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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시진핑이 말한 "도화원중인(桃花源中人)"의 의미는....?

by 중은우시 2020. 1. 13.

글: 왕혁(王赫)


1월 8일, 중국공산당은 "불망초심(不忘初心), 뇌기사명(牢記使命)"주제의 교육총결대회를 소집개최했다. 시진핑은 연설에서 전체 당에 이런 말을 했다: "여시구진(與時俱進)해야 하며, '부지유한(不知有漢), 무론위진(無論魏晉)'의 도화원중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진핑이 여기에서 인용한 '도화원중인'이라는 말은 완전히 이 단어를 잘못해석하고, 오용한 것이다. 당연히 이는 시진핑의 잘못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중공당사에서 특정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모택동, 등소평도 모두 사용한 바 있고, 시진핑도 따라서 쓴 것이다.


시진핑은 연설때 고어(古語)를 쓰기 좋아한다. 중화전통문화는 찬란하고 휘황하며, 모든 중화자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중화문화와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 시진피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시진핑은 홍기(紅旗) 아래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당문화'의 침음을 벗어날 수 없다. 중국공산당이 선전하는 '당문화'는 중화전통문화에 대한 시스템적인 파괴, 찬개(纂改) 및 난해(亂解)이다. 시진핑 자신도 피해자이다.


예를 들어, 2012년 12월 26일, 취임초기의 시진핑은 군대에서의 중요회의에 참가하여 3가지 일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5천년의 우수한 문화를 버려서는 안되고, 선배들이 확립한 정확한 정치제도를 망쳐서는 안되며, 선조가 남겨준 영토를 줄여서도 안된다.


다만, 시진핑은 '3가지 일'의 내재적인 모순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첫째, '선배들이 확립한 정확한 정치제도'는 서구에서 온 유령이 중국에 강제한 것이다. '오천년우수문화'의 지탱을 받지 못할 뿐아니라, 서로 대립한다; 둘째, '선조가 남겨준 영토를 줄여서도 안된다'는 말은 바로 중국공산당의 '선배'들이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 상당히 줄여버렸다는 것이다(여러분이 스스로 청나라의 중국지도와 중화민국지도와 당금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도를 비교해보면 일목요연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중화전통문화와 당문화는 절대적으로 배척하고, 절대적으로 겸용할 수 없다. 본문에서는 '부지유한, 무론위진'의 도화원중인이라는 말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한다.


1959년 여산회의 전날(팽덕회는 바로 이 회의에서 타도되었다), "냉안향양간세계(冷眼向洋看世界)"의 모택동이 <칠률.등여산>을 지었는데, 이 시의 마지막연은 "도령부지하처거(陶令不知何處去), 도화원리가경전(桃花源裏可耕田)" 그 뜻은 오로지 모택동 치하의 사회주의중국이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진정 사람들이 도화원으로 가는 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대약진의 '열풍취우쇄강천(熱風吹雨灑江天)"으로 수천만명이 아사한 3년대기근이 이미 시작되었다. 인류역사상 이보다 더욱 광망하고, 황당하고 사악하며 암흑인 경우가 있었던가? 그러나, '세외도원'은 당문화에 의해 '일종의 공상속의 현실을 벗어난 아름다운 세계'라고 정의된다.


그후, 1975년 11월, 모택동은 등소평에게 회의를 주재하여 '문혁'을 긍정하는 결의를 하도록 지시한다. 등소평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도화원중인이다. '부지유한, 무론위진' 내가 주재하여 이런 결의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기실 등소평은 문혁초기에 이미 타도, 하방되었으며, 일신에 시비로 얼룩지고, 한 마음으로 다시 복귀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 '도화원중인'일까? 모택동에게 반성문을 써서 내든, 아니면 문혁을 긍정하는 회의주재를 거절한 것이든 모두 등소평의 정치수완이다. 다만, '도화원중인'은 당문화에서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이상이 바로 시진핑이 인용한 '도화원중인이라는 단어의 당문화적인 연원이다. 모두 다른 의도를 가지고 왜곡했던 것이다.


