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풍(蔣豊)
일찌기 위대한 인물인 모택동이 거작 <<자치통감>>을 17번이나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비록 마음 속에 약간의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지도자는 일반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나도 일찌기 <<자치통감>>을 한번 통독해봐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몇번인지는 몰라도, 제1권을 펼쳐보다가 그대로 덮어버리곤 했었다.
읽어나가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낯선 고대한자가 아니라, 제1권에 나오는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잔인한 이야기들 때문이다.
첫째 이야기: 두개골에 칠(漆)을 해서, 술마시는 도구로 삼다.
기원전403년(주위열왕23년), 한(韓), 위(魏), 조(趙)는 성공적으로 연합하여 진(晋)나라를 나눠가지는 "삼가분진(三家分晋)"을 실현한다. 중국은 이때부터 혼전의 전국시대로 접어드는 것이다. 조나라의 군주인 조양자(趙襄子)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하하. 네가 나를 물에 잠겨죽게 만들겠다고? 내가 너를 먼저 물에 잠기게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는 원수인 지요(智瑤)를 대한 방식은 지요의 두개골에 칠을 해서, '술마시는 잔'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중국칠기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인용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를 읽은 후 모골이 송연해졌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큰 원한이었으면, 이런 일을 벌였겠는가? 그 술이 목을 넘어갈 것인가?
둘째 이야기: 예양(豫讓)이 스스로를 병신으로 만들어, 복수를 꾀하다.
"삼가분진"후, 진나라의 가신인 예양은 돈후하면서 어리석을 정도로 충성스러웠다. 시세의 변화를 따라가지 않았다. 죽어라 주공을 위한 복수만을 꿈꾸었다. 그는 먼저 조나라 궁실로 들어가서 기습하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병신으로 만들었다. "온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병에 걸리고, 목탄을 삼켜서 벙어리가 되었다" 이렇게 한 후 다리 아래로 숨어들어가서 습격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피살당한다. 이런 복수를 위하여 스스로를 망친 이야기를 읽으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살폭탄테러'가 생각날 뿐이다.
셋째 이야기: 오기(吳起)가 처를 죽이고, 종기를 빨면서 승리를 얻고자 하다.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이다. 노(魯)나라에서 관리를 지냈다. 국제결혼을 통하여 부인은 제(齊)나라 사람으로 얻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했는데,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수로 기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제나라국적의 부인'이 있어 사람들이 안심하지 못했다. 오기는 그 말을 듣고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서 부인을 죽인다. 목적은 분명하다. '처를 죽여서 장군의 자리를 얻으려는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은 오기가 이런 악독한 짓을 한 것이 처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전에 그는 '어머니가 죽었을 때 장례에 참가하지 않은' 전과도 있었던 것이다. 그의 스승은 이로 인하여 그와의 사제관계를 끊어버렸다. 오기는 더 이상 노나라에서 계속하여 관직에 있기 힘들어졌다. 그러자 그는 노나라를 배신하고 위(魏)나라로 투항한다. 황금은 어디를 가더라도 빛을 발하는 법이다. 오기는 위나라에서 장수가 된다. 진(秦)나라를 공격하여 5개 성을 빼앗는다. 또 하나 얘기할 것은 오기가 쇼를 한 것인지는 몰라도, 병사들이 종기를 앓고 있으면, 그가 친히 자신의 입으로 병사의 종기의 독을 빨아내 주었다. 그러나, 사병의 모친은 오기의 이런 행동을 보고는 오히려 곡을 했다: "예전에 오장군이 아이의 아버리를 위하여 종기를 빨아준 적이 있는데, 그의 부친은 전투에서 후퇴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전쟁터에서 죽어버렸다. 오장군이 이제 내 아들의 종기를 빨아주다니, 아들이 어디에서 죽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곳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부녀자의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녀는 이미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는데, 그녀는 다시 아들까지 잃게 되면 누구를 의지해서 살아야할 지를 몰랐던 것이다. 오기의 인간성과 비인간성을 누가 분명히 말할 수 있겠는가? 오기는 나중에 초(楚)나라에 투항하는데, 이것을 보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넷째 이야기: 섭정(聶政)이 암살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망치다.
섭정은 큰 효자이다. 모친이 살아있을 때는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친이 돌아가신 후, 그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한(韓)나라로 가서 재상인 협루(俠累)를 암살한다. 성공한 후, 그는 자신이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여, 얼굴을 칼로 긋고, 눈알을 파내며, 배를 갈라서 창자를 꺼낸다. 한나라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길거리에 던져버렸다.
이같은 피비린내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치통감>>이 좋은 역사서이므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모두 읽어보라고 말해야하는지 의심스럽다. 이러한 역사교육의 방식이 괜찮은 것인가? 설마 노신선생이 말한 것처럼 중국의 역사는 식인의 역사인가? 그런데, 문제는 그 위대한 분이 17번이나 읽었다는 <<자치통감>>의 이야기를 가지고 후인들에게 이런 '식인'의 역사서적을 읽으라고 이끌고 격려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거기에 포함된 잔인함은 보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그 정도 잔인함은 용인해야한다는 것인가? 혹은....
그렇다면 좋다. 계속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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