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방기업가
마윈의 독재와 패도는 표면적인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처리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영혼과 근본에 있다.
예술가이건 예언가이건 아니면 알리바바 신화를 만드는 것이건, 마윈의 진정한 의도는 알리바바를 위대한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마윈이 자리를 떴다. 북경 파크 하이야트호텔은 미궁과 같다.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마윈이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는데, 조수가 오른쪽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윈은 서두르지 않고 검은 재킷을 걸치더니, 조수를 따라 오른쪽으로 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못이었다. 제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갔다. 마윈은 웃으면서 얼굴에 빨개진 조수를 한번 쳐다본다.
그는 “독재자”인가? 알아야 할 것은, 그는 한번도 다른 사람의 윗자리에 높이 앉아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자신의 친화력을 보려주려고 애쓴다. 자주 색깔있는 상의를 걸친다. 노란색, 녹색, 파란색등 그는 직원들이 잘못하거나, 시행착오를 겪는 것에 반감도 없다. 관용스러운 것인가? 그러나 이것이 비즈니스세계에서의 완전한 마윈의 버전은 아니다.
2011년 2월 21일, 알리바바는 회사 CEO인 웨이저(衛哲)의 사직을 선언한다. 알리바바의 내부이메일에서 마윈은 이유를 설명했다: “근 1개월의 조사와 증거확보결과, 2009, 2010년 2년간 각각 1,219개(점유율 1.1%)과 1107개(점유율 약0.8%)의 ‘중국공급업체’고객이 사기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즈니스 신의원칙과 회사가치관의 기본선을 건드리는 행위에 대하여 용인한다는 것은 더 많은 성실한 고객과 알리바바인의 신의성실에 대한 범죄이다. 우리는 반드시 조치를 취하여 알리바바의 가치관을 지켜야 한다.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관여한 동료직원들은 이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해야 하다. B2B의 경영진은 주요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알리바바 사기사건에 깊이 연루된 COO 리쉬휘(李旭暉)도 결국은 사직을 한다. 전 B2B회사의 부총재인 등캉밍(鄧康明)도 이에 연루되어 그룹CPO의 직위를 사직한다. 이 영향을 받아, 2월 22일, 알리바바의 주가는 15.24홍콩달러로 낙폭이 8.6%에 달했다. 이는 알리바바 설립 12년이래 처음으로 부총재급이상을 칼로 쳐낸 것이다. 스스로 마음이 약하다는 마윈이 정말로 칼을 든 것이다.
마윈은 ‘대독재자’라는 말에 반감을 지니고 있다. 알리바바가 원래 그의 자금성도 아니다.
알리바바에서, 마윈의 경영풍모는 ‘크고 작은 일은 모두 관여하여 결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2008년 그는 알리바바 산하의 5개 자회사의 중대경영사항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09년, 그는 자회사의 재무예산조차도 잘 들여다 보지 않았다.
그러나, 알리바바의 중요한 전략회의에서 마지막으로 탁자를 치면서 주먹을 휘두르고, ‘이렇게 하는 걸로 합시다’라고 하는 사람은 역시 마윈이다. 소요자재하는 마윈은 심지어 사람들에게 왜 그런지에 대하여 설명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알리바바의 총참모장, 수석전략관인 쩡밍(曾鳴)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중요한 의사결정 포인트와 그 배후의 논리에 비교적 뛰어나다. 회사의 과거발전, 미래방향을 잘 이해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쉽게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뭘 원하는지를 잘 모를 수 있다. 나는 그가 생각하는 전체적인 발전의 구조를 결합해낼 수 있다.”
마윈은 무엇을 하는가? “현재 그와 나는 모두 전략의 큰 그림을 본다. 그는 직감에 의존하고 비교적 민감하게 핵심포인트를 집어낸다. 이것은 우리 둘이 이 그림을 그리는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쩡의 말이다.
이외에 마윈은 인사대권을 완전히 펑레이(彭蕾)에게 넘겼다. 이번 ‘사기게이트’의 풍파에서 지부보 총재인 펑레이는 그룹의 인력자원관도 겸직하게 되었다.
다른 대독재자들과 다른 점이라면, 알리바바는 마윈의 개인적인 색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저우의 알리바바 빈강원구, 서호과기대하, 화성대하, 신속하게 확장하는 알리바바단지내에서, 마윈의 단독사진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타오바오왕의 역사벽에는 그저 풍청양(風淸揚, 마윈의 별호)이라는 세 글자만 보인다. 만일 마윈의 이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굳이 찾으려면, 호반화원빌라의 벽에 쓰여 있는 마윈이 삐뚤삐뚤하게 써놓은 6개의 큰 글자: “발전이 불변의 진리이다(發展是硬道理)”일 뿐이다. 이 보통주민건물은 일찍이 마윈의 팀이 창업을 한 곳이고, 현재는 창업기지이다.
