 민족은 수십개의 민족으로 분류된다. 그중 중국인은 베트남공산당에 의해 용족(龍族)과 화족(華族) 및 기타로 분류된다.

 

1950년대, 북베트남은 실질적으로 공산당 통치하의 각 민족연방으로 바뀐다. 그러나 남베트남은 민족주의의 통일민족국가로 바뀐다. 남베트남의 모든 사람은 태국인, 묘족, 중국인을 포함해서 모두 베트남인(공산당은 경족이라 칭함)의 일부분이 된다.

 

북베트남은 비록 소련, 코민테른(공산국제),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지를 받았지만, 시종 남베트남을 이기지 못했다. 1970년대, 미국은 남베트남에서 철군하고, 남베트남은 고군분전하는 상황하에서 보트피플로 전락하고, 베트남공산당이 남베트남을 통일한다.

 

베트남공산당은 비록 남베트남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남베트남의 지식인들을 없애지는 않았고, 남베트남의 지식인들을 공산당에 흡수시켰다.

 

베트남통일로, 베트남공산당의 조직구조도 변화를 겪게 된다. 베트남공산당의 민족주의자들은 남방인들과 정치적동맹을 결성하여, 코민테른베트남지부를 베트남인의 공산당으로 바꾸어버린다. 증거는 바로 1975년 베트남의 헌법수정이다. 여기에서 3개의 민족자치구와 모든 민족자치현을 없애버린다.

 

3개의 민족자치구를 없앤 것은 베트남공산당의 핵심구성원이 기실 민족주의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첫째, 프랑스식민통치를 벗어나기 위함이고, 둘째, 소련과 코민테른의 원조를 받기 위함이었다.

 

베트남공산당은 헌법을 수정하여 3개의 민족자치구를 폐지할 수 있다면, 그들은 당연히 국가체제개혁도 실행할 수 있었다. 1990년대이후 베트남공산당은 점차 사회민주당화되고, 베트남공산당의 총서기, 총리, 국회의 삼권분립을 이룬다. 이와 동시에, 베트남도 경제체제개혁을 진행한다. 오늘날의 베트남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정치는 안정되며, 국제형세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오늘날의 베트남공산당은 1930년대 프랑스인민전선과 아주 유사하다. 심지어 프랑스인민전선보다 더욱 강대하다. 프랑스인민전선은 사회당, 좌익당, 공산당으로 구성되었으며, 다당연합정권이었다. 프랑스인민전선은 비록 다당연합이지만, 프랑스공산당이 주도했고, 프랑스공산당의 반제국주의 반봉건노선은 전체 프랑스인들을 산산히 흩어진 모래알로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히틀러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그러나, 베트남공산당은 겉으로는 공산당이지만, 민족주의자가 주도하는 당과 국가이다. 베트남은 방화벽도 필요하지 않고, 인민을 방비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의 베트남은 수천년이래로 가장 강력한 베트남정권이 된다.

 

베트남은 사회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각종 원조를 편취하면서, 또한 삼권분립형식의 민주체제로 서방인들의 동정을 산다. 그리고 지연정치를 이용하여 미국의 선진무기를 공급받는다.

 

세계산업체인의 이전과 국제질서의 변화로 베트남의 경제발전은 더욱 빨라진다. 베트남은 노동력이 충분하고, 출생률이 높다. 그리고 호적체제개혁을 실행하여, 미래에 대량의 국제주문(중국기업포함)을 베트남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의 외환보유고는 갈수록 많아지고, 국방군사도 갈수록 현대화된다. 오늘날의 베트남은 국내, 국제정세가 2001년의 중화인민공화국보다 훨씬 좋다.

 

베트남은 가족계획(계획생육)이 없고, 호적제한도 없다. 인민은 아이를 낳기를 원하고, 경제사회구조는 지속발전이 가능하다. 국제적으로 베트남은 외환만 가지고 있다면 서방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 서방은 베트남을 원조하는데 걱정하지 않는데, 그래서 군사기술제공을 금지하지 않고 있다.

 

민족적으로 베트남은 레닌주의의 민족정책을 포기했고, 그들이 실행하는 것은 옛날 남베트남의 민족정책이다. 즉, 베트남민족(경족)만 있고, 베트남의 각민족은 없다. 베트남의 수십개 소수민족은 이미 합법신분을 잃었고, 베트남인으로 동화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선택이다. 미래의 베트남은 강대하고 통일된 민족국가가 될 것이다.

 

중국축구가 베트남축구에 패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중국, 미래의 베트남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베트남은 프랑스에게 백여년간 그저 지배를 당한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의 베트남은 점차 민족주의의 베트남으로 바뀌고 있다. 그 자체는 베트남이 프랑스통치하에서 문화정도가 제고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증거는 아래와 같다:

 

베트남의 공산당은 사회주의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웬의 사회주의, 페이비언사회주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레닌의 사회주의, 히틀러의 민족사회주의, 무솔리니의 사회주의, 북유럽의 민주사회주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유가의 대동사회주의(大同社會主義).

 

사회주의를 하는데 반드시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를 실행할 필요는 없다. 베트남은 민주사회주의와 유가사회주의를 실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베트남이 1975년 헌법수정으로 3개의 민족자치구가 폐지되고, 성으로 바뀌었다는 중대한 사건을 얼마나 많은 중국의 지식인, 국사들이 알고 있을까?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중국인(대륙, 홍콩, 마카오, 대만 포함)과 해외중국인들은 문인(文人)이 많고, 국사(國師)는 적다는 것이다. 해외 중국인의 미래를 필자는 좋게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