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중국의 과학

중국과학원 90여명 연구원 집단사직사태의 원인은...?

중은우시 2020. 7. 27. 22:06

글: 진사민(陳思敏)

 

중국과학원 90여명의 연구원들이 집단사직한 사건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최신 소식에 따르면, 7월 21일, 중국과학원 공식웹사이트에는 통보를 올렸다: "중앙지도자의 중요지시를 집행하기 위하여, 국무원 부총리 류허(劉鶴)가 관련상황보고를 받고, 국무원의 조사조가 조사에 개입할 것을 요구했다. 업무킴은 이미 허페이(合肥)로 가서 조사중이다." 이것은 이 사건이 이미 시진핑, 리커창까지 알려지고, 보기 드물게 류허를 보내 조사에 개입하게 한 것이라는 말이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90여명의 연구원(대부분은 박사)이 집단이직하였는데, 모두 중국과학원 허페이물질과학여구원(合肥物質科學硏究院, "허페이연구원") 핵능안전기술연구소(核能安全技術硏究所, "핵안연구소") 소속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 조사를 진행중인데, 매체와 여론은 여러가지 설들이 나돌고 있다. 최소한 3가지 포인트가 있는 것같다. 여기에서는 현재 알려진 정보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을 종합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허피에연구원의 내부투쟁? 알려진 바에 의하면, 허페이연구원의 신임 원장 류젠궈(劉建國)와 핵안연구소 소장인 우이찬(吳宜燦)간에 권력투쟁이 있었다고 한다. 류젠궈는 작년 말 금년초에 부임한 후, 대폭 권한을 회수했다(인사권과 재정권), 우이찬이 바로 그 대상이었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허페이연구원은 안후이(安徽) 허페이시 슈산구(蜀山區) 과학도(科學島)에 위치하고 있다. 과학도는 섬이 아니라, 촉산호로 뻗어나간 반도이다. 1998년 9월, 장쩌민이 이곳을 시찰하면서 "과학도"라는 글을 써주었다. 그때부터 과학도는 중국과학원 허페이연구원의 별명이 된다. 장멘헝(장쩌민의 아들)은 1999년 중국과학원 부원장이 되고, 하이테크연구소의 연구와 발전업무를 책임진다. 우이찬은 1999년 귀국한 후 허페이 과학도에 팀을 만든다. 그의 전공은 핵에너지와 핵안전에 대한 연구였다. 2011년 핵안연구소 주비위원장이 된 이후 지금까지 핵안연구소를 책임지고 있다.

 

류젠궈는 일찌기 중국과학원 안후이광학정밀기계연구소에 근부했다. 그는 일생동안 환경광학을 연구한다. 2000년 5월, 당시 중국과학원 부원장이던 장멘헝과 환보총국의 고위층과 상의한 후, 안후이광학정밀기계연구소로 하여금 국가환경감측에 필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한다. 예를 들어 베이징의 스모그와 같은 것. 2014년 4월, 류젠궈는 허페이연구원 부원장으로 가고, 2019년말에는 부원장에서 원장으로 승진한다.

 

국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명목상으로 보자면, 허페이연구원의 원장이 과학도의 '도주(島主)'이다. 그러나 우이찬이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오도주'였다. 중국과학원도 중국관료사회와 같아서, 관계가 실력보다 중요했다. 두 사람의 옛날 경력을 보면 동문출신이다. 오늘의 내부투쟁은 동실조과(同室操戈)인 셈이다.

 

둘째는 집단이직이 아니라, 집단전직이라는 것이다. 대륙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 90여명은 집단이직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우이찬에 의해 스카우트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이찬(혹은 핵안연구소)가 바깥에 설립한 회사의 휘하로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12개에 달한다. 회사의 이름부터 핵심연구프로젝트까지 모두 핵안연구소의 자원과 중복된다. 이번 집단이직한 사람중에는 많은 사람이 여러 회사의 법정대표인이다. 집단사직의 핵심원인은 아마도, 그들이 현재의 과학연구성과를 커창반에 상장시킴으로써 신속히 산업화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평론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이들 과학연구박사들은 사회경제적지위가 이미 높은데, 명리를 다 얻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다시 이권모사(以權謀私)하여 바깥에 회사를 만든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사실상 중국과학원계통은 일찌감치 '모범사례'가 있었다. <정지국(政知局)>에서 장문으로 장멘헝의 '상인'신분을 폭로한 소개자료에 따르면, 장멘헝은 1993년 1월 중국과학원 상하이야금연구소로 돌아온 후, 1997년 7월 상하이야금연구소 소장이 된다. 1994년 9월부터 상하이롄허투자(聯合投資)를 장악하고, 1999년 11월 중국과학원 부원장이 되었을 때, 이미 중국왕통(CNC), 상하이자동차공업(집단)공사, 상하이공항집단공사등 단위의 동사가 된다.