그러나, 만일 이를 가지고 마윈이 알리바바에 대한 지배욕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그건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마윈은 스스로 이나모리 카즈오(稻盛和夫)를 흠모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경영의 신’이다. 쿄세라회사의 창업자의 한 마디는 마윈의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사람이 영혼을 이탈하게 하기는 아주 어렵사. 그러나 정신적인 지도자가 떠나더라도, 영혼이 기업에 남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고인(高人)이다” 마윈은 이런 고인이 되고 싶어했다. 기업이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원할 뿐아니라, 영혼도 계속 남아있기를 원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마윈의 독재와 패도는 표면적인 ‘크고 작은 일은 모두 직접 처리하는’ 데 있지 않고, 기업의 영혼과 근본에 있다. “마윈은 대독재자(大獨裁者)가 아니다. 많은 머리가 좋은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야심이 큰 대독재가(大獨裁家)이다” 한 알리바바에서 이직한 직원은 ‘가’를 강조한다.
지금까지 알리바바는 사명감으로 굴러가는 회사였다. 신상업문명은 알리바바제국의 기초였따. 개방, 투명, 분담과 책임은 사명이다. 고객제일, 팀웍협력, 변화포용, 성실, 격정, 경업은 알리바바의 ‘육맥신검’이다.
1995년 4월, 마윈은 인터넷업계에 발을 디딘다. 그와 창업파트너들은 중국옐로우페이지회사를 창립한다. 운영모델은 아주 간단했다. 미국의 서버를 빌리는 것이다.
중국기업의 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서 EMS로 미국 시애틀로 보낸다. 미국의 합작파트너로 하여금 그 웹페이지를 인터넷으로 보내게 하여, 인터넷의 웹페이지를 칼라버블프린트로 인쇄해서, UPS로 항주로 부친다. 마윈은 프린트한 것을 회사에 건네주고 돈을 받는다. 웹페이지의 비용은 2만 내지 3만위안이었다.
그때의 마윈은 기술을 몰랐다. 번역도 가장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알리바바 팀의 한 창업자는 이렇게 회고한다.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이상주의자의 격려방식이었다. 돌연 팀원들의 앞에 나타나서,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쉰 목소리로 말을 한다: 잘 해라. 우리도 조어대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아주 아름다운 미래광경을 얘기한다. 피로해서 죽을 지경인 팀원들에게 이렇게 계속해나가면 별장, 스포츠카등 모두 다 가질 수 있다고.
1999년 9월이 되어 마윈과 17명의 창업자는 호반화원빌라에서 알리바바를 창립한다. 마윈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솔직히 인정한다. 알리바바는 한동안 헤맸다. 마치 747엔진을 부착한 트랙터처럼. 2000년 하반기부터 2001년까지 마윈은 ‘연안정풍운동’을 결정하고, ‘항일군정대학’을 건립하며, ‘남니만 황무지개간’을 결정한다.
‘연안정풍운동’에서, 알리바바는 알리바바의 9대가치관을 만들어낸다. 혁신, 격정, 개방, 교학상장, 군책군력, 품질, 전문, 서비스 및 존종, 간편. 기억하기 간편하게 이를 ‘독고구검’이라고 불렀다. 기억을 강화하기 위하여, 알리바바는 GE의 경험을 빌려, 가치관을 카드로 만들어 직원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들은 가치관을 실적심사의 지표로 삼았고, 직원의 급여와 연결시켰다. 마윈의 말에 따르면, 가치관은 알리바바 직원들의 뼛속에 스며들었다.
알리바바의 평가체계에서, 실적수자는 평가체계의 5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50%는 가치관의 평가이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의 실적이 100만이라면, 50점을 얻는다. 이어서 대응하는 주관이 평가를 한다. 100만의 어떤 방법으로 얻었는가, 고객의 얼마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었는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은 아닌가? 만일 있다면 반드시 도태시킨다. 이런 사람은 알리바바에서 ‘들개’라고 부른다.
‘항일군정대학’은 알리바바의 ‘백년대계’와 ‘백년알리’훈련반을 말한다. 이 두 개의 운동을 통하여 알리바바는 게릴라에서 정규군으로 변신했고, 격정적 창업에서 가치관으로 움직이는 인터넷회사가 된다.
