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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

요리사의 식칼에 찔려죽은 3명의 중국황제

by 중은우시 2010. 2. 1.

글: 유병광(劉秉光)

 

역사의 바다는 넓고 넓다. 온갖 기이한 일이 다 있다. 중국황제의 비정상사망중에서 기이한 것으로 따지던지, 멍청한 것으로 따지든지 전량(前凉)의 장조(張祚), 동위(東魏)의 고징(高澄), 대요(大遼)의 야율경(耶律璟)은 모두 후보에 오를만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난세의 제왕이고, 황사바람이 부는 전쟁터에서 죽지도 않았고, 권력을 움켜쥔 중신의 손에 죽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솥, 남비, 그릇과 씨름하는 주방장의 식칼에 죽은 것이다. 이는 황음무도한 삶을 살았던 그들에 대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아니할 수 없다. 천년이나 지난 일을 지금에 와서 다시금 생각해보고 다시 한번 그 때의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읽어보고, 그들이 했던 소행을 되돌아보면, 여전히 목구멍에 가시가 거린 듯 찝찝함이 남는다.

 

장조(? - 355), 자는 태백(太伯)이고 감숙성 평량(平凉) 사람이다. 오대십육국시대에 전량(前凉)의 문공(文公) 장준(張駿)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그는 환공(桓公) 장중화(張重華)의 동부이모의 배다른 형이다. 그는 적자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배다른 동생의 신하로 고개를 숙이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장조는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최고권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그는 계모인 마태후(馬太后)와 결탁하여 간통한다. 이것이 바로 <<진서(晋書)>>에 쓰여 있는 "증중화모마씨(蒸重華母馬氏)"이다. 장중화가 죽은 후에, 장중화의 10살된 아들 장요령(張曜零)이 즉위한다. 그가 애공(哀公)이다. 장조는 큰아버지의 신분으로 보정(輔政)을 하며, 지절, 독중외제군, 무군장군이 되어 병권을 장악하고 정무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한다. 조야에 그의 기세가 대단했다. 전량건흥41년(353년) 11월, 장조는 정부인 마태후의 암중지원하에 장요령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대장군, 대도독, 양주목, 양공(凉公)에 오른다. 건흥42년(354년) 정월 장조는 자칭 양왕(凉王)이 되고, 연호를 화평(和平)으로 바꾸고, 백관을 두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며 천자의 예악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전량의 새로운 군주에 오른다.

 

장조는 비록 박학하고 무에 뛰어나 정치의 재주가 있었지만, 사람됨이 황음하기 그지없었다.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아, 장조는 마태후를 버리고, 장중화의 처인 배씨, 아직 출가하지 않은 딸 그리고 부친 장준의 후궁들까지 모조리 차지해버린다. 인륜을 극도로 파괴하는 그의 행태에 나라사람들이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화평2년(355년), 하주자사 장관(張瓘)이 병력을 일으켜 장조를 토벌하고자 한다. 그는 장조를 폐위시키고, 다시 장요령을 애왕으로 삼겠다고 공언한다. 장조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사람을 보내어 장요령을 살해하고 모래구덩이에 묻어버린다. 윤9월, 장관은 송혼, 송징 형제와 내외에서 협력하여, 금방 전량의 수도 고장을 함락시킨다. 놀란 나머지 장조는 검을 차고 전각에 올라가서 좌우의 사람들에게 죽기를 다해서 싸우라고 고함을 쳤지만, 사람들은 투지가 없었다. 병사와 백성들이 모두 수수방관했다. 이때, 심복인 조장(趙長)이 장조를 배신하여, 극(戟)으로 장조의 이마를 찌른다. 급한 나머지, 장조는 황급히 도망쳐 들어갔는데, 요리사인 서흑(徐黑)에게 살해당한다(魏書). 그후 송혼 등은 그의 머리를 효수하여 내외에 보여주고, 시신을 길 가에 버려둔다. 나랏사람들은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만세를 불렀다. 장조는 사람들이 그를 떠나고, 만백성이 그를 미워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죄에 합당한 벌을 받은 것이라고 할 만하다.

 

세상에 홀로 있는 것은 없다. 194년 후, 중국역사상 또 한번의 주방장이 식킬로 제왕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고징은 비록 생전에 황제에 오르지는 않았고, 생전에는 제왕(齊王)에 봉해졌지만, 동위의 효정제를 자신의 손바닥에 놓고 다루었으며, 죽은 후에는 동생인 고양(高洋)에 의하여 '문양황제(文襄皇帝)'에 추존되었다. 또 하나의 조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조조처럼 천수를 다 누리고 죽지를 못하고, 주방장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고징(521-549)은 자가 자혜(子惠)이고, 고환(高歡)의 아들이다. 고환이 죽은 후, 고징은 부친의 직위를 물려받아, 계속하여 동위의 조정을 장악한다. 고징이 보기에, 동위의 강산은 고씨집안이 만든 것이다. 황제도 당연히 고씨가 되어야 했다. 황제를 모욕주기 위하여, 그리고 대체하기 위하여, 고징은 효정제를 '치인(痴人, 바보)', '구각짐(狗脚朕)'이라고 욕하고, 사람을 시켜 황제를 주먹을 3대 때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황제에게 '모반'을 한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나중에 고징은 황제를 함초당에 유폐시키고, 모반에 참여했다는 '화산왕대기, 원근'등을 시장에서 삶아죽였다. 이 점은 고징이 조조보다 악독했다.

