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비명(馬悲鳴)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다: 거짓과 진실이 함께 물에서 수영을 했다. 거짓이 먼저 물가로 나와, 진실의 옷을 입고 가버렸다. 남아서 벌거벗은 진실은 부끄러워서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
류야저우(劉亞洲)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에는 없는게 없는데 오직 '진실'만 없다. 문제는 진실을 일단 말해버리면 반드시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거짓을 말하면 사람들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소위 '반도(叛徒)'는 바로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다; 누가 그를 미워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노신은 이런 말을 한다: 중국에는 반도를 위해 곡을 하는 조문객이 거의 없다.
다시 예를 들어 말해보자:
1. 모택동은 6번에 걸쳐 일본의 중국침략에 감사하는 말을 했다는 것은 완전히 진실이다.
첫째, 1956년, 모택동은 중국을 방문한 일본의 전 육군중장, 관동군 참모장 엔도 사부로(遠藤三郞)과 담화할 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또한 우리의 선생이다. 우리는 너희에게 감사해야 한다. 바로 너희가 이 전쟁을 벌여서, 중국인민을 교육시켜서, 접시위의 모래알같던 중국인민을 단결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너희에게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같은 해, 일본의 일중수출입조합 이사장 난고 사부로(南鄕三郞)를 접견할 때도 역시 비슷한 말을 했었다.
둘째, 1960년, 모택동이 일본문학대표단과 담화할 때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땅이 커서, 내전을 십년간 싸웠다. 그후 일본군벌과 싸웠고, 다시 장개석과 합작했다. 나는 많은 일본친구들과 이때의 일을 얘기나눈 바 있다. 그중 일부 사람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것은 나빴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침략은 당연히 나쁜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나쁜 일면만 봐서는 안된다. 다른 일면은 일본이 우리 중국을 크게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중국절반을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중국인민은 각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본황군에게 감사해야 한다."
셋째, 아마도, 여러번 얘기해서인지, 모택동 본인도 이에 대하여 기억이 선명했던 것같다. 1961년 모택동은 일본사회당 국회의원 구로다 히사오(黑田壽男)와 담화할 때 다시 "일본침략에 감사한다"고 말하고, 1956년 난고 사부로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다. 모택동은 말했다: "일본의 난고 사부로가 나를 만나러 왔을 때,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었다. 당신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일본군벌이 절반의 중국을 점령했고, 그리하여 중국인민을 교육시켰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인민은 각성하지 못했을 것이고, 단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아직 산 위에 있어야 하고, 베이징에게 경극을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일본 '황군'이 중국 절반을 점령해주었기 때문에 중국인민은 다른 출로가 없어서 각성하게 되고, 무장하여 투쟁하게 되었으며, 많은 항일근거지를 건립하였다. 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조건을 창조했다. 그래서 일본군벌, 독점자본이 좋은 일을 해준 것이다. 만일 감사해야 한다면, 내가 차라리 일본군벌에 감사하고 싶다."
넷째, 1964년, 모택동이 중국을 방문한 일본사회당인사 사사키 코조(佐佐木更三), 구로다 히사오, 호소사코 카네미츠(細迫兼光)등을 만났을 때 다시 한번 일본침략에 감사하는 말을 한다. "나는 일찌기 일본친구들에게 말한 바 있다. 그들은 말했다. 아주 미안하다고. 일본황군이 중국을 침략해서. 나는 말했다. 아니다. 너희 황군이 중국절반을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중국인민은 단결해서 너희를 상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탈취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일본황군에 감사해야 하는가? 바로 일본황군이 와서, 우리가 일본황군과 싸우며, 다시 장개석과 협력했다. 2만5천의 군대로 8년간 싸웠고, 우리는 다시 120만군대로 성장했다. 1억인구의 근거지를 가졌따. 당신이 말해봐라. 감사하는게 맞지 않은가."
