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화/중국의 UFO

맹조국사건: 그는 외계인과 성관계를 가졌을까?

by 중은우시 2018. 2. 16.

글: 살사(薩沙)


1994년 맹조국(孟照國)이 외계인과 접촉한 사건은 중국UFO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맹조국은 이로 인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그만 UFO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만이 외계인과 직접 접촉했다. 이는 소위 "제3류접촉"이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이미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큰 논쟁거리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1994년 27살의 맹조국은 흑룡강성 오상시 산사둔임업국 홍기임장(紅旗林場)의 보통농민이었다. 그는 신체가 건장하고, 농사로 생계를 영위했으며, 괜찮게 사는 편이었다. 맹조국은 결혼한지 여러 해가 되었고, 처인 강령(姜玲)은 순박한 농촌부녀이다. 그녀는 그보다 1살이 많았다. 두 사람은 귀여운 딸 헌연(憲娟)을 두었는데, 당시는 겨우 6살이었고, 막 소학교에 입학했었다. 임장에서도 맹조국의 집은 괜찮게 사는 편이었다.


임장의 동료들에 따르면 맹조국은 충후하고 성실했으며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홍기임장은 봉황산(鳳凰山)에 있는데, 이곳은 장백산맥의 장광재령(張廣才嶺)의 한 산봉우리이다. 봉환산은 원시삼림지구에 속하며, 교통이 막혀 있어서 세상과 단절되어 있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여러해가 지난 후의 봉황산 선전자료를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산은 길게 이어진 삼림에 암석이 기이하고 뾰족하며, 관목이 자라고, 기화이초가 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1980년대이후, 개혁개방으로 벌목량이 급증하며 근처의 산에는 임목이 점점 적어진다. 심산의 수림에 있는 나무는 인근 성인 길림성의 관할이어서 채벌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삼림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개혁개방의 조류에서 머리를 굴려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어 낸다. 산에 올라가서 산나물과 한약재를 구해서 파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집안의 수입을 늘였다.


5월, 6월, 이때는 산나물이 많이 나는 계절이다. 그 중에는 미채(薇菜, 고비)라는 것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노우광(老牛廣)이라고 부르며 가공을 거쳐 1근에 수십위안의 가격으로 판매한다. 이는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대자연이 준 선물인 셈이다.


나중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찌기 1994년 5월말, 봉황산 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나물과 약재를 캐러 왔는데, 이들은 모두 발견했다. 남쪽언덕에 정체불명물체가 머물고 있는 것을. "그것은 약간 큰 거울을 밖에 달고 있는 것같았다. 햇빛이 비치면 빛이 났다." 임장은 바깥의 소식을 모르고, 농민들은 무슨 학식도 없다. 맹조국처럼 소학교를 다닌 것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


많은 사람들은 기괴한 물건을 봤지만, 아무도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을 누군가가 언덕에 만들어놓은 비닐하우스라고 여겼고, 어떤 사람든 이것을 얼음이 덮인 것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며칠 전에 우박이 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6월 6일, 맹조국도 이 물체를 봤다. 마찬가지로 무슨 괴물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무슨 추락한 기상기구(氣球)같은 것으로 여겼다. 이전에 산 속에서 맹조국은 기구의 잔해를 본 적이 있다. 기구는 대량의 알루미늄재질고 다른 재료로 만들어 졌고, 비교적 돈이 되었다. 그래서 맹조국은 질녀사위인 이홍해(李洪海)를 부른다.


두 사람은 기구를 해체할 수 있는 칼, 드라이버등의 도구를 준비해서 보행으로 수십리를 걸어 기구가 추락한 곳으로 간다. 맹조국과 이홍해는 남쪽언덕의 한 돌무더기가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추락물체가 분명하게 보였다. 아주 큰 백색물체였다. 두 사람은 그 물체에서 300미터지점까지 접근했다. 맹조국은 그제서야 기구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맹조국은 이렇게 회고한다: 그 물체에서 개략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인데, 나에게 직접적인 인상은 산언덕의 돌무더기 안에 꼽혀 있는 것같았다. 아래에는 이런 기둥이 있었고, 아래의 돌맹이 위에 닿아 있었다. 뒤에는 이렇게 반원형의 꼬리가 있었다. 창문도 없고, 빛나고 매끄러운 물건이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준 느낌은 마치 철분으로 칠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홍해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것을 비행기라고 하자면 비행기같지 않았다. 아주 큰 물건인데, 산의 암석정상을 기어올라갔고, 전체 산 암석을 덮었다.


