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왕양(王洋): 중국의 후계자가 되었는가?

by 중은우시 2021. 8. 23.

글: 중국금문망(中國禁聞網)

 

시진핑은 미국과의 결렬을 준비하면서, 국내에서 대거 부호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베이다이허회의가 막 끝났는데, 중국은 왕양의 지위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그는 다음 중공의 후계자가 될 것이다. 왕양은 중앙재경회의에서 서열이 바뀌었고, 그후 다시 중앙대표단을 이끌고 티벳화평해방 70주년기념행사에 참가했다. 이는 왕양이 이미 시진핑의 바로 다음 가는 후계자의 지위를 차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 중국이 이런 신호를 내보내는 것은 의도가 미국을 안심시키려는데 있다.

 

시진핑은 미중충돌과정에서 여러번 전랑식 태도를 드러냈고, 자주 도발적인 행동은 서슴없이 했다. 미국은 직접 군사조치를 취하여 중국의 국경을 압박했다. 시진핑이 타이완을 점령하려는 태도를 보이게 되면 전쟁은 바로 일촉즉발인 상황인 것이다. 이런 순간에 문관(외교부)은 공세를 벌이는데 무관(국방부)는 겁을 먹었다. 이제 더 이상 내놓을 카드도 없다. 만일 성급하게 타이완을 공격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군대는 웅크리고 나아가지 않을 것이고, 태도도 애매하다. 전랑외교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미 진영을 구축해서 걸려들기만 기다리고 있다. 만일 이러한 때 웅크리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면, 외부인들은 분명히 그가 연약하고 무능하다고 여길 것이다. 앞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함에 있어서 아무도 그를 중시하지 않을 것이고, 위신은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시진핑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특히 미국은 90일의 신종코로나근원조사에 대한 시한을 정했고, 곧 결정이 날 것이다. 싸울 것인지 화해할 것인지 미국은 여전히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 만일 좀 강경한 대통령이라면 탈중국을 선언하고 선전포고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으로서는 이 정도 선에서 끝내는 것이 좋다. 적절한 시기에 교섭을 하고 몸을 빼내야 하는 것이 현재로선 시급한 일이고, 마지막 기회이다. 그렇지 않고 전쟁이 나게 되면 그후에 다시 교섭을 얘기하면 투항파가 되는 것이다. 미국도 당연히 무조건투항을 요구할 것이고, 더 이상 여지가 없게 된다.

 

이떄 친강이 나서서 대사의 신분으로 부드럽게 말하면서 일처리하는 것이다. 당연히 중국의 최우선 카드는 왕양이 후계자가 되어 중공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을 설득하여, 최악의 상황은 피하는 것이다. 왕양은 예전에 미중관계를 부부에 비유한 바 있고, 미국에 우호적인 말을 해서, 미국측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금 왕양이 후계자에 오르면, 미국인들은 스스로 시진핑보다 훨씬 낫다고 여길 것이고, 자연히 체면을 봐주면서 미중관계는 완화될 수 있다.

 

이러한 때 미국은 주중대사를 뽑았다. 이는 미국도 정상적인 교섭을 원한다는 말이고, 코로나바이러스를 퍼트렸다는 죄명을 억지로 뒤집어 씌우지는 않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바이든도 쓸 수법은 다 썼다. 그리고 중국은 자기 아들도 잘 돌봐주었으니, 손속에 사정을 남겨두며 상대를 살려줄 것이다.

 

둘째, 수렴청정은 중국의 상례가 되어 버렸다. 왕양은 후계자가 되더라도 여리박빙인 상황이다.

 

미국인을 상대하는 것은 표면적인 것이다. 당내에서는 왕양이 정식 후계자로 세워진다고 하더라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내년 20대를 개최하려면 아직 1년여의 시간이 남았다. 이 기간내에 무슨 일이든 발생할 수 있다. 시진핑은 정국의 발전변화에 맞추어, 노선을 바꿀 수 있고, 스스로 유임하여 계속 집권할 조건을 마련할 수도 있다. 하물며 중국의 헌법까지 이미 수정했고, 시진핑, 왕치산의 국가주석, 부주석은 종신직이다. 왕양이 총서기를 물려받는다고 하더라도, 국가주석직까지 물려받을지 어떻게 물려받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런 문제는 현재로서는 생각하기도 어렵다. 왕양이 과연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설사 왕양이 후계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시진핑은 충분한 시간이 있다. 군권을 강화하고 인사권을 행사하여 자신의 심복을 중요직위에 심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왕양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덩샤오핑, 장쩌민은 이 방면에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 비법은 바깥에 알려주지 않았고, 최고지도자들에게서 전승되고 있다. 왕양이 설사 후계자가 되는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허수아비로서 앞날이 평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중공의 후계자 후자오장후시(후야오방, 자오쯔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에게는 모두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모두 이치를 따지지 않는 선임 최고지도자때문에 고생을 겪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목숨이 위험하기도 했고, 감금되기도 했다. 혹은 후진타오같은 경우에는 부부간에도 방안에서 마음대로 말을 할 수 없어서, 옥외의 넓다란 곳으로 나가 얘기를 나눠야 했다. 장쩌민이 여우시꾸이(由喜貴)를 통해 도감청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시진핑이 취임한 후 몇년동안 여전히 멍젠주, 쑨리쥔의 감시를 받았다. 시진핑의 차량이 움직이면 즉시 전용차량이 뒤쫓아 동향을 파악한다. 여우시꾸이, 차오칭(曹靑), 왕샤오쥔(王少軍)은 왕후닝등과 긴밀히 협력하여, 엄밀한 감시네트워크를 구성했다. 당시 리커창, 장더장 및 장춘셴(張春賢)이 정치국회의에서 그를 공격할 때, 왕치산조차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시진핑은 장쩌민에게 여러번 얻어맞으면서 부득이 태도를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겨우 몇년전의 일이다. 역사의 교훈이 있으니,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