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화/중국의 문화

산자이(山寨)문화는 중국의 비애이다

중은우시 2009. 1. 5. 23:57

글: 항립강(項立剛)

 

최근 들어, "산자이(山寨)"는 대단한 인기어가 되었다. "산자이핸드폰(山寨手機)", "산자이노트북(山寨筆記本)", "산자이춘완(山寨春晩, 춘완은 구정-春節- 저녁의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를 말함)", 산자이는 이미 업계의 용어에서 사회문화의 용어로 발전하였다. 2008년도의 10대 인터넷 검색어를 선정하는 경우, 산자이가 포함되어야 한다는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산자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이 얘기하다보니, 말하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산자이"를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사람이 얘기할 때는 이 사람 말이 맞고, 저 사람이 얘기하면 저사람 말이 맞다. 일부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토론하는 것을 보았는데, 닭과 오리가 얘기하는 것처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필자는 먼저 "산자이"에 대하여 몇 마디를 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우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산자이"가 무엇인지를 얘기하겠다. 그래야 사람들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나를 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가 개념은 명확히 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바로 욕을 해댈지도 모르겠다. 이건 내가 신경쓸 바가 아니다. 글이라는 것은 알아듣는 사람을 위하여 쓰는 것이다. 관계없는 사람이라면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라. 내가 거기에 정력을 쓸 필요는 없다.

 

먼저 "산자이핸드폰'을 얘기해보자, 최초로 "산자이핸드폰'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바로 이들 핸드폰공장이 산을 점거해서 왕노릇을 하면서(占山爲王), 정부의 관리를 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혹은 생산자 자신의 브랜드 이름을 붙이고, 혹은 브랜드핸드폰의 기능과 모델을 모방했다; 그들은 정부관리를 벗어나 있으므로, 증치세(부가가치세)도 내지 않고, 판매세도 내지 않았다. 세금을 포탈하므로, 지적재산권 로얄티도 지급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 기업의 제품은 당연히 값이 싸다. '산자이핸드폰'의 창조혁신을 얘기하자면, 우리는 많은 기괴한 '산자이핸드폰' 사진을 봤고, 주위에서 '산자이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보았다. 그러나 주의해서 살펴보라. 그러면 그들 소위 '창조혁신핸드폰'은 아무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외관이 특별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위 창조혁신은 아무런 실용성이 없기 때문이다. 모 외국핸드폰모델과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핸드폰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듣고 믿을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노키아의 어느 모델과 같이, 몇백만 화소의 카메라가 있고, 카메라가 회전한다. 이것만으로 같은 것인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핸드폰은 하나의 종합기술이다. 하드웨어 외에도 소프트웨어가 있다. 좋은 핸드폰이라면 소프트웨어가 좋아햐 한다. 인성화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습관에 맞아야 한다. 모든 '산자이핸드폰'은 모두 MTK의 플랫폼을 사용한다. 그것이 어떻게 노키아와 소프트웨어까지 같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밧데리가 1800mAH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런 밧데리도 30위안에서 180위안까지 가격이 여러가지이다. 왜냐하면, 전심(電芯)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로보호가 되는지, 온도통제가 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물건이다.

 

나는 '산자이핸드폰'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쓰는 것이야 가능하다. 다만, '산자이핸드폰'의 창조혁신이나 고품질을 선전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흑백이 전도된 것이다. 어떤 토론자의 논증은 더욱 가소롭다. 그는 '산자이핸드폰'도 잘 만들지 않으면 안팔린다고 했다. 그래서 품질을 잘 만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브랜드핸드폰도 잘 만들지 못하면 잘 안팔리지 않는가? 그래서 품질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닌가? 품질이라는게 잘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잘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산자이핸드폰"은 중국의 특수시대의 산물이다. 핸드폰의 보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산자이핸드폰'을 국산핸드폰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아주 위험한 심리상태이다. 하나의 산업이 관리감독을 피해서, 다른 사람의 권익을 침해하면서 발전한다면, 분명히 미래는 없다. 모방에 의지하여, 세금포탈에 의지하여야 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연구개발능력이 있고, 창조혁신정신이 있는 기업으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단 말인가? 성숙한 이성을 가진 사회라면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핸드폰제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도 좋을 게 없다. 책임있는 대국의 이미지에도 더더구나 마이너스가 된다. 나는 "산자이핸드폰"이 출현한 원인은 이해한다. 그것이 단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산자이핸드폰"을 국산핸드폰 창조혁신의 대표로 보는 것은 아주 웃기는 것이고, 또한 사실과도 동떨어진 것이다.