담량이 비교적 큰 맹조국은 이 물체에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이 올챙이같은게 도대체 뭔지 보고 싶었다.


그렇게, 맹조국은 조심스럽게 그 물체를 향하여 다가갔다. 맹조국이 약 150미터 가까이 접근했을 때, 그는 물체에서 돌연 날카로운 경보음이 났던 것을 기억한다.


맹조국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놀라서 바닥에 납작 업드린다. 그 후에 그는 일어났고, 황급히 이홍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적지 않게 놀란 맹조국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자신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몇 분이 지난 후, 맹조국은 그래도 도대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두려움을 크게 느낀 이홍해는 그를 말렸다. 그러나 맹조국은 듣지 않았다. 그는 원래 갔더 ㄴ길로 다시 150미터 가량 되는 지점까지 다가간다. 물체는 다시 경보음을 울렸는데, 5초간 울리고 3초간 멈추는 듣기 좋은 경보음이었다.


맹조국은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일종의 무엇인지 모른 것이 솨악 하고 오는 느낌이었다. 내 말로 하자면 전기가 통한 것같았다. 나는 220볼트에 감전되어 본 적이 있어서 감전되는 느낌을 안다. 나는 급히 되돌아왔고, 되돌아온 후에는 힘이 없었다. 마치 허공을 밟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정신이 멍해 있을 때, 나는 마치 누군가가 돌맹이더미 위를 걷고, 돌을 밟는 소리가 났는데, 마치 물이 흐르는 것같았다. 바로 이 때 그 물체에서 경적같은 소리가 났다. 어떤 차량의 경적이 망가졌을 때 나는 그런 소리와 유사했다. 그것이 이런 소리를 내니 나는 확실히 깜짝 놀랐고, 급히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아래로 500미터를 내려갔다. 두 사람은 다시 담배를 급히 피웠다. 이홍해는 일이 생기는게 겁이나서 맹조국에게 다시 가지 못하게 한다. 맹조국은 호기심이 너무 강렬해서 거기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가 각도를 바꾸어서 다른 방향에서 그 물체로 다가갔다. 그러나, 약 150미터가량 접근했을 때 다시 경보가 울리고, 철기에서 더욱 강력한 전기충격느낌이 들었다.


맹조국은 이렇게 회고한다: 이번에는 확실히 전기에 감전된 느낌이었다. 아주 명확했다. 먼저 내 시계. 나는 시계를 차고 있었고, 칼을 가지고 있었고, 앞가슴에는 산나무를 캐는 작은칼을 꽂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등에는 자루를 메고 있었고, 그 안에는 펜치와 스패너가 들어 있었는데, 불에 타는 느낌이었다.


맹조국은 이것이 그 물체가 그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여겨서,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는 이홍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고, 두 사람은 황급히 산을 내려온다.


돌아오는 길에 이홍해, 맹조국은 역겨움을 느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두 사람은 가족들에게 자신들이 봉황산에서 겪은 기이한 일을 이야기한다. 이홍해는 사람됨이 내성적이어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모두가 상대적으로 말을 잘하는 맹조국에게 달려간다. 맹조국은 자기가 본 물체를 마를사람들에게 얘기해준다.


자그마한 임장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어서 평소라면 사람들이 TV나 보고 별다른 오학활동은 없었다. 이번에 맹조국이 산에서 괴물을 보았다고 하자, 임장은 떠들썩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가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보고 싶어 했다. 소식은 임장의 공회(노동조합) 주석인 주영(周潁)의 귀에도 들어간다. 주영은 즉시 맹조국에게 상황을 물어보고, 임장의 또 다른 직원인 풍소파(馮少波)도 6월 4일 봉황산 남쪽언덕을 지나다가 백색물체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조직하여 현지조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6월 9일, 아침 7시경, 홍기임장의 직원은 공회주석 주영이 일행 30여명을 이끌고 맹조국이 안내하며, 음식과 망원경(7배), 카메라등을 들고 봉황산 남쪽언덕으로 출발한다. 그들은 먼저 벌목용의 작은 기차를 타고 40여리를 가고, 다시 도보로 20리를 가서 비로소 그 물체가 착륙한 곳에 도착한다.


