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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중국고대의 "주(州)"와 "부(府)"의 구별

by 중은우시 2023. 1. 30.

글: 역사유비유희(歷史有悲有喜)

 

중국고대의 "주"와 "부"의 관계는 복잡다단하다. 매 시기마다 매 시기의 특색이 있어 반드시 각 시기의 역사에서 이를 구분해야 한다.

 

"주(州)"의 개념은 일찌감치 나타났다. 고대 중국을 습관적으로 "구주(九州)"라고 불렀는데, '우공구주(禹貢九州)'의 설이 있다. 그러나 이 떄는 아직 구체적인 칭호는 아니었다. "주"의 설치는 한무제시기에 시작되고, 한무제는 자사(刺史)제도를 도입하며, 천하를 13주로 나눈다. 그리고 주마다 자사 1명을 파견하여 지방을 감찰하도록 했다. 이떄의 "주"는 단지 중앙이 임시로 구분한 감찰구역이었고, 지방행정구획은 아니었다. 동한말기, 황건적의 난 이후, 군웅이 할거하고, 군벌이 혼전을 벌였다. 주는 점차 실질적인 지방행정구역으로 변해간다. 현재의 성(省)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주의 장관은 자사(혹은 州牧)이고 그 아래에는 군(郡)을 두고, 다시 그 아래에는 여러 현(縣)을 두었다. 이렇게 하여 주(州) - 군(郡) - 현(縣)의 3급 지방행정구획이 형성된다. 이런 상황은 위진남북조시대까지 계속된다.

동한의 강역도

 수(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 혼란한 군현에 대하여 통합작업을 실시한다. 수문제때, 군(郡)을 폐지하고, 주현(州縣)의 2급제를 채택한다. 이렇게 하여 주가 현을 직접 관할했다. 수양제가 즉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를 군으로 고치고, '군현2급제'를 실행한다. 당나라초기에도 수나라의 주현이급제를 그대로 연용하고 기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나중에 나중에 수나라의 행정구획의 통합으로 일부 주는 관할지역이 너무 컸다. 당나라때는 주의 위에 감독부문인 도(道)를 추가로 설치한다. 이는 한무제시기에 설치한 주자사부(州刺史部)와 유사했다. 그리고 도의 아래에 중요한 곳에는 다시 부(府)를 설치한다. 당나라 개원원년(713년), 옹주(雍州, 수도 장안이 소재한 지역)를 경조부(京兆府)로 개칭한다. 이는 '부'가 행정구획이 되는 시작이었다. 이렇게 하여, 부와 주는 동급의 행정구획이 된다. 그러나, 부는 중요한 지방에 설치되었다. 예를 들어, 장안(長安), 낙양(洛陽), 성도(成都)등 중요도시에 설치되었고, 이들 도시는 현재의 수도, 성회(省會, 성정부소재지)에 상당했고, 지위가 중요했다. 그리고 어떤 변방의 중요도시에도 설치했다. 예를 들면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같은 것이다. 국경을 지키며 국방을 공고히 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부의 실제적인 직급이나 관리배치는 주보다 약간 격이 높았다.

 

송나라때, 당나라의 '도'를 '로(路)'로 개칭한다. 그리고 '로'의 직권을 넷으로 나눈다: 안무사(安撫使)는 군사를 책임지고, 전운사(轉運使)는 재정을 책임지며, 안찰사(按察使)는 사법을 책임지고, 상평사(常平使)는 민정을 책임졌다. 네 관리의 직급은 나란했고, 상호간에 예속관계는 없었다. 주와 부는 여전히 당나라의 행정구획에 따라 구분되었다. 이렇게 하여, 송나라의 지방행정구획은 "로"(장관은 안무사, 전운사, 안찰서, 상평사) - 주(州), 부(府) - 현(縣)의 3급이었다. 부의 행정급별은 주와 동급이었다. 다만 부의 실제지위가 약간 높았고, 대다수는 조정이 중시하는 전략요충지에 부를 설치했다. 예를 들어 개봉부(開封府), 대명부(大名府)등.

