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사회/중국의 성씨

진전일가(陳田一家): 왜 "진(陳)"씨와 "전(田)"씨가 한 집안인가.

by 중은우시 2014. 10. 2.

글: 진건(陳健)

 

진(陳)씨는 중화민족 성씨중 중요한 일맥이다. <백가성>에는 "진"이 10번째에 있다. "전국공민신분정보계통(NCIIS)"의 통계에 따르면, 진씨는 중국의 제5대성이다. 동시에 현재 전세계 중국계인구의 10대성중 하나이다.

 

다른 성씨와 마찬가지로, 진씨성의 원류와 발전은 복잡다기하다. 그중 가장 주류인 한 갈래의 기원은 "규(嬀)"성이다. 이는 순(舜)임금의 후손이다. 전설에 따르면, 순임금은 원래 성이 요(姚)인데, 나중에 "규예(嬀汭)"(규수의 강가에 굽이치는 곳)로 이주한다. 그래서 후대들이 성을 "규"로 바꾼다. 상왕조의 말기에 순의 후예인 알보(閼父, 遏父라고도 쓴다)가 주(周)나라로 도망가 의탁한다. 그리고 "도정(陶正)"의 직을 맡는다. 즉 도자기제조를 관장하는 관리이다.

 

주무왕이 상왕조를 멸한 후, 선현들을 추봉하는데, 알보의 아들 규만(嬀滿)이 완구(宛丘)에 봉해진다. 바로 지금의 하남 주구시 회양현 일대이다. 긜고 나라의 호를 "진(陳)"이라 한다. <설문해자>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진, 완구, 순의 후예 규만이 봉지로 받은 곳이다" 이렇게 하여, 규만은 진씨성의 정식 선조가 된다. 규만의 사후, 시호를 '호공(胡公)'이라 받는다. 역사상 호공만(胡公滿) 혹은 진호공(陳胡公)으로 불리게 된다.

 

기원전478년, 초혜왕이 북벌을 한다. 진나라의 마지막 국군인 진민공(陳閔公)이 피살당하여 진나라가 멸망한다. 호공만이 완구에 봉해진 때로부터 진나라가 멸망하기까지 전후 20세, 26대군주, 588년간 지속되었다. 비록 진나라는 멸망했지만, 그의 자손은 이미 중원대지에 깊이 뿌리박혔다. 그리고 사방으로 이주하기 시작하고, 개지산엽(開枝散葉)한다. 당연히, "진"에는 다른 민족이 성을 고쳐서 얻은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한가지 언급할 점은 역사상 "진전일가"라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진씨성의 한 갈래가 전씨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의 연유를 따져보면 역사상의 큰 사건인 "전씨대제(田氏代齊)"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원전707년, 진나라에 내란이 일어난다. 진환공(陳桓公)이 피살되고, 태자 진완(陳完)이 대부(大夫)로 강등된다. 그후 진완은 진나라를 떠나 제나라에 의탁한다. 역사에서 "완공분제(完公奔齊)"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제환공(齊桓公)은 진완을 '공정(工正)'으로 삼는다. 즉 장인의 제조를 관장하는 관리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제환공이 진완에게 많은 전지(田地) 를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를 '전완(田完)'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진완은 '전(田)'이라고 불리는 지방에 봉해졌다고 한다.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혹은 은거의 필요상 성을 고칠 필요가 있어서 '전'으로 성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진완의 후손은 '전'씨성을 쓰게 된다. 전완의 제9대손 전화(田和)는 제강공을 폐하고 스스로 국군(國君)에 오른다. 기원전379년, 제강공이 죽고, 강(姜)씨 제나라가 끝이 난다. 전씨는 제나라의 국호를 그대로 이어받으니, 역사에서는 "전제(田齊)"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저명한 "전씨대제"이다.

 

전씨대제후 8임금, 184년만에 진(秦)나라에 멸망한다. 제나라는 와해되고, 자손은 속속 성을 바꾼다. 제왕 전건(田建)의 셋째아들 전진(田軫)은 초(楚)나라로 도망쳐서, 영천후(潁川侯)에 봉해진다. 그리고 다시 진(陳)으로 성을 고친다. 현대의 진씨성의 사람들 중에서 상당한 일부분이 바로 진진(陳軫)의 후손인데, 세칭 "영천진(潁川陳)"이다.

 

진씨성과 전씨성간의 연원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진씨에서 전씨로 바꾼 것은 진완에게 전지를 많이 하사해서인지, 아니면 '전'이라는 땅에 봉해져서인지에 대하여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답은 없다. 그러나, 후세에 비교적 엄격한 학자는 '진전일가'를 논의할 때, 많은 경우 '진'자와 '전'자가 발음상 관련이 있다는데서 원인을 찾는다. 원래 고대에 '진'과 '전'의 독음은 아주 비슷했다. 음운학에는 소위 '고무설상음(故無舌上音)'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보통화의 성모중 zh, ch로 읽히는 글자는 고대에 d, t로 읽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티엔(塡)"의 병음성모는 t이다. 그러나, 그 오른쪽부분의 글자인 진(眞)의 발음은 zh이다. 이는 '진'이 고대의 성모독음은 t에 가까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늘날 민남방언에서 여전히 일부 고음이 남아 있다. 그중 '진'의 성모발음은 '전'의 성모와 비슷하다. '진'자와 '전'자가 고음에서 연계가 있는 것을 보면, '진전일가'라는 말도 순조롭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