작은 기차에서 내린 후, 30여명은 잡담을 하면서 몇 조로 나누어 출발한다. 맹조국은 대오의 중간에 위치했다.


그 백색괴물이 착륙한 자리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호기심이 큰 젊은이는 더 참지 못하고, 망원경을 들어서 살펴본다. 먼저 두 청연 강사걸(姜士傑)과 사보신(史寶臣)이 망원경으로 보는데 둘 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망원경이 세번째로 맹조국의 손에 전달되었을 때, 아주 큰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 그는 두 손으로 망원경을 들고, 봉황산 남쪽언덕의 암석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그다 2,3초간 찾은 후 즉시 말한다: "보인다!" 목소리가 막 떨어지자마자, 머리를 맞은 것처럼 풀이 가득 나 있는 땅바닥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된다. 현장에 같이 왔던 동료들은 모두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른다. 땅바닥에 쓰러진 맹조국은 입에 풀이 ㅏ득하고, 두 손으로는 풀을 꽉 잡고 있으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즉시 응급구조조치를 취한다. 누군가 급히 앞으로 걸어가던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누군가는 맹조국을 등에 업고 100미터가량 떨어진 비닐가설건물안으로 달려가서 그를 보살핀다.


다른 사람들은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반드시 산으로 가서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를 봐야 했다. 일찌기 백색물체를 목격한 바 있는 풍소파가 이끌고 10며영은 적극적으로 산을 올라갔다.


그들은 맹조국이 말한 소위 백색올챙이는 보지 못했지만, 약간의 기괴한 물건을 본다.


착륙지점 부근의 어지러운 돌무더기 속에서, 뒤집어진 큰 돌과 눌려서 부서진 돌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임장에서는 본 적이 없는 오색의 비닐도 보게 된다.


한 젊은이는 암석에 불에 탄 흔적, 심지어 불에타서 갈라진 흔적을 발견한다. 곁에 있는 숲속의 나무도 모두 노랗게 되거나 심지어 검게 되는 이상현상이 있었다.


그외에 20여명은 맹조국에 대한 구조조치를 취한다. 먼저 그를 인근 100미터 지점의 비닐가설건물로 데려가고, 4,5명이 맹조국을 누르고 있었다. 이때 맹조국은 히스테리증세를 보였다. 그는 입으로 거품을 물고, 죽어라 발버둥을 쳤다. 맹조국은 전신이 거꾸로 서고, 발로 지붕을 걷어찼다. 임장의 단위서기인 이문학(李文學)이 급히 다가가서 맹조국을 끌어안았다.


얼마 후, 홍기임장 위생소의 소장인 의사 임휘(林輝)가 도착한다. 당시 맹조국은 몸이 비틀리고, 햇볕을 본 후에는 "빛!"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하여 누군가 모자와 우경산(牛景山)의 검은색 상의로 맹조국의 머리를 덮었고, 그를 들고 하산한다.


맹조국의 모습은 두 눈이 넋을 잃고 있었고, 빛을 겁내고, 철기를 겁냈다. 다른 사람이 그가 떨군 시계를 찾아서 돌아왔을때 맹조국은 쇠를 두려워하여 시계를 던져버린다.


이때 맹조국은 말을 하지 못했고, 혀가 굳어 있었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있었다.


맹조국이 고의로 미친 척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임휘는 담뱃불을 맹조국의 눈 가까이 가져간다. 맹조국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눈썹을 깜박이지도 않았다.


오후에, 맹조국은 몸을 일으켜서 걸을 수 있었고, 비로소 이웃 맹경해(孟慶海)와 여러 사람들이 부축해서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이웃사람들이 문안을 온다. 오후 약4시경, 임장의 총책임자가 위문품을 가지고 맹조국을 문안하러 온다. 맹조국은 당시에 반응이 매우 느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맹조국은 사건발생전에는 원래 이렇지 않았다고 한다. 성격이 활발하고 움직이기 좋아하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몸은 아주 건장했고, 병을 앓은 적도 없었다.


