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전(劉典)
최근 교육계에는 한 사건이 잠잠해지면 다른 사건이 일어나서 풍파가 그치질 않고 있다. 먼저 대륙의 입시수석들이 단체로 홍콩대학으로 가버려서, 대륙의 명문대학인 청화대학, 북경대학의 체면을 완전히 구기게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현행 중국교육제도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곧이어, 북경대학 법학원의 장천범, 저명한 법학전문가 곽도휘등을 포함한 15명의 학자 및 사회인사들은 연명으로 국무원에 제청을 해서, 대학입시업무에서 수험생의 호적제한을 폐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전국 네티즌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입시호적제한제를 얘기하자면, 부득이 그중 가장 전형적인 '입시이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입시이민'이라는 현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중국교육자원의 불균형 때문이다. 지역간의 교육발전의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각 성, 시, 자치구는 각각 시험평가 및 입시합격점수를 정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불평등한 교육정책은 자연히 헛점이 있다. 일부 수험생은 각지역간에 존재하는 입시합격점수의 차이 및 입시합격률의 고저를 고려해서, 전학을 하거나 호구를 옮기는 방법으로 입시점수가 상대적으로 낮고, 합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서 시험을 친다. 이것을 '입시이민'이라고 부른다.
대체로 말해서, 입시이민이 유입되는 지역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북경, 상해등 경제수준이 높고, 대학입시합격점수가 낮은 직할시이다. 둘째는 해남, 안휘등 경제수준이 낮고, 대학입시합격점수가 비교적 낮은 동부지역 성이다. 셋째는 해발이 높고, 경제와 교육수준이 낮아서 입시합격점수가 더욱 낮은 서부지역이다. 여기에는 서북과 서남의 성이 포함된다.
중국이 대학입시제도를 회복한 이래, 입시이민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교육부, 각성의 입시담당부서는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여 입시이민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
사실 과거가 성행하던 고대에도 '입시이민'은 존재했다. 이를 보면, '입시이민'은 중국교육계의 오래된 난제임을 알 수 있다. 역사를 자세히 연구하면, 고대에 '입시이민'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대명이 자자한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가장 대표적이다.
<백거이연보>를 읽어보면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백거이의 조적(祖籍)은 산서(山西)이고, 하남(河南)에서 출생했다. 호구는 그의 조부를 따른다. 그러므로 섬서성 위남현 하규진의 주민이 된다. 그가 과거시험을 보려면 섬서 위남으로 가야 된다. 그러나 그는 향시를 볼 때 위남으로 가지 않았다. 안휘성 선성으로 가서 시험을 본다. 이것은 당나라에서는 위법행위이다. 당나라의 법률에는 과거시험에 참가하는 수험생은 반드시 호구소재지에서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백거이는 바보가 아니다. 절대로 아무런 이유없이 이렇게 한 것이 아니다. 그가 안휘로 가서 시험을 친 것은 분명히 안휘의 합격률이 높기 때문이다.
당나라때의 과거시험도 지금의 대학입시와 같았다. 각지역의 합격률은 서로 달랐다. 어떤 지방은 수험생이 많아서 합격률이 낮고, 경쟁이 치열했으며, 어떤 지방은 수험생이 적고 합격률이 높아서, 손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유종원(柳宗元)은 <송신생하제서략>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경조윤세공수재(京兆尹歲貢秀才), 상여백군상항(常與百郡相抗)" 즉, 수도지역의 합격률은 매우 높아서, 장안성에서 합격하는 숫자가 백개의 군에서 합한 것만큼 된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교육계도 똑같지 않은가? 역사는 항상 깜짝 놀랄 정도로 닮아있다.
당나라뿐만이 아니었다. 송나라와 명,청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북송때 강남은 수험생이 많고 합격률이 낮았다. 그리하여 합격하기 힘들었다. 북방은 수험생이 적고 합격률이 높아서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명,청시대에 내지의 수험생은 많고 합격률이 낮았지만, 변방지역은 수험생이 적어서 합격률이 높았다.
송나라때의 문단거두인 구양수(歐陽修)는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남의 주군은 시험을 치는 자가 이삼천명인데 겨우 이삼십명이 합격한다. 백명중 한명이 합격하는 것이다. 서북주군은 여러 곳에서 시험치는 자가 백여명에 불과한데, 합격하는 자는 십여명이다. 즉 열명에 한 명이 합격하는 것이다" 합격률이 낮은 곳은 100대1이고 높은 곳은 10대1이라는 것이다. 지역차이가 이렇게 컸다 그러다보니 시험치는 사람들도 이를 노리지 않을 리 없다. 백거이는 그저 그걸 이용한 것일 뿐이다.
"입시이민"은 진정한 이민이 아니다. 많은 수험생들은 그저 가짜 호구를 하나 만들어서 다른 성의 적을 빌어서 시험을 치는 것이다. 이를 모적(冒籍)이라고 한다.
이 방식은 과거에 리스크가 적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대의 수험생들은 반드시 상호 보증을 해야 했다. 한 수험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수험생들도 마찬가지로 처벌받는다.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이런 일을 고발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가짜로 호구를 만든 경우에는 발각되기가 쉬웠다.
