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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경제

국부민강(國富民强)? 민부국강(民富國强)?

by 중은우시 2009. 12. 28.

글: 풍팔비(馮八飛)

 

인민폐는 반드시 평가절상되어야 한다고 오바마가 말했다. 먼저 부유해진 중국경제학자들은 크게 즐거워하면서, "국가가 부유하면 백성도 강해진다(國富民强)"고 소리쳤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백성이 부유해야 비로소 국가가 강해진다(民富國强)"

 

그들은 나로 하여금 더 이상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못하게 만든다.

 

5천년중국에서, 어느 시대가 가장 부유했는가? 북송(北宋)이다. 송인종때 국고연수입은 1억5천만관이다. 당시 1관은 5그램황금의 가치가 있으므로, 1억5천만관은 2009년의 152억달러에 해당한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당시의 GDP는 2,280억달러에 달하고, 1인당 GDP는 2,280달러에 달한다. 이는 전세계 GDP의 64%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어떤 학자는 80%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세계 최고부자국가였다. 현재의 미국보다도 훨씬 대단했었다. 번영하다보니, 섹스산업도 발달했다. 강남의 기녀들만 하더라도, 관기(官妓), 성기(聲妓), 예기(藝妓), 상기(商妓)의 4등급으로 나뉘었다. 영국의 저명한 학자 토인비도, "만일 나에게 선택하라면, 나는 중국의 송나라에 살고 싶다"고 한 바 있다.

 

송나라는 확실히 나라가 부유했다. 그러나, 백성이 강했는가? 나라가 강했는가?

 

송나라는 사실상 중국역사상 가장 쇠약하고, 가장 후안무치한 왕조이다. 한나라에는 문경지치가 있고, 당나라에는 정관지치가 있으며, 청나라에도 강건성세가 있다. 송나라에는 뭐가 있는가? 송강의 강도, 방랍의 반란, 장방창의 '대초(大楚)", 유예의 대제(大齊)가 있고, 서하가 동쪽으로 공격해오고, 요나라 금나라가 남하해왔으며, 몽골철기가 광동까지 밀고 내려왔다. 그리고 나라는 망했다.

 

강희건륭은 무엇으로 태평성대라고 하는가?

 

강희제는 재위62년간 조세를 500여차례나 감면했다. 이는 백은1.5억냥에 해당한다. 전국의 4년재정수입총액에 해당한다. 건륭은 더 심했다. 전후 5년의 전국세금을 면제해주었고, 합계 은3억냥이 넘는다.

 

송나라는 왜 '태평성대'가 아닌가?

 

왜냐하면 송나라의 국부(國富)의 기초가 민빈(民貧)이었기 때문이다. 한 소작농의 연수입은 곡물60석인데, 30석을 세금으로 낸다. 만일 한집에 식구가 다섯이면 1인당 6석이 돌아간다. 그중 60%는 본인이 먹고, 나머지로는 기름, 소금, 간장, 식초등과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 한푼도 남지 않는다. 노동자는? 개보연간의 방직여공의 매월급여는 겨우 1석의 쌀을 살 돈이었다. 원풍연간의 짐꾼은 매월 3석의 쌀을 벌었다. 남송 건도7년 소흥 제기현의 착공노동자는 매일 쌀2승, 매월 겨우 4말을 벌었다.

 

송나라의 그 풍류재자들은 아마도 순자의 글을 읽어보지 않은 것같다: "왕자(王者)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패자(覇者)는 병사들을 부유하게 한다. 겨우겨우 연명하는 국가는 대부(大夫)들만 부유할 뿐이다. 망하는 나라의 군주는 자신만 부유하고, 창고에 가득 쌓아놓는다"

송나라를 보면, 대대로 황제들은 죽어라 창고를 채우기에 바빴다. 그런데도 망하지 않기를 바란단 말인가?

