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

[황자쟁위술] 여인노선술(女人路線術) 파결총희패(巴結寵姬牌) 이건성편

중은우시 2015. 10. 11. 22:44

 

이건성, 이세민, 이원길 형제는 부친인 당고조 이연의 영도하에 힘을 합쳐서 천하를 얻는데 성공한다. 그 후에는 형제들간에 대당천자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다투게 된다. 이들은 모두 부친 당고조 이연이 총애하는 여인의 말이라면 잘 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연이 총애하는 몇몇 후비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들 후비가 이연에게 자신에 대하여 좋게 말해주어 황위를 물려받는데 도움을 받고자 한 것이다. 실로 “아들을 아는데는 그 부친만한 사람이 없고, 부친을 아는데는 그 아들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 그대로이다.

 

당고조 이연이 가장 총애한 후비는 2명이다. 모두 수양제의 후궁으로 있다가 이연의 손에 들어온 여인들로 한 명은 윤덕비(尹德妃)이고, 다른 한 명은 장첩여(張婕妤)이다. 이 두 여인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원래 그녀들은 수양제가 진양(晋陽)의 행궁(行宮)에 거처하게 하면서 진양에 행차하였을 때 모시게 하였다. 그런데, 수양제가 주로 양주(揚州)에 가서 머물고, 진양으로 행차하지 않다보니 그녀들이 수양제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가 수년이 넘어갔다. 이는 수양제 같은 황음한 황제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보통의 일이었지만, 윤덕비와 장첩여는 독수공방을 참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녀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몸을 의탁할 남자를 찾게 되는데, 진양유수(晋陽留守)이며, 관농귀족인 당공(唐公) 이연(李淵)을 점찍는다. 그녀들은 계획을 면밀히 세운 다음 어느 날 행궁에서 연회를 베풀어 이연을 초대한다. 둘은 연회에서 이연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여 결국 이연을 무너뜨린다. 이렇게 이연은 수양제의 후비와 간통하는 기군지죄(欺君之罪)를 저지르고 만다. 일을 저지르고 나서야 이연은 간담이 서늘해진다. 언제 이종사촌형인 수양제 양광이 분노하여 자신에게 칼을 휘두를지 모를 일이다. 이때 윤덕비, 장첩여는 이연을 몰아부쳐 두 사람을 비로 맞이해, 평생 사랑하겠다고 맹세하게 만든다. 이는 이연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윤덕비, 장첩여로서도 오랫동안 바라던 일을 성취한 것이다.

 

이연은 고도협장(古道俠腸)의 정종(情種)이었다. 그는 진양에서 거병한 후 전쟁터에 나갔을 때나, 장안으로 가서 황제가 되었을 때나 항상 윤덕비와 장첩여를 데리고 다녔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그녀들을 사랑했다. 많은 군국대사를 처리할 때도 두 여인의 의견을 듣곤 했다. 이건성과 이세민이 후궁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싸움을 하면서 주로 공략한 대상은 바로 이 두 명이었다. 이 두 명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이건성과 이세민은 양보없이 치열하게 싸운다. 승리자는 태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한 이건성이었다. 태자는 미래의 황제이다. 왕공대신이건 후궁비빈이건 누가 그에게 잘보이려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이건성은 방심하지 않고 수도를 유수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후궁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고 유지한다. 특히 윤덕비, 장첩여에 대하여는 원하는 것을 모두 실현시켜 준다. 그러니, 윤덕비, 장첩여뿐아니라 많은 후궁과 궁녀들도 하나같이 이연에게 태자는 덕이 있고 인자하다고 칭찬을 하게 된다. 윤덕비와 장첩여는 이연에게 이렇게까지 말한다: “폐하께서 돌아가신 후, 진왕(이세민)이 후계자가 되면 신첩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겠지만, 동궁(이건성)은 자애로우니 잘 보살펴 줄 것입니다.” 윤덕비와 장첩여는 사실상 이건성의 정보원역할도 하여 수시로 정보를 모아 이건성에게 알려주었다. 무덕9년 유월 사일 이세민이 현무문사변을 일으키기 전날 밤에도, 장첩여는 병풍 뒤에서 이세민이 이건성과 이원길에 대하여 “이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왕세충, 두건덕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니 신이 억울하게 죽는다면 구천에 가서 반적들을 보기 부끄러울 것입니다”라고 모함하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이건성에게 이 내용을 알려준다. 다만, 이건성은 이세민의 그런 모함이 무력으로 그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준비한 사전작업이라는 것을 읽어내지 못했고, 결국 이세민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된다.

 

이세민도 이 방면에서 결코 이건성에 못지 않았다. 이세민은 이건성에 비하여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군대를 이끌고 외지에서 반적을 정벌하러 다녔으므로, 그들에게 빼앗은 금은보화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금은보화를 자신의 수하장병과 후궁들에게 나눠주었다. <신당서>, <구당서> 및 <자치통감>에도 무덕4년초 이세민이 낙양에서 미녀를 물색하여 이연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귀비등이 사적으로 이세민에게 재물을 받고, 친척의 관직을 부탁해서 얻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보면, 이세민은 전쟁과정에서 얻은 재물중 상당부분을 후궁들에게 뇌물로 써서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외지에 있을 때에는 부인인 장손씨로 하여금 후궁들에게 뇌물을 가져다 주게 하였고, 자신이 경성에 돌아와 있을 때에는 직접 후궁들에게 뇌물을 가져다 주었다. <신당서.은태자건성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무덕7년 유월, 이건성은 진왕 이세민이 여러 후비들을 다 만나고 다니면서, 금은보화를 뇌물로 주는 것을 보았다.

 

부부는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특히 총애받는 후궁이라면 황제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말이 점차 쌓이면 황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위나라의 방총이 위태자와 함께 조나라의 한단에 인질로 가면서 위혜왕에게 말했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고사와도 일맥상통한다. 방총은 위혜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한 사람이 길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안믿는다” “그럼 두 사람이 길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반신반의할 것같다” “만일 세 사람이 길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당연히 믿을 것이다.” 그러자 방총이 말한다: “길거리에 호랑이가 없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얘기하게 되면 정말 호랑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조나라의 수도 한단은 위나라의 수도 대량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나를 비난할 사람은 세 명만이 아닐 것입니다. 대왕께서 잘 살펴주십시오.” “나는 그런 참언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방총이 한단으로 간 후 참언은 위혜왕에게 계속 들려왔고, 결국 방총이 나중에 위나라로 돌아오지만, 위왕을 다시 만나지는 못한다.

 

대다수의 황제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후계다툼을 벌이는 황자들이 여인노선을 취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전략전술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