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모수자천의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국시대 조효성왕(趙孝成王) 9년 진(秦)나라군대가 조(趙)나라를 공격한다. 조왕은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에게 초(楚)나라로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라고 명령한다. 평원군의 문객(門客)인 모수는 스스로 나서서 평원군을 따라나선다. 평원군이 초왕과 하루종일 담판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러자, 모수는 보검을 손에 쥐고 궁전으로 걸어올라가, 이해관계를 설명했고, 결국 초왕을 설득하여 출병하게 되고, 초나라와 조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의 시작만 알고 있지, 모수의 최후에 대하여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역사상의 모수는 모수자천의 다음해에 자살한다. 그건 무엇때문이었을까?
기원전256년, 연(燕)나라는 호시탐탐 조나라가 대비하고 있지 않는 틈을 타서 연나라에서 가장 잘 싸우는 장군인 율복(栗腹)을 파견하여 조나라를 공격하려고 한다. 이처럼 강력한 적수를 맞이하여 조왕은 누구를 보내어 응전하게 해야할까? 조왕은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 자천해서 초나라로 갔던 모수를 떠올린다. 그는 모수를 총사령관으로 삼야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연나라와 싸우도록 한다. 모수는 그 소식을 듣고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른다. 그는 황급히 조왕을 찾아간다.
그러나, 모수가 이번에 찾아간 것은 자신이 나서서 싸우겠다고 자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조왕에게 이번 임무를 사양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조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목숨을 탐하며 죽음을 겁내는 자는 아닙니다. 저는 말재주는 있지만, 병력을 이끌고 전투를 하는 실력은 없습니다. 제가 갑옷을 입고 말을 끄는 병졸이 될 수는 있지만, 군대를 지휘할 능력은 없습니다."
모수가 이번에 사양하기 위해서 한 말은 간결하고 뜻이 명확했다. 그러나, 조왕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작년에 대담하게 스스로를 추천했던 그대는 인격도 고상하고, 재능도 넘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실력을 펼칠 기회가 왔는데, 그대의 태도는 어찌 수줍어하는 어린 여자같단 말인가?" 그러자 모수가 신속히 대답한다: "모든 사람은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말을 타고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도 쥐새끼를 잡을 능력은 없을 수 있습니다. 저는 비록 말을 잘하는 쪽으로는 내주가 있지만, 병력을 이끌고 싸우는 것은 제가 잘하는 분야가 아닙니다. 저는 국가의 안위를 가지고 함부로 제가 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조왕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는 모수에게 구현약갈(求賢若渴)과 같이 큰 기대를 표시했고, 억지로 그에게 총사령관의 직위를 맡긴다.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에게 갑자기 창을 들고 싸우라고 하면 그건 스스로 욕을 보는 일이다. 모수는 비록 조왕의 중임을 맡았지만, 전쟁터에서 싸우는데는 연나라의 백전노장의 장수는 그와 같이 아무런 경험도 없는 군사와 비교할 때 천양지차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투에서 일패도지한다. 누가 생각을 했으랴. 조왕이 그렇게 띄워주던 인물이 오늘날 이렇게 낭패한 처지에 이르게 될 줄을. 모수는 스스로 국가와 윗사람을 볼 면목이 없다고 여긴다. 자살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깊은 산속의 숲으로 들어가 검을 빼어들고 자결한다.
이렇게 하여 짧은 1년의 기간동안 외교재능이 풍부하고, 사신으로 나서서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인물이, 순식간에 인생의 전성기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목숨을 잃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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