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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곤륜산(崑崙山): 신화와 현실

by 중은우시 2021. 10. 27.

글: 진련산(陳連山) 북경대학 중문학과 교수

 

현실의 곤륜산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한 줄기의 웅대한 산맥이다. 서쪽으로는 신장의 파미르고원에서 출발하여 동으로 티벳을 거쳐 칭하이(靑海)로 들어가며, 총길이는 2,500킬로미터에 달한다. 당대의 지리학자들은 곤륜산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서곤륜산, 중곤륜산과 동곤륜산으로 구분한다. 동곤륜산은 황하의 발원지(源頭)인 바얀카라산(巴顔喀拉山)을 포함한다. 다만, 곤륜산맥은 현대지리학개념이고, 그 명명은 현대과학자들이 고대신화의 곤륜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고대인들의 마음 속의 곤륜산은 어디에 있었고, 그것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 곤륜산 명칭의 유래

 

"곤륜"은 <상서.우공>에 나오는 서방소국의 이름이다. "곤륜"이라고 명명된 산은 <산해경>에 가장 먼저 나온다. 그리고 이 명명은 황하와 관련이 있다.

 

원고시대, 화하민족은 황하의 중하류에서 살았고, 황하는 그들이 아는 가장 큰 강이었다. 그리하여 고대인들은 황하를 숭배한다. 전국시대의 <목천자전(穆天子傳)>에는 서주시대 주목왕(周穆王)이 하종(河宗) 백천(柏天)을 보내 옥벽(玉璧)을 황하에 가라앉히며 황하에 제사지내는 장면이 나온다. 황하에 제사지낸 후, 주목왕은 서쪽으로 황하를 건너 최종적으로 서방에서 서왕모를 만난다. 그리고 곤륜산에 올라 산 위의 황제궁전(黃帝宮殿)을 조배(朝拜)한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개략 서주시대에 만들어진 중국최초의 지리지 <산해경>(산해경이 쓰여진 시기에 대하여는 논쟁이 아주 많으나 필자는 서주중후기로 본다)에서 황하는 곤륜산에서 기원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황하는 중국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강이다. 그렇다면, 곤륜산은 마땅히 중국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산이 되어야 한다. 주목왕은 천자로서 반드시 황하와 곤륜산을 조배해야 했던 것이다.

 

다만, 연대가 오래되고, 사료가 유실되다보니, 현재 우리는 서주시대 다른 사료에서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황하의 발원지를 탐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더더구나 황하의 진정한 발원지를 찾아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고 <산해경>에 기재된 곤륜산은 신화적인 색채가 충만하다. 현실에서의 진정한 황하가 발원하는 산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산해경>에 나오는 곤륜산은 아마도 고대인들의 추측과 상상속의 산일 것이라 본다.

 

현존하는 최초의 황하발원지에 대한 탐사자료는 사마천의 <사기.대완열전>이다. 한무제는 장건을 서역에 사신으로 파견한다. 장건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황하의 발원지는 우전(于窴, 지금의 和田)의 남산입니다. 그 산에는 옥석이 많이 생산됩니다. 그리하여, 한무제는 남산을 곤륜산이라 명명한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로 신화에서 상상한 곤륜산을 현실의 산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마천 자신도 믿지 않았다. 더욱 불행한 점은 장건이 확정한 황하의 발원지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전은 해발고도가 낮아 어떤 하류도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인 황하상류로 흘러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산해경>과 한무제의 황하의 발원지를 곤륜산으로 명명하는 원칙은 계속 된다. 그래서 화전의 남산은 아니게 되고, 후세의 학자들은 범위를 확대하여, 황하의 발원을 이루는 산맥을 곤륜산이라 명명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2천5백킬로미터에 이르는 현실의 곤륜산맥이 명명된 유래이다.

 

2. 신화 속의 곤륜산

 

현실의 곤륜산맥은 그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아무런 신성함도 갖추지 않고 있다. 중국문화발전사상에도 의의가 없다. 다만, 신화 속의 곤륜산은 고대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서 신산(神山)이었다. 천제의 인간세상의 도성이었다. 여기에서 발원한 황하는 결국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신화 속의 곤륜산과 황하는 공동으로 고대 화하인들의 생명에 신성성을 부여했다. 이건 어찌된 일인가?

 

곤륜은 고서에서 곤륜(崐崘), 곤륜(昆侖)으로 쓰기도 했다. 어떤 때는 곤륜지구(丘), 곤륜지허(墟)라고 쓰기도 했다. 편의를 위해 본문에서는 곤륜이라고 통일한다.