동료들과의 관계가 아무리 좋더라도, 시험감독하는 감독관도 멍청이는 아니다. 그들은 "심음(審音)"이라는 절차를 거쳤다. 즉, 그의 사투리를 듣는 것이다. 말투가 다르면 바로 발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엄격한 제도가 있더라도 몇몇 '큰 물고기'는 그물망을 빠져나간다. 근대의 실업가, 정치가인 청나라말기의 장원 장건(張謇)은 동시(童試)를 치를 때, 모적으로 합격한 바있다.
장건은 강소성 해문현 상락진 사람이다. 그대 해문은 통주에 속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농사를 지었으므로, 조상중에 과거에 참가했던 사람이 없었다. 그는 스승인 송박재의 건의로 여고에 있는 사람을 조부로 하여 이름을 장육재(張育才)로 바꾸어, 동치7년, 여고에서 과거시험에 참가한다. 그리고 순조롭게 동생시중 현시, 주시를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원시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수재(秀才)가 된다.
원래 수재에 합격하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누가 알았으랴. 그는 사람을 잘못 만난 것이다. 그가 이름을 빌린 조부는 아편을 피우는 파락호였고, 사람됨이 음험하고 교활했다. 이를 기화로 장씨집안에서 많은 돈을 뜯어내어, 장씨집안은 부채를 가득 떠안게 된다. 원래 그럭저럭 먹고살만하던 장씨집안은 거의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뿐 아니다. 그는 요구가 거절당하자, '조부'로서 관청에 장건이 불효하다고 고발해버린 것이다. 동치10년 4월, 장건은 관청에서 그를 붙잡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는 야반도주해버린 적도 있다.
결국 참을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수재의 신분을 버리고, 통주 원적으로 돌아가서 시험에 참가한다. 그의 이런 행동은 일부 정직한 관리들의 지원을 받아, 결국 예부의 허락을 받아낸다. 동치12년, 장건은 통주의 본적에서 수재가 된다. 광서11년, 장건은 순천향시에서 거인(擧人)이 된다. 광서20년, 서태후 육십세를 기념하여 열린 은과회시에서 장건은 장원을 차지한다.
여기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모적의 유형과 모적의 사건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어떤 유형이건, 그들은 단지 하나의 목적을 가졌을 뿐이다. 즉 모적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물론 모적지의 수험생들에게는 불공평하게 된다.
시각을 현재로 바꾸어 보면, 입시이민의 수단이 점점 다양해진다. 심지어 국제화하기까지 한다. 어떤 학생은 대학을 가기 위하여 중국국적을 포기하고, '국제입시이민자'가 된다.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우리에게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해주고, 우리에게 그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보게 만드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비록 똑같은 입시이민이지만, '국제화'의 입시이민은 상대적으로 국내의 '입시이민'보다 그 부정적인 영향이 더욱 심각하다.
먼저 국내수험생들에게 불공평하다. 만일 국내입시이민은 그저 지역성적차이를 이용하여 입시경쟁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라면, "수출 - 수입 - 내수"식의 국제입시이민은 입시공평원칙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내수험생이 시험공부를 위하여 밤을 새우고 있을 때, 돈을 가지고, 해외로 이민간 학생은 놀면서 대학문을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해를 입는 것은 단순히 객관적인 입시결과만이 아니라, 자금을 가지고 교육평등의 신뢰를 깨트리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외국의 진짜 유학생들에게는 '불공정경쟁'이 발생한다. 이들 '가짜외국인유학생'은 중국HSK시험에서 다른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유학생은 국제문화교류의 중요한 내용이다. 만일 여기에까지 '짝퉁'이 끼어든다면, 학교뿐아니라 국가, 국제적 이미지도 크게 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떤 유형의 입시이민이든지, 각종 정책의 헛점을 이용하여, 각종 자원을 활용하여 '곡선구국(曲線救國)'하는 것이다. 그 실질은 학위숭배, 명문학교숭배가 자본우세하에서 파생된 괴물이다. '국제입시이민'이 나타난 것은 여러가지이다. 당사자의 주관적인 원인도 있지만, 현존제도의 결함도 있는 것이다.
현제 중국교육문제의 여러가지 어지러운 현상을 보면서, 일부 사람들은 아래위에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15명의 전문가들이 건의서를 올려서, 대학입시의 호적제한을 폐지하고, 성별시험을 취소하고 전국통일시험을 회복하도록 요구했다. 바로 현제 교육제도개혁의 한 실험인 것이다.
한편으로, 현재 날로 많아지는 유동인구는 교육문제를 불러온다. 유동인구의 후대의 교육문제가 제대로 해결하는 것도 당금 호적제도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다.
현재의 호적제도는 많은 사람의 권리를 제한할 뿐아니라, 더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특권을 부여한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북경호구이다. 그 배후에는 숨은 복지가 다른 성의 호구로는 꿈에도 꿀 수 없을 정도이다. 중국의 침중한 인구압력으로, 호적정책은 인신에 대한 통제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의 유동인구가 일단 통제받지 않는다면, 그로 인하여 발생할 사회적인 악영향은 너무나 무서울 정도이다.
이것은 단지 미봉책이다. 이런 곤경은 점점 개선될 것이다. 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새로운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시대는 국가가 공민들에게 더 많은 권리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이전의 자유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문제가 많아서, 일거에 해결하기는 힘들고 천천히 해결해야 한다. 전문가 건의서는 새로운 개혁의 전주곡으로 볼 수 있다. 이후의 개혁은 더욱 심층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눈을 씻고 기다린다.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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