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원)

코케테무르(擴廓帖木兒): 주원장이 칭찬한 기남자(奇男子)

by 중은우시 2018. 2. 22.

글: 백과두조(百科頭條)


역사상 기인은 수도 없이 많다. 이 글에서 소개할 사람은 주원장이 '기남자'라고 칭찬했던 인물이다. 그는 왕보보(王保保)이다. 만일 이 이름이 낯설다면, 이렇게 말해보겠다. 조민(趙敏)이 오빠이다. 그러면 아마도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김용의 <의천도룡기>를 본 사람이라면 조민에게 오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바로 왕보보이다. 비록 소설에서는 겨우 3번 나올 뿐이고, 조연에 불과하지만 진실한 역사에서의 그는 지명도가 상당히 높고, 종합적인 실력이 아주 강한 맹장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왕보보의 부친은 한족(漢族)이고 모친은 몽골족이다. 어려서부터 외숙인 차칸테무르(察罕帖木兒)의 양자가 되고, 나중에 원순제(元順帝)로부터 코케테무르(擴廓帖木兒)라는 몽골이름을 하사받는다.


원나라말기에 대규모로 홍건적(紅巾賊)의 난이 일어난다. 차칸테무르와 코케테무르는 원나라 장수로서 자연히 홍건적을 진압하는 전투에 나서게 된다.


1352년, 원나라귀족인 차칸테무르는 군대를 조직하여, 중원을 전전하고, 왕보보는 양부를 따라 중원의 홍건적을 격파한다. 전후로 관중, 산동 등지의 홍건적을 평정하여, "멸적기진(滅賊幾盡)"의 상태가 된다. 그러나 차칸테무르는 익도(益都)를 포위공격하는 도중에 반란을 일으킨 장수 왕사성(王士誠)에게 피살당한다.


그리하여 군대에서는 왕보보를 추대하여 양부를 대신하여 군권을 맡게 한다. 결국 왕보보의 뛰어난 지휘하에 익도를 함락시키고, 반란장수를 생포한다. 그 후에 군대를 이끌고 북방지역의 홍건적을 철저히 평정한다. 그리하여 왕보보는 원나라조정으로부터 상을 받는다.


명나라는 계속하여 왕보보를 심복대환(心腹大患)으로 여긴다. 주원장은 더더욱, "왕보보는 교활하고 간사하여, 그를 살려두면, 반드시 도적이 될 것이다. 그를 취하여 영원히 사막을 정리하는 편이 낫다." 홍무5년, 주원장은 15만대군을 보내어 병력을 3로로 나누어 북원(北元)의 잔당을 일거에 소멸시키고자 한다. 기세등등하게 밀려오는 명나라대군을 맞이하면서, 왕보보는 침착하게 응전하고 병력을 잘 배치시킨다.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명군을 화림으로 유인하여, 왕보보와 수하대장 하종철(賀宗哲)이 이일대로(以逸待勞)로 명군을 대파하고 만여명을 참수한다.


이 전투는 명군에 중대한 타격을 입한다. 주원장의 마음 속에 큰 그림자로 드리운다. 한번은 주원장이 여러 신하들과 천하제일기남자를 논하면서, 신하들에게 물어보니, 신하들은 대장 상우춘(常遇春)을 언급했다. 그러자 주원장이 탄식하며 이렇게 말한다: "상우춘이 비록 능력이 있지만, 내가 얻어서 그를 신하로 삼았다. 그러나 왕보보는 신하로 삼지 못했으니 정말 천하의 기남자라고 할 수 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왕보보는 1375년 팔월에 하라나하이(哈剌那海)의 아정(衙庭)에서 사망한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1376년 십월에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학자들은 이렇게 추측한다. 아마도 명나라의 사관들이 원조실록을 편찬하면서 코케테무르가 사망한 시간을 잘못 기록한 것같다는 것이다. 다만, 1376년이후에는 더 이상 코케테무르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비추어보면 그는 1375년 혹은 1376년에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


<명태조실록>에는 "홍무팔년팔월, 원나라장수 왕보보가 졸(卒)하다"라고 기록했다. 사학자들은 이 '졸'이라는 글자에서 코케테무르가 자연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이 현재 사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