 

셋째, 중국과학원 핵에너지연구문제이다. 보도에 따르면, 핵에너지계에서는 눈길을 중국과학원 핵안연구소의 신형핵반응로의 연구방향에 쏟고 있다. 그리고 전체 업계의 포지션상 핵안연구소가 연구개발하는 "납냉각로", 해당연구소에서 통상 부르는 이름으로는 "핵전보(核電寶)"기술이다 .일찌기 매체에서 널리 소개된 바 있다.

 

2016년 9월, CCTV는 <중국과학원: 세계최초의 미니 '핵전보'를 내놓을 것이다>를 방송한다. 중국과학원은 같은 해 10월 공식글에서 우이찬이 '기린1호(麒麟1號)'외에 해당탬은 5년가량의 시간을 들여 미니소형반응로의 건설을 완성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를 '기린호핵전보'라고 이름지었다. 지금 핵전보에 관한 정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보도는 핵전보도 이전에 선전한 적이 있는 여러 자주개발시스템과 마찬가지로 흐지부지된 것이냐고 의문을 표시한다.

 

주목할 점은 중국과학원이 2011년 소위 '미래선진핵분열변환에너지" 전략적 선도과학기술프로젝트에 대하여 2가지 안배를 한다. 우이찬으로 하여금 핵안연구소를 만들게 하는 외에, 다시 토륨용융염원자로(TMSR)프로젝트를 재개한다. 이를 위해 중국과학원은 "핵창원(核創院)"을 만들어 상하이응용물리연구소, 상하이과기대학과 연합하게 하며, 장멘헝이 고문을 맡는다. 2017년에는 깐수 우웨이(武威)에 부지를 정해 2020년에 실험로를 완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8년 핵프로젝트의 기초공사를 할 때, "도사를 불러서 살아있는 양으로 법슐을 행해 기복행사를 벌였다"는 추문에 휩싸이고, 또한 투자금액이 220억위안에 이른다는 것이 폭로된다.

 

금년이래 중국과학원의 각지방 분지기구는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상하이연구소, 쿤밍연구소, 허페이연구원까지 속속 미녀소장, 상호비방, 거짓말, 조작, 표절, 집단이직등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그저 현재의 문제이지만, 실제는 역사가 남긴 문제이다. 전 중국과학원 원장 루용상(路甬祥, 1997.7-2011.2)의 최대 '공로'는 장멘헝을 통하여 거액의 경비를 얻어낸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과학원은 돈이 많아지니 힘도 커졌다. 연구원들은 명리를 중시하고 연구를 경시한다. 2014년 순시조의 조사결과 중국과학원의 과학연구경비에 '헛점'문제가 비교적 두드러졌다고 보고했다.

 

시진핑은 '과기흥국(科技興國)'을 내세운다. 중국과학원은 전국의 핵심과학연구기관이다. 중앙재정에서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붓는 과학연구기관이다. 알려진바에 따르면 전국이 경비를 줄이는 와중에 금년 중국과학원의 예산은 905억위안이 넘는다고 한다. 이는 청화대학의 3배이다. 현재 허페이연구원에서 근 100명의 연구원이 집단이직한 것이 폭로된 후, 2명의 책임자인 류젠궈와 우이찬은 모두 "가공제사(假公濟私), 이권모사(以權謀私)"한 혐의가 있다고 알려졌다. 특히 우이찬은 커창반 IPO로 부호가 되려 했었던 것같다. 권한이 축소되자 아예 '금선탈각(金蟬脫殼)'한 것일까? 만일 이런 우이찬이 2019년에도 여전히 중국과학원 원사에 당선되었는데, 배후에 누가 있을까? 중국과학원의 각지방 분지기구의 경비부패는 얼마나 놀라운 정도일까? 아마도 이것들이 바로 류허로 하여금 조사하게 한 깊은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