'도화원중인'은 동진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에 나오며, 확실히 아주 유명한 말이고 영향이 아주 크다. 다만, 중화전통문화에서의 의미는 당문화의 정의와 전혀 다르다.


도화원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부지유한, 무로뉘진'이라는 여덟글자가 중요하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한나라는 2500년중국역사상 3대성세왕조의 하나이다. 문치무공으로 위명을 널리 떨쳤다; 위진시기는 한나라에 비견할 수 없다. 다만 삼국풍류, 위진풍도가 있어 또 다른 풍모가 있다. 그러나, 이 두 역사시기는 '도화원중인'의 눈에 모두 별 것이 아니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중국고인은 더욱 높고 장기적인 정치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공자가 말한 '대동(大同)' "소강(小康)'사회이다. (여기의 소강은 중공이 말하는 그 소강이 아니다)


중화경전 <예기.예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대동'사회는 '대도지행야(大道之行也), 천하위공(天下爲公)이다." 이 사회에서는 "노유소종(老有所終), 장유소용(壯有所用), 유유소장(幼有所長), 환과고독폐질자개유소양(鰥寡孤獨廢疾者皆有所養)"이다. 이는 대체로 중화역사상 '삼황오제'의 시기를 가리킨다.


그후, '지금 대도는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으며, 천하는 집안의 것이 되어 버렸다(大道旣隱, 天下爲家)", "하우, 성탕, 주문왕, 주무왕, 주성왕, 주공은 삼대제왕중 걸출한 인물이다. 예의 에 따라서 그중 선발한 것이다. 이 여섯며의 걸출한 인물은 예의에서 진지하게 대하지 않은 적이 없고, 예의로 백성들이 옳은 일을 하면 표창했고, 예의로서 백성들이 신의를 지키는 것을 완성키켰고, 그들이 잘못한 일을 들추어서 인의로 처리하고, 예양을 제창했다. 예의로 사람들이 고정된 규범을 지키도록 하였다. 만일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직위가 있는 사람은 파면하고 백성들은 이를 해로 보았다. 이것을 가리켜 '소강'이라고 한다.


중화문화에서 '소강'은 비록 '가천하'이지만 '대동'도 일백상통한다. 이 전승은 바로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다. 요는 순에게 전하고, 순은 우에게 전하고, 우는 탕에게 전하고, 문왕, 무왕, 주공에서 공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공자에서 맹자까지, 이것이 바로 중국역사상 저명한 '도통(道統)'이다. 중국역대제왕의 통치의 합법성을 결정한다. 중국역사상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때 강희제가 황자를 교육하면서 여전히 이 도통을 강조한다. 즉 <상서.대우막>의 16글자이다: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厥中)"


공자이래, '대동'이라는 것은 중국인들의 최고이상이었다. 손중산선생까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중화전통문화의 의미로 보자면, '도화원'은 기실 '대동'사회의 문학적 표현이다.


중산선생이 가장 즐겨쓴 문구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이다. 1924년, 손중산 선생은 <심민주의>에서 제출된다: "진정한 삼민주의는 공자가 바라던 대동사회이다." 중산선생은 믿음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는 이상속의 미래사회는 구미자본주의경제의 번영이지, 구미자본주의발전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각종 폐단이나 계급투쟁과 사회동탕이 아니었다.


근대중국의 힘겨운 탐색, 해진은 손중산 선생에 이르러, 마땅히 민족부흥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산주의유령이 세상에 나타났고, 중국공산당이 나라를 차지한다. 중국역사발전의 정상적인 궤도는 중단되고 중국은 암흑시기로 접어든다.


중화문화에 대한 생래적인 사랑과 '당문화'의 독해에 오염된 것은 시진핑 사상에서의 모순점이다. 시진핑의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을 저해하고, 시진핑의 집정을 제약하며, 시진핑으로 하여금 사상적 근원에서 곤경에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