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숭명경야(崇明慶爺)
사해방(四海幇), 대만의 저명한 흑사회(黑社會) 조직이고, 대만 제2대 방파이다. 1953년에 성립되었으며 타이페이를 주요거점으로 하여 주로 대만과 미국, 캐나다 및 동남아등지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홍콩의 14k, 미국의 화청방(華靑幇)등 방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70,80년대에 사해방의 인원은 개략 5만명이고, 현재 죽련방(竹聯幇), 천도맹(天道盟)과 나란히 대만이 3대방파로 불리고 있다.
1950,60년대, 사해방은 대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외성괘(外省挂)' 방파였다. 다만 정부의 강력한 소탕으로 타격을 크게 입었으며, 죽련방이 점점 사해방을 대체하여 대만최대의 방파가 된다. 사해방은 대만의 방파중에서 기업과 재단을 이용하여 자금을 얻어 '기업으로 조직원을 기르는' 개념으로 발전시킨 방파이고, 방파에서 사업을 통해 기업화한 선구적인 조직이다.
1953년, 풍조어(馮祖語)는 대만대학의 한 무리 학생들 및 군인가족인 친구들과 "사해지내(四海之內), 개형제야(皆兄弟也)"(사해의 안은 모두 형제이다)라는 격언으로 방의 이름을 삼았다(일설에는 현지 사해농구팀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조심(一條心), 이불백(二不白, 不白吃, 不白嫖), 삼결의(三結義), 사해위가(四海爲家)"를 방규로 삼는다.
처음에 사해방의 세력은 강대하지 않았다. 단지 타이페이시의 시먼딩(西門町)과 기차역일대에서 활동했다. 사해방의 당시 구성원은 주로 대학생과 정당인사의 자제들이었다; 정당인사와 부호자제들이 참가하여 사해방은 기초가 튼튼했다. 몇년 후, 사해방은 구성원을 늘이고, 각지의 흑사회분자와 외적인사들을 가입시켜 세력을 키운다.
1960년, 인원수가 근 만명에 이른다고 자랑하던 사해방은 '정부'에 의해 감시와 소탕의 대상이 된다. 이때의 사해방은 대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청소년방파조직이었다.
대만당국의 강력한 소탕으로, 사해방은 1962년 강제해산의 위기에 직면한다. 내부에 분열과 동란이 발생하여 사해방의 상황은 아주 좋지 못했다. 다른 흑사회세력과 방파는 이런 기횔르 이용하여 사해방을 대거 공격하여 사해방의 세력범위를 침탈한다(죽련방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사해장의 지위를 대체한다). 그리하여 사해방은 세력이 약화되어 한때 해산하기까지 한다.
몇년간 조용히 지낸 후, 1971년에 유위민(劉偉民), 진영화(陳永和)와 대만당국 공군조종사출신인 채관륜(蔡冠倫)등의 지도하에 다시 사해방을 부흥시킨다. 여러번 다른 흑사회조직과 싸우면서 사해방의 판도를 확대하고, 다시 사해방을 재건한다. 그리고 유위민이 방주가 된다.
1986년, 유위민은 일본에서 양쌍오(楊雙伍)에게 암살당하고, 한때 채관륜이 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나 그의 세력은 여러번 경찰의 단속을 받고, 두번이나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함)'에 출마하여 실패한다. 그리하여 세력이 약해진다. 나중에 진용화가 제3대방주직을 이어받는다. 당시 사해방은 진영화의 주도하에 규모가 날로 커졌다. 진영화는 조직구조를 완성한 후 방주의 지위를 조경화(趙經華)에게 넘겨준다. 나중에 구성원들의 추대를 받아 조경화가 제4대방주에 오른다. 다만 사해방의 실권은 여전히 진영화의 손에 장악되어 있었다. 진영화의 막후 지도하에 기업화조직을 진행함으로써 사해방은 더욱 공고해지고 강대해진다.
1996년, 사해방에 중대사건이 일어난다. 진영화와 거물 인뢰흡(藺磊洽)이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에서 사살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대만의 흑백양도를 동요시킨다. 나중에 대만당국은 일련의 흑사회소탕작전을 진행하고, 방주 조경화와 부방주 양광남(楊光南)은 각각 미국과 중국대륙으로 피신한다.
1997년 2월 3일, 사해방내의 거물 동극성(董克誠)이 부방주의 명의로 7명의 사해방 조직원을 데리고 타이페이시 형경대대로 가서, 방주 조경화의 대리인으로서 사해방 해산을 선언한다. 방주 조경화도 미국에서 방주직을 사퇴할 것을 선언한다. 방주의 사퇴와 원로들이 속속 해외로 도피함으로써 군룡무수(群龍無首)의 상황에 빠진 사해방은 중요한 조직회의를 순조롭게 운영하거나 개최할 수가 없었다. 이때 대륙에 있던 부방주 양광남이 신임방주로 추대된다(실제로는 단지 대리방주이다)
(사해방의 해산은, 조경화가 방주직을 사퇴한 것을 제외하고 가장 주요한 것은 대만당국의 감시와 공격을 회피하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해방은 여전히 암중 활약하고 있었다)
양광남은 대륙에서의 사업을 대거 발전시킨다. 지금 중국대륙의 상하이등지에 강대하고 공고한 세력을 구축했다.