다음 날, 맹조국은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집밖으로 나가서 홍기임장(약 1리가량 떨어져 있음)의 소매부까지 다녀온다. 당시 정신이 몽롱했고, 기억은 불분명했으며, 발생한 일은 마치 몇년전의 일같았다.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면, 맹조국은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 걸어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맹조국이 바보가 되었다. 그는 이제 끝났다."고까지 말한다.


이렇게 7월 16일까지 1개월여동안 맹조국에게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쇠를 무서워하고, 빛을 겁내며, 기억도 분명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은 6월 10일이후, 맹조국의 정수리에 단추크기의 자홍색 자국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자국에는 꼬리가 달려 있는데, 오른쪽 눈썹 중간까지 이어졌다.


집에서, 그의 넷째형인 맹조의(孟照義)가 그를 돌봤다. 한번은 그가 맹조국을 침대에 눕혀 쉬게 하려는데, 순식간에, '텅'하는 소리가 나더니 맹조국의 몸이 180도 회전하였다. 넷째형 맹조국은 놀라서 멍해진다. 놀란 모친은 황급히 향불을 피우고 절을 했다.


이 기간의 소위 혼미한 기간동안 맹조국은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주변에서 그를 돌봐주는 사람들은 그러나 여러가지 기괴한 일을 겪는다.


그의 처는 집안에서 키우는 군자란에서 이상한 빛이 나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거의 놀라서 기절할 뻔한다.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저녁에 집안의 난꽃에서 돌연 '아주 큰 빛'이 나왔다. 놀라서 나는 황급히 이불을 들어서 덮어버렸다."


더욱 심한 것은 임장의 일부 사람들이 예전에 UFO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목격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UFO는 동남방향(즉 봉황산 방향)에서 왔다. 당시 망원경으로 볼 때 발견했는데, UFO는 먼저 서쪽상공에 머물렀다. 지평산과는 20도 각도였다. 시각적으로는 수박만한 크기였고, 반달모양이었다. 관찰자와의 거리는 약 3킬로미터정도 떨어져 있었다. 당시 UFO는 매우 밝았고, 짙은 파란색을 띈다. 중간의 과도색은 종황색(棕黃色)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오실로스코프의 남은 자국처럼 북쪽하늘로 사라진다. 그는 사진도 찍었다.


맹조국에게 벌어진 일은 홍기임장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소식은 금방 바깥으로도 전해졌다. 먼저 이에 대하여 보도한 사람은 UFO애호자이다. 산하둔 임업국의 선전과 과장인 관홍성(關洪聲)이다.


그후에 흑룡강성내의 <경박보>, <흑룡강임업보>와 <생활보>등의 기자들이 대거 이에 대해 보도한다.


흑룡강성 과학위원회는 국가과학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6월 19일 현장과 맹조국 본인에 대하여 조사, 인터뷰를 진행한다. 맹조국의 기억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인터뷰는 진행할 수 없었다.


10월이 되어 중국UFO연구회, 북경UFO연구회, 흑룡강성UFO연구회, 북경TV로 구성된 4곳의 공동과학고찰대가 구성되는데, 가장 권위있는 조사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명의 구성원으로 구성되고, 29건의 설비와 기기를 가져와서 1주간 현장조사와 증거수집업무를 진행한다. 다만 여하한 확증적인 물증도 발견하지 못한다.


맹조국과 이홍해가 외계인비행선을 목격한 일은 맹조국과 이홍해의 증언이 완전히 일치하고, 여기에 또 다른 최소 10여명의 산나물을 캐는 농민들도 예전에 봉황산 남쪽자락에서 백색물체를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므로, 고찰대는 맹조국과 이홍해가 외계비행선을 목격한 사건은 진실하고 믿을만하다고 결론내린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외계인비행선이 봉황산 남쪽자락에 착륙한 적이 있다고 초보적인 결론을 내린다.


그외에 또 하나의 흑룡강과학위원회를 대표로 하고, UFO사건은 가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맹조국은 착각 혹은 환각을 본 것이라든지, 심지어 그가 거젓말로 이름을 날리려고 한다고 여겼다.


