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예진황후(睿眞皇后) 심씨(沈氏): 당나라의 3대황제가 수십년간 찾았으나 찾지 못한...

중은우시 2019. 1. 7. 23:56

글: 사문정품(史文精品)


자식이 모친을 사랑하는 것은 인류의 본능이다. 제왕이라고 하더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예진황후 심씨는 당나라의 제9대황제 당덕종(唐德宗)의 생모이다. 안사의 난때 심씨는 난군의 공격에 갇혀 있다가 결국 행방불명된다. 당덕종이 즉위한 후, 그는 전국에 그녀를 찾기 위한 활동을 벌이며, 반드시 모친을 찾겠다고 맹세한다.


심씨는 오흥(吳興)사람이고, 양가집 출신이다. 개원(開元)연간에 심씨는 동궁(東宮)에 들어가서 궁녀가 된다. 태자 이형(李亨)은 심씨가 매우 예쁘고 온유하며 단정한 것을 보고 그녀를 자신의 아들인 이예(李豫)에게 하사한다. 심씨를 이예는 극히 총애한다. 두 사람은 금방 아들을 하나 낳는데, 바로 미래의 당덕종인 이적(李適)이다.


그후 안사의 난이 발발하고, 장안성이 반군에게 함락된다. 심씨는 여러 도망치지 못한 황친국척과 함께, 반군에게 붙잡혀, 낙양으로 끌려간다. 1년여 갇혀 있다가, 이예가 동도 낙양을 수복하면서, 심씨는 풀려날 수 있었고, 부부는 다시 만났다. 그러나 이예는 무슨 일 때문인지, 심씨의 명분을 제대로 인정해주지도 않고, 그녀를 장안으로 맞이해 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낙양에 그냥 머무르게 한다. 1년후, 사사명이 반군을 이끌고 권토중래하고, 다시 한번 낙양이 함락된다. 그리고 심씨는 이번에도 적의 손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심씨가 정말 실종되었다. 아무도 그녀의 소식을 알지 못하게 된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안사의 난이 평정되고, 이적은 황태자가 된다. 황태자의 모친을 찾아주기 위하여, 당대종(唐代宗) 이예는 천하에 조령을 내려 심씨의 행방을 찾고자 한다. 동시에 당대종은 사람을 전국각지로 보내어 찾아본다. 10여년간 찾아봤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 동안에 많은 사람이 자칭 황태자의 생모라고 나타났지만, 결국은 모두 가짜라는게 밝혀진다.


대업14년(779년), 당대종이 붕어하고, 태자 이적이 즉위하니, 그가 당덕종이다. 다음 해, 모친을 그리워하던 당덕종은 심씨를 "예진황태후"로 모시고, 함원전(含元殿)에 "구책(具冊)", "입패(立牌)", "상황후조복(上皇后朝服)"하고, 모친이 아직 입어보지도 못한 조복을 바라보며, 당덕종은 책문을 들고 통곡했다. 그는 자신의 성의가 하늘에 닿아, 모친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외가에 대거 봉상을 내린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모두 높은 작위를 받았고, 심씨중 작위를 받은 사람이 백여명에 달했다.


781년, 낙양에서 돌연 소식이 전해진다. 황태후 심씨를 찾았다는 것이다. 당덕종은 기쁜 나머지 즉시 '모친'을 장안으로 모셔오게 한다. 그러나 당덕종은 그래도 조심을 한다. 어쨌든 자신은 여러번 가짜에게 속았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 심씨가 또 다른 가짜가 아니라고 보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노태감, 노궁녀들이 확인을 해봤는데 모두 이 여자가 확실히 황제의 생모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녀는 심씨와 나이가 비슷했을 뿐아니라, 왼손에 칼에 다친 상처가 있었다. 당덕종이 어렸을 때, 심씨는 직접 아들을 위해 육포를 자르다가 실수로 손가락을 베인 적이 있었다. 이것은 당덕종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제 당덕종은 자신이 모친을 찾았다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그는 궁녀 백여명을 보내어, 어거(御車)로 '심씨"를 상양궁(上陽宮)에 모신다. 거기서 말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안배한다. 동시에 당덕종은 천하에 이 좋은 소식을 선포한다. 신하들도 모두 와서 축하했고, 전체 장안성은 들썩였다. 이런 기쁜 분위기 속에서 한 사람은 멀리서 불안하게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당현종(唐玄宗)의 심복환관 고역사(高力士)의 동생 고승열(高承悅)이었다.


