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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

환관(宦官)에 대한 각종 칭호

by 중은우시 2008. 7. 8.

글: 위경화미(爲卿畵眉)

 

태감(太監)은 봉건사회에서 생식기를 자르고, 궁궐내에서 제왕 및 황후비빈등 황실구성원들을 위하여 일하는 자를 가리킨다. 영어에서의 '태감'을 의미하는 Eunuch는 그리스어의 "침상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에서 유래했다. 이로써 볼 때 태감의 역할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로마, 터키, 조선 그리고 아시아 각국에는 태감이 존재했다. 다만, 중국의 태감제도가 가장 뿌리깊고, 중국이 칭호에서도 가장 풍부했다고 할 수 있다.

 

태감은 통속적인 표현인데, 태감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수당이후의 일이다. 이 외에 정신(淨身)", 사백(私白)", 시인(寺人)", 궁인(宮人), 엄인(人), 환관(宦官), 환시(宦寺), 부인(腐人), 중관(中官), 내시(內侍), 내관(內官)< 내감(內監), 황문(黃門), 공공(公公)등의 호칭이 있다. 아래에서 하나하나 그 유래를 알아본다.

 

"정신은 몸을 깨끗하게 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생식기관을 더러운 물건으로 보고 그것을 잘라냄으로써 몸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사백이라는 것은 물건을 잘라냈으므로, 더 이상 감출 프라이버시가 없이 청백하게 바뀌었다는 의미이다.

 

"시인"이라는 것은 거세후에는 절(寺)에 사는 사람처럼 여색을 가까이 할 수 없고, 속념을 품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하여 寺는 절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궁내의 기관인 시-寺-를 의미한다고 하여야 할 것임)

 

봉건사회에서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을 "궁형(宮刑)"이라고 하고, 생식기를 제거하는 것을 "엄"이라고 하므로, 여기에서 "궁인"이라는 호칭이 나왔다. "엄인"도 마찬가지의 의미이다. "부인"도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통속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태감은 궁내에서 일을 하고 주인을 모시므로, "중관", "내관", "내신", "내시", "내감"등으로 불렀다. 여기서 한가지 언급할 점은 현재 하이테크기업들의 집산지로 유명한 중관촌(中官村)에서 말하는 "중관"이 바로 청나라의 태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중관촌의원에는 아직도 "태감비(太監碑)"가 남아있다.

 

그리고 궁궐과 그 안은 대부분 황색으로 되어 있어서, "황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공공"이라는 호칭은 환관을 존중하여 불러주는 것이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환관은 많다. 예를 들어, 첫번째 환관재상이며 지록위마로 유명한 조고, 첫전째 태감군사인 고역사, 동관, 역사상 가장 부자로 유명한 유근, 구천구백구십구세로 불리워지던 위충현등등이 그들이다.

 

중국의 태감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고증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당나라때는 이미 "내시성"이 있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이전인 춘추전국시대에도 소위 '엄인'이 국군을 모셨다. 비록 그때는 아직 그들을 '태감'이라 부르지 않았기는 했지만. 중국의 군주제도는 1911년에 신해혁명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태감은 1990년까지 살아있었다. 손요정은 중국의 마지막 태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