맹조국은 금방 폭풍과도 같은 압력을 받고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는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자원하여 북경으로 가서 거짓말탐지기의 시험을 받는다. 그리고 거짓말탐지기를 성공적으로 통과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의 처지가 나아지지는 않았다.


현재 맹조국사건의 관건은 여허한 확증적인 물증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후에 많은 고찰대는 봉황산으로 갔고, 과학적인 조사를 벌인다. 흑룡강성 과학위원회가 그중 일부 증거에 대하여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믿을만한 사진 혹은 기타 자료로 그 백색의 큰 올챙이닮은 물체가 존재했다고 증명할 수가 없다. 어떤 것은 단지 맹조국과 그들 수십명의 기억뿐이다. 증언은 사람들이 그 물건을 봤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UFO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아마도 그것은 정말 기구일 수도 있고, 혹은 군대의 비밀시험중인 비행기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물건일 수도 있다.


2. 소위 뒤집어진 거석은 UFO가 출발할 때 뒤집어진 것이라는 증명이 되지는 못한다. 아마도 누군가가 뒤집어 놓았을 수도 있다. 돌맹이에 방사선물질이나 기타 이상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하여, 다른 연구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위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주로 이곳은 너무나 편벽한 곳이고, 인적이 드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사 누군가가 일부러 뒤집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큰 돌맹이를 할 일없이 뒤집었을리는 없다는 것이고, 돌맹이를 뒤집어놓을 동기와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3. 불애타고 균열된 언덕도 UFO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 흑룡강성 과학위원회는 아마도 산에서의 기온은 급변하므로, 돌맹이에 자연스럽게 균열현상이 나타났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전에 누군가 불을 질렀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것만으로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연구원이자 동력학자인 진연춘(陳燕春)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름에 태양이 비치는 시간이 길고, 온도가 높다. 돌맹이는 금방 온도가 올라간다. 일단 폭우가 내리면, 열로 팽창되었다가 냉기로 축소되면서, 돌맹이에 균열이 일어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반대한다. 주로 이든 산의 엄석은 면적이 넓고 산민들은 이렇게 큰 면적의 돌맹이에 자연균열이 생긴 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4. 노랗고 검게 변한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고한(高寒) 지대에서는 바람을 맞는 나무는 매년 동상이 걸린다. 이곳은 바로 바람을 맞는 곳이므로, 삼림의 테두리지역이어서, 바람이 불면 나무는 동상에 걸린다. 다음해에 나무가 푸르게 돌아올 때 테두리에 있던 나무가지, 나뭇잎은 노랗고 검게 변한다.


5. 오색의 비닐등 물건. 비록 임장에서 자주 보는 물건은 아니지만, 성분에 이상은 없었다. 모두 지구에서 보통 찾아볼 수 있는 성분이다. 그러므로 외계와 연결시킬 수는 없다.


6. 맹조국이 혼미상태에 빠진 후의 여러가지 이상현상. 특히 거꾸로 선 것은 이상하기는 하고,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것을 가지고 UFO를 증명할 수는 없다.


7. 맹조국의 처가 말한 난꽃에서 빛을 발한 것. 맹조국의 형이 말한 그의 머리가 180도 돌아간 것은 모두 믿을만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난꽃은 검사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맹조국도 다시는 머리를 180도 돌릴 수 없었다.


8. 연구자들은 맹조국이 아주 순박하고 착실한 농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터뷰를 해본 결과 맹조국은 성격이 솔직하고 말하기 좋아한다. 맹조국이 당시 황을 묘사할 때, 언어가 아주 생동적이고, 게다가 손발의 동작도 아주 많았다. 이를 보면 맹조국이 유명해져서 부를 얻고자 고의로 이야기를 날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맹조국이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임장의 지도부들에 따르면 맹조국과 봉황산이 유명해진 이후에, 전국각지의 매체와 과학연구기관이 이곳으로 왔다. 그러나 모두 국가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고, 무상으로 대접을 했다.


