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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명나라 멸망직전에 발생한 2건의 괴이한 사건

by 중은우시 2022. 8. 30.

글: 흔몽경성(昕夢傾城)

 

철학적으로 이런 말이 있다: "새로운 사물이 반드시 오래된 사물을 대체한다" 이 진리는 고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처음부터 강성하기 그지없고, 발군이었던 왕조도 백년이 지난 후에는 결국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은 다른 왕조로 쉽게 교체되곤 한다. 명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국황제 주원장은 비록 글도 몰랐지만, 여전히 국가를 조리있게 다스렸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나라를 고스란히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고 만다. 주원장이 만일 자신의 후손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기실 우리가 역사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의 24시간동안, 조금 노력을 했더라면,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었을 것같다. 그러나, 두 가지 괴이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명나라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정말 괴이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럼 그것은 어떤 일인가?

 

이자성이 북경성에 도착헤서 스스로 투항하겠다고 하지만 숭정제는 거절한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명나라말기에 황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조정의 대사를 아예 신경쓰지 않았다. 관리들도 그저 봉록만 받아갔을 뿐, 백성들에게 유익한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하루종일 어떻게 하면서로 결탁하여 이익을 도모하고, 상사에게 잘보일지만 생각했다. 이런 무리들이 조정에 가득하니, 당연히 백성들의 생활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이런 생활환경에 처해 있다보니, 백성들은 원망이 많았고, 그런 원망으로 반란과 반항이 일어나게 된다. 이자성은 바로 그런 반란군중의 하나이다. 다른 반란군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자성은 반란군에 가담한 그 날부터 두목인 외삼촌이 돌봐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이자성은 그후에 물만난 고기처럼 잘 나갈 수 있었고, 몇년이 지나지 않아 수만명이 그를 따르게 된다.

 

이치대로라면, 민간의 반란군은 조정에서 정규군을 파견하여 진압하면, 분명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시 대명왕조의 통치자인 숭정제는 그렇게 한 적이 없다. 한편으로 당시의 명나라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숭정제는 일부 정력을 외적을 막는데 투입해야 했고, 이자성을 상대할 충분한 병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자성의 반란군은 계속 힘을 키워갈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숭정제는 너무 자만하고 오만했다. 그는 이자성등은 그저 일개 초민(草民)으로 난을 일으키더라도 큰 물결은 일으키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자신이 아무렇게나 한 무리의 군대를 파견해서 토벌하면  바로 궤멸시켜버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숭정제의 생각은 괜찮았다. 다만 이자성은 절대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는 명나라의 국면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명나라가 자신에 대해 신경쓰지 못하는 몇년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실력을 키워 한걸음 한걸음 명나라의 도성 북경성으로 접근한다.

 

숭정제가 마침내 이자성의 위험성을 깨달았을 때는 그가 이미 반란군을 이끌고 북경성앞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숭정제도 초조해진다. 그러나 그는 성안에 갇혀 있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자성은 어떠했을까? 이때 승리를 거두는 것이 확실해진 그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는 행동을 한다. 그것은 바로 그가 스스로 숭정제에게 투항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사자를 파견하여 황성내의 숭정제에게 투항귀순의 조건을 얘기한다. 숭정제가 동의하기만 하면 그는 즉시 무기를 버리고 대명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숭정제를 도와 다른 반란군을 진압하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자성은 이런 남정북전(南征北戰), 명현일선(命懸一線)의 생활에 지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정을 찾고 싶었고, 그리하여 황성으로 가서 투항귀순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숭정제에게 이건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이자성이 내건 조건에 동의하기만 하면, 대명강산은 보존될 수 있고, 주씨일족은 계속 황제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청산이 남아 있다면 땔감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먼저 이자성을 다독여놓고 나중에 기회를 보아 그를 제거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게, 약세에 처해있는 숭정제는 이자성의 투항을 거절한다. 자신이 그를 이길 수 없는 것이 분명하고, 그가 좋은 뜻에서 물러날 구실을 마련해 주는데도,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머리가 없는 것인가? 이자성은 숭정제가 자신의 조건을 거절했다는 말을 듣자, 화가나서 바로 명나라도성으로 쳐들어간다. 그리하여 명나라는 과거형이 되어 버린다.

 

숭정제는 대난이 닥쳤는데도 도망갈 줄을 몰랐다.

 

두번째 후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숭정제가 분명 이자성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앉아서 죽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신속히 도망쳐서 대명에 희망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거의 모든 망국지군은 국가가 멸망하기 전에 도망간 경력이 있다. 이건 기실 체면을 잃는 일도 아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청산이 남아 있으면 땔감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황실의 혈맥이 남아 있다면, 기회를 보아 나라를 되찾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북송이 아주 좋은 예이다. 그들의 마지막황제는 정강지치라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겪었지만, 그래도 자손을 남겨서, 수백년후 성공적으로 몽골의 도움을 받아 복수한다. 만일 북송말기의 황제가 당초 숭정제와 같은 선택을 했다면, 백년후 아무도 그를 위해 복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황제의 존엄이 숭정제로 하여금 이자성이 황성을 곧 함락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황성과 생사를 같이하고, 자신의 대신들과 함께 적의 침입을 막고,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보자면 숭정제는 확실히 좋은 황제이다. 문무백관을 내버려두고 혼자 도망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건 바보짓이 아닌가? 살아 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머지는 잠시 한켠에 밀쳐두면 된다. 살아남아야, 반드시 재기할 수 있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전제는 바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숭정제는 결국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생을 끝내고, 명나라도 그의 죽음으로 철저히 복국의 가능성을 잃게 된다.

 

결론

 

기실, 이자성이 병력을 이끌고 북경성을 포위한 상태에서 투항을 선택한 것이나, 숭정제가 위기의 순간에 앉아서 죽기를 선택한 것이나 이 두 가지는 모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괴이한 일이다. 우리 현대인의 사상과 그들간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는 것같다. 우리 현대인은 승승추격(乘勝追擊) 승기를 틈타 추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자성이 병력으로 북경성을 포위하고서도 스스로 투항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현대인은 생명을 아낀다. 그래서 숭정제가 위기에 닥쳐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에도 우리는 놀라게 된다.

 

기실 고인들의 사고방식으로 이 두가지 사건을 생각하면, 일거에 이자성과 숭정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이자성은 빈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치국능력이 그다지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권력이지, 그에게 황제가 되느냐 아니냐는 관계가 없었다. 숭정제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그는 일국지군으로 황제가 된 그날부터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운명이었고,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 분명히 자신에게 남은 것은 죽는 길 뿐이라는것을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남아있기를 선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