 

"산자이핸드폰"은 원래 한 업종의 사건이었다. 돌연 하나의 사회이슈로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최근들어 거의 모든 매체는 모두 "산자이문화"를 계속하여 언급한다. 텔레비전을 켜면,도처에서 '산자이'를 얘기한다. 그리고 일부 산자이문화를 고취하는 자는 산자이문화의 미화를 통하여 이런 문화현상을 신격화한다. 나는 아주 재미있는 평론을 하나 보았는데, 이렇게 쓰고 있었다:

 

"산자이문화는 아주 낮은 원가로 주류브랜드제품의 외관 혹은 기능을 모방하고, 여기에 혁신을 가하여, 최종적으로 외관, 기능, 가격등의 측면에서 전면적으로 이 브랜드제품을 추월하는 일종의 현상이다. 그것의 파생품은 핸드폰의 속박을 타파하고, 디지탈카메라, 마우스, 키보드등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것의 부산품은 마찬가지로 관련업종에서 구조적인 진동을 불러온다. 이는 오랑캐의 뛰어난 기술을 배워서 오랑캐의 포화를 이기는 것이고, 이는 비교학습하여 뛰어넘는 라이플총이고, 산자이문화는 카피와 추월의 구불구불한 소롯길을 줄곧 미친듯이 내달리는 것이다.특히 허가증의 속박을 벗어나고, 저비용 고회수의 복지를 움켜쥔 이후에 그것의 썩은 가지를 잘라내는 위력과 바이러스마케팅의 감염력은 철저하게 전통업종의 잠규칙을 뒤집어 엎는다. 산자이문화를 기초로한 가치서열을 건립한다. 그리고, 산자이문화는 깊숙이 풀뿌리 혁신, 군중지혜의 낙인이 찍혀 있다. 바로 부끄럼없이 당당한 중국식 산자이이다"

 

이 글을 아름다운 문구로 쓰여졌지만, 인심을 고혹시키는 구호 이외에, 실질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산자이문화에 대한 묘사는 사실상 모든 산자이문화가 모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관, 기능, 가격등의 측면에서 전면적으로 원브랜드제품을 추월하는 현상은 산자이핸드폰이든, 아미년 모방한 저우제룬(周杰倫)이든, 아니면 산자이의 춘완이든,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신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정말로 추월했는가? 그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대어 관심도를 끌 뿐인 것이다.

 

산자이문화는 사실 한 민족의 창조능력이 결핍되었다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능력이 없으므로, 할 수 없이 다른 문화제품을 빌려서 모방하고 개조하는 것이다. 소위 가죽이 없으면 털이 어디에 붙겠는가?(皮之不存, 毛將焉附). 산자이문화와 이전의 비주류문화를 비교하면, 서로 비견할 수조차 없다. 일찌기 많은 비주류문화는 자신의 존엄과 생존방식을 찾았다. 예술형식과 품격특징에서 새로운 점이 있었다. 많은 비주류문화는 미래의 주류문화가 될 단초나 조짐이 있었다. 산자이문화의 본질은 모방이다. 모방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인기를 빌리는 것이고, 약간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이런 문화현상은 주류문화의 한 부속품이다. 무슨 진정한 의미의 미래가 있겠는가?

 

한 국가의 창조혁신을, 특히 문화의 창조혁신을 모방에 기대한다면, 그 문화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한 나라의 제품과 기술이 모두 표절에 의존한다면, 책임을 지지 않고 살아가는데 의존한다면, 이 산업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산자이문화는 많은 정도로 일부 중국인들이 지름길로 바로 쫓아가고자 하는 조급한 심리상태를 드러낸다. 다만, 과학적으로 지름길은 없다. 문화창조혁신은 지름길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힘들게 노력하지 않은 민족에게는 축적된 것이 없다. 모방에 의존하는 문화는 미래가 없다. "산자이"라는 단어는 1년내에 사라질 것이고, 사람들에 의하여 잊혀질 것이다.