짧은 1개월내에, 쌀만도 500근을 먹었고, 다른 비용지출도 아주 많았다. 그리하여 겨우 100여호에 불고한 작은 임장의 재정이 아주 곤란한 지경이 되었다. 맹조국 자신도 인터뷰를 하면도 한푼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집에서 식사도 공짜로 제공했다. 간단히 말해서, 맹조국이든 임장이든 모두 이 사건으로 여허한 이익도 얻은 바 없고, 오히려 부담만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임장은 취재하는 기관에 일률적으로 5000위안의 비용을 납부하도록 요구했다. 맹조국에 따르면, 이는 임장에서 사람들이 와서 취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고, 그와 임장은 돈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 취재인원의 회고에 따르면, 인터뷰할 때 시험적으로 맹조국에게 물어본 바 있다고 한다. "너는 앞으로 시내로 이사해서 살 것인가?" 당시 맹조국의 대답은 이러했다: "솔직이 함래서 나는 임장에서 이 가정을 일으켰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싶은 욕망이나 생각이 없다. 나는 이름이 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취재에 여러번 동행한 적이 있던 그는 한번도 그가 주도적으로 보수문제를 꺼내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매번 취재인원을 만날 때면 열정적이었고, 특히 그가 취재하러 갔을 때는 그가 친히 형의 녹음기를 빌려와서 녹음해주기까지 했다.


임장의 사람들이 농담으로 하는 말처럼, UFO를 봤으면 너는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다. 수십만위안은. 그런데 너는 전혀 돈을 벌지 못했다.


맹조국 본인의 생활은 시종 빈곤했다. 소위 외계인과의 친밀한 접촉도 이것을 바꿔주지는 못했다. 그는 본래 농민이고, 토지도 있고 집도 있다. 몸도 건장하다. 힘들여 일을 하면 4식구가 먹고 사는 것은 괜찮은 편이었다.


유명해지고난 후에 맹조국의 몸은 돌연 나빠진다. 힘든 일은 거의 할 수 없게 되고, 밭에서 농사도 짓지 못한다. 그의 처가 집안의 힘든 일을 다 맡아서 하느라 아주 힘들었다. 게다가 계속 사람들이 그녀의 남편이 이상하다고 조롱하였다. 그러다보니 이 착실한 농촌부녀는 우울증에 빠지면서 몇년후에 중병에 걸린다.


집안이 가난하여 치료할 돈이 없어서, 결국 맹조국은 처가 젊은 나이로 죽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그녀가 죽었을 때 나이가 겨우 30여세였다. 처가 죽은 후, 달도 자주 학교에서 "정신병아빠"를 두었다고 놀림받는다. 그래서 초등학교1학년을 다닌 딸 헌연은 공부를 포기한다. 맹조국은 이에 대하여 타격을 크게 받는다.


맹조국은 그를 취재했던 호의를 가진 사람의 도움으로 9년후인 2003년 하르빈의 한 대학교 식당에서 직원이 된다. 그렇게 하여 봉황산을 떠난다.


1년후, 맹조국은 고향으로 가서 딸을 데려간다.


하르빈에서의 생활도 힘들었다. 그들 부녀 두 명은 약 10평방미터의 작은 방에서 살았고, 방에는 침대 1개와 TV 1대가 있을 뿐이다.


사람됨이 충후하고 착실한 그는 힘든 일은 잘 견뎠다. 그래서 맹조국은 상사들이 좋아했다.


2005년 그는 식당의 지배인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10여명의 직원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경제는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맹조국은 그저 하르빈의 보통시민일 뿐이다. 생활은 여전히 빠듯했다. 딸이 온 후로 일을 찾지 못해서, 식당에서 청소업무를 맡았다. 이렇게 힘들고 더러운 일을 보통의 어린 여자애가 하려고 하겠는가? 이전에는 모두 아줌마들이 하는 일이다.


하르빈에 도착한 후, 맹조국은 다시는 UFO에 관해서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신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맹조국의 이후 상황을 보면, 그는 이 일을 이용하여 이득을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2001년 봉황산은 국가삼림공원이 된다. 2010년이후, 공원사업자는 UFO를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주제로 삼고자 한다. 그들은 맹조국이 UFO를 발견한 산에 호텔을 짓고, 대거 광고한다: 중국인이 처음 외계인과 접촉한 장소. 중국인이 처음으로 외계인과 로맨스를 즐긴 장소.


호텔의 사업은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않은 관광객들과 외지인사들이 이곳으로 와서 투숙한다.