 

원나라의 행정구획은 아주 혼란스러웠고, 행성(行省)제도를 설치한다. 행성은 원래 중서성(中書省)의 파출기구이다. 나중에는 성급 구획이 된다. 현재의 성과 비교하면 별 차이가 없다. 성의 아래에는 로, 부, 주, 현을 두었고, 로는 성이 관할했다. 부와 주중 어떤 곳은 로가 관할하고 어떤 곳은 성이 관할했다. 그리고 어떤 주는 부의 관할을 받았다. 부와 주의 행정구획도 아주 혼란스러웠다. 일부 작은 주와 부는 동급행정구획이지만, 대부분의 주는 부 아래의 행정구획이 되어버린다.

 

명나라는 행성을 폐지하고, 삼사(三司)를 설치하고, 승선포정사사(承宣布政使司),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와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를 두어, 성의 행정, 사법, 군사를 관장했다. 민간에서는 습관적으로 성(省)이라 불렀다. 명나라의 지방행정급별은 1급이 성(省)으로 장관은 포정사이고, 성 아래의 행정구획은 일반적으로 부(府)이고 부의 아래에 주(州)를 두며, 주는 직예주(直隸州)와 산주(散州)로 구분되었다. 일반적인 경우에 주는 부에 예속되어 관할을 받는다. 그러나 어떤 주는 성의 직할이다. 이것이 바로 직예주이다. 직예주는 직접 성에 예속된 것을 말하고, 부의 관할을 받지 않는다. 자연히 주는 부와 예속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주는 부의 관할을 받는다. 직예주의 아래에는 여러 현을 두지만, 산주의 경우에는 어떤 곳은 아래에 현을 거느리지만 어떤 곳은 현을 거느리지 못한다. 이렇게 하여 명나라의 지방행정구획은 성(포정사) - 부 - 현 혹은 성(포정사) - 부 - 산주 - 현 혹은 성(포정사) - 직예주 - 현의 3종류의 지방행정구획이 생기게 된다.

명나라 만력10년 하남포정사 분부도

 청나라는 기본적으로 명나라의 행정제도를 그대로 사용했다. 다만 약간 수정이 있었다. 산주는 더 이상 현을 거드리지 않는다. 행정구조는 다음과 같았다. 성 - 부 혹은 직예주, 직예청. 부 이하는 이렇게 배치되었다. 부 - 산주, 산청, 현.

 

청나라때 안휘성(安徽省)의 아래에는 여주부(廬州府), 봉양부(鳳陽府), 안경부(安慶府), 휘주부(徽州府), 태평부(太平府), 영국부(寧國府), 지주부(池州府), 영주부(潁州府), 육안주(六安州), 광덕주(光德州), 사주(泗州), 저주(滁州), 화주(和州).

 

역대행정구획을 통하여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주'는 처음에 성급의 행정단위로 역사에 출현한다. 그 시작은 동한말기이다. 당나라에 이르러 주의 지위를 하락하여 지구급의 행정단위가 되고 동시에 동급의 부가 출현한다. 당나라에서 부를 건립한 원래 의도는 경기중요지역 및 정치, 경제, 군사의 중요지구에 부를 설치하고, 비교적 덜 중요한 곳에는 주를 설치했으며, 부의 관리배치는 주보다 약간 높았다. 명청시기에 이르러, 부의 설치는 지구급 행정의 주류가 되었고, 일부 편벽된 곳의 직예주, 직예청은 부와 동급이었다. 일부 산주, 산청은 부의 관할하에 들어온다. 즉, 주와 부는 현재의 '시'에 상당했지만, 지위가 서로 같지 않은 '시'일 뿐이다. 현재의 시에도 직할시, 부성급시(계획단열시), 성회도시, 지급시, 현급시의 구분이 있다. 그래서 부와 주를 구분하는 것은 왕조때마다 달랐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