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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문학일반

천약유정천역로(天若有情天亦老), 월약무한월상원(月若無恨月常圓)

by 중은우시 2021. 12. 11.

작자: 미상

 

당왕조의 흥성은 중국역사상 가장 볼만한 광경이었다. 경제적인 번영이건 전체적인 국력의 흥성이건 많은 사람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고 싶어하는 성세였다. 이런 성세에는 문화가 번성한다. 그중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당나라때의 시이다. 전체 당왕조를 살펴볼 때 시선 이백(李白)이건 시성 두보(杜甫)이건 모두 대단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러나 이 당나라문단에 이런 인물이 있다. <절첩금동선인사한가(折疊金銅仙人辭漢歌)>의 한 구절 "천약유정천역로"로 당나라 문단의 많은 사람들을 쓰러뜨린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이하(李賀)이다.

 

이하는 당시에 유명한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재능이 뛰어나서 당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원래의 시가에는 "쇠란송객함양도(衰蘭送客咸陽道), 천약유정천역로(天若有情天亦老)"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문인들은 아주 재미있었다. 후반의 구절을 좋아했고, 그것을 상련(上聯)으로 삼아서 대련(對聯)이 되는 하련(下聯)을 짓고자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누구도 사람들이 만족시킬만한 하련을 지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송나라에 이르러 주귀(酒鬼) 한명이 아주 좋은 하련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 주귀의 이름은 석연년(石延年)이다. 석연년은 술마시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그를 '주괴(酒怪)'라고 불렀다. 그는 북송시기의 문학가이며 서예가로 대단한 인물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석연년이 하루는 술에 취한 후에 아무렇게나 시를 짓기 시작했는데, 그때 읊은 것이 이하의 그 구절 "천약유정천역로"였다. 이어서 석연년이 그 다음 구를 읊었다: "월약무한월상원(月若無恨月常圓)" 교묘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속속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이렇게 석연년의 하련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대련은 정말 묘하다고 할 수 있다. '무교불성서(無巧不成書)'이다. 술이 취해서 아무 생각없이 읊은 한 구절이 이렇게 아름다운 대련을 만들어 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석연년이 늦게 태어난 것이 아쉽다 만일 조금 일찍 태어났더라면 분명 이하와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이하와 석연년은 모두 재능이 넘치는 인물들이다.

 

이하는 어렸을 때, 집안이 몰락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집안을 살리고자 했다. 그리고 이하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명성을 날렸다. 7살때 사람들이 놀랄만한 시도 짓고, 글도 잘 썼다. 그러나 그는 오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상당히 근면했으며 스스로에 대하여 엄격하게 요구했다. 그래도 그는 다른 사람의 질투를 산다. 그 다른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이하의 부친은 이름이 "이진숙(李晋肅)"이어서 진사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러므로,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다면 부친의 이름때문에 기휘(忌諱)를 범하는 것이 되니, 과거에 급제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하는 평생 과거를 치지 못하게 된다.

 

석연년은 좀 더 운이 좋았다. 비록 일찌기 과거시험에서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어쨌근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조정의 중신이 된다. 당시 석개(石介)는 석연년의 시(詩)와 구양수(歐陽修)의 문장(文章), 그리고 두묵(杜默)의 가(歌)를 '삼호(三豪)'라고 부르며 높이 평가했다. 석연년의 일생에서 그다지 큰 풍파는 없었다. 이것은 아마도 이하보다 운이 좋았던 부분일 것이다. 아쉽게도 이하는 27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만일 그의 인생이 조금만 더 순조로웠다만 아마도 또 다른 이백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天若有情天亦老: 하늘에 정이 있다면 하늘도 늙을 것이다.

月若無恨月常圓: 달에 한이 없다면 달은 항상 둥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