 

명청의 사상가 고염무는 <<일지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이런 말을 했다. 고대인들은 부를 백성들에게 쌓았다. 한나라이후에 재물은 이미 백성들에게 있지 않았다. 군국(郡國)에 있었다. 모조리 수도로 가져오지는 않았다. 이것은 한나라사람들의 좋은 법이다. 후세인들 중에서 그 뜻을 헤아리는 자가 드물다....송태조 건덕3년에 모든 주에서 경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금과 비단을 조정으로 보내게 하였고, 남겨두지 못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1전이상은 모조리 조정에 귀속되었다. 송나라가 유약하고 힘을 떨치지 못한 것은 실제로 이것 때문이다." 송나라의 국부는 전형적인 '여민쟁리(與民爭利)'이다. '1전이상은 모조리 조정에 귀속시키니' 황실는 부유해지고, 고관대작은 부유해지고, 창고는 가득찼다.

 

결과는? 나라가 망한 것이다.

 

중국은 현재 부유한가?

 

2009년 국가재정수입은 7조위안을 넘어섰다. 60년간 985배나 성장했고, GDP는 세계3위이다. 외환보유고는 1조달러를 넘어, 60년간 14000배나 성장했다. 확실히 1949년보다는 부유해졌다.

 

백성이 강한가?

 

예일대학 교수인 진지무(陳志武)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07년까지 중국의 세수는 연평균 16%씩 성장했다. 도시주민의 가처분소득은 연평균 겨우 8%밖에 성장하지 않았고, 농민으 겨우 6.2%이다. 30년동안 중국GDP는 67배나 성장했는데, 1인당평균수입은 12배만 증가했다. 부가 정부와 소수인에게 쏠리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된다. 중국은 현재 시간당평균최저임금이 0.3달러가 되지 않는다. 구미국가는 25달러 내지 30달러이다. 산서의 광산노동자는 월급여가 1천위안이 되지 않는다. 광산주는 하루에 수백만을 번다. 한국은 1960년대 1인당 수입이 90달러가 되지 않았다. 2007년에는 2만달러를 돌파했따. 홍콩의 기와공의 1일급여도 600홍콩달러(77달러)이상이다.

 

2008년 중국의 빈곤선은 일일수입0.3달러이다. 세계은행이 정한 빈곤선은 1.25달러이다. 세계은행기준에 따르면, 중국의 빈곤인구는 4억에 이른다. 세계2위이다. 인도 바로 다음이며, 일본인구 3배이다. <<상해증권보>>의 보도에 따르면, 인민은행 부행장 소녕이 이렇게 말했다. 최근 들어 중국의 GDP는 연9%성장했고, 각급재정수입은 연평균20%씩 성장했다. 그러나 급여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9년의 16%ㅇ서 2003년은 12%로 감소했다. 전력,전신,금융,보험등 독점업종의 급여수입은 다른 업종의 5-10배이상이다. 수백배가 넘는 경영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부자는 인구의 1%가 되지 않는다. 나머지 10%는 소위 골드칼라, 화이트칼라이다. 나머지는 모두 블루칼라이다.

 

이들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중국의 GDP성장의 절대부분은 국가재정과 소수의 부자들이 가져가버린다는 것이다. 나머지 일부분은 다시 독점기업이 가져가 버린다. 주택과 휘발유가격은 직접 '국제적 수준'에 맞추어가지만, 의료, 교육과 양로등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제수준에 맞추지 않는다. 포브스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세금부담은 세계 2위이다. 미국국가재정수입은 GDP의 20%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지출의 절반은 양로와 의료에 쓰인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백성들이 스스로 부담한다.

 

이게 바로 '백성의 부를 빼앗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겠는가?

인민의 수입은 확실히 증가했다. 그러나 '국부'의 속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부유할수록, 민중은 더더욱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정부가 약간의 돈을 풀어도, 그들은 여전히 불평불만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부"가 국가의 존재목적인가?