다섯째, 1964년, 모택동은 북한 평양에서 개최된 제2차 아시아경제토론회에 참석한 후에 중국을 방문한 아시아, 아프리카, 대양주 일부국가와 지구의 대표들과 담화할 때, 다시 한번 난고 사부로를 언급한다. "난고 사부로라는 한 일본 자본가가 있는데, 나와 얘기할 때 그가 말했다: '당신들에게 아주 미안하다. 일본이 당신들을 침략했다.' 나는 말했다; '아니다. 만일 일본제국주의가 대규모 침략을 하여, 중국의 절반을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전중국인민은 단결하여 제국주의에 반대하지 못했을 것이고, 중국공산당도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일본제국주의는 우리에게 좋은 선생이 되었다. 첫째, 일본제국주의는 장개석을 약화시켰다. 둘째, 우리는 공산당이 영도하는 근거지와 군대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항전이전에 우리의 군대는 일찌기 30만에 도달한 적이 있지만, 우리 스스로 잘못을 범하여 2만여명으로 줄어들었다. 8년항전동안 우리의 군대는 120만으로 발전한다. 보라. 일본이 우리를 크게 도와주지 않았는가? 이건 일본공산당이 도와준 것이 아니고, 일본군국주의가 도와준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공산당은 우리를 침략하지 않았지만, 일본독점자본과 그의 군국주의정부는 우리를 침략했기 때문이다."
6. 1972년 모택동이 일본수상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일본침략에 감사한다." 예를 들어, 이지수(李志綏)의 <모택동개인의사회고록>에 따르면 "모택동은 여러번 일본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국공합작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며, 최종적으로 정권을 취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우리를 보면 사죄를 한다. 모택동은 말했다: '우리는 너희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베이징에서 너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나카가 일본의 2차대전시기의 중국침략에 사죄할 때, 모택동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일본의 중국침략이 없었더라면, 공산당의 승리가 없었을 것이다. 더더구나 오늘의 회담도 없었을 것이다.
모택동의 이 말은 적지 않은 반공애국인사들의 질타를 받는다. 다만 모택동이 한 말은 확실히 전혀 가리지 않은 진실이다. 만일 일본군이 국군을 압박하지 않았더라면, 공산군이 발전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외에 진의(陳毅)도 중일전쟁이 발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상을 이렇게 회고했다: "3년간 힘들었던 남방유격전이 마침내 끝났구나."
일본측에서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가 전선에서 장교와 사병을 잃고, 돈과 양식을 소모하면서, 힘들게 국민당을 몰아냈는데, 언제인가, 공산군이 우리의 뒤에서 침투해 들어왔다.
2. 리펑(李鵬)은 솔직한 사람이다. 그는 중국에는 고무탄이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은 진실이다.
"6.4사태후, 한번은 리펑이 해외인사를 접견했다. 상대방에 왜 유혈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지 물어보자, 솔직한 리펑은 이렇게 대답한다: 중국은 고무탄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절묘한 대답이다. 세계역사상 갖아 솔직하고 가장 지혜로운 대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위대한 중국에서 '고무탄을 준비하지 않았는가?' 리펑총리도 그에 대해서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중공은 지금까지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爲人民服務)'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인민들이 감사할 것이고, 당에 감사하는 것만도 부족한데, 무슨 소란을 일으킨단 말인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무탄은 모두 자본주의국가가 노동자계급의 반항을 진압하기 위한 용도로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의 선봉대조직인데, 왜 그런 것을 쓴단 말인가?
생각지도 못하게 이들 공화국의 늑대새끼들이 정말로 나타나서 전혀 손을 쓸 수 없도록 만들면서 돌연 천안문광장을 점거해 버리고 물러나지 않았다. 계엄령을 선포했는데, 군대차량까지도 막아버린다. 이럴 때 고무탄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탄약고에는 정말 고무탄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 어떡할까?
방법이 없다. 진짜 총알을 쓸 수밖에는.
그렇지만 만일 정말 고무탄이 있었고, 고무탄을 사용하거나 혹은 고압물대포를 썼더라도 학생들은 그것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계속 남아있고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결국 진짜총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관을 보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不見棺材不落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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