 

<산해경>에서는 곤륜산이 중국의 서북부에 있으며, 방원팔백리, 높이 일만인(仞)에 이른다고 했다(<우본기>에는 높이가 이천오백여리라고 한다). 이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이다. 최고신인 황제, 서왕모, 신풍륭(神豊隆) 그리고 기타 신령이 모두 산꼭대기의 궁전에 거주한다. 굴원의 <천문(天問)>과 유안(劉安)의 <회남자(淮南子)>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들 궁전은 매우 화려하고, 9층높이이며, 높이가 몇 리에 달한다. 삼백이십리밖의 괴강산(槐江山)의 위에서도 ㅂ보이며, 전체 곤륜산은 빛이 만장이나 뻗어나간다.

 

신화속에서 곤륜산은 아주 화려하고 산위는 도처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곤륜산의 산허리에는 화원이 있는데, 현포(懸圃)라고 불렀고, 기화이초(奇花異草)가 가득했다. 산 위에는 호수가 있는데 요지(瑤池)라고 불렀으며 거기는 서왕모가 거주하고 노는 곳이었다. 그외에 예천(醴泉)이라는 곳이 있는데, 예천의 사방에는 꽃과 풀로 가득했고, 샘물은 맑고 달았다. 마치 좋은 술과 같았다. 그외에 곤륜산에는 각종 옥수(玉樹)가 자라는데, 문옥수(文玉樹), 우기수(玗琪樹), 낭간수(琅玕樹), 벽수(碧樹), 요수(瑤樹)등이 있다. 소위 문옥수는 오채옥수(五彩玉樹)이다. 우기수는 적색옥수이다. 낭간수는 과실이 진주미옥(珍珠美玉)으로 봉황이 먹는 것이다. 벽수는 녹색의 옥수이다. 옥석이 많이 나므로 곤륜산 위에는 난간도 모두 옥석으로 만들어 극히 화려했다.

 

곤륜산은 일반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먹거리도 나온다. 산 위의 벼는 1년생인 초본식물 벼가 아니다. 큰 나무로 된 벼이다. 이름이 목화(木禾)이다. 목화는 4장정도 높이이고, 나무줄기는 5명이 둘러싸야할만큼 굵다. 파종할 필요가 없고, 매년 자동으로 쌀을 생산한다. 목화의 동쪽에는 사당수(沙棠樹)가 있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사당수는 붉은 꽃을 피운다. 열매는 황색인데 오얏(李)과 비슷하나 씨가 없어서 먹기가 아주 편하다. 사람들이 사당과를 먹으면, 바다에서 몸이 뜰 수 있고 물을 만나도 익사하지 않는다. 이곳에는 또한 풀도 하나 있는데, 맛은 파와 비슷한데, 먹은 후에는 걱정이 사라진다. 산위에는 또한 영원히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고기가 있는데 시육(視肉)이라 한다. 그것은 일종의 동물인데 사지도 없고, 뼈도 없으며, 전신이 고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고기맛이 아주 좋다. 시육은 자동으로 성장하며, 한 점을 떼어 먹으면 바로 원상으로 회복이 된다. 영원히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런 아름다운 음식은 신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고, 일반인들은 근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보면 고대인들이 상상한 신령은 자유자재로 지내며, 근심걱정이 없는 행복한 생활을 했던 것같다.

 

당연히, 곤륜산의 가장 중요한 식물은 불사수(不死樹)이다. 이것은 불사약을 만드는 원료이다. 산위에는 또한 단수하(丹水河)가 있는데, 이 강물을 마시면 죽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신기한 물건을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령은 영생불사인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서왕모의 동정을 산 사일영웅 예(羿)는 일찌기 곤륜산에 올라간 적이 있다. 서왕모에게서 불사약을 얻었다. 그런데 예가 얻은 불사약은 그의 처인 항아(嫦娥)가 훔쳐가 버린다. 그래서 예는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남북조시대에 왕가(王嘉)는 <습유기(拾遺記)>에 곤륜산의 신기한 사물을 더욱 풍부하게 적어 놓는다. 그에 따르면, 산위에는 신선이 많이 있는데, 혹은 용을 타고, 혹은 학을 몰며 여기저기 놀러다닌다고 한다. 산 위에 자주 부는 바람은 사방에서 동시에 바람이 일어 인간세상과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별한 바람이 있는데, 물처럼 의복의 먼지를 씻겨내주어 '거진지풍(袪塵之風)'이라 불렀다. 산 위에는 두 가지 노수(露水)가 있는데, 하나는 감로(甘露)로 안개가 공중에 떠다니는 것처럼 초목을 만나면 이슬방울이 떨어진다. 그 맛이 아주 달콤하다. 또 하나는 주로(朱露)인데, 바로 붉은색의 이슬이다. 그것이 수목이나 돌맹이에 떨어지면 붉은 눈과 같다. 옥기로 주로를 채집하여 마시면 설탕을 먹는 것처럼 달콤하다. 산위에는 또한 신구(神龜)가 있는데, 길이가 1척9촌이고, 네개의 날개가 자란다. 1만살까지 살면 신구는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서 살면서, 말도 할 줄 안다. 산 위에는 수백경의 묘포(苗圃)가 있는데, 신선들은 거기에 영지(靈芝)와 난혜(蘭蕙)를 심는데, 이들 식물은 모두 장생불로의 효과가 있는 약초이다.

