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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제갈량의 은거시절 친구 서서, 최주평, 석광원과 맹공위는 어떻게 되었을까?

by 중은우시 2020. 12. 19.

글: 역사신비사(歷史神秘事)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 제갈량은 삼국의 제일고수이고, 그와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면 분명 보통인물은 아니다.

 

제갈량에게는 4명의 친구가 있었다. 서서(徐庶), 최주평(崔州平), 석광원(石廣元)과 맹공위(孟公威)이다. 서서의 출신이 한미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사족(士族)출신이다. 예를 들어, 최주평의 부친은 동한의 사도(司徒)였다. 지위도 높고 권력도 막강한 실력파였던 것이다.

 

<삼국연의>에는 4명 중에서 서서가 가장 많이 나온다. 그러나 그가 등장하는 것은 순수하게 포전인옥(抛磚引玉)을 위함이다. 벽돌(磚)은 서서이고 옥(玉)은 제갈량이다.

 

서원직(徐元直, 원직은 서서의 자)이 제갈량을 추천할 때, 서서는 조조가 자신의 모친을 붙잡아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울며불며 엄마를 찾아갔다. 유비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그를 보내준다. 서서가 길을 나섰다가 도중에 돌연 한가지 일을 떠올린다.

 

무슨 일이었을까?

 

그것은 제갈량을 추천하는 일이었다.

 

말머리를 돌려, 다시 유비를 만났을 때, 서서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한다. 그리고 제갈량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제갈량을 무지막지하게 띄워준다. 

 

서서는 3가지 과장수법을 사용한다:

 

첫째, 만일 내가 멍청한 말이라면, 제갈량은 하늘의 기린이다. 만일 내가 겨울 까마귀라면, 제갈량은 하늘의 봉황이다.

둘째, 고대에 대단한 인물인 관중(管仲), 악의(樂毅)도 내가 보기에는 제갈량과 비교하면 별 게 아니다.

셋째, 제갈량은 천지, 고금, 중외에 통달했다. 이 세상에서 그에 비견할 자는 없다.

 

만일 서서의 역할이 포전인옥이었다면, 최주평, 석광원과 맹공위의 역할은 순수하게 지나가는 사람이다.

 

삼고초려의 첫번째, 유비는 최주평을 만난다. 두 사람이 천하대세를 논한 후, 유비는 최주평에게 함께 창업하자고 청한다. 그러나, 최주평은 "자유롭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공명에는 뜻이 없다"고 완곡하게 거절한다.

 

삼고초려의 두번째, 유비는 석광원과 맹공위를 만난다. 당시 두 사람은 바로 융중의 한 시골주막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유비가 목소리를 듣고 그들 둘을 찾아간다.

 

당시 유비는 그들 둘을 성대하게 대접하며 함께 창업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저 세상을 보고 싶다"는 것을 이유로 완곡히 거절한다.

 

제갈량의 4명 친구들은 겉으로 보기에 공명을 좋아하지 않는 한운야학(閑雲野鶴)으로 보인다. 모두 그저 세상구경이나 하며 살아가려는 것같았다. 그러나 사실이 정말 그러했을까?

 

그렇지 않다.

 

서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그는 유비를 떠나 조조에게 간다. 비록 떠날 때, "평생 조조를 위해서는 단 1개의 계책도 내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가 조조의 진영으로 간 후에 맡은 직위는 어사중승(御史中丞)이다. 

 

어사중승은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 바로 언관(言官)이다. 간언을 하는 것이 업무내용이다. 자신이 했던 말은 완전히 씹어먹어버렸다.

 

나머지 두 친구인 석광원과 맹공위도 허위의 극을 달린다. 석광원은 조조에게 투신해서 가장 높은 관직이 농교위(農校尉)였다. 개략 지금으로 말하는 중급도시의 시장이다. 맹공위도 조조에 투신했고, 가장 높은 관직이 양주자사(凉州刺史)였다.

 

석광원과 맹공위 두 제갈량의 친구들은 공명을 좋아하지 않고 그저 세상구경이나 하며 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공명을 얻는 흐름을 따라갔단 말인가? 처음의 지향(志向)은 어디에 내팽개치고.

 

그외에 최주평은 삼고초려에서 한번 등장한 후, 그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다. 더 이상 그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