2000년 11월, 양광남은 상해현지정부에 체포된다. 그리고 12월 6일 대만으로 강제송환된다. 사해방은 다시 한번 중대한 위기를 맞는다. (양광남은 경찰심문때 자신은 사해방의 방주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조경화가 사임하고 여러 원로들이 해외로 도피하여, 할 수 없이 잠시 방주의 직위를 대리로 맡아 사해방을 운영했을 뿐 실제로는 여전히 부방주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양광남의 명성과 실권은 방주와 같았다. 그래서 대만정부는 양광남을 실질적인 방주로 인정한다)
나중에 거물 가윤년(賈潤年)이 제5대방주직을 이어받아, 군룡무수의 사해방을 이끈다. 다만 2003년말, 가윤문의 아들이 큰 잘못을 저질러(3명의 여성에게 엄중한 상해를 입힌다), 사해방의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가윤년은 자신이 더 이상 방주직을 맡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방주직을 사임한다.
2008년 7월, 방주 가윤년이 방주사임의 듯을 밝히고, 각 파벌은 방주의 직위를 놓고 다툰다. 8월, 사해방은 대회를 개최한 후 제6대방주에 장건영(張建英)을 뽑는다.
2009년 정월, 타이페이 시먼딩에서 다시 중상회(中常會)를 열고, 8명의 부주임위원(부방주)를 선임한다. 사해방의 조직원들은 각자 따로 활동하므로, 이번 주임위원(방주)선거는 객관적으로 말해서 전체구성원에게 인정받은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정신적인 지도자인 '대보(大寶)' 진영화가 죽은 후, 사해방의 내부에는 전체를 이끌만한 매력있는 방주가 없었기 때문에, 7명의 부방주직을 설치하였다.
2010년 사해방은 타이페이시 원산반점(圓山飯店) 금룡청(金龍廳)에서 설날연회를 여는데 테이블이 근 100개에 이른다. 그리하여 경찰의 주목을 끈다. 분국장(分局長) 서서흔(徐緖昕)은 많은 경찰을 이끌고 현장으로 가서 증거수집을 한다. "중화사해동심연환만회(中華四海同心聯歡晩會)'라는 명칭으로 열린 사해방의 설날연회는 제6대방주인 장건영이 주재했고, 각계의 친구들과 정계, 상계, 영화연예계등의 명사들이 참석하여 90개이상의 테이블을 채웠다.
2011년, 거물 채관륜은 타이페이시 신의구에 있는 자택 주차장의 차안에서 급사하여, 사회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2012년, 방주 양옥빈(楊玉斌)은 집안에서 급사해 있는 것이 발견된다. 그때 그의 나이 53세였다. 경찰은 검시후 싸움이나 외력이 개입한 흔적을 찾지 못한다. 양옥빈에게는 만성질환이 있어서, 급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소식이 나간 후, 사해방의 몇몇 부방주, 중상위는 밤을 새워 회의를 열고, 부방주 '자가(自哥)'가 잠시 방주의 직무를 대행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후 사해방은 방무대회를 열고 '덕윤(德昀)' 양덕윤(楊德昀)을 후임방주로 선임한다.
2013년 1월 7일, 전임방주 가윤년은 아침 7시경 간병으로 신죽의 자택에서 병사한다. 향년 67세였다.
역대방주
제1대 풍조어(1953-1971)
제2대 유위민(1971-1986)
대리방주 채관륜(1986-1990)
제3대 진영화(1990-1994)
제4대 조경화(1994-1997)
대리방주 양광남(1997-2000)
제5대 가윤년(2000-2008)
제6대 장건영(2008-2010)
제7대 양옥빈(2010-2012)
제8대 양덕윤(2013- )
사해방의 초기 분지(分支)는 아주 많다. 다만 실제로 현재 활동하는 곳은 그저 일부분이다. 그중 해소당(海嘯堂)이 가장 크다. 소문에 따르면, 현재 사해방의 원로들은 내부개혁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이미 활동하지 않고 있는 분지(당구)는 없애고, 약소한 분지는 묶어서 합칠 것이라고 한다.
사해방의 분지: 해소당, 해풍당, 해상상, 해랑당, 해기당, 해숭당, 해진당, 해군당, 해의당, 해귀당, 해달당, 해련당, 해맹당, 해인당, 해응당, 해명당, 해봉당, 해복당, 해공당, 해운당, 해죽당, 해력당, 해청당, 해강당, 해표당, 해영당, 해남당, 해진당, 해용당, 해승당, 해윤당, 해홍당, 해화당, 해성당, 해양당, 해무당, 해원당, 해전당, 해문당, 해진당, 해산당, 해지당, 해곤당, 해존당, 해패당, 해일당, 해동당, 해협당, 해위당, 해뢰당, 해화당, 해보당, 해업당, 해덕당, 해포당, 해웅당, 해강당, 해성당, 해서당, 해룡당, 해신당, 해호당, 해천당, 해맹당, 해붕당, 해사당, 해강당, 해표당, 해흠당, 해충당, 해정당, 해우당, 해림당, 해방당, 해량당, 해호당, 해북당, 해항당, 해마당, 해도당, 해사당, 해삼당등
'중국의 정치 > 대륙과 대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만3대방파: 죽련방(竹聯幇) (0) | 2021.06.01 |
---|---|
대만3대방파: 천도맹(天道盟) (0) | 2021.06.01 |
대만해협의 전쟁가능성을 저평가해서는 안된다. (0) | 2021.02.28 |
타이완문제: 미중간의 뜨거운 감자 (0) | 2020.11.15 |
국민당과 공산당의 '입당선서' 비교 (0) | 2020.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