만일 맹조국이 자신의 명성을 빌어 돈을 별려고 했으면, 그는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호탤에서 합작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가볍게 벌었을 것이다.


예전에 병마용을 발견한 몇몇 농민이 전람관에서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것만으로 먹는데 문제가 없게 된 것처럼.


그러나 맹조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맹조국이 하르빈에 있다는 것을 알고 누군가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의 명성을 밀려 회사를 동업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거절한다: 나는 내 두 손으로 벌어서 먹겠다. 이 입을 가지고 먹고 싶지 않다.


다음으로, 맹조국은 사기꾼과는 전혀 달랐다.


모든 사기꾼들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평소에는 말을 잘하지만, 과학적인 검사, 과학적인 연구 심지어 여러 방면에서의 의문제기에 대한 검증은 모조리 회피한다는 것이다.


맹조국은 달랐다. 그는 적극적으로 여러 UFO세미나에 참석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모든 의문제기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는 여러번의 화학연구회의에 참석했고, 날카로운 질문세례를 받은 바 있다.


더욱 대단한 점은 맹조국이 적극적으로 북경의 거짓말탐지에 응했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사기꾼이라면, 아마도 절대 그럴 담량이 없었을 것이다. 2003년 9월, 맹조국은 최면상황하에서 거짓말탐지시험을 받는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것에 거짓말이 있는지 검사한 것이다. 이 거짓말탐지시험을 조작한 UFO연구자 장정평(張靖平)에 따르면, 거짓말탐지시험결과 맹조국은 그 사건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맹조국사건에서 확실히 여러가지 해석이 되지않는 일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맹조국은 6월 9일 그날 광선을 맞아 쓰러진 후 며칠 후에 확실히 그의 미심(眉心)에 불에 탄 흔적이 있었다고 했다. 의사가 자세히 분석해보니, 이것은 확실히 탄 흔적이다. 확실히 전문가가 조작을 한다고 하더라도 불에탄 흔적을 미심에 만드는 것은 극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다.


맹조국은 겨우 소학교5학년까지 다닌 사람이다. 그는 이런 가짜 상처를 만들 재주가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흔적은 후천적으로 위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설명하기가 아주 어렵다.


그리고, 맹조국의 복부에도 명확히 불에 탄 상흔이 있다. 이는 다른 면에서 미심의 상흔이 독립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그외에 현장에서 불에 타서 갈라진 돌맹이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확실히 임장 사람들은 옹도가 급격히 변하고, 암석에 유사한 불에 탄 흔적이 나오고, 심지어 균열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인정한다. 다만 지금까지 이렇게 넓은 면적의 돌맹이에 이렇게 심각한 수준으로 불에타고 갈라진 현상을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이는 자연현상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일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면, 어찌 거기나 부근에 방화흔적이 전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의 수목에 대규모로 노랗게 변색하거나 검게 변색한 일이 벌어진 것도 자연적인 원인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외에 맹조국의 처는 난꽃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난꽃은 전체 사건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그의 처인 강령이 유일하게 말한 것이며, 다른 사람은 보질 못했다.


강령은 남편의 모든 묘사에 대하여 비교적 냉담했다. 남편의 이번 외계인접촉사건에 대하여 비교적 거부심리가 있었다. 이 사건은 집안에 아무런 도움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오히려 여러가지 나쁜 점만 생겼다. 특히 이 사건후 남편의 체력이 심각히 저하되어, 모든 농사일을 그녀 혼자서 해야 했다. 그래서 강령은 원망이 있었다. 그러나 난꽃에서 빛이 나온 것에 대하여는 그녀가 확실히 긍정했다.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난꽃이 빛을 발하는 것은 아마도 방사선에 노출된 후, 표면에 이상반응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지식이 없는 농촌부녀인 강령이 이런 것을 알 리는 없다. 그녀가 함부로 날조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 관건적인 일은 이 백색물체를 목격한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최소한 30명이상이다.


단지 1회의 조사기간에도 10여명의 증인을 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전후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6월 6일 당일에만도 이것을 본 사람이 맹조국 1인만이 아니다. 그의 친척 이홍해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 백색물체는 증인이 확실한 것이다.