아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근본목적은 바로 '민부'이다. '국부'를 추구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것은 논리에 맞는다. 왜냐하면 그런 국가는 존재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구미국가정부는 대부분 그다지 부유하지 않다. 재정적자는 통상적이다. 슈왈츠제네거가 얼마전에 캘리포니아의 재정파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인민이 전부 파산한 것은 아니다. 미국중산계층가정의 수입은 4-10만달러이다. 통상적으로 167평방미터이상의 독립주택에서 산다. 2개이상의 욕실이 있고, 2대이상의 자동차가 있으며, 차고도 있다. 북경, 상해, 광주에서 희희낙락하는 '중산층'들이여 몇명이나 그런 부를 누리며 살고 있는가?

미국의 국부는 항공비행기, 항공모함, 시카고와 뉴욕의 마천루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국부는 주로 주택지역의 녹지에 둘러쌓인 독립주택과 문앞의 잔디밭에서 공을 차는 어린아이들에게서 나타난다.

'부를 백성에 저장한다(藏富於民)'는 것을 듣지 못했는가?

'부를 백성에 저장한다'는 개념은 사실 중국에서 나왔다. 관중에 말했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한다. 그 후에 다스린다" 한나라때 조엽은 <<오월춘추>>에서 이렇게 말했다: '월나라의 군주는 창고를 가득히 하고, 전답을 개간하게 했다. 백성이 부유하고 나라도 강해졌다. 모두가 편안하고 태평스럽게 살았다." 그 때 세계에 미국이라고는 아예 없었다. 백성이 부유하면, 사회는 자연히 조화스럽게 된다. 독립주택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국가의 재부를 어떻게 '국가'와 '백성'들에게 분배할 것인가? 이는 영원한 정치문제이다. 정치적인 지혜가 절대로 필요하다. 다만, 그 원칙은 아주 간단하다. 국가가 부유하고 백성이 가난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정부가 재물을 통제하면할수록, 부패는 더 많아지고, 사회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빈부격차도 더욱 심해진다. 정부가 조화사회를 만들고자 해도 될 수가 없다. 이것은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너무 부유하기 때문이다. 이 사상은 거의 모든 중국고대의 지식인들에게는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었다. 공자조차도 이렇게 말했다: "백성이 풍족하면 군주가 어찌 풍족하지 않겠는가? 백성이 풍족하지 않으면, 군주가 어찌 풍족하겠는가?"

요즘말로 번역하면, 네가 백성을 가난하게 만들면 네 스스로 자리에서 쫓겨나는 길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백성은 어쨌든 목표가 일치한다.

 

그리고, 중국의 백성을 부유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천무는 47세로 산서의 광산노동자이다. 광산사고로 왼쪽팔을 잃었다. 광산주는 4200위안을 배상했다. 그는 화산으로 가서 짐꾼이 되었다. 자고이래로 화산은 길이 하나뿐이다. 해발 2100미터, 수십리의 험난한 길을 때때로 손으로 철삭을 잡고, 수직으로 오르내린다. 관광객들이 빈 손으로 올라도 입에 거품을 물 곳이다. 하천무는 잘린 팔로 지탱하면서 오른손으로 철삭을 붙잡고 두 다리를 떨면서 한계단 한계단 올라간다. 모든 근육이 모두 불끈불끈 선다. 40킬로미터의 짐을 들고 화산을 오른다. 매일, 하루에 세 끼는 만두 2게와 수돗물 한 병이다. "더 많아도 먹지 못한다"

 

그렇게 하고 얼마를 버는가? 30위안이다.

 

매월 부모에게 200위안을 보내고,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에게 각각 200위안을 보낸다. 자신은?

 

중석화의 본사에서는 인테리어로 샹들리에 하나에 1200만위안을 썼다고 한다. 중석화는 억울하다고 소리치면서 '겨우' 156만위안밖에 안한다고 하였다. 하천무가 142년간 짊어져야 벌 수 있는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