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명(張鳴)
사천(四川)은 신선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옛날 도교(道敎)가 바로 이 곳에서 발원했다. 그러나, 청출어람인 법이다. 뒤로 갈수록 대단해진다. 옛날 도교의 창시자인 장도릉(張道陵)은 비록 천사(天師)로 존칭되었지만 그래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후배인 진운산(縉雲山) 소룡관(紹龍觀)의 이일도장(李一道長)은 이미 살아있는 신선이 되었다. 제자들이 그를 만날 때는 "천존(天尊)"이라고 칭한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도교의 최고의 신인 삼청(三淸)이 비로소 천존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살아있는 신선은 이미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이다.
이일의 족적을 보면, 사천의 또 다른 살아있는 신선인 유종운(劉從雲)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20,30년대 사천에서는 위로는 고관대작부터 아래로는 판부주졸(販夫走卒)까지, 유신선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유신선, 유종은의 원명은 유종배(劉宗培)이다. 청나라가 망하는 마지막 해에 일관선천교(一貫先天敎)를 창립했다. 보계상으로 보면, 왕각일(王覺一)의 일관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는 삼교합일(三敎合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홀리는 법술은 기본적으로 도교에서 베껴왔다. 여기에 다시 민간 백련교의 수법을 가미했다. 이일과 마찬가지로, 유종은은 일반인이 보기에 확실히 대단한 점이 있었다. 무슨 기공, 귀식, 부계(扶乩), 점복등등 못하는 것이 없었다. 당연히 병을 치료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이런 법술의 효험은 그와 제자들이 떠벌리고 다닌 것이다. 진짜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자고이래로, 운기조식등을 하면, 건강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거의 모든 민간종교는 모두 이렇게 시작했다. 당연히 모든 종교에는 살아있는 신선이 하나씩 있다. 일반적인 운기조식도 신선의 가르침을 받으면 신기무비해지는 것이다. 유종운은 문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두 신장의 사이에서 천문혈까지 붉은 선이 있는데, 오랫동안 수련하면, 이것이 드러나고, 다시 더 수련하면 붉은 구슬이 드러난다, 붉은 구슬은 아래 위로 움직이며 변화무궁하여, 신선이 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이일도장이 운기조식때 기가 움직인다고 하는 것이나 실은 같은 이야기이다.
유종운이 이름을 떨쳤던 것은 그가 정치에 관여했던 것과 관련된다. 사천의 군벌들 중에서, 유종운은 유상(劉湘)을 점찍었다. 당시 유상은 부하들을 통제하기 곤란했었는데, 일관도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유종운은 사천에 제자가 아주 많았고, 이목도 많았다. 그리하여 여러번의 사천군벌혼전에서, 점을 쳐서 나온 결과가 모두 들어맞았다. 유상이 여러 무리들을 제압하고 사천을 통일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더욱 신임을 받는다. 가장 이름을 날릴 때는 유상이 유종운에게 신군(神軍)을 훈련시켜, 공산당을 소탕하는 전적총지휘관을 맡기기도 했다. 외부에서는 이런 말도 있었다. 다른 군벌은 육,해,공의 삼군이 있는데, 유상에게는 육,해,공,신의 사군이 있다고, 그러나, 신선이라고 하더라도,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는 법이다. 유종운이라는 전적총지휘관은 사술을 믿지 않는 홍군제4방면군을 만나서, 일패도지하고 만다. 신선에서 멍청이로 전락한 것이다. 신선은 파탄이 나고, 유상과도 사이가 틀어져서 강호에 유랑하게 된다. 1950년대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감옥에서 사망한다.
유신선의 비극은 그가 처했던 시대와 관련이 있다. 난세에 영웅이 사방에서 일어나는데, 도사라고 하여 일세를 풍미하지 말란 법은 없다. 사실 그보다 먼저 혹은 후에 살았던 살아있는 신선 혹은 강호의 도사들은 절대다수가 그만큼 정치적야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보여주는 법술은 사실 종교를 빌어서 돈을 끌어모으는 것이었다. 문도들의 숭배는 바로 돈이 들어오는 통로이다. 이 통로를 더욱 넓히기 위하여, 신선의 법술은 더욱 신기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유명해지면, 더 이상 사람들을 쉽게 만나지도 않는다. 유명해지면 질수록 더욱 신비감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현대인만큼 총명하지 않았다. 고대의 신선은 왕왕 민간에서 활약했다. 걸핏하면 스스로 종교를 하나 창립한다. 이름은 신비하면 할수록 좋다. 예를 들면 유신선의 '일관선천도'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정규종교들 속에서 살아남기에는 골치가 아팠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선은 모두 정부에서 인가한 등록부에 등록한다. 본질적으로는 강호의 사기꾼이다. 조직이 있으려면 사승(師承)이 있어야 한다. 신선도 알고 있다. 만일 이런 것이 없으면 문을 열어도 돈을 벌기 어렵다. 걸핏하면 수천,수만인데, 모두 불법이다. 잘못하다가는 단속을 당할 수 있다.
고대에는 매체라는게 없었다. 신선이 스스로 선전해야 했다. 그저 문도의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내야 했으므로 효율이 아주 낮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선은 TV에서 한번 떠들어주기만 하면, 잡지에서 표지에 올려주기만 하면,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다. 여기에 유명인사 몇명을 끌어다가 제자로 삼아버리면, 그 기세가 불처럼 일어난다. 그리하여 고대의 신선은 정부기록을 보면 수백무의 밭을 가지거나, 몇채의 기왓집을 가지거나, 호색하는 자는 몇몇의 처첩을 가졌다. 그러나, 현재의 신선은 산아래에서 줄을 서서 돈을 바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다. 부동산개발보다 돈벌기가 더욱 쉽다.
사천이라는 곳은 원래 신선이 나는 곳이고, 신선이 많다보니, 돈있는 사람들이 그 덕을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신의 주머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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