1994년, 외부에셔 동떨어진 임장은 UFO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설사 약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십명이 같이 현상을 날조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봉황산의 UFO사건이 맹조국이 떠난 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봉황산이 2001년에 국가삼림공원으로 된 후,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으로 온다.


2005년 11월 12일, 산하둔 임업국 총경제사 서송산(徐松山)은 하르빈시 길화집단 부총리 주개(周凱)등 일행 7명을 데리고 봉황산으로 간다. 서송산과 주개는 돌무더기 근처까지 간다. 당시 날씨는 어두웠고, 가시거리가 길지 않았다. 이때 동행하던 한 사람이 디지탈카메라를 꺼내어 친구에게 사진을 하나 찍어 주었다.


당시, 카메라의 모니터를 보던 그는 돌연 소리지른다: "이게 뭐야?" 그후 서송산도 뒤에서 돌연 소리 지른다: "하늘에 있는게 뭐지? 빨리 사진찍어. 빨리 사진찍어." 모두 서송산이 가리키는 곳을 봤는데, 돌무더기의 서남방향으로 접시형의 정체불명물체가 그 위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두 장의 사진을 찍는다.


모두 흥분해 하는 동안에 비행물체는 사라진다. 나타난 시간은 모두 10여초밖에 되지 않는다.


목격상황과 사진을 분석해보면, 이는 1994년 봉황산UFO사건이래 UFO를 찍은 가장 크고 가장 최근의 사진이다. 이 UFO의 형상은 기림성지진국의 무성지(武成智)가 장백산 천지에서 직은 UFO형상과 비슷하다. 사진분석에 따르면, 이 UFO의 직경은 수백미터에 이르고 높이는 70미터이상일 것으로 본다.


2007년 7월 10일 이혜(李慧)와 몇몇 길림성의 친구들은 산하둔 임업국 경내의 봉황산으로 여행을 온다. 15시 42분, 관망대에서 사진을 찍으 ㄹ때 그녀는 은연중에 자신의 오른쪽 뒤에 뭔가가 있다고 느낀다.


"내가 고개를 돌려서 봤더니, 빛을 내지만 그다지 밝지는 않은 물체가 있었다. 비행기정도의 크기이고, 회전하면서 전진했다. 마치 나선축이 물체의 중간에서 회전하는 것같았다. 속도는 아주 빨랐다. 전후로 수초의 시간이었다." 이혜는 이렇게 말한다. 이 발광체는 바로 지나갔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당시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나중에 현상하고난 자신을 왔을 떄는 약간 무서웠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전문사진사 오춘연(吳春燕)은 바로 사진기를 집어 이 장면을 찍었다.





목격자는 흑룡강성내의 수화, 통화등지에서 온 몇몇 관광객 외에, 관망대에서 야근하고 있던 노동자도 있다. 약 10여명가량이 된다. 사건발생후, 길림 화전에서 온 5명의 관광객이 전화를 걸어 파출소에 신고한다.


이혜는 말한다. 그녀는 UFO에 흥미가 엇다. 그래서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본 것을 모두와 나누고 싶을 뿐이다. 여러분들이 믿든 믿지 않든 어쨌든 나는 봤다.


봉황산관광에서 돌아온 후 이혜는 10일 하루 출근하지 않는다. "나도 피곤해서인지 놀라서인지 모르겠지만, 온몸에 힘이 없었다."


이 두번의 목격자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진증거를 남겼다는 것이다. 목격장소는 모두 봉황산이다.


이것은 최소한 한 가지를 증명한다. 맹조국은 백색물체를 목격한 것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정체불명비행물을 보았던 것이다.


현지 맹조국사건이 가짜라는 편에 서는 사람들의 주장은 주로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관건은 근백년이래로 UFO접촉사건이 있었지만, 어디에 확실한 증거가 있었는가


만일 정말 UFO라면, 즉 외계인의 과학기술은 인류보다 훨씬 뛰어나다. 어찌 인류가 아무렇게나 발견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우리가 현재 겨우 유인원수준의 문명을 지닌 별을 방문한다면, 우리가 모는 비행기를 어찌 그들이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하겠는가. 설사 유인원이 우리의 비행기를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무슨 물건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UFO현상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소위 과학적 해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체계의 기초 위에서 건립되었다.


100년전 우리가 컴퓨터, DNA검사, 달착륙을 알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