많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알리바바는 비즈니스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직원이 2000명에 이르렀을 때, 관리의 문턱을 넘어야 했다. 2005년 알리바바의 직원이 2000명에 가까워진다. 신규직원이 90%를 점한다. 바꾸어 말하면, 창업초기 알리바바문화는 1명의 알리바바인(업무만3년이상)이 2명의 신인을 데리고, 전수하는 것이었다. 2005년이 되어, 이미 1대 10으로 된다. 당시의 알리바바 경영진의 평균연령은 26세였다. 알리바바직원의 평균연령은 25세였다. 그러다보니 누구도 누구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 해에, 마윈은 내부 인터넷에서 많은 원망섞인 글들을 보게 된다. 그는 장편의 서신 <진지하게 일을 하고, 대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글을 남긴다. 거거서 ‘일을 하기 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그러나, 젊은 직원들의 원망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는 알리바바의 문화가 희석된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인력자원부는 제3의 회사와 함께 알리바바문화에 대한 조사연구보고서를 내게 한다.
나중에 들은 소식을 보면, 당시의 마운은 대부분의 신경을 야후중국을 합병하는데 두었다.
2005년 8월, 알리바바집단이 야후중국의 모든 자산을 인수한다. 동시에 야후는 10억달러로 알리바바집단의 39%지분과 35%의 의결권을 인수한다. 마윈의 경영진은 35.7%의 지분만을 가졌다. 작년 9월, 야후의 CEO인 바츠는 당시의 계약에 따라 알립바 동사회에 들어간다고 발표한다. 그리하여 알리바바집단의 지배권다툼이 벌어진다. 풍파가 가라앉은 후, 마윈의 팀은 지배력은 알리바바의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된다.
“이런 상황하에서 3만여명의 회사가 하나가 되어 앞으로만 나가려면 알리바바는 강력한 핵심이 필요하다. 당연히 알리바바는 마윈을 선택했고, 마윈뿐이다. 마윈도 반드시 알리바바의 신이 되어야 한다. 신격화를 당하든 아니면 스스로 신격화 하든. 타오바오왕의 한 이직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 예언가, 신화알리, 마윈의 진정한 뜻은 알리바바를 진정한 백년회사, 위대한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작년연말의 중국기업가연차회의에서 마윈은 자문자답을 한다. 이 이삼년동안, 자신은 기업을 하지 않았고, 예술품을 한 예술가이다. 사실은 그의 뜻은 알리바바의 모든 제품을 예술품으로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팀이 만들어야 하는 것은 비즈니스생태시스템이고, 알리바바가 해야하는 것은 신상업문명의 개척자라는 것이다.
이외에 마윈은 자신을 예언가로 전환했다. 그는 성공적으로 이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2008년 경제의 겨울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2010년 영화매표수익을 추산한다. 심지어 그는 유쿠 CEO 구용창의 직업역할도 정확히 추산해낸다.
당연히, 마윈과 알리바바신화는 더 이상 크게 떠벌일 필요도 없다. 5분만에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를 투자하게 만든 것이라든지, 타오바오왕이 신비하게 출현하는 것, 다시 지부보를 언제든지 국가에 바치겠다고 한 것등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재미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윈이 알리바바의 가치관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추종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마윈의 매번 인사이동을 보면, 창업파트너, 충성도가 높은 임원을 중요한 위치에 놓는다. 예를 들어, 초기에 타오바오를 건설할 때 마윈이 기용한 것은 창업 십팔나한의 하나인 쑨통위이다. 지부보를 만들 때 마윈은 광주에서 판매를 하고 있던 루자오시를 항주로 데려온다.
그러나, 알리바바는 ‘소신(小神)’이 여럿 출현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타오바오왕때 쑨통위의 영향력은 마윈보다 훨씬 컸다. “나와 마윈은 공통점이 사실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우리 두 사람은 모두 마음이 뜨겁다. 기업의 미래에 대하여 굳건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내가 그보다 뛰어난 점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회사의 운영, 집행력에서 그는 분명히 나보다 못하다.” 쑨통위는 일찍이 마윈의 한 친구에게 말한다. “알리바바의 창업자는 첫날부터 알고 있었다. 마윈이 있으면 우리는 영원히 CEO가 될 수 없다는 것을” 2007년 11월, 마윈은 루자오시를 타오바오왕으로 보내고, 쑨통위는 해외로 공부를 하도록 보낸다.
금년 3월 9일, 거인의 동사장 겸 CEO 스위주가 마윈의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할 때, 마윈은 그에게 개에 대하여 설명한다: 개는 영원히 정치를 하지 않는다. 그는 유일하게 주인을 사랑한다. 개의 눈에는 주인이 하느님이다. 주인이 가난한 떠돌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그를 숭배한다. 주인은 이것저것 사랑한다. 그러나, 개의 사랑은 모조리 주인에게 향한다. 주인이 집을 떠나 출근하면, 개는 주인의 발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린다.”
만일 이 말을 반드시 해석해야 한다면, 상술한 이직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마윈의 뜻은 알리바바제국의 주인은 바로 그 ‘가치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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