 

고징은 황제와 대신에게만 이렇게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하에게도 그러했다. 고징에게는 난경(蘭京)이라는 요리사가 있었다. 그는 양나라의 대장군 난흠(蘭欽)의 아들이다. 동위와 양나라가 전쟁을 벌일 때, 난경은 포로로 잡히고, 나중에 고징의 집안에서 요리사를 지낸다. 난흠은 많은 돈을 뇌물로 바치고 아들의 데려가고자 했으나, 고징이 허락하지 않았다. 난경이 자신을 풀어달라고 고징에게 요청했으나, 고징은 대노하여 그에게 곤장을 때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런 얘기를 하면 너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어쩔 수 없이, 난경은 다른 여섯 명의 원한을 품은 요리사들과 함게 변란을 기획한다. 무정7년 팔월팔일, 고징은 몇몇 대신들과 동백당에서 선양에 관하여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이때, 난경이 식사를 가지고 왔는데, 고징은 그를 바깥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는 좌우에 말했다: "어제, 나는 꿈에 이 집안노비가 나를 칼로 베는 꿈을 꾸었다. 바로 그 놈을 죽여버려라." 난경은 그 말을 깜짝 놀랐다. 그리하여 몰래 칼을 접시 아래에 두고 다시 한번 '식사를 드시라'고 진언했다. 고징은 난경을 보고는 '내가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지도 않아쓴데, 왜 가지고 왔느냐?"고 말하자, 난경이 칼을 휘두르며, "너를 죽이러 왔다"고 했다. 고징이 놀라서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발이 끈에 걸렸다. 그리하여 평상(床)의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난경과 동료들은 평상을 치우고, 여러 개의 식칼로 고징을 찔러서 육장으로 만들었다.

 

요리사가 황제를 죽인 기이한 사건은 중원왕조의 특유한 것은 아니었다. 거란인들이 세운 대요제국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다. 요나라의 목종 야율경은 바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요리사와 측근시위에게 피살당한다.

 

야율경(931-969), 야율덕광의 장남이다. 천록5년(951) 구월, 요세종 야율완이 피살된 후, 야율경은 반란을 진압하고 황제위를 차지한다. 그리하여 요나라의 네번째 황제가 된다. 야율경은 중국역사상 유명한 혼군(昏君)이며 폭군(暴君)이다. 그의 인생사전에는 황음과 잔폭이라는 두 글자만 있다. 음주, 수면, 수렵외에 야율경의 취미는 살인이었다. <<요사>>의 기록에 따르면, "초기에 여무(女巫) 초고(肖古)가 장수할 수 있는 약방을 올렸는데, 남자의 간을 넣는 것이었다. 몇 해동안 사람을 많이 죽였다." 자신의 장생불사를 위하여 여자무당이 하는 말을 듣고, 남자의 간으로 조제한 약을 먹다니, 황당하고 우매하고 멍청하고 잔인한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야율경의 재위기간동안, 자주 남쪽의 후주와 전쟁을 일으킨다. 그런데 매번 패배했다. 전쟁터에서는 이기지도 못하면서, 살인의 기호를 지닌 야율경은 자신의 신하와 백성들만 죽였다.

 

<<요사>>를 훑어보면, 야율경의 살인기록은 놀랄 정도이다. 응력13년부터 그가 죽기까지, 야율경은 매년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그는 자신의 곁에서 짐승을 보살피는 하인들을 함부로 죽이는 이외에 자신의 측근시위들에게도 똑같이 대했다. 측근시위는 황제의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을 도와주는 심복이다. 그런데, 자잘한 일들을 가지고 죽임을 당하였다. 야율경의 잔혹함과 무정함은 결국 조석으로 목숨을 걱정해야하는 측근시위등의 모반을 불러온다. 응력19년(969년) 이월, 야율경의 측근시위 소가(小哥), 관인(人) 화가(花哥)등은 수중에 무기가 없으므로, 요리사인 신고(辛古)등 6명과 연합하여, 야율경이 술에 취한 틈을 타서, 식칼로 그를 죽여버린다.

 

전쟁터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정변의 와중에서 사망한 것도 아니며, 그저 이름없는 요리사에 의하여 평소에 닭을 죽이고 양을 잡고, 채소를 썰고 고기를 다지던 식칼에 죽은 것이다. 덕이 있는 자는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덕을 잃은 자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일개 요리사마저도 침묵의 와중에서 폭발을 한다. 요리사의 식칼은 요리를 하는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제왕은 비록 대권을 장악하고 있고, 언제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요리사도 가볍게 제왕을 죽여버릴 수 있다. 역사는 왕왕 이들 제왕의 눈에 보잘 것없는 사람들에 의하여 조용히 고쳐쓰여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