 

신화속의 곤륜산은 너무나 아름답고 일반인들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곳이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은 곤륜산을 아주 장엄하고 신성하다고 상상했으며, 어느 범인도 곤륜산에 오를 수 없도록 두 개의 장애물이 마련되어 있다고 상상했다. 산아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불꽃이 타오르는 염화산(炎火山)이 있다. 염화산에는 화염이 아주 맹렬하여, 돌맹이를 던져넣어도 바로 재로 변할 정도이다. 이곳을 통과하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 현대학자들은 염화산이 개략 화산일 것으로 본다. 염화산을 넘으면 , 곤륜산을 둘러싸고 있는 심연이 나온다. 이름은 약수(弱水)이다. 이 강은 너무나 깊어, 240장이나 된다. 거의 무저동이다. 강물 자체도 아주 기이하다. 부력이 없다. 나무는 물론이고, 가장 가벼운 깃털조차도 강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린다.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약수이다. 아무도 이 강을 건널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약수에는 괴물도 하나 살고 있는데 이름이 알유(窫窳)이다.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알유는 원래 한 나라의 군주였는데, 나중에 이부(貳負)와 위(危)에 의해 살해된다. 황제는 이부와 위를 처벌하였고, 소속산(疏屬山)에 묶어둔다. 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두 손은 등뒤로 묶었으며, 둘의 머리카락은 같이 묶어놓는다. 동시에 황제는 6명의 무당을 파견하여 불사약으로 알유를 살려주었다. 알유는 황제에게 감격하여, 약수하에서 곤륜산을 지키는 것이다. 누구든지 몰래 들어가려고 하면 그가 먹어버린다.

 

곤륜산의 꼭대기에는 신들이 거주하는 궁성이 있고, 9개의 대문이 있다. 문마다 한 마리의 개명수(開明獸)가 지키고 있다. 개명수는 몸이 호랑이와 같은데, 단지 9개의 사람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매우 좋아하는 봉황과 난조(鸞鳥)조차도 곤륜산에서는 모두 온몸에 독사를 휘감고 있으며 머리위에도 뱀이 있고, 가슴에는 적사가 있고, 발아래에도 뱀을 밟고 있다. 그들의 머리위에는 방패를 이고 있으며 범인이 함부로 신선의 산을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

 

곤륜산의 일상질서는 반인반수의 천신인 육오(陸吾)가 통일적으로 관장한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몸은 호랑이이다. 그리고 꼬리가 9개 달렸다. 사람들이 보면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있다. 육오는 괴물들을 지휘하여 곤륜산을 지킨다. 그중에는 괴수 토루(土螻)가 있는데, 생긴 모습은 양같은데, 머리에 4개의 뿔이 있고 사람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괴수는 흠원(欽原)인데, 비록 새이고, 원앙 정도의 크기인데, 모양은 야생벌과 같고, 극독의 침이 있어, 조수를 찌르면 조수가 죽는다. 수목에 칩거하면 수목이 말라죽는다.

 

3. 신성과 세속의 한계

 

신화중의 곤륜산은 아름다움과 공포가 교차하여,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게 된다. 왜 그럴까?

 

신화는 원시종교의 교의이다. 목적은 신령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신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신화에서는 반드시 곤륜산을 인간천당으로 그리고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해야 한다. 다만 신도들이 찾아가서 보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일단 신도가 곤륜산을 오르게 되면 바로 발견해버릴 것이다. 신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여하한 종교이건 모두 반드시 신성의 존재와 세속의 현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만들어 둔다. 이를 통해 신령의 존재가 가짜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신화중의 곤륜산은 <산해경>에 의하여 머나먼 서북방에 있다고 확정한다.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이었고, 확인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는 지리상의 거리로 신성과 세속을 나눈 것이나 다름없다. 곤륜산 아래에는 염화산과 약수하가 있고, 또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괴물들이 있는데, 이는 모두 고대인들이 신성과 세속의 한계를 나누기 위해 설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한 것이다. 중국의 고대인들은 곤륜산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는 마치 고대그리스인들이 올림푸스산에 오르지 못하게 한 것과 같다.

 

한무제가 화전의 남산을 곤륜산으로 명명하면서, 신화화 현실의 경계가 무너졌다. 사람들은 현실의 곤륜산에 신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곤륜산신앙은 회복할 수 없이 무너져버린다.

 

과학이 개명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반드시 신화 속의 곤륜산과 현실의 곤륜산을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대인들의 정신세계를 오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