처음부터, 고승열은 상양궁에 앉아 있는 그 심씨가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이 여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고역사의 양녀인 고씨(高氏)였기 때문이다. 고씨는 어려서부터 궁궐을 출입했고, 궁정의 비밀스런 일들도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었다. 심씨에 관한 일도 고씨는 자연히 잘 알고 있었다. 고승열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양질녀가 이렇게 대담하게 감히 태후를 사칭할 줄은. 그런데, 이건 멸족의 죄이다.


고승열이 보기에, 고씨의 사기극은 언젠가 들통날 터였다. 만일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면, 고씨일족은 죽어도 묻힐 곳이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정한다. 차라리 자신이 이 양질녀의 사기극을 고발하는게 낫겠다고. 그리하여 고승열은 친히 당덕종을 배알하고, 이 일을 모조리 털어놓는다. 고승열의 말을 다 듣고난 후, 당덕종은 깜짝 놀란다.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모친도 또 가짜였단 말인가. 냉정하게 생각한 후에 당덕종은 고역사의 양손(養孫) 번경초(樊景超)를 상양궁으로 보내어, 이 가짜 황태후를 배알하게한다.


번경초는 대전에 들어선 후, 태후의 자리에 앉아 있는 고씨르 ㄹ본다. 그리하여 번경초는 태후에게 고함을 지른다: "고모는 왜 스스로를 도마 위에 올려놓습니까?" 좌우시위가 그의 말을 듣자 바로 소리친다: "대담하다! 감히 성가에 그런 말을 하다니 죽고 싶은가?" 번경초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조서를 끄집어 내며 말한다: "나는 황제의 조서가 있다. 이 태후는 가짜이다. 너희는 모두 물러나라." 가짜태후는 이 광경을 보자 하마터면 놀라서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한다. 그녀는 급히 말한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정말 태후를 사칭하고 싶지 않았다."


고씨의 기만행위에 대하여, 백성들과 신하들도 크게 분노한다. 그들은 속속 당덕종에게 상소를 올려, 혹형으로 이 가짜황태후를 처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해자인 당덕종은 이렇게 명한다: "이 여자를 사면한다. 책임을 추궁하지 말라. 우거(牛車)에 태워 고씨를 집에 돌려보내주어라" 그 후, 당덕종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좌우의 시종에게 말한다: "진정한 생모만 찾을 수 있다면, 나는 백번 속더라도 상관없다." 황제의 비통한 말을 듣고, 시종들은 속속 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해 마지 않았다.


원래 전설이야기라면, 천신만고끝에 당덕종은 생모와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일가족이 만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러나 진실한 역사는 아주 잔혹했다. 당덕종이 죽을 때까지 진정한 심태후는 나타나지 않는다. 당덕종이 죽은 후, 아들 당순종(唐順宗)이 즉위한다. 이때는 심씨를 찾는 일이 벌써 수십년간 지속된 때였다. 그래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리하여 누군가 수색업무를 중단할 것을 건의한다. 결국, 당순종은 조서를 내려 심태후를 장례지낸다. 태황태후의 존호를 올리고, 의관총을 만들고, 대종묘에 신위를 세운다.


심씨는 당나라의 3대 황제가 모두 찾았지만 결국은 찾지 못한 여인이다. 그녀의